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저주의 십자가 (갈 3:13, 갈 6:14)

  • 잡초 잡초
  • 645
  • 0

첨부 1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주셔서 그 아들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저주를 받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의 죄를 짊어지시고 마지막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죽으심으로 우리 모두가 살고 우리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영생을 얻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
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확실히 저주의 십자가, 흉한 십자가, 보기 싫은 십자가, 무거운 십자가, 모두가 피하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가장 잔인하고 악독한 사람에게 처형하는 형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를 지신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지신 이 십자가가 그 한 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원과 기쁨, 소망을 상징하는 영생과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축복의 십자가가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십자가와 하나 되어야 합니다. ‘나’는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주 예수와 함께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면 없어지느냐? 망하느냐? 십자가로 끝나느냐? 그런 것이 아닙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소금은 두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소듐과 다른 하나는 클오라이드라고 하는 염소 나트륨이 합해서 소금이 된 것입니다. 나트륨과 염소는 따로 두면 독극물입니다. 먹으면 죽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합해 놓으면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독이 전혀 없어지고 오히려 맛을 주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만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물도 그렇습니다. 물이 무엇입니까? H2O, 산소와 수소입니다. 수소는 H2, 산소는 O입니다. 이 두 가지는 원래 태우는 불붙이는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소나 산소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두 가지를 합하면 오히려 불 끄는 역할을 하는 물이 됩니다. 생명을 줍니다. 불은 생명을 없애 버리는데 물은 생명을 주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의 죽으심과 나의 죽음이 합하면 죽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이 생명으로 나아가게 되고 주님의 저주와 나의  저주가 합하면 저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축복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인하여 길이 없고 죽어야 마땅하지만 십자가를 만나 십자가 앞에 죄를 고백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천국을 가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죄의 저주는 완전히 능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성격, 새로운 성질, 새로운 요소, 새로운 원소로 바뀌어 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죄를 인하여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 둘이 합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녀의 길, 생명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는 신비합니다. 아무리 죽을 사람도 십자가 앞에 나오면 그 뒤에 길이 있습니다. 영생의 길,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십자가 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 교회 나올 때는 길이 없어서 나오고, 길이 십자가 뒤에 새로운 길, 놀라운 영생의 길, 우리가 피하는 도피성의 길을 찾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성지에 가서 지금 터키 땅에 있는 안디옥을 가봤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처음 선교사로 파송한 귀한 교회입니다. 이 안디옥 교회는 그 당시 세계 5대 도시에 들어가는 큰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안디옥에서 기독교가 자유를 얻기까지 적어도 250년 그 교인들이 모두 예배드리던 장소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드리다 신고를 받으면 밑에서 로마 군인, 경찰들이 와서 습격을 합니다. 붙잡아 갑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면서도 언제나 망을 보고 누가 오는지 이렇게 지킵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몰아닥칠 때 빨리 연락을 하면 그 안에 있는 분들이 예배를 드리다가 바로 거기에 뭐가 있습니까?

