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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한 자 (눅 12: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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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늦가을, 가을의 끝을 알리는 빗 속에 11월의 첫주를 맞았습니다.
사랑하는 오천가족 여러분,
아름답게 물들어 가는 자연을 바라보며 갖는 경이로운 마음처럼 아름답게 인생을 바라보는 넉넉함이 여러분에게도 가득하길 바랍니다.

[경제(經濟)]라는 분야가 오늘날처럼 사람들에게 부각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재테크]라는 낯선 용어도 이젠 자주 듣다보니 어느덧 익숙해졌습니다. 신문에도 <땅투기병>이 망국적인 병이라고 연일 비판 기사가 나오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신문의 섹션에서는 어떻게 집, 땅으로 돈을 벌 수 있는가에 대한 상세한 지침을 내는 아이러니를 볼 수 있습니다.

<살림살이>를 넘어 선 <가정 경제>를 어떻게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볼 것인가? 이 질문이 오늘 설교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이 땅의 살림살이와 하나님 나라의 경제를 이중적인 구조로 분리시켜 생각하고 싶진 않습니다. 어떻게하면 크리스챤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동안 건전한 경제관을 갖고 살아가느냐에 대한 소박한 생각을 하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주에 주보에 미리 예고한대로 누가복음 12:13부터 오늘 읽은 곳까지를 한 문장으로 봐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제목대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나오게 된 배경이 13절부터 나옵니다.

(눅 12:13)『무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 형에게 명해서, 유업을 나와 나누라고 해주십시오. "』

척 보니 아마 이 사람은 부모가 남긴 유산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형에게 서운한 일을 당한 것이 분명합니다. 가족사랑도, 형제사랑도 ‘나 몰라라~’ 하게 만드는 것이 <돈사랑> 아닙니까? 이들 형제는 재산 분배의 문제로 심각한 가족간의 갈등을 겪고 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젠 인간적으로 얘기해도 안 통하는 지경까지 왔나 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도 부인 받을 것이다! 라는 설교를 듣는 중에 뜬금없이 이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닙니까?
게다가 이 설교를 듣는 중에는 12장 1절 말씀에 보면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밟힐 지경까지 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중입니다. 13절 말씀에 보면, “무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상황에서 자기 가족간의 재산권 분쟁 문제를 불쑥 내놓을 정도니 이 사람이 갖고 있던 감정이 얼마나 격했는지를 가히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을 가리켜서 속된 말로, “눈에 뵈는 게 없다.”라고 표현해 볼 수 있을만한 상황입니다.

무엇이 이 사람을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 걸까요?
이 시대의 사람들을 눈에 뵈는 게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갈만한 이 능력의 주제는 뭘까요?

하루는 링컨 대통령이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때마침 두 아이들이 지나는 것을 보고 불러 세웠습니다. 아주 귀엽게 생긴 두 아이들은 형제간이었습니다. 링컨은 가지고 있던 호두 세개를 동생에게 주면서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는 세개의 호두를 가지고 서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은 아이들에게 호두를 준 것을 후회를 했습니다. 무척 사이좋게 지나던 형제가 그만 호두 때문에 싸움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때 장관 하나가 다가와 묻기를 "각하 이 아이들이 왜 이렇게 싸웁니까?" 대통령이 말하기를 "이 아이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문제를 가지고 싸움을 하고 있다오. 세계의 문제 말이오."

