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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한 교회가 아름답다 (엡 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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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신앙의 소유자

세상에는 건강한 사람도 많지만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잠시 몸이 불편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치료가 되어 회복될 수가 있지만 회복이 안되는 상태는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과 공동체에 큰 부담과 아픔을 주게 됩니다. 신체보다도 더 큰 아픔은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성격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심지어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신앙인들 가운데, 교회의 직분자들이나 지도자들 가운데 건강하지 못한 신앙을 가지고 교회와 교인들을 어렵게 하고 고통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 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리차드 칼슨이라는 사람은 무려 십년 동안을 스트레스 치유 상담가로 활약한 사람입니다. 그가 십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동일한 증상이 있는데 그게 무엇이냐 하면,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든가 자기가 처한 처지의 의미나 가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는 자기가 원하는 것, 가지지 못한 것, 가지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거기에다가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욕망 지향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의 의미, 가진 것의 소중함은 아랑 곳 하지 않고 가지지 못한 것, 저 앞에 있는 욕망, 그것을 지향하는 마음으로 살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병의 원인이고 불행의 원인인 것입니다. 버틀란트 러셀은 그의 행복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자신의 힘과 존재를 겸허하게 평가하는 것이 행복의 근본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세계적인 정신 위생학자인 데이빗 핑크는 인간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1. 일하는 것: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가진 것은 정말 행복한 것입니다.

2. 노는 것: 사람이 일만 하고 살 수 없는 존재이니까 반드시 노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의 균형을 잘 잡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운동도 하고, 예술을 즐기는 것과 노는 방법의 개발도 중요합니다.

3. 사랑을 주고받는 것: 사랑하면서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을 통해 인간은 행복과 보람을 느낍니다. 사랑의 대상, 내가 기쁘게 해줄 대상, 내가 아낌없이 바칠 대상이 있는 것! 그것은 인간 행복의 중요한 요소인데, 현대인들에게는 이것이 별로 없습니다. 너무 이기적으로만 살기 때문입니다.

4. 예배하는 것: 위 세 가지가 다 있어도 인간의 영혼의 거대한 부분은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의 만족은 오직 초월적 존재와의 교통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초월적 존재와 교통을 합니까? 가장 소중한 것이 역시 예배입니다.

이 학자의 주장처럼 주님은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삶은 건강한 삶의 지표입니다.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건강하게 살아갈 때 아름다운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이 모임 공동체인 교회도 건강해야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신앙의 두 가지

신앙은 두 개의 가지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장이고 하나는 기초입니다. 믿음은 계속 자라나 성장해야 됩니다. 또 믿음의 중요한 것은 기초가 든든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라나기는 주-욱 자라나는데 기초가 없어서 조그만 시험이 오고 어려움이 오면 그만 믿음이 흔들립니다. 기초가 든든하고 자라나기도 잘 자라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큰 믿음의 재목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기간의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교회성장은 곧 부흥을 말하며, 부흥이란 물론 양과 질의 부흥을 동시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그 실에 있어서는 양적 부흥에 힘쓴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양적 성장이 침체기에 들어가는 듯 하니까 질적 성장에 힘쓰는 듯 보였는데 그때 흔하게 사용한 단어가 건강한 교회란 말이었습니다.

최근에 부상한 단어가 '건강한 교회'란 말입니다. 그 하나의 예를 든다면 미국의 새들백 교회 릭 워렌 목사는 그의 저서 「새들백 교회 이야기」에서 건강한 교회 요소로 5가지를 기록했는데 그것은 교제, 제자훈련, 예배, 사역, 전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럴듯한 지적이며 그 어느 하나 빼놓을 것이 없어 보입니다. 또 독일의 교회성장학자 크리스티안 A. 슈바르츠는 건강한 교회의 8가지 특징을 말하고 있는데 능력 있는 리더십, 은사 중심 사역, 뜨거운 영성, 기능적인 구조, 영감 있는 예배, 전체적인 소그룹, 필요중심의 복음전도, 사랑의 인간관계를 들면서 이 여덟 가지를 갖춘 교회는 자연스럽게 성장한다는 이론을 내 놓은 바 있습니다.

