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대속죄일의 의미 (레 16:6-22)

  • 잡초 잡초
  • 1344
  • 0

첨부 1


7대 절기 가운데 제일 중요한 절기가 바로 레위기 16장이 정하고 있는 속죄일입니다. 이것은 ‘대속죄일’ 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16장 34절을 보면 “이는 너희의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년 일차 속죄할 것이니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다른 절기들은 대부분 축제의 절기입니다. 그러나 이 대속죄일 만큼은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며 슬퍼하는 날이요, 죄를 속죄 받는 그런 날인 것입니다. 금식의 날이요 회개의 날이요 슬픔의 날입니다. 이 대속죄일의 모든 규례는 대단히 복잡합니다. 성경을 읽어도 잘 모르겠는 것이 대속죄일의 복잡한 규례인 것입니다. 오늘은 이 대속죄일의 규례를 몇 부분으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대속죄일 제사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할 수 있다.

첫째로, 대속죄일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대제사장(high priest) 한 사람뿐입니다. 그 당시에 대제사장은 누구였습니까? 아론이었습니다. 아론의 네 아들들 중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로 분향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아살과 이다말 두 사람만이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론의 아들들이라고 해도 대 속죄일의 제사를 집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로지 대제사장 아론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론은 대속죄일의 네 가지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첫째로는 모든 규정을 정확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나라도 어기게 되면 아론이라고 할지라도 죽음을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16장 1-2절을 보면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대속죄일의 규례를 말씀하시면서 “네 아들 둘이 죽은 것을 먼저 알아라. 나답과 아비후가 죽지 않았느냐? 그러므로 너도 이 제사를 드릴 때에는 이 규정 하나하나 정확하게 지킬지니라. 네 멋대로 제사를 지내서는 안 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무시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때 아무 때나 지성소 안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규정을 지켜서 대속제일 제사를 집행하라고 하는 것이 첫 번째 조건입니다. 

두 번째로 대제사장은 극도로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4절을 보면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찌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그날 대제사장은 평소에 입는 옷과는 다른 옷을 입어야 합니다. 평소에는 대제사장 옷은 왕의 의복 같습니다. 왕관도 쓰고 휘황찬란한 옷을 입습니다만 이날 대속죄일에는 입는 옷이 다릅니다. 세마포 옷입니다. 이것은 초상을 당했을 때 입는 상복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만약 교만 떨고 제사를 지냈다가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극도로 겸손한 자세로 극도로 겸손한 옷을 입고 제사를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대제사장은 자기도 죄가 있는 자이기 때문에 먼저 자기도 죄를 위해서 속죄 제사를 드리고 자기가 깨끗해진 다음에 백성들의 죄를 속죄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먼저 흠이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 아론은 자기가 대제사장이지만 그 역시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송아지를 먼저 잡아서 그 피를 가지고 먼저 지성소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법궤가 있습니다. 법궤 안에는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과 만나, 아론의 싹난지팡이가 들어 있습니다. 법궤 위 뚜껑은 속죄소, 시은소라고도 하는데 아론은 들어가서 송아지 피를 가지고 그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립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직접 대면할 수 없기 때문에 향을 가지고 들어가서, 향으로 구름을 피워서 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어느 정도 가린 다음에 수송아지의 피를 속죄소 앞에 뿌려야 한다고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대제사장이 자기 죄를 먼저 속죄하지 아니하고 백성의 죄를 속죄한다면 친절한 금자씨에게 “너나 잘하세요.” 하는 야단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은 자기 먼저 깨끗하게 해야 됩니다. 피로 씻을 뿐만 아니라 물로도 씻어야 합니다.