전에는 국가간의 분쟁이나 전쟁도 이념과 사상으로 인한 전쟁이었습니다만 오늘의 국제 문제는 모두 경제적 이권의 문제입니다. 서로 많이 가지려는 문제는 아이나 어른이나 국가나 모든 갈등 문제의 핵심입니다. 싸움의 핵심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나왔던 사이 좋은 형제 이야기를 기억하시죠? 농사를 짓는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혼자 살고 동생은 딸린 식구가 많았습니다. 어느 해 추수를 해서 보릿단을 가득 쌓아 두었습니다. 동생은 혼자 사는 형이 측은해서 밤중에 몰래 자기네 보릿단을 형의 논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형은 동생네가 식구가 많다고 생각을 해서 역시 밤에 자기 논의 보릿단을 동생네 보릿단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다음 날도 두 형제는 그렇게 일을 하다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는 서로 고마워하면서 얼싸안고 울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이런 이야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설입니다. 아주 까마득한 옛날에나 있음직한, 그저 순박한 농경사회에서나 있음직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기왕에 유산 얘기가 나온 김에 최근에 신문에 난 기사 하나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설교 본문을 맘 속에 품어놓고 한주간 살다보면 연관된 이야기나, 신문기사 등을 보면 귀가 솔깃해 집니다. 11월 3일, 국민일보에 나온 기사인데, 기사 제목은, [“死後 교회에 재산 기증” 한국교회 신선한 바람]입니다. 잠깐 그 기사를 소개해 드리면....
“死後 교회에 재산 기증” 한국교회 신선한 바람(2005.11.3 국민일보)

기독교인들이 사후 자신의 재산을 출석하던 교회에 기증하자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교회재산기증운동을 주도해온 국제종합기증센터(이사장 민병억 목사)에 따르면 지난 8년 동안 900여명이 사후 재산기증운동에 참여키로 약정, 기증 예정 액수가 2500여억원에 달한다.
센터측은 “선진국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크리스천들의 교회 재산기증운동에 한국 교회 성도들도 점차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며 “아직 전 재산 기증보다는 재산의 십일조를 헌납하겠다는 성도들이 많지만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보다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 사역에 선하게 쓰이길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센터에 따르면 마산 M교회 L장로는 2000년 자신의 전 재산(150억원)을 교회에 헌납키로 약정했다. L장로는 현재 약속을 지키기 위해 1만여평 규모의 대규모 종합복지관을 건립하고 있다. L장로는 종합복지관을 지어 출석교회에 헌납,교회 복지사업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다는 계획이다.
또 안동 D교회의 J권사는 5억원 상당의 집을 생전에 교회에 기증, 등기 이전까지 마쳤다. 이밖에 인천 P교회의 한 독지가가 수천만원의 장학금을 익명으로 내놓는 등 교회에 재산을 기증하자는 운동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보다 교회에 기증함으로써 하나님의 복음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크리스천으로서 더욱 보람된 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재산 기증 희망자는 생전에 재산의 십일조를 교회에 헌금할 것을 약정하거나 사후 재산(유산)을 자신이 원하는 기증 목적(교회가 추진하는 사회사업 선교사업 장학사업 등)에 사용토록 약정하게 된다. 국제종합기증센터(www.itpc.or.kr) 본부장 박지태 목사는 “이 운동은 자신의 재산을 출석교회에 기증하여 그 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이 선한 사역을 펼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며 한국 교회에 이 운동이 더욱 활발히 펼쳐지기를 소망했다. 초교파 비영리단체로 8년 전에 설립된 국제종합기증센터는 김장환 김기수 최병두 정필도 목사,정근모 장로 등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무정 기자 [email protected]
자, 다시 성경의 형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동생의 억울한 하소연을 들은 예수님은 다소 격앙된 분위기의 대답을 하십니다.

(눅 12:14)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분배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질문에 대답보다는 다시 재질문하는 것, 어떤 분위기인지 느낌이 오시죠?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본래 유대인의 상속법에 따르면 형이 재산의 2/3를, 동생이 1/3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속법이 있었는데도 분쟁거리를 갖고 예수님에게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아버지가 재산문제를 정리해 놓지 않고 돌아가셨거나, 형이 일방적으로 독차지해 버린 경우입니다. 뭐, 형이 형노릇을 못하고 동생이 부모님을 모시고 있었는데 법대로 형이 2/3의 재산을 가져가 버려서 인간적으로 형에게 섭섭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부모에게 나 몰라라 했던 자식들이 부모님 돌아가실 때가 되면 부모님 집에 같이 들어와 사는 경우도 있답니다. 하여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동생은 억울한 사정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분배의 법으로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눅 12: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떤 탐욕에도 빠져 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하시고는』(공동번역)

예수님은 이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탐욕>입니다.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도 결국은 탐욕에 대한 문제입니다.

