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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봉사가 있는곳에 영광도 있다! (벧전 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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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말

두메산골에서 화전민의 딸로 태어나 농사일만 하던 소녀가 서울에 가정부로 오게 되었습니다. 소녀는 첫날부터 마당에 가득한 풀을 보고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3일째 되던 날, 주인이 외출하고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착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쇠꼬챙이로 질긴 풀뿌리를 뽑아내느라 온몸이 땀에 젖었고 손에는 물집이 생겨 아팠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후 4시쯤 작업이 끝났습니다.  자기가 한 일을 칭찬해줄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집에 돌아온 주인은 그동안 정성들여 가꾼 잔디가 모두 뽑혀진 것을 보고 눈을 의심했습니다. 잔뜩 칭찬을 기대한 소녀에게 돌아온 것은 주인의 심한 꾸중뿐이었습니다.  힘을 다해 일하고 꾸중을 들은 소녀는 억울해서 울었습니다. 

착한 마음 하나만으로는 좋은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지식 없는 자의 무분별한 열심은 오히려 일을 망칩니다. 그러므로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딤후 3:15).

죽도록 봉사하고 욕먹을 바에야 차라리 봉사하지 않는게 훨씬 더 낫지 않습니까? 봉사하는 것도 룰이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는 데는 하나님과 교회의 룰에 맞추어 봉사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자신도 영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봉사하다”는 말은 “디아코네오(Diakoneo)”라는 말에서 파생되어 나온 말입니다. “디아코네오”라는 말은 “기다리다. 시중들다. 도움을 주다. 유지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다. 생활의 방편(수단)을 공급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교회의 일에 봉사한다는 것은 시간이 필요할 때 시간을 바치고, 몸이 필요할 때 몸을 드리고, 물질이 필요할 때 물질을 드리고, 기도가 필요할 때 기도의 제물이 되고, 전도가 필요할 때 전도에 나서고, 관리가 필요할 때 관리에 나서고, 감독이 필요할 때 감독에 나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1.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벧전4:10)봉사하라고 말했습니다.

은사(Karisma)라는 말은 원래 헬라어 “카이로(Kairo)”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카이로라는 말은 “기뻐하다. 좋아하다. 축하하다. 기쁨이 충만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사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으로 “받으면 좋고, 받으면 기쁘고, 받으면 기쁨이 충만해 지는 것이” 은사입니다.  은사(Karisma)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은사는 다양합니다(Karismata). 그러므로 각자가 받은 은사는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은사를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 하는 자면 권위 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5-8)고 말했습니다.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은사를 주시지 않으셨는데 은사가 욕심이나서 은사를 이용해 보려고 한다면 그는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이며, 큰 위험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면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병든 사람이 고침을 받고 귀신이 물러갔습니다.  유대인들 중 떠돌이 마술꾼들이 있었습니다.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행19:13)고 외치고 돌아다녔습니다.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때에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행9:15-16)고 말했습니다.

받은 은사대로 적재적소에서 봉사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며, 봉사하고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봉사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받은 은사대로 봉사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나서면 봉사가 아니라 일을 만들고 저지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누구냐?” 라고 말씀하실 것이며, 마귀도 “너는 누구냐?”라고 외치게 될 겁니다. 

2.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고 말했습니다.

은혜(Karis)는 단수입니다. 은혜는 복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은혜는 하나입니다. 누구에게나 꼭 같은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아바 아버지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구속주이십니다. 성령님은 누구에게나 보혜사이십니다.  은혜는 누구나 똑 같이 받습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 같은 은혜를 받는데 문제는 받은 은혜를 깨닫느냐, 아니면 깨닫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 겁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깨달았다고 하여 으스댈 필요 없습니다. 누구나 다 받을 수 있고, 또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사는 그릇대로 주십니다. 기질대로 주십니다. 성향대로 주십니다. 실력대로 주십니다. 달란트대로 주십니다. 깨닫는 만큼 주십니다.  문제는 은사는 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입니다. 언제든지 거두어 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으스댈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말했습니다. 선한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맡아서 열심히 충성할 뿐입니다.  머슴이 할 수 있는 일은 주인이 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할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17: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하장사 삼손의 힘은 하나님의 은사였습니다.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하나님께서 특별히 삼손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삼손의 힘은 자기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실 수 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서 은사를 거두어가셨습니다.

3. 하나님의 능력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고 말했습니다. 봉사자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직분의 은사를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직분 자들이 세움을 받았습니다. 초신자, 새교우, 가난한 자, 병환자, 고독하고 외로운 자,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세웠습니다. 교우들은 직분 그 자체를 구할 것이 아닙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는데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찾아보아야 합니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교회 안에는 봉사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직분 자들도 넘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영적인 실업자들과 실직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이유는 하기 싫은 것은 죽어도 안하니까 말입니다.

영적인 실업자들은 남의 일에 훈수 뜨는 것이 자기의 일입니다. 장기판의 훈수쟁이들 처럼 말입니다. 훈수쟁이들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훈수쟁이가 되는 겁니다.

영적인 실업자들은 복덕방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합니다. 모든 일은 자기를 통해서만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일에 걸림돌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만일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벧전4:11)고 말했습니다.  사울 왕은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지금까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충성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위해서 기념비도 세웠고, 공로비도 세웠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빌3:3)고 말했습니다. 성령으로 봉사하는 자가 진짜 할례당이라는 말은 성령 즉 하나님의 신으로 봉사하는 자가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저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주의 종들을 시켜서 지체들을 모아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십니다. 이 교회를 세우는 데는 봉사의 일꾼이 필요합니다. 일꾼들의 열심 있는 봉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일꾼들이 필요하지, 구경꾼들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일꾼이 영광을 얻지, 구경꾼들은 절대 영광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려는 스룹바벨은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 하나님의 일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를 스룹바벨에게 보내셔서 말씀을 주셨습니다.스가랴 선지자는 스룹바벨에게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힘으로 봉사했습니다. 갈멜산에서 불을 끌어 내릴 때에, 아합의 마차 앞에서 달릴 때, 호렙산으로 사십 주 사십 야를 달릴 때, 나머지 사명을 감당할 때 전부 하나님의 힘으로 해냈습니다. 그랬더니 살아 승천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것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한 봉사의 열매였습니다.

끝맺는 말

교회는 일하는데 나타나서 왜 이랬느냐? 왜 저랬느냐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대안을 제시하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덤비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그 말은 영광을 얻을 자가 많지 않다는 겁니다.  교회는 3D 업종이 없습니다. 혹시 남들이 기피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대담하게 돌진하여 소매를 걷어붙이고 봉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봉사 없는 생활에는 하나님의 영광도, 자신의 영광도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괜스레 카리스마도 없는데 남들이 하니까 좋아 보여 끼어들어 “샴쌍둥이”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겁니다. 샴쌍둥이는 몸은 하나요 머리는 둘인 경우가 있습니다.  머리 하나는 영특하여 대학을 들어갔는데 하나는 공부가 하기 싫어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머리 하나는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는데 하나는 옆에서 잠이나 자고 있는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자화상인 듯합니다.

베드로 사도는“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벧전4:11)고 말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카리스마 그 자체에 영광이 있는게 아닙니다. 카리스마를 활용하는데 영광이 있습니다. 봉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영광도 있습니다. 나의 영광도 거기에 있습니다
(신 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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