네 번째로 대속죄일에 대제사장 아론은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합니다. 그 날 만큼은 제사장 아들들도 도울 수 없습니다. 오로지 혼자 해야 합니다. 17절 말씀에 보니까 “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 권속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 나오기 까지는 누구든지 회막에 있지 못할 것이며” 누구든지 회막에 있을 수 없고 오직 대제사장 아론 한 사람만 모든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론이 대속죄일에 잡아야하는 짐승의 수는 대충 몇 마리 정도 될 것 같습니까? 열다섯 마리 이상을 혼자 잡아야 합니다. 민수기 29장 7-11절을 보겠습니다. “칠월 십일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마음을 괴롭게 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너희는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와 일년 된 수양 일곱을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칠월 십일이 대속죄일입니다. 그 때에는 성회로 모입니다. 그런데 8절에 “너희는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와 일년 된 수양 일곱을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11절을 보겠습니다.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니 이는 속죄제와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그랬으니 벌써 아침에 대속죄일 제사를 드리기 전에 아론이 잡아야 되는 짐승이 열 마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자기를 위한 수송아지 한 마리, 수양 한 마리를 잡아야 합니다. 이것은 레위기 16장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그 다음에 백성들을 위해서 염소 두 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는 잡고 한 마리는 살려 줍니다. 그리고 24절에 “거룩한 곳에 물로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자기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그러니까 제사를 다 마치고 난 다음에 “하나님 제사 잘 드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자기를 위한 번제 드리고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해서 번제를 드립니다. 그러면 도합 몇 마리입니까? 열다섯 마리가 되지 않습니까? 아론은 이것을 혼자 다 잡아야 했습니다. 송아지, 염소, 양을 열다섯 마리나 혼자 잡아야 했으니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겠습
니까? 여러분, 모든 규정을 다 지키고, 극도로 겸손한 영을 가지고, 흠이 없는 대제사장이 이 모든 일을 스스로 감당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다시 말해 대속죄일의 대제사장 아론은 과연 누구를 예표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죄를 위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없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예언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서 우리의 죄를 위한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는 것입니다. 공자도 훌륭하고 맹자 노자도 훌륭한 분입니다. 마호메트나 석가모니나 다 훌륭한 종교의 창시자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의 죄를 속죄할 수 있는 대제사장이 될 자격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제가 단언하건데 그들을 따라가게 되면 여러분들은 죽은 후에 크게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한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 분은 오로지 한분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앙에서 흔들리지 말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노라”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에 사도들은 그렇게 외치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식 좀 있으면 “예수만 믿으면 구원 받느냐?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가련한 사람이요, 불쌍한 사람이요, 무지한 사람이요, 구원의 체험이 없는 사람이요, 성령을 못 받은 사람이요, 죽으면 지옥 갈 사람인 것입니다. 오로지 대제사장 되실 분은 한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죄가 없고 흠이 없으셨으며 구약의 모든 예언을 실현하시고 홀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홀로 그 사명을 다 감당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십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대제사장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2.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두 염소

두 번째로 대속죄일에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속죄한 제물을 살펴보겠습니다. 대제사장 아론은 자기의 죄를 위해서는 수송아지와 수양을 잡았습니다만, 백성들을 위해서는 염소 두 마리를 선택했습니다. 일년 된 깨끗한 염소 두 마리를 선택해서 제비를 뽑습니다. 제비를 뽑아서 첫 번째 것은 여호와를 위해서 드리고 두 번째 것은 아사셀을 위해서 드린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염소는 대제사장 아론이 죽여서 피를 가지고 속죄소 앞에 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하고 회막 성막에도 뿌리는 것이고 밖으로 번제단의 뿔에도 바르고 일곱 번을 뿌렸습니다.

이 첫 번째 염소는 두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속죄함을 받은 것입니다. 16장 3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여러분 첫 번째 염소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아론이 온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속죄한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의 죄를 속죄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 택한 백성의 죄를 속죄한 것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 모든 사람의 죄값을 다 갚았다는 논리를 믿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 영원 전부터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속죄했다고 하는 제한 속죄설을 믿는 칼빈주의자입니다. 아르미니우스 신학은 개인적으로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신학적인 오류입니다. 어쨌든 이날 수염소를 통해서 첫째로 하나님의 택한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속죄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수염소의 속죄효과는 사람의 죄를 속죄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장소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그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산 염소를 드리되” 그러니까 지성소를 위해서도 속죄하고 회막을 위해서도 속죄하고 번제단을 위해서도 속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 ‘대속죄일은 사람의 죄만 속죄하는 것이지 장소는 속죄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염소는 장소도 속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의 죄만 속죄하면 그만이지 장소까지 정결케 하느냐? 그것은 하나님께서 부정한 곳에 임재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성막에 임재하시기 위해서 장소도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염소는 택한 백성의 죄를 사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임재하시도록 하기위한 제물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재물은 누구를 상징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러면 두 번째 염소는 어떻게 됩니까? 두 번째 염소는 아사셀 염소라고 했습니다. 8절을 읽겠습니다.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찌며” 그런데 10절에 보니까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찌니라.” 또 21절-2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아론은 두 염소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찌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 찌니라” 그러면 두 번째 염소는 영어로는 ‘scapegoat’라고 합니다. 아사셀 염소는 ‘속죄양’이라고 번역합니다. 이 아사셀 염소를 아론이 두 손으로 안수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다 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백성이 우상숭배 했습니다. 음탕했습니다. 절도했습니다. 무죄한 피를 흘렸습니다.” 모든 죄를 아사셀 염소의 머리위에 안수하고 다 고하는 것입니다. 이 대속죄일이라고 하는 것은 제사장 아론이 백성 전체의 죄를 고하는 날인 것입니다. 염소에게 그 죄를 전가시킨 후에 미리 정한 사람이 그 염소를 끌고 무인지경까지 갑니다. 그 때 그 염소를 놓고 옵니다. 그러면 그 염소는 어떻게 됩니까? 벼랑에 떨어져 죽었을 수도 있고 사자가 와서 잡아먹었을 수도 있고 병들어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아사셀 염소는 광야의 귀신이름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죄를 아사셀 염소에게 얹어서 그 죄의 주인인 귀신에게로 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 번째 염소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지만 두 번째 염소는 살인자 바라바를 예표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조는 멋있지만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옛날에 오리겐이라고 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귀신에게 마귀에게 죄값을 값은 것이라고 하는 ‘속상설’을 내어 놓았습니다. 마귀에게 죄값을 지불합니까?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론이 마귀에게 제사를 지냅니까? 절대 그럴 수 없는 것입니
다. 그러면 아사셀 염소는 무엇을 예표합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 속죄일의 속죄제사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속죄일의 제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아 너희의 죄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느냐? 아사셀 염소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니라. 너희의 죄는 몽땅 아사셀 염소에게 옮겨져서 너희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멀리 사라져 버렸느니라.” 하는 것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사셀 염소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의 죄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죄와 죄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하나님이 내쫒아 버린 것입니다. 시편 103편 12절 말씀에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옮기셨으며”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겨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7절에도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기억도 아니하시고 멀리 내쫓아 버리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는 언제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는 어떻게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수준이지 그것이 천국과 지옥에 가는 것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예수 믿고 죄를 지어도 됩니까? “나는 지옥가기는 다 틀렸으니 나는 이제 죄를 지어도 될 자유를 얻었다.” 하면서 맘대로 죄를 지어도 됩니까? 그러면 징계가 올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예수 믿는 순간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 갈 사람이 하나님께 잠시 징계를 받는 것이 지옥 갈 사람이 복 받는 것보다 백번 나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여러분,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아사셀 염소는 우리 죄가 멀리 옮겨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대속죄일에 백성들이 취할 태도