(출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탐심은 생활의 영역에서만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영역까지 침범해 옵니다.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로 정의합니다.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욕심은 갈등과 싸움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약 4: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

또한 과도한 욕심은 우리를 결국 죽음으로까지 몰고 갑니다.

(약 1:14-15) 『[14]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각각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서 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15]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사랑하는 오천가족 여러분,
제게도 돈을 사랑하는 마음과 욕심이 존재함을 부끄럽지만 여러분들 앞에서 시인합니다. 이 욕심이 죄를 잉태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제어하고, 채찍질하고, 버리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불룩해진 욕심의 뱃속에서 죄라는 놈이 불쑥 태어날런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왜 시험이 우리에게 자주 찾아 옵니까? 성경은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 꾐에 빠지기 때문이라고 말해 줍니다.

옛날 제나라에 금을 팔러 다니는 장사꾼이 있었답니다. 한번은 어느 시장 바닥에 금을 널어놓고 장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청년이 넋 빠지게 금 덩어리를 보고 있더니만 다짜고짜로 금 한 덩어리를 집어 들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시장 바닥에서 그런 짓을 했으니 즉시 그 청년은 잡힐 수 밖에요... 관가에 끌려간 청년이 심문관에게 자백하기를 "금을 본 순간 내 눈에는 주인도, 주위 사람도 보이지 않고 오직 금만 보였습니다." 라고 말하였답니다.

성령충만하고, 방언하고, 예언하고, 예배에도 열심히 참석하고, 교회 일에도 열심인 분인데 욕심, 탐욕, 물질 관계에 있어서 깨끗하지 못하다면 정녕 그 사람 속에 성령이 계신 것일까요?
하나님 잘 믿고, 기도도 잘 하는 분인데 작은 외상값 -많은 것이라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못 갚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조차도 갚지 않고 있다면 그것이 신앙과 전혀 별개의 문제일까요?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바리새인만큼 경건하게 살던 사람이 있습니까? 가장 종교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피식거리는 장면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눅 16: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결혼한지 일년밖에 안된 어떤 신혼부부가 이혼을 하겠다고 판사를 찾아 왔습니다. 사연인즉 신부가 신랑에게 준 롤렉스시계가 진짜가 아니라 짝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 신랑이 신부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자신도 속아서 산 것이라고 신부가 아무리 얘기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신성한 결혼을 가짜 시계로 더럽혔다고 윽박지릅니다. 그렇게 신혼부터 일년동안을 싸웠답니다. 이 말을 들은 판사는 "이혼 하세요. 롤렉스시계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한 부부가 많은데 시계 하나 때문에 서로의 사랑을 의심하고 부부의 행복이 시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하고는 살 필요가 없소. 신랑 당신은 평생 롤렉스시계하고 사시오."

경제적인 문제가 중요한 문제인 것을 목사인 저도 충분히 이해하고 또 느낍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는 한번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눅 12:15)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자, 그러시면서 예수님께서 한 이야기를 들려 주시죠? 우리가 잘 아는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교회에 다닌지 얼마 되시지 않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만 해 드립니다.

때는 요즘처럼 가을걷이가 끝난 때... 여느해 보다도 소출이 많이 나온 한 부자는 행복한 고민에 빠집니다. ‘어허~ 이 곡식을 더 모아 둘 공간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끝에 그 부자는, ‘안되겠군. 내 곳간을 헐고 더 큰 곳간을 세운 다음에 그곳에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저장해야겠어.’ 라고 결심합니다. 그의 맘 속엔 행복감이 밀려 오고 미래에 대한 든든한 보장에 가슴마저 벅차 오릅니다. 그는 속으로 혼잣말을 외쳐댔습니다.
‘그래, 내 인생아~! 이제 여러 해 동안 쓰기에 넉넉한 많은 재산을 가졌으니, 하하~ 내 인생아! 이제 편히 쉬고,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겨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
자, 그 때에 하나님은 뭘 하고 계셨을까요? 부자가 벅찬 기쁨으로 환호를 지르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하십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넌 오늘 밤 하늘나라로 소환 명령이야!’ 라고 말하십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오늘밤 네 영혼이 소환된다면 네가 준비한 것을 누가 가져가겠느냐?’
이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시면서 예수님께서 남기신 깔끔한 멘트.

