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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신 하나님(삿 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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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사사기 7장 1절부터~ 7장 18절까지
설교제목 :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
서  론(우리는 하나님의 용사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기드온과 삼백명의 용사에 대한 이야기는 주일학교 때부터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다시 들을 때면 기드온과 삼백명의 용사의 멋진 모습이 상상됩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런 인물처럼 이세상에서 하나님의 멋진 용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만듭니다.
  이런 면에서 사사기의 많은 사사 중에 우리의 존경의 대상이 될만한 사사를 들라고 한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기드온을 말하는데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기드온은 사사기에서 가장 많은 양으로 다루어지는 사람 중의 한명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 역시도 300여명 밖에 되지 않는 소수의 군사를 통해 역사적인 위대한 승리를 이룬 기드온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드온이 이루어놓은 이 대단한 승리의 광경에 앞서서 먼저 성경이 그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런 강한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 무엇 때문인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할 줄로 압니다. 
(기드온에 대한 설명)
  지금부터 약 3천 2,3백 년 전에 이스라엘에 ‘기드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훗날 단지 3백 명의 용사만을 가지고 135,000명의 미디안 대군을 물리친 위대한 용사요 사사(士師)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기드온을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들은 늘 기드온은 우리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어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표적 인물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 생각에는 기드온이라면 얼마나 대단한 믿음을 지녔으며, 얼마나 훌륭한 신앙생활을 했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도 기드온처럼 살면 이처럼 위대해지고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앗! 기드온의 모습 실망!)
  그러나 사사기에 등장하는 기드온에 대한 모습을 보는 순간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기드온이 하나님이 부름을 받던 그 당시의 모습은 도저히 하나님의 사사가 되기에는 부적합한 모습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부르심을 받지 않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됩니다. 어떻게 기드온이 이런 사람이었는가? 싶을 정도로 그는 아주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기드온이 이런 연약한 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그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기드온이 살던 시대적 배경)
  기드온이 살던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우상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런 범죄를 행하게 됨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징계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미디안의 지배아래 두고 하나님께서 7년간이나 이스라엘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이었습니다.
(적용 : 성도에게 징계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징계는 물질이 없는 것, 건강을 잃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이 돌아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징계입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없고, 하나님과 긴밀한 만남을 가져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징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1, 2년이 아니라 7년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은 그 민족을 향하여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은 채 계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답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외형적으로 살아 있기는 하지만 영적으로는 시체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으로 고갈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도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을 보면서 그들은 절망과 좌절 속에 허덕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이제 희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은 가운데 있었습니다. 
(징계의 도구 : 미디안)
  그런데 한가지 더 놀라운 것은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시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 어떤 민족이었는가? 바로 미디안 족속이었습니다. 이 미디안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범죄하기 이전에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던 족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스라엘 민족들을 괴롭혀 왔기에 이들은 이스라엘에게 가시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즉 원수와 다름이 없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미디안 족속에게 누구를 붙이십니까? 자신들을 개만도 못한 자로 여겼던 바로 그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미디안 족속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7년 동안 철저하게 고통당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7년이 영, 육 간에 지옥이라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심한 고통과 어려움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통 :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지 않으면!)
  왜 이런 고통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까?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라는 분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이 백성들에게 함께 하시지 않으니 이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농사도, 가축도 온전히 기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씨앗을 뿌려 이삭이 날 때쯤 쳐들어와서는 그 모든 농사를 다 망쳐버리고 그나마 거둔 게 있으면 죄다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곳에 정착도 하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옮겨 가며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없는 동굴과 요새로 숨어 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곡식도 변변히 없으니 양떼나 소떼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그런 굶주림과 고통의 시대가 바로 기드온이 있던 시대였습니다.
(고통의 원인 :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이 이처럼 처절한 고통 속에 있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삿 6장 1절에는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기 때문”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누구 앞에서 악을 행하였다는 말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켜 보신다는 것을 이스라엘 민족들이 몰랐겠습니까? 알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하나님이 독수리의 눈동자같이 자신들을 살피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기만 했지 직접 삶 속에서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들의 삶! 하나님이 보시는 그 삶 속에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이 민족을 이곳까지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또 다른 세상적인 신을 섬길려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그 분만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데, 세상 것을 바라보며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좋은 것으로 여겨 그것을 쫓아 간다고 한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런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구원의 용사 : 기드온을 부르심) 
  그러나 고통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법! 역시 하나님 안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미디안의 징계의 끝을 맺고자 하나님은 드디어 한 사람을 세우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기드온이었습니다.
  메뚜기떼 같이 무수한 미디안 족속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로 하나님께서는 므낫세 지파 중 아비에셀 가문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사사기 6장 12절 말씀을 다같이 한번 읽어 보도록 합시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12절 말씀에 하나님은 기드온을 부르시는데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라고 부르십니까? 예! 바로 용사라고 부리고 계십니다. 큰 용사라는 말은 “능력 있는 용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기드온을 하나님의 능력 있는 용사로 사용하여 이 민족을 구원할 구원자로 하나님이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말씀입니까? 너무나 어려운 절망, 그리고 7년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그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만을 고대하며 살아가는데 그런데 그 주인공을 바로 기드온으로 사용하시겠다고 하니 기드온은 두말 할 것 없이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 찬송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간직한 사람이었다면 이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정말 간절하게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드온이 큰 용사라 불리울 만한 사람입니까?
