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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엘 벧엘로 가자! (창 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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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야곱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3대 조상 중 세 번째 인물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고백하는 이스라엘의 고백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이름, 야곱인데요, 그러나 그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과연 저가 믿음의 조상 반열에 설 수 있는 인물일까? 의심되는 대목이 맞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를 너무나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런 야곱, 선지자 이사야의 표현을 빌자면 벌레 같은 야곱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대목에서 야곱과 비슷한 성정을 지니고 있는 우리들에게 야곱이야말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요 또한 희망을 주는 인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요, 오늘의 본문 창세기 35장 3절에서 우리는 야곱의 놀라운 고백을 듣게 됩니다. 나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를 온 가족 앞에 선포하는 장면인데요, 우리 다시 읽으며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 35:3 / (읽기) / 야곱의 고백, 크게 둘이군요. 하나는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신 하나님!>이란 고백이요, 둘은 <나의 가는 길에 나와 동행하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여기서 첫 번째 고백을 들으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믿음의 조상 야곱의 인생에 무슨 환난을 그리 많았기에, 그의 입에서 나오는 첫 번째 고백이 환난 날에 응답하신 하나님인가 하는 궁금증입니다. 5절에 보니, 야곱 일행이 벧엘로 올라가려고 발행하였는데, 인근 부족들 가운데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고백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야곱 가문은 추격을 당하고 있었다는 뜻이요, 환난 날이 그치지 않았다는 뜻이군요. 왜, 어떤 연유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앙하고 흠모하는 믿음의 3대 조상 가운데 하나인 야곱의 인생엔 환난이 그치지 않았을까? 이 질문 속에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 2
창세기에 기록된 야곱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좋은 날 보다 환난 날이 더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인생은 한 마디로 환난의 악순환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성경이 전하는 야곱의 환난을 간략하게 추적해 보려고 합니다.

1) 야곱의 환난은 그가 자기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 복을 빼앗긴 형이 그를 죽이려 하자,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해 홀로 길을 떠나는 신세가 되면서, 환난이 시작된 것인데요, 속임수로 받은 복은 아직 약속일 뿐, 그는 목숨을 건 여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막을 지나다가 해가 넘어가자, 아무 데나 자리를 잡고, 돌 하나를 구해 베개, 잠을 청하지만 도무지 잠이 오질 않습니다. <이 사막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삼촌이 나를 받아줄까?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는 있을까?>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그 밤 야곱은 꿈에 천사를 만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환난 중에 만난 하나님, 그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창세기 28장 15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일어난 야곱, 베고 자던 돌을 세워 기둥을 삼고, 그 곳을 <벧엘>이라 이름하며, 그 즉시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드립니다. 야곱다운 행동인데요, 창세기 28장 22절이지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그러나 이 서원으로 인해 오히려 그는 환난을 겪게 됩니다. 가기 입으로 서원한 기도를 스스로 식언했기 때문입니다.

2) 야곱 인생에 찾아온 두 번째 환난은, 그가 라반의 집에서 20년이나 처가살이를 한 끝에 찾아옵니다. 라반의 아들들, 곧 처남들이 야곱이 거부가 된 것을 보고, 그를 시기하고 모함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처가의 모든 사람들이 야곱을 질시하다가, 그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합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야곱, 하는 수없이, 가족과 모든 소유를 이끌고 처가에서 도망을 합니다. 그러나 라반이 칠일 만에 쫓아와 그만 야곱 가문은 몰살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그런데요,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 그 환난 속에서도 당신의 <벧엘> 약속을 지키시며, 야곱을 건져 주십니다. 해서 야곱은 무사히 처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환난을 겪은 이후에도 야곱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벧엘의 서원>을 하나님께 갚아 드리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갚아드리지 않은 서원은 나에게 환난으로 임한다는 사실을 아직도 알지 못한 탐욕과 어리석음 때문이지요.

3) 결국 오갈 데가 없어진 야곱, 형이 사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합니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입니까? 동생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형의 마음에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듯,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동생 야곱을 치러 출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야곱은 어려서부터 힘으로는 형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싸워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 야곱에겐 제대로 된 사병도 없습니다. 결국 20년 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질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다 형의 칼에 세상을 떠난 비참한 인생으로 마감할 수밖에 없는 환난이 닥친 것이지요.

또 잠이 오질 않습니다. 해서 해 저문 강가에 홀로 앉아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있는데, 그 때 한번 약속하신 것을 끝까지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천사를 보내주십니다.

그 때서야 야곱이 천사를 붙들고 목숨을 건 기도를 합니다.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하는데, 야곱이 얼마나 죽기 살기로 덤비는지, 천사가 야곱의 환도 뼈를 쳐 부러뜨린 후에야 씨름이 끝이 납니다.

차라리 천사와 씨름을 하지나 말 것을, 이제 날이 새면 자기 형 에서가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올 텐데, 자기는 환도 뼈까지 부러져 다리를 절게 되었으니, 싸우기는커녕 도망도 갈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던 것이지요.

