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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맛' 나게 하는 사람 (마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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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좋은 은혜의 날 저희들의 발걸음을 교회로 인도하여 주셔서
예배드리게 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을 살며 지은 죄와 가진 허물이 많지만
진심으로 회개하며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여기 수고하고 무거운 세상의 짐, 삶의 짐을 지고 왔습니다.
이길 힘을 주시고, 능히 감당할 담대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점점 추악해지는 이 세상에 사는 우리들이지만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소돔과 고모라처럼 변해 가는 세상에서 열 사람의 의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예배드림으로, 말씀 들음으로, 믿음을 키우게 하시고 소망을 든든히 붙들게 하시며…
영육간에 병든 이들이 치료받는 신유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부족한 종이 흩어진 기둥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군대, 객지, 외국에 있는 이들, 병상에 누운 환자들,
저들 모두와 함께 계셔 주셔서 우리가 받는 기쁨,
우리가 받는 은혜를 저들도 함께 나누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주장하실 줄로 믿고
부활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에게 오늘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허락하신 복된 날입니다.
"좋은 날, 평안한 날, 감사가 넘치는 날"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신문에 보니 웃음의 운동효과에 대해 나와 있었습니다.

한번 크게 웃으면 - 윗몸 일으키기 25번
10초 동안 웃으면 - 노젓기 3분
15초 박장대소하면 - 100미터 전력질주 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웃고 사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들과 "웃고 삽시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웃지 못할 일들이 많습니다.
요사이 들었던 답답한 이야기 중에 하나가 '김치' 이야기입니다.
수입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되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그런데 국내산 김치에서도 기생충 알이 검출되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저로선 정부도, 언론도… 잘 이해가 안됩니다.
중국에서 김치를 만들어 한국에 파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고
수입하는 사람도 한국사람인데… 정부가 수입 검역(檢疫)을 철저히 하여
조용하면서도 바르게 고쳐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뭐 그리 자랑이라고 한국 김치에서 기생충알이 나왔다고
각 방송/신문마다 다투어 보도했는지… 답답합니다.
결국 전 세계가 한국의 김치를 우습게 보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걸 먹고,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믿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고, 덮어주고, 신뢰하고 세워주고, 용기를 주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인사합니다.
"힘을 내세요. 서로 세워주고 높여 주며… 서로 믿고 삽시다."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제자들을 택하신 후,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중의 한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다시 한번 함께 읽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5:13)

이 말씀대로라면 말씀을 직접 들은 제자들이나
이 말씀을 지금 듣고 있는 우리들 모두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그냥 소금이 아니라 세상의 소금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벗어나 숨거나 고립되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환한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마17:2 -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
그리고 그 곁에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있는 참으로 신기한 모습을 보았습니다.(막9:2~8).
그 모습이 얼마나 신기로웠는지 베드로가
"…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 (막9:5) 했습니다.
우리도 경치 좋고 환경 좋은 곳에 가면
그런 곳에서 살고 싶어하듯이… 베드로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이 말은 "주님, 여기가 좋으니 이 산에서 내려가지 말고
여기에서 살면 어떻겠습니까."하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그 산을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죄 많고, 어둡고, 불합리하고,
불의한 세상이지만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잘못 중에 하나가
'세상이 악하니까 이 세상을 멀리하고 숨어살자'는 은둔주의입니다.
가끔 산에 기도하러 가는 것은 좋으나
세상을 등지고 기도하러 가서 산에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물론 특별한 목적이 있어 평생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 모두가 틀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 속에서 빛 되고 소금 되어 살며,
세상 속에서 예수님 향내 풍기며, 복음 전하며 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다면 이 세상은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장소요,
사명을 감당해야 할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요17:18~19)

왜 예수님께서는 세상 보통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금이나 은 같은 보석이 아니고, 달콤한 맛을 내는 설탕이나
배를 부르게 만드는 빵도 아닌…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물론 우리는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우리가 소금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소금'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소금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살던 당시의 소금은
바닷물을 가두어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산이나 계곡에서 캐는 바위 소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팔래스틴 지역의 소금은 값어치가 없는 물건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어느 누구도 소금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비록 세상의 가치로 볼 때 값없어 보이고,
약해 보이고, 바보 같아 보여 손가락질 당한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소금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맛을 내는 소금