완전히 바위를 뚫어 4Km를 터널을 만들어 그 곳으로 모두 빠져 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뒷길로 빠져 나갑니다. 군인들이 와 보면 아무도 없습니다. 틀림없이 예배드린다고 했는데 와보면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구멍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못 들어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만 생각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던 성도들의 몸이 얼마나 약합니까? 그래서 자기들만 빠져나가게 아주 약한 구멍으로 이 뚱뚱한 잘 먹던 로마 군인들이 단 한 명도 못 가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 뒤에는 길이 있습니다. 저주받고 불행하여 ‘나는 이제 죽었다. 나는 끝났다. 나는 자살해야 되겠다. 우리 집은 이제 망했다’라고 생각하는 분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오면 길이 있습니다. 잘 사는 길이 있고,
사는 길이 있습니다. 영생의 길, 행복의 길도 물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낙심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어떤 저주도 십자가에서 해결되고 십자가 다음에 새로운 길, 십자가 다음에 새로운 통로, 영생을 위하여 준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삶에 승리 하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나 자신을 잘 살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도 얼마나 정욕이 있고, 옛사람과 혈기가 있고, 교만과 강퍅한 마음, 이기적인 마음, 얼마나 불의한 마음이 가득 차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마음들이 십자가와 하나 되면 중성을 시키기도 하고 억제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우리 안에 있는 옛사람이 우리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생애를 끝까지 주의 십자가로 우리를 인도하여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도 십자가와 함께 가면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고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십자가 아래 있는 모든 성도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토굴 속, 환란 속에서도, 저 카타콤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를 붙잡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며칠 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몇 번 만나도 그런 이야기를 안 들었는데 듣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극동 방송국에 사장으로 계시는 김장환 목사님께서 결혼을 해서 40년 전에 그 사모님을 데리고 한국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살면 되는데 미국에서 모두 좋은 자리, 너무너무 세계적인 자리가 있음에도 하나님께서 ‘너는 네 고국으로 돌아가서 이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듣고 고국으로 왔습니다. 가장 문제가 사모님입니다. 사모님은 이미 40년 전, 우리가 6.25사변 바로 직후에 비참하던 때 미국에서 최고의 좋은 환경 속에서 공부도 많이 하신 분입니다. 이런 분을 한국으로 데려왔습니다.  데려와서 수원에서 개척을 했습니다. 서울도 아니고 수원에서 개척을 했습니다. 그 당
시는 침례교가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침주는 곳인가?’ 그 때는 장로교만 생각했지, 침례교를 잘 모르던 때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런데 또 부모님과 같이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 온 식구들이 한 집에 같이 살았습니다.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제일 음식문화가 적응하기 어려웠고, 어른들과 사는 것이 너무 어렵고, 방도 우리 한국 그런 방에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런데 제일 어려운 것이 화장실입니다. 첫째로 화장실에 문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그 당시 문이 없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문은 고사하고 지붕이 없어 항상 천국을 보고 볼일을 봤습니다. 지붕, 비가와도 그대로 맞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얼마나 미국 사람이 어렵습니까? 방방에 자기 화장실이 있던 삶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밥을 적게 먹고 안 먹으면서 딱 밤12시 지나 한 번만 화장실에 갔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해야 시아
버지 안 만나고 시동생 안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간을 택했습니다. 그런데도 밤중에 또 시아버지가 올 때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도 모두 잘 참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고 가니까 참습니다.
남편보고 못 참습니다. 사람보고 못 참을 일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어제 신문에 난 기사를 보셨습니까? 여자들, 특히 어머니들이 지금 1년에 자녀, 남편, 부모 두고 집을 떠나 가출한 사람이 12,000명입니다. 12,000명, 14,000명 정도가 해마다 집을 떠나갑니다. 기분 나쁘면 떠납니다. 잔소리 하면 떠납니다. 마음에 안 들면 떠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밤마다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 어려운 가운데세도 이길 수 있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바라보고, 십자가 짊어지며, 십자가 사랑하면, 십자가와 하나 되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영접하면, 우리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죽음까지 정복하여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승리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오직 하나입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에도 항상 피를 뿌리고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피 뿌리고 기도했습니다. 피 뿌린 다음에 청소했습니다. 피가 없는 날은 어떤 일과도 시작할 수 없었던 것은 피가 우리의 모든 길을 열어 주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 주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믿고, 십자가 앞에 나오면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요한복음 3장 16절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 14절에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 하여 뱀이 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독사의 독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며칠 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합니다. ‘모세야, 너는 장대위에 높이, 높이 구리 뱀을 달아라. 모든 백성이 이 구리 뱀을 보면 나음을 얻으리라.’ 이 구리 뱀은 온 인류의 구리 뱀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먼저 주신 은총입니다.

예수님은 ‘그 구리 뱀이 바로 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구리 뱀을 보고 치료함을 받았지만 온 인류를 위하여 장대 위에 높이 달리신,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구리 뱀이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뱀에 물리 유대인이 고침을 받듯이 온 인류의 죄와 마귀에게 물려 있던 붙잡힌 독이 온 몸에 진행되고 퍼져나가는 인류의 죄악들이 예수의 십자가에 구리 뱀 앞에 다 깨끗함을 얻고, 저주가 사라지고, 그 능력이 중성화 되고, 파괴되고, 무너져서 주어야 할 생명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나는 줄로 믿습니다. 오직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로 인하여 이 모든 은혜를 우리가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거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은 그래서 십자가를 알아야 눈을 뜨게 됩니다.