피라미드 모형과 버스 모형의 교회

오늘날 교회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있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피라미드 모형이고, 또 하나는 버스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라미드 형이라고 하는 것은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목사가 앉아있고 그 밑에 서열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교회형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형태는 교회의 직분을 사회의 직위처럼 생각하고 일하지 않고 군림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큰 암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버스 모형이라고 하는 것은 목사 한 사람이 버스를 운전하고 성도들은 그 버스에 탄 사람들처럼 밖을 내다보며 세상을 즐기거나, 세상모르고 졸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이 버스는 목표를 향해 빨리 달릴 수는 있을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버스에 탄 사람은 봉사하지도 않고, 또한 할 수도 없습니다. 혹시 버스 운전사에게 어떤 일이 닥치게 되면 버스에 탄 사람들은 큰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교회는 목사 한 사람이 다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라미드 모형의 교회나 버스 모형의 교회는 바람직하지 않고 성경적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목사와 교사와 집사 또는 기타 섬기는 자들을 주신 목적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봉사하는 일을 하게 하여 이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있습니다.

특히 이 본문에서 교회에 세움을 받은 직분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을 봉사하는 자로 훈련시키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점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목사와 교사와 그 외 다른 직분자들을 세우신 목적은 그들의 봉사로 인하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무장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외적인 교회당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함을 따라 그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교회'란 건물이 결코 아니며 성도의 모인 회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에클레시아'(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빼낸 부름 받은 백성을 일컫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개개인이 교회란 의미이기도 하고 이 교회의 한 요소라는 의미도 됩니다.

교회의 직분 중에 본문 11절에 보면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고 했고, 그 직분을 세운 이유를 12절에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은사의 다름을 존중하자

우리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사람들의 외적 조건에 따라 나보다 나은 사람과 못한 사람 등의 평가보다는 진정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팀 사역을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사람들을 성경적 방식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은사에 따라 사람 바라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각기 다른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의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지체라는 의식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성경에 교회의 본질을 설명할 때 가장 흔히 등장하는 것이 '몸의 비유'인데 손과 발 중에 어디가 더 중요할까요? 손과 발은 비교되는 지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상호 보완적인 지체라는 사실입니다. 이 같은 지체들의 각기 다른 역할을 존중하는 순간 우리는 피차에 비교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르지만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고백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교회 지도자들도 서로 다양한 다른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먼저 강조합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 세 가지인데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하고, 몸을 세우는 일입니다. 표준 새번역은 이 부분을 바로잡은 번역을 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사역의 주체가 성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목사는 성도들이 사역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사역의 전통적 인식에 의하면 사역은 목사가 하는 것이고, 평신도는 목사를 돕는 자라는 것인데 오늘 본문에 의하면 성도들이 목회하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성도들이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런 성경적 의식전환과 역할의 제자리 찾기가 이루어질 때 건강한 교회의 팀 사역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은사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어떤 교회는 조직이 이끌어 가는 교회가 있고, 전통이 이끌어 가는 교회도 있고, 헌법이 이끌어 가는 교회도 있고, 위원회가 이끌어 가는 교회, 목사가 이끌어 가는 교회, 장로가 이끌어 가는 교회도 있지만 건강한 교회는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목적을 잊으면 공동체는 방황할 수밖에 없고 비본질적인 것이 교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섬김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우리의 봉사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숙한 인격을 닮아 가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이 성숙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가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인 것입니다.

교회는 조직 이상의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섬겨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봉사의 초점은 일 자체가 아닌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을 세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잘못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 중심적인 사람들이 특히 유의할 것이 이것입니다. 일을 성취하더라도 그 일의 과정에서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을 상처받게 하고 좌절시켰다면 우리는 잘못 섬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섬길 것은 일이 아닌 사람을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로 이웃을 어떻게 유익 되게 할 것인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섬기는 이들이 주님 더 사랑하고 주님을 더 닮아 가는 사람이 되도록 섬겨야 합니다.