소금은 맛을 내는 조미료의 역할을 합니다.
소금은 음식 속에 들어가면 맛을 내줍니다.
짠맛을 가지고 있지만 떡에 들어가면 떡 맛을 내고,
고기에 들어가면 고기 맛을 내고, 김치에 들어가면 김치 맛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저는 양념된 고기를 먹거나, 스테이크를 먹을 때면 소스를 뿌려 먹었습니다.
그런데 브라질에 갔을 때 어떤 식당에서 고기하고 소금만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스테이크 소스를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식당 매니저가 와서
"손님, 고기는 소금에 먹어야 제 맛이 납니다. 제가 자신있게 말씀드립니다만,
드셔 보시고 그래도 소스가 필요하시다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금에 찍어 먹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주 맛있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고기 먹을 때는 소금에 찍어 먹습니다.
소금은 이처럼 맛을 내는 것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욥이 살았던 정확한 연대를 알 수는 없지만
역사적인 실제 인물입니다.(겔14:14, 20, 약5:11)
그런데 기원전에 살았던 욥도 소금을 조미료로 기록했습니다.
욥기 6장 6절에 보면,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욥6:6) 했습니다.
우리가 삶은 계란을 먹을 때 소금을 찍어 먹는데,
기원전에도 소금을 찍어 먹었던 모양입니다.
이처럼 소금은 싱거운 것에 맛을 내고,
또 맛을 가지고 있던 것에 새로운 맛을 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소금같이 살아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살맛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으로 선언된 하나님의 뜻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세계 영생과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구원의 큰 기쁜 소식을 가진 사람다운 넓은 마음의 사랑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살맛을 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야! 저 사람 매력있다. 저 사람 보면 생기가 돋는다. 살맛 나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살맛 나게 해 주고 밥맛 나게 해야지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밥맛 떨어지게 만들면 안됩니다.
예수 믿는 우리 때문에 밥맛이 생기고 살맛이 나게 하는 것 그것이 소금의 사명입니다.

중국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허드슨 테일러의 부모도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약국을 경영하였는데 언제나 정당한 값 이상은 받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약을 지어주었습니다.
공짜로 약을 받아들고 미안해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계산서는 천국으로 보내겠습니다.
거기에서 갚아주세요. 그리고 약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오세요."
그들은 사람들에게 살맛이 나게 했습니다.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았습니다.
가난하고 어렵던 사람들이 얼마나 살맛이 났겠습니까! 얼마나 멋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있음으로 남편이 살맛 난다고 합니까?
″ 아내가 살맛 난다고 합니까?
″ 부모가 살맛 난다고 합니까?
″ 자녀가 살맛 난다고 합니까?
″ 친구가 살맛 난다고 합니까?
여러분이 있음으로, 여러분이 있는 속회가, 선교회가, 교회가… 맛이 납니까?
남의 탓하지 마세요. 자기가 맛을 내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 후반에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참 무서운 말입니다.
소금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면 무시당하고 쓸모가 없어져 버림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맛을 잃은 소금은 제 아무리 큰 바위만큼, 산만큼… 있어도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소금은 짠맛을 가지고 있을 때만 가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 (막9:50) 했습니다.

소금을 가진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화목한 맛을 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소금은 서로 화목하게 만듭니다.
화목한 마음은 인생의 맛을 냅니다. 여러분은 소금기가 있습니까.
여러분 가정에서 소금의 역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화목의 맛을 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입내밀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입 들어가게 하고, 웃게 만들고,
손잡지 않고 등돌리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손잡게 만드는 사람이 누가 되어야겠습니까?
따라서 합니다. [제가 되겠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소금입니다]

골로새서 4장에는,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골4:6) 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소금으로 고루게 함 같이 해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4:29) 고 했습니다.
말을 하려 할 때도 덕을 세우는 말인지, 은혜를 끼치는 말인지 잘 생각하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더러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러운 말은 [이간질하는 말], [불평하고 원망하는 말],
[이유 없이 남을 깎아 내리며 흉보는 말]… 등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덕을 세우는 말, 칭찬하고, 격려하고,
평안을 만들고, 감사하는 말만해야 합니다.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이 아니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말이 되면 속회를 새롭게 조직하고 선교회도 새롭게 조직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새롭게 조직된 선교회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부천서지방 교역자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고 나서 참석한 모임이라
오늘 전할 설교내용을 생각해 보며 목사님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에 제 마음에 들지 않는 목사님들도 계셨습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니 그분들 가운데
제가 마음에 안드는 분도 계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평상시의 느낌으로 제게 우호적이지 않은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다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 다섯, 열 명을 모아 놓으면
그 중에 꼭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맛을 내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거기가 모일 맛이 나게 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생기 돋게 하는 사람, 맛나게 하는 사람, 모일 맛나게…
일할 맛나게… 하는 사람 맛내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됩니다.
따라서 - [제가 되겠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소금입니다]
여러분이 맛을 내어서 부서가, 속회가, 선교회가… 좋은 조직이 되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녹음으로 희생하는 소금