그러면 대 속죄일에 백성들이 취해야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하면서 이런 태도를 취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첫째로는 29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월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그러므로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괴롭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몸을 괴롭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혼을 괴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론은 들어가서 제사를 지내고 짐승을 열다섯 마리나 잡고 피를 가지고 제사를 지내는데 백성들이 밖에서 막걸리 마시고 소주 마시고 놀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죄가 일년에 한 차례 이렇게 속죄 제사를 지내서 사함 받는 날이구나.” 하면서 스스로 자기의 지은 죄를 생각하면서 금식도 하고, 통곡도 하고, 회개도 하고, 자기 영혼을 괴롭게 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날은 너무 즐거워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날은 백성들이 자기 직업을 위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31절에 보니까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자기 집에 거하는 객이든 종이든 아무도 일을 시키지 말고 다 안식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내가 노력해서 내 죄과를 값아 보겠다는 시도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과거에 인생 50살 살면서 지은 죄가 크니 내가 선행을 해서 내 죄과를 갚아 보겠다.”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죄과를 갚겠다고 죄를 더 짓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죄를 더하면 더했지 속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노력으로 안 되는 것입니다. 죄의 속죄는 오로지 적합한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려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내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노력할 것 없습니다. 그저 안식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만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 이외에 죄사함을 받을 길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 길 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로 2절을 읽겠습니다. “거룩한 곳에서 물로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자기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아론은 제사를 드리고 난 다음에는 몸을 씻고 다시 자기의 옷을 입고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내가 이 대속죄일 제사를 죽지 않고 마친 것을 감사합니다.” 해서 자기를 위한 제물을 하나 드리고 “백성들의 죄가 올해도 다 속죄된 것을 감사합니다.” 해서 백성들을 위해서 또 감사 제물을 드립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은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께 감사의 제물을 드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마땅히 취할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대속죄일에 백성들은 첫째로 자기 영혼을 괴롭게 하고, 둘째로는 대제사장의 속죄 제사를 바라보고 안식하며, 세 번째로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이제 결론을 맺습니다. 구약의 대속죄일은 더 큰 속죄일, 더 큰 제사장, 더 큰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골고다 십자가 사건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림자로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론보다도 더 위대한 제사장입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아론보다 어떤 점에서 위대한가 하는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것은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아론은 자기 죄를 위하여 희생제사가 필요했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자신을 위한 희생제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더 우월합니다. 둘째 아론은 죽어서 또 다른 제사장으로 직분이 갈리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계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월합니다. 세 번째로 아론은 이 땅의 성막에서 제사를 지냈지만 예수님은 하늘의 지성소에서 우리 죄를 위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넷째로 아론은 매년 제사를 반복하고 아론의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일년만 용서해 주는 것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이천년 전에 이미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다 이루신 것입니다. 더 이상의 희생제사가 이제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섯 번째로 아론은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로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정결한 자신의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월한 제물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기를 볼 때에 ‘이 복잡한 말씀, 제사의 규례가 지금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 구절 하나하나는 모두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즐거워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죄사함 받고, 우리의 심령이 씻은바 되어 하나님의 성령을 맘속에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의로운 삶이요, 바른 삶이요, 그것이 인간이 마땅히 살아야할 본분인 것입니다.  (피영민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3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