생명은 정지상태가 없다

현대 심리학 용어 중에‘고착상태’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과거의 종래의 유치한 습관, 혹은 부정적인 습관을 버리지 않고 계속 유지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고 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착상태에 빠진 사람은 무조건 변화를 싫어하고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변화되지 않은 낡은 것에 매여서 거기서 안정을 누리려고 하지만 이것은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정지상태란 없는 겁니다. 계속 변화하고 있는 속에 나만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안변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진정 그것은 내가 지금 퇴보라고 하는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차가 속도를 내서 여러 대의 차가 물밀 듯이 밀려가는데 거기 한 길 가운데 서있어 보면 차들이 무지하게 빨리 달립니다. 그럴 때에 나는 서있다가는 것을 상대적으로 비교해보면 사실은 내가 지금 뒤로 물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의 속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계속 변화하는 것과 속도를 맞추지 아니하면 그 순간 나는 지금 뒤로 물러서고 있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리석게 내가 고집을 부리고 있으면 정지 상태가 유지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지금 뒤로 물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차를 몰고 갈 때, 저 빨리 가는 차하고 내가 속도를 맞추면, 다시 말해서 변화되는 사회에 있어서 생각의 변화의 속도를 맞추면 정지상태가 이루어지고 거기에 안정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적으로 사는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변화를 즐깁니다. 변화를 타고 넘으면서 거기서 창조적인 것을 생각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세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고착상태에 빠져서 몸부림을 치다가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고 한다면 심장이 터져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잘못된 게 아니고 우리가 잘못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리석은 고착상태라고 하는 병에 빠져서 스스로 퇴보하고 거꾸로 변화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은 영적 고착상태가 더 큰 문제입니다. 벌써 영적 주도권을 육체의 욕망에 빼앗긴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바울의 논조대로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마치겠느냐. 처음에는 순수하고 아주 구원받은 은총에 감격하는 신앙으로 출발했는데 신앙생활해가면서 자기 나름으로 자기가 율법이 되어서 어느 사이에 율법주의자가 돼버렸는데 그것을 자기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생생한 생명력 넘치는 영적 상태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이 또한 비참한 것입니다.

TIME지에 실린 이야기인데, 3천 년 전 미라를 해부했더니 그 미라의 손에 밀알 몇 알이 있었는데 신기하게 생각해서 그 밀알을 소중하게 땅에다 심어보았더니 싹이 나더랍니다. 여기 중요한 진리가 있는데 밀알이 죽은 사람의 손에 들려 있으니까 3천 년이 가도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땅 속에 들어가서 썩어서 죽어야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혁을 원합니다. 새로움을 원하고 새로운 변화를 요구합니다. 옛것의 죽음, 옛 가치관의 매장, 완전히 죽어야 사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변화란 바로 이 죽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날 거기에서 싹이 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한 알 그대로 있는데 그 얼마나 기쁜 말씀입니까?

목회자와 성도, 그리고 교회와의 관계

목회자와 성도, 그리고 교회와의 관계를 운동경기에 출전한 하나의 팀(team)에 비유해 봅니다. 운동 경기에 출전한 어느 한 팀에서 감독과 선수들의 위치와 역할은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각각 다른 위치와 역할을 맡은 그들이 자기가 맡은 일을 제대로 감당할 때 그 팀은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영암교회라는 한 팀에 소속된 사람들입니다. 감독이 제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혼자서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목회자가 아무리 능력이 있고 탁월한 실력이 있어도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아무리 설교를 잘 해도 혼자서 교회를 부흥시킬 수는 없는 것이고, 선수 개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 해도 감독이 없는 팀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선수들이 서로 공을 세우겠다고 다툰다면 승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인들 개개인의 면면이 뛰어나다 해도 목회자와 성도들, 그리고 성도들 상호간에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목회자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목회자 혼자 뛰는 교회가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함께 뛰는 교회가 될 때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감독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감독이 혼자 경기장에 나갈 수는 없으며, 필드에 나간 선수들이 아무리 훌륭한 실력을 갖추었다 해도 감독과 싸인이 맞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으며, 필드에 나간 선수들 간에 불협화음이 있어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오직 감독과 선수들이 한 마음이 되어 훈련에 임하고 팀을 갖추고 경기장에 나갈 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교회가 나아갈 방향이 있습니다. 목회자와 성도가 역할을 분담해야 됩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 가르침을 따라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몸 된 교회를 자라게 하고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건강한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교회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실 것입니다. 풍성한 축복과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건강한 교회가 아름답다