바로 그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물으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이기었음이니라!>

이제 형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환도 뼈가 부러지긴 했으나, 넌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요, 이젠 야곱을 넘어 이스라엘이 되었으니, 더 이상 염려하지 말고, 뒤로 도망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 정면으로 형을 만나라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야곱은 형을 만나게 되지요. 감격적인 상봉 이후 야곱은 고향에 정착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문제는 야곱이 여전히 베델의 서원을 갚아 드리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4) 갚아 드리지 않은 서원이 쌓이고 쌓이니, 결국 야곱은 그의 인생 말년에 가장 처참하고 비극적인 환난을 겪게 됩니다. 고향에 돌아와 정착한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야곱이 애지중지 하며 키운 딸 <디나>가 하루는 산책을 나갔다가, 그만 세겜 족속의 추장 아들에게 강제로 성추행을 당한 겁니다. 그러자 이게 격분한 디나의 오라비들, 온갖 술수를 다 써서 마침내 세겜 성 안의 온 남자를 몰살시키고 말았던 것인데요, 이 사건을 바라보는 야곱의 심정이 찢어집니다.

내 딸이 성추행당하는 것을 보는 것만 해도 참기 어려운데, 그렇다고 잔혹하게 보복하는 아들의 잔인함을 보는 마음도 편치 못했습니다. 특히 <세겜>성과 동맹을 맺은 주변 부족들이 힘을 합해 공격해 오는 날이면, 야곱 가문 전체가 몰살당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해서 야곱이 아들들을 향해 이렇게 탄식합니다. / 34:30 / (읽기) /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 3
그런데 우리 하나님, 30년이 넘도록 자기 서원을 지키지 않는 야곱이, 다시 환난에 처하자, 그를 건지시고자 다시 찾아오십니다. 오셔서 야곱에게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시는데요, 하나님의 입장에선 최후통첩이요, 야곱의 입장에선 환난의 악순환을 끊어버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할 수 있는 말씀, 직접 들어봅니다. / 35:1 / (읽기) / 세 가진 명령이 담겨 있군요, 첫째 일어나라, 둘째 벧엘로 올라가라, 셋째 거기서 하나님께 단을 쌓아라! 한 마디로 30년을 지체한 너의 서원을 이제는 좀 갚아 드리라는 겁니다.

이 음성을 들은 야곱의 응답이 바로 3절입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안타까운 점은, 그 엄청난 일들을 다 겪은 후에야 서원을 갚기 위해 벧엘로 올라갔다는 점입니다. 아니, 자기 딸이 그런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올라갔어야지요. 자기 아들들의 손에 피를 묻히기 전에 올라갔어야지요. 하나님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참고 기다리시며, 끝까지 약속을 지켜 주셨는데, 누가 시켜 서원한 것도 아니고, 자기 스스로 감동하여 자기 입으로 서원한 것을 30년이 넘도록 지키지 않다니요. 그러니 환난이 그치지 않을 수밖에요.

야곱은 그의 인생 전반전을 뛰면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인물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자기 형의 축복까지 가로챘던 인물, 돈을 버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일했고, 아내를 얻기 위해 14년의 의무 노동까지 마다하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20년 만에 거부가 되었다고 성경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벌어들인 돈이 그에게 은혜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쌓아올린 재물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랬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그의 인생엔 단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늘 불안했고, 늘 무언가에 쫓기며 살았고, 그래서 늘 만족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쉬지 않고 몰려오는 환난들로 인해 야곱의 가슴을 시퍼렇게 멍이 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왜 그랬나? 원인은 단 한 가지, 하나님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세상에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다 소중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향에 돌아온 후에도 <벧엘>에 올라 단을 쌓고 예배드리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기 입으로 서원했던 일, 곧 아버지의 집을 지어드리겠다는 서원과 하나님이 주실 것의 십분의 일의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을 지켜 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심각한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혹시 <벧엘>로 올라가기 전의 야곱과 같은 모습은 아닙니까? 무언가 바쁘게 뛰고 또 뛰는데, 그래서 돈은 좀 버는데, 평안이 없고, 만족이 없고, 은혜가 없고, 사랑이 없진 않습니까? 돌베개 베고 자던 노숙자 같은 인생을 들어 하늘의 은혜로 이만큼 살도록 만들어 주었더니, 세상 재미에 푹 빠져 하나님께 스스로 서원했던 것을 완전히 망각한 채 살아가는 배은망덕한 상태는 아닙니까?