어떤 어린아이가 남의 집 지하에서 아무것도 먹을 것도, 환경도 열악하여 텔레비전도 없이 남의 집에 가서 항상 구경하고 있다가 어느 날 아파트로 올라가서 집도 새집을 얻었습니다. 그 집에서 텔레비전, 냉장고, 책상도 가져다 놓고 자기 방도 주어졌습니다. 너무너무 좋아서 친구들 오라고 해서 같이 거기 지냈습니다. 그런데 얘가 이렇게 기뻐해도 어머니는 늘 우십니다. 왜 이렇게 좋은 환경에 어머니가 우는지 몰랐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월남전에 가셔서 전사함으로 이 집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국가로부터 주어진 그 돈으로 이 집을 얻고 텔레비전을 사게 된 것입니다. 얘는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이렇게 얻은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도 교회 나와서 그냥 잘 살고 잘 먹으니까 기뻐하고 이렇게 생각하다가 신앙이 장성하여 지고 초등학교라도 다니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은혜가 주님이 죽으심으로 받은 은혜로구나. 내가 목사 된 것, 주님 죽으심으로 얻은 것이로구나. 내가 이 대접 받는 것, 주님이 죽으심으로 내가 이 평안 주님이 죽으심으로 이 행복, 기쁨이 주님 죽으심으로 얻은 은혜로구나. 보혈의 은총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주 십자가에 달리사 날 구원해 주셨으며 주 예수님 고난 받아 나 평화 누립니다. 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 오 크고 놀라운 평화 하나님 선물일세♬ 주님 죽으심으로 주신 은혜입니다. 우리 성도가 받은 백만 가지, 천만 가지 영원한 축복이 있다면 피에 묻지 않고 오는 선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받아도 겸손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나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인은 적어도 자랑을 못합니다. 모두 피 흘려  주신 은혜이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이 세상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 너무 환란, 시험이 많고, 우리의 대적이 많지만 십자가가 내 곁에 있는 한, 아무도 나를 해칠 수 없습니다. 시편 22편에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란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음이니이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너무 많은 대적이 있지만 십자가 사랑하고
십자가 붙잡고 십자가 하나 되어 십자가 증거하고 십자가 높이는 삶이 되면 여러분은 승리할 것입니다. 어떤 대적도 여러분을 해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십자가를 저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8절에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원수로 행하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교회의 생명입니다. 십자가 높이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처음으로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교회 양 십자가의 비밀을 잘 모릅니다.

저는 개척할 때 십자가 한 번 높이 세우고 싶었습니다. 교회를 건축할 때, 20여 년 전에는 큰 아파트가 없었기 때문에, 이 십자가가 25층 높이입니다. 원래는 그렇게 높이 못 짓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조건 십자가 높이라, 양쪽 높이라고, 그냥 그래서 십자가만 8m입니다. 이렇게 밑에서 보면 얼마 안 됩니다. 그것만 3층 높이입니다. 여기서 저기까지 나갔는데, 얼마나 높은지 아십니까? 그래서 구청에서 나중에 허가를 낼 때, 마지막 준공 검사할 때 아무래도 허가보다 더 높은 거 같다고 해서 ‘제가 올라가 보라’고 ‘올라가 보시오. 예예~’ 그래서 막 밀고 나갔습니다. ‘뭐 그러냐’고 보기에 그렇지. 그런 게 아니라고 이렇게 십자가 높이 세웠습니다. 그래서 저 잠실에서도 보면 이 십자가가 보였습니
다. 저쪽 강북에서도 워커힐 그쪽에서도 항상 이 십자가가 환하게 보였습니다. 저는 뭐 목회 잘 하려고 한 것 보다 십자가 높여야 되겠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 지역에 우뚝 세워야 되겠다. 우리는 십자가 높여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대가 너무 잘못되었습니다. 교회의 능력은 십자가 아래, 십자가 증거 하는데 있는데 오늘 교회는 모두 십자가를 피하려고 합니다. 십자가 없는 설교가 많고, 십자가 없는 교회가 많습니다. 십자가 없으면 다른 것도 없는 것입니다.

천국은 물론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바로 십자가 없는 곳이 오히려 멸망과 저주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이용하여 인기를 누리고 십자가를 가지고 출세하려는 분들도 많고, 십자가 가지고 돈벌이 하고 장사하려는 분도 많습니다. 큰 교회, 우리교회도 큰 교회, 저도 큰 목사 십자가 이용해 가지고 짭짤하게 재미 봤습니다. 이것이 모두 문제입니다. 제가 뭐 잘난 것 같이 잘하는 것 같이 크든 적든 십자가 없으면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늘 우리의 십자가 져야 되고 십자가와 함께 살아야 되고 십자가를 증거 해야 합니다. 이 세상 기쁨을 찾아가면 기쁨이 없습니다. 평안을 찾아가면 평안이 없습니다. 행복을 찾아가면 행복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축복을 찾아가면 축복이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찾아가면 십자가 짊어지고 가면 모든 것 내가 찾는 모든 축복이 십자가 뒤에 다 있는 줄로 믿습니다. 교회는 화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커야할 필요도 없습니다. 교회는 오직 십자가의 능력으로 온 로마를 십자가로 점령을 해서 로마를 기독교로 만든 능력은 십자가에 있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두려워하십니까? 우리는 어떠한 우리의 장래 우리에게 오는 모든 세력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십자가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 증거 하십시다. 십자가와 하나 되십시다. 신비한 일이 일어납니다. 죽을 자와 죽을 자가 모여서 죽는 것이 아니고, 저주와 저주가 모여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이 십자가의 비밀과 신비함과 거룩함 속에서 남은여생을 승리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삼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