릭 워렌은 "21세기의 교회의 중심 주제는 성장이 아니라 건강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교회성장 보다는 교회의 건강을 강조해야 합니다. 교회성장이란 말은 보다 깊은 영적 성숙에 대한 비전을 포함하며, 또한 자신의 교회를 다른 교회와 비교해서는 안 되고. 성장을 위한 성장보다는 회심과 제자화에 집중해야 합니다.

큰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작은 것은 슬픈 일이 될 수 있지만 작은 교회는 열등하고 큰 교회는 우월하다는 식의 세속적인 생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크건 작건 자신의 교회에 은혜를 내리시고 그 나름의 독특한 특성들을 세워나가기를 원하십니다. 행복한 가정, 남편과 아내를 만나는 것 이상인 곳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큰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요, 축복하시는 곳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이 교회를 향해 꿈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을 끄는 아름다운 비전이 있는 교회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세워지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는 성령 충만한 교회요, 시대를 향해 소명을 다하는 교회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교회입니다. 또한 좋은 교회를 이루려면 우리는 반드시 훈련받고 성장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자라지 않는 자녀를 보는 부모의 고통은 큽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도 머리만 크고 자라지 않는다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좋은 교회가 되려면 지도자로부터 어린 아이들까지 진리의 지식인 말씀을 읽고 듣고 적용하고 지키며 자라가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소그룹, 다락방, 교회의 각종 훈련들을 통해 자라가기를 멈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이 원하시는 수준으로 자라고 성장해가야 합니다.

또한 교회의 수준은 건물이나 모이는 수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한 서비스의 질에 달려있습니다. 정말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 교회다운 교회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만족하시고 기뻐하실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평안을 누리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인들 서로가 섬김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칭찬하고 높여주고, 겸손하게 자기 부족함을 인정하고, 양보하고 이해하여 진정한 마음으로 서로 섬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완성된 곳이 아니라 지어져 가는 곳입니다. 어느 교회도 완성된 곳은 없고 공사 중인 교회입니다. 동시에 공사 중이라는 말은 지어져 가기 때문에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변화가 있고 계속 성장하고 발전하며 살아 움직이는 것이 교회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완벽한 교회를 원하십니까? 이상적인 교회를 원하십니까? 사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교회를 판단하는 경향이 짙은데 그 이유는 교회는 가장 이상적이고 가장 완벽한 곳이어야 한다는 확고부동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을 잘 보십시오. 모두가 불완전하고, 미숙하고,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문제 덩어리이고, 구원받기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나쁜 습관들을 계속 가지고 있어서 주위를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판단하기보다는 서로가 연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말조심하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기 주고 칭찬하고 자랑하는 믿음의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돌이켜 보면 모두 감사한 것밖에 없지 않습니까?

지금까지의 삶을 감사하는 것으로 그치기보다는 이후의 삶이 더 감사할 조건이 넘치도록 생활을 활성화 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건강하고 진정함을 일구어 나가는 교회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성도의 수가 많고 적음을 떠나 교회 건물의 크고 작음을 떠나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많은 교회가 바로 건강한 교회일 것입니다.

우리 영암교회는 오늘 창립51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교회모습을 감사의 고백으로 영광 돌리면서 앞으로의 교회가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오늘 공동의회를 통해 새로운 항존직분자들을 택하게 될 때,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을 택하고 건강한 교회를 이루어 아름다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며 아름답게 교회를 이루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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