특별히 인생의 전반전을 돌아, 이제 후반전을 치르고 계신 분들에게 고합니다. 혹시 인생의 전반전에 너무 바빠 아직 갚아드리지 못한 서원이 나에게 남아 있진 않습니까? 혹시 인생의 후반전 역시 너무 바빠 서원을 갚아 드릴 여유가 없진 않습니까? 아니오, 서원은 갚아드려야 합니다. 내가 받은 축복이 끝까지 은혜로 남길 원하신다면, 해서 내 자녀들도 복 받기를 원하신다면, 이젠 서원을 갚아드려야 합니다. 이번 추수감사주일, 그동안 밀린 서원을 다 갚아 드리시기 바랍니다. 해서 내 생애 최고의 감사제를 드리시며,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4
오늘 주신 본문 창세기 35장 7절을 보니, 드디어 야곱과 그의 가족, 그리고 모든 권속들이 다 같이 <벧엘>에 올라, 단을 쌓고 감사제를 드린 후, 그 곳을 <엘 벧엘>이라 부릅니다. <벧엘>의 하나님, 곧 야곱이 자기 형의 낯을 피할 때에 만나 주셨던 하나님을 다시 만났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렇게 야곱이 30년 만에 서원을 갚아드리자, 그 때서야 그의 아버지 이삭이 눈을 감습니다. 35장 29절이지요. 감동적인 장면, 같이 읽어볼까요? / 35:29 / (읽기) / 뿐만 아니라, 야곱의 열두 아들의 이름이 창세기에 기록됩니다. 23절 이하인데요, 이로써 야곱이 드디어 믿음의 조상 반열에 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 그러면 <벧엘>로 다시 올라, <엘 벧엘>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점검하며, 말씀 마당을 닫겠습니다.

1. 일어나 올라가서 단을 쌓아라!

35:1 / (읽기) / 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집, 아버지의 집, 곧 <벧엘>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환난이 닥쳐오기 전, 어서 <벧엘>, 여기 아버지의 집에 올라 감사의 단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바빠도 예배드리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배에 성공하지 않고 인생에 성공하는 법은 없습니다. 특히 사업이 잘 될 때, 건강할 때, 형통할 때, 부자가 되었을 때 더욱 조심하며, 철저하게 서원을 갚아드리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잊지 말 것은 <벧엘 서원>의 내용 중 절반은 십일조 서원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겠다는 서원을 지키는 자,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실 뿐만 아니라, 선지자 말라기를 통해 주신 약속처럼, 쌓을 곳이 없도록 넘치는 복으로 채워 주십니다. 십일조 믿음으로 한국 교회사의 믿음의 이정표를 세우는 우리 동광 가족들 되시기 바랍니다.

2. 버리고 정결케 하고 바꾸라!

35:2 / (읽기) /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기 위해 우리가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으니, 세 가지, 첫째 버릴 것은 버릴 것이요, 둘째 자기 자신을 정결케 할 것이며, 셋째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야곱이 서원을 갚아드리지 못하게 했던 방해요소가 모두 세 가지였군요. 이는 오늘도 우리의 예배를 방해하는데요, 첫째, 우선 아버지의 집에 올 때는 먼저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방 신상, 우상, 곧 내 마음에 하나님 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 다 버리고 오라는 겁니다. 우상들이 우리의 마음에서 감사를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입에 올 땐 버릴 것 버려야 합니다.

둘째, 자기 자신을 정결케 하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올 때 가장 정결한 모습으로 나와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느 곳을 갈 때보다 몸도 마음도 정결하게 준비하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집으로 나오기 전, 부부싸움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예배하러 오기 전, 자녀들을 혼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배에 집중하며, 온 가족이 기쁨으로 정결함 몸과 마음을 유지하며, 아버지 집을 향해 나와야 합니다.

셋째, 의복을 바꾸라 하십니다. <벧엘>, 곧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 올 땐, 몸과 마음의 정결뿐만 아니라, 내 몸에 입는 옷까지 정결한 옷으로 바꾸어 입으라는 겁니다. 세속의 때를 잔뜩 묻힌 채 오지 말고, 주말이면 주일에 교회 갈 때 갈아입을 옷을 미리 준비했다가, 잘 차려입고 오라는 겁니다. 깨끗한 옷, 잘 정리된 옷, 가장 정결한 옷을 입고 아버지의 집으로 오셔야 합니다.

# 5
감사하게도 야곱의 온 가족과 권속들은, 야곱의 말에 순종하여, 자기들 손에 있던 모든 이방 신상들과 우상을 숭배하며 귀에 걸고 있던 귀고리까지 다 야곱에게 건네줍니다. 그러자, 4절, 야곱은 그 모든 것들을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어 버리고, <벧엘>로 올라 단을 쌓고 서원을 갚아 드림으로, <엘 벧엘>의 축복을 다시 받게 되는데요, 야곱이 다시 받았던 복을 확인합니다. / 35:9-15 / (읽기)

오늘 함께 예배하는 여러분께 이 아름다운 복이 넘치도록 임하기를 소망하면서, 마지막으로 최근 야곱처럼 산에 올라 기도하면서 큰 은혜를 받으셨던 한 분의 간증을 나누면서 말씀 마당을 닫겠습니다. / 여자 제자 반 제 3기 김용복 집사님의 제자 일기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장 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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