소금이 제대로 음식 맛을 내고, 음식이 썩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녹아야 합니다. 녹아 없어져야 합니다.
만약 소금이 녹지 않으면 제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녹는다'는 말은 '희생'을 의미합니다.
자기의 본 형태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20:28) 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신 뜻은
'너희는 깨어져라! 녹아라 희생해라! 그래서 맛을 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참 맛을 내려면
자신이 녹아야, 희생해야, 깨어져야, 죽어야, 썩어야 합니다.

소금은 소금 모양 그대로 있어서도 안 됩니다. 소금끼리 모여 있어서도 안 됩니다.
소금은 무더기로 있어서도 안되고
녹아서 음식 구석구석에 파고 들어가 숨어 있어야 맛이 납니다.
소금은 자신의 모습은 감추고 녹아 없어져야 비로소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가정의 문제도 모두 소금이 되어 녹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부부 싸움할 때 보면 다 잘났습니다.
서로 녹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자기 성격 그대로 다 드러내며 싸웁니다.
교회의 여러 문제도 자신이 녹지 않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절대 녹지 않으려고 애쓰며 다른 사람에게 녹으라고 합니다.
자기 견해, 자기 주장, 자신의 생각… 지키려고 혈기까지 부립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이 있는 곳에 화목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

소금의 또다른 역할은 '썩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식품은 그대로 두면 썩습니다. 그러나 소금을 넣으면 썩는 것을 방지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의 최소한 4명은 어부였습니다.(베드로,요한,야고보,안드레)
갈릴리에서 잡은 고기를 소금에 절여 외부로 보냈던 그들은
소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소금이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도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소금은
- 정복한 땅에 뿌려 그 땅을 황폐케 하는 데도 쓰였습니다.
그만큼 소금은 소멸하는 힘이 있었습니다.(삿9:45, 욥39:6, 시107:34)
- 그리고 탄생한 아기를 소금을 닦아 건강하고 정결하게 하는
약으로(도구로) 쓰이기도 했습니다.(겔16:4)

다시 말해 소금은 깨끗하게 하고, 아물게 하고, 더러운 것을 방지하는 약으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신명기에 보면 제물(소제물)에도 뿌렸습니다.(신29:23)
특별히 상처를 아물게 하는 약으로 쓰였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싸매시고 치료하시며 멸망과 죽음 밖에 모르던 사람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도, 소금 되어야 하는 우리도
깨끗케 하고, 아물게 하고, 덮어 주고… 어루만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크리스챤입니까?
미국의 선교사 알렌목사는 교인 중 20%는 주일예배에 출석하지 않고,
20%는 기도를 드리지 않고, 30%는 성경을 읽지 않으며,
40%는 하나님의 명령인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며, 75%는 교회에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85%는 전도를 한 명도 하지 않았지만,
교인 100%는 천국에 가기를 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사에서 골라낸 1,882가지 신앙이야기, 기독교문사, p.130)

여러분은 세상에서 어떤 크리스챤으로 살고 계십니까?

창세기 19장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소돔과 고모라성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천사들로부터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 응답으로 '의인 10명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습니다.
의로운 사람 열 명만 있어도 소돔성은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어떻게 됩니까?
무서운 불 심판을 받고 멸망했습니다.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에…

생각해 보세요.
롯 부부, 정혼한 두 딸 부부 4명,
그리고 15절에 보면 또 다른 두 딸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소돔성에 살던 롯의 식구가 최하 6명, 정확치는 않지만 많으면 8명입니다.

가족들과 친구 또는 이웃 사람 몇 명만 전도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게 했더라도 비참한 최후를 만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롯의 가족
롯의 아내: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19:26)
롯의 자녀: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 (창19:8)
▶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두 딸이 있었다고 추정.