‘이런 사람은 자신을 위해 재물을 쌓아 둘 뿐...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 비유의 특징은 “내가...”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는 모두 40개인데, 그 증에 돈과 관계있는 비유말씀이 모두 16개나 됩니다. 하워드 헨드릭이라는 사람은 예수님이 천국과 지옥에 대한 말씀보다 돈에 대한 말씀을 더 하셨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만큼 인생사에서 돈, 소유에 대한 문제가 심각한 문제인 것을 예수님도 아신 것일까요? *^^*

이 이야기를 마치신 후에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명 설교가 뒤이어 나옵니다. 이 설교는 제자들에게 한 것입니다.
무리들 수준으로는 탐심을 조금 억제하는 정도의 강도를 요구하셨다면 이제 예수님을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들, 제자들에겐 좀 더 강한 강도의 것을 요구하십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씀 드리자면, 탐심으로부터 도망치는 소극적 자세에서 이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이 세상의 경제적 문제를 보라는 것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하늘에 없어지지 않는 통장을 개설하고 적금을 부으라는 것입니다. 소유를 팔아 오히려 자선을 베풂으로 세상의 지갑이 가벼워질지는 모르지만 도둑도 없고, 좀 먹는 일도 없는 하늘에 없어지지 않을 재산을 쌓아 놓으라는 말씀입니다.

잘 아시는 말씀이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2천년 뒤로 돌아가 예수님이 들판에서 백합꽃을 가리키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한번 같이 낭독해 볼까요? 제가 풀어 말씀 드리는 것보다 직접 성경 본문을 여러분이 읽으시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읽기 전에 먼저 머리 속에 입력해 둬야 할 것은 아까 전까지만 해도 무리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고, 이제부터 하시는 말씀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 말씀 중,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는 대목이 있었죠?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이 말씀이 대중들,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22절 말씀 시작에도 대상을 분명히 하셨던 것처럼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 다 같이 읽어 볼까요? 오늘은 [현대인을 위한 성경] 번역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눅 12:22-34) 『[22]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니 잘 들어라. 너희는 무엇을 먹고 살아 갈까, 또 몸에다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23] 목숨이 음식보다 더 귀하고 몸이 옷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
[24] 저 까마귀들을 생각해 보아라. 그것들은 씨도 뿌리지 않고 거두어 들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곳간도 창고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저 날짐승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25] 도대체 너희 중에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 [26] 이렇게 하찮은 일에도 힘이 미치지 못하면서 왜 다른 일들까지 걱정하는가? [27] 저 꽃들이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해 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결코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는 못하였다. [28] 너희는 왜 그렇게도 믿음이 적으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나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에게야 얼마나 더 잘 입혀 주시겠느냐?
[29] 그러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염려하며 애쓰지 말라. [30] 그런 것들은 다 이 세상 사람들이 찾는 것이다.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31]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2] 내 어린 양떼들아, 조금도 무서워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하늘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시기로 하셨다. [33] 너희는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해어지지 않는 돈지갑을 만들고 축나지 않는 재물 창고를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들거나 좀먹는 일이 없다. [34]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여러분, 이 말씀에 아멘입니까?
참 성경이 고마워요. 2천년이란 시간을 뛰어 넘어 예수님의 설교를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가 들을 수 있다니 말입니다.
정연수 목사 설교라면 간혹 ‘노멘’도 하실 수 있겠지만, 여러분이 읽으신 설교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저의 설교를 여러분이 읽으신 성경의 본문으로 그냥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보다 더 나은 설교를 제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가지만 더 여러분에게 힘주어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말씀은 교육관 건축을 진행하고 있는 저에게도 큰 위로가 된 말씀입니다.

[30]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정연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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