1)11절을 보게 되면 그는 매우 나약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미디안 사람들이 두려운 나머지 포도주 틀에서 추수를 하고 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에게 추수하는 것이 들켜 약탈당할까 두려운 나머지 몰래 숨어서 타작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그는 대단한 용사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2) 또한 하나님이 그를 용사로 부르시며 그와 함께 하신다는 소리를 듣고도 하나님의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대하여 의심을 품을 정도로 용기가 없는 사람입니다. 여호와여 우리와 함께 계셨더라면 우리에게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도리어 하나님을 향하여 불신의 말을 하는 자였습니다. 
3)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기드온의 문제점은 하나님이 그를 불러서 그에게 말씀하시는데 그는 그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우리" "우리"라고 말하면서 주님의 부르심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4)그리고 그는 15절에서 주님이 자신에게 사명을 주신다하여도 자신의 가정의 배경과 그리고 자신이 아주 미약한 존재임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자신의 사회적 배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현재의 위치를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절대로 하나님의 사명에 부적합한 인물임을 그는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는 하나님의 사명에 대하여 자신의 배경과 위치로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의 내용을 볼 때 그는 큰 용사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대단한 인물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연약한 자였습니다. 세상적으로는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들로 얼룩져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희망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 이웃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이런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하나님의 큰 용사로 사용하시고자 하십니다. 기드온을 통하여 미디안의 손에서 그 백성을 구원하실 구원자로 하나님이 택하신 것입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 겁 많고 믿음 없는 기드온과 같은 연약한 존재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런 부르심을 받을 수 없는 연약한 존재를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우리! 아주 연약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은 저와 여러분을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용사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불러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를 불러 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의 성품이나 기질이나 능력을 보고 택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적으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존재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겠다는 계획에 있어서 우리를 부르신 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7장에 나타나는 기드온의 모습!)
  오늘 본문 사사기 7장을 보게 되면 6장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연약한 기드온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히려 더욱 강한 모습으로 기드온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7장 1절을 한번 읽어 봅시다. 여기에 보면 “여룹바알”이라는 별명이 기드온에게 붙여 졌습니다. 이 별명은 6장 32절에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서 얻은 새로운 별명이며, 이름이었습니다. 이 이름의 뜻은 “바알과 논쟁하다”, “바알에게 대항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적극적이며 용사로서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을 쫓아 백성 중에서 미디안 연합군과 싸울 군대를 선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태도가 다릅니다. 아주 적극적으로 이 일을 감당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제 미디안 연합군과 싸움을 위해 모인 숫자가 3만 2천명 이었습니다. 미디안 연합군의 수는 135,000명 숫자적으로는 도저히 불리하였습니다. 지금의 숫자로도 4배의 수가 넘는 미디안 연합군을 이기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숫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해서 전쟁을 나간다면 미디안 연합군을 너희들에게 붙이지 않겠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누구에게요? 바로 기드온에게 말입니다.

  그리고 급기야 이 백성들 중에서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숫자는 300명이 고작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다 돌려 보냈습니다. 많은 수의 적을 고려할 때 300명의 숫자로는 택도 없습니다. 만약 기드온이 불멸의 이순신처럼 명장 중의 명장이거나 주위의 지형지물을 잘 안다거나, 또는 300명의 군대가 해병나나 특전사의 죽음을 경험할 정도의 엄청난 훈련을 받은 군사들이라면 그대로 조금은 이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용병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특별한 무기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처럼 한국형 소총처럼 다연발로 나갈 수 있는 총도 없을뿐더러 비행기, 대포, 전차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러니 적군 13만5천을 300명의 군사로 공격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당 450명을 감당해야 하는 불가능한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기드온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기를 “하나님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7장 12절)
  12절 말씀을 보면 기드온이 부하 부라를 데리고 적진에 들어가 본적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자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이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음을 보았습니다.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잘 못 걸어가다 밟으면 사람이나 약대라는 것입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그의 친구의 꿈을 통하여 하나님이 미디안의 손에 이 민족들을 붙이셨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7장 15절)
  여러분! 15절 말씀을 한번 읽어 봅시다. 그가 돌아와서 한 것은 하나님게 경배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진중에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고 선포를 하게 됩니다.
  지금 이 선포를 하고 있는 기드온의 모습! 6장에 나타난 기드온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지 않습니까? 예전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지금 이 모습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으로 얼룩져 있었던 기드온이 이렇듯 백성들 앞에서 300대 135,000의 전쟁을 앞두고 이 전쟁은 우리가 이긴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그가 강한 자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7장 18절)
  18절을 한번 읽어 봅시다. 여기서 이 백성들의 입술을 통하여 무엇을 소리치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0절에 보면 이 소리를 다르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군대의 대표가 하나님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종으로서 그 분을 대리할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전쟁은 기드온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연약한 자를 강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같이 연약한 존재가 하나님 앞에서 큰 용사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있습니다. 기드온이 연약한 자의 모습으로 가득하여 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도리를 그를 부르셨고, 그를 훈련 시키셨으며, 그리고 그를 이스라엘을 이방의 민족들의 손에서 구원하는 구원의 사사로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할렐루야.
  누가 기드온을 강한 자로 만드셨습니까?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에게 있어서 이 임마누엘의 약속은 그를 연약한 자에서 강한 자로 만들어 버리는 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도 연약한 자의 자리에 있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강한 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불러 주셨을 뿐만 아니라 나와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에, 우리의 마음에, 우리의 삶에 불만과 알 수 없는  불안감들로 가득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아직까지 연약한 자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연약한 자의 자리에 있다고 한다면 이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통하여 연약한 부분들이 다 깨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더욱 강한 자의 삶을 살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 앞에 부르심을 받은 주님의 용사! 주님의 강한 자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을 담당하며 세상과 싸워야 할 주님의 강한 자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기드온에게 오셨던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며 나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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