롯의 사위: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창19:12)
"롯이 나가서 그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창19:14)

▶ 롯에게는 둘 이상의 사위가 있었음으로 추정.
이에 대해 신학자 '크노벨'(knobel)을 비롯하여 '델리취'(Delitzsch)는
이 문제에 대해 '결혼한 딸들'과 '결혼하지 않은 딸들'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즉 롯에게는 결혼하지 않은 딸들뿐만 아니라 이미 결혼한 딸들도 있어서,
본문에서 말하는 사위는 바로 이들의 남편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설명으로는 신학자 '카일'과 '에발트'의 해석으로서, 그
들은 본문에 나오는 '사위'가 이미 결혼해서 완전히 롯의 사위로 된 자들이 아니라
롯의 딸들과 결혼하기도 약속한 자들, 즉 '약혼자'라고 해석한다.
그들은 이러한 해석의 근거로서 창19:30-38에서 등장하는 딸이 오직 두 명 뿐인데
만약 롯에게 결혼한 딸들이 있었다면
그들에게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헤세드'성경주석, 임마누엘출판사, 1권 '창세기' 中, p.307)
결론적으로 롯의 식구는 최소한 6명에서 (롯, 롯의 아내, 두 딸, 약혼한 사위들)
최대 8명 이상(롯, 롯의 아내, 결혼 안한 두 딸,
이미 결혼한 둘 이상의 딸과 둘 이상의 사위들)으로 볼 수 있겠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족에게, 친구에게,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사는지요?

영국 성서 주석가 매튜 헨리 목사님은(Matthew Henry, 1662~1714)
예수 믿는 사람들, 특별히 예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선해야(be good) 될 뿐 아니라 선을 행해야 한다(do good).'고 했습니다.

저는 제 아들과 전화를 할 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Always be careful. 언제나 조심해라.
Always listen carefully. 언제나 잘 들어라.
선생님 말씀, 주변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Always do your best. 항상 최선을 다해 살아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Be good. 착해야 한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였습니다.
그런데 매튜 헨리 목사님의 글을 다시 읽고 마지막 말을 바꾸려 합니다.
착한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Be good) 착한 일을 행하라(Do good)고 말해 주려고 합니다.

우리는 혼자 착해서는 안되는 사람입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남에게 상처주지 않고 상처 안 받고 산다'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세상에는 남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람…, 눈물 뽑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남이 자기 때문에 상처받았는지도 모르며 태연히 삽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있어도 까딱도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남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도 많습니다.
너무 쉽게 상처받는 사람들 말입니다.
웃어도 상처받고, 울어도 상처받고,
크게 말해도, 소근거려도 상처받습니다.
쳐다봐도 상처받고, 안봐도(못봐도) 상처받습니다.

어떤 분들은 예배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 제가 미처 보지 못해 인사하지 못하면
일주일동안 저 때문에 삐져 있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선교회에서 자기가 어떤 얘기를 했는데 선교회원들이 막 웃었다고
그래서 자기가 너무 상처받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웃고 살라고 했는데… 웃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상처 주는 사람도 되지 말고 상처받는 사람도 되지 말아야 합니다.
돈도 안되는데 상처를 왜 받습니까. 받지 마세요. 돈을 주면 받지만 상처는 받지 마세요.
그리고 상처를 받았거든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상처를 치료하는 사람, 깨끗케 하는 사람, 어루만져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소금과 같은 맛을 내는 사람입니까?
남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이 있음으로 해서… 여러분의 가정이 살맛이 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있음으로 해서… 속회가, 선교회가 화목하고, 교회가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모일 맛이 나고 일할 맛이 나기 바랍니다.
상처를 치료하고 싸매고 어루만져 주고 맛이 나게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스스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고 피흘리시고
모든 사람이 믿으면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형체를 다 찢으셨습니다.
우리가 소금 되어야 합니다.

오늘 제자들에게 산에서 하셨던 말씀으로만 들으면 안됩니다.
오늘 고신일목사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받고
삶 속에 맛을 내는 사람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맛을 내는 사람들 되기 원합니다.
맛을 내는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신의 모습을 녹여 희생하면 가정도, 일터도, 교회도, 맛을 낼 수 있는데
자신이 녹지 않으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녹을 결심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소금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맛내며 사는 승리자들 되도록 연약한 저희들을 붙드시고 인도하여 주실 줄로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5년 11월 13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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