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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행복을 선택하면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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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행복을 선택하면 행복해집니다. 데살로니가전서051618.  427,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어떤 한 노인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노래한 시입니다. 잠간 읽어 드리고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마음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다른 사람들이 내게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시인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돈 많이 벌지 못했다고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혹은 많이 못 배워서 혹은 높은 지위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더 사랑하지 못했고, 더 행복하게 살지 못했음을 후회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시인의 고백만은 아닐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들도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주로 무엇을 후회합니까?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 주신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들을 더 감사함으로 최선 다하지 못했던 것들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좀 전의 시인처럼 더 즐겁게 더 행복하게 살지 못했던 것들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행복은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을 놓치면 후회하기 마련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행복을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행복이 형통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07:30을 보시면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소원하고 바라는 곳으로 인도함을 받는 과정 중에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평하기 보다는 감사하고, 낙심하기 보다는 기뻐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축복과 형통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요즘 일반 사회에서도 fun 경영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그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의무감에서 억지로 일하는 것보다는 서로 세워주고 칭찬하면서 재미있게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능률이 오른다는 것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제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억지로 공부하는 것보다는 행복하게 공부하는 것이 훨씬 더 능률이 오를 것입니다.
  이처럼 행복은 잃게 되면 후회할 소중한 것이며, 또한 형통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우리가 더 행복을 누려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즉 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은 자녀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하게 사는 것 자체가 커다란 효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 앞에서 근심하는 것이 불효이듯이 우리들이 불행하게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적극적으로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0을 보셔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10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영생을 주시고 더 풍성히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영생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영생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죽어서는 천국에 가는 것이고, 살아서는 천국을 누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천국이라고 하면 꼭 죽어서 가는 천국만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고 죽으면 천국 갑니다. 하지만 영생이 꼭 죽음 이후의 삶에만 연관된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것, 그것이 영생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님은 그 참된 행복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영생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배우고, 이 땅에서도 늘 행복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1. 믿음의 안경을 쓰고 믿음으로 행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영생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려면 믿음으로 행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즉 기뻐하긴 기뻐하는데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긴 감사하는데 범사에 즉 모든 일과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기쁨과 감사는 우리들이 처한 환경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하라는 것입니다. 즉 일이 잘 풀려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며, 또한 반대로 일이 잘 안 풀려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우리들이 어떠한 상황이나 조건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 살아갈 때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하박국 선지자일 것입니다. 하박국 3:17-18을 보시면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고 했습니다. 비록 상황이 좋지 않아도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환경이 어려워도 하나님 때문에 즐거워하며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시는 행복, 믿음으로 하는 행복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믿음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행복하려면 먼저 믿음의 안경을 써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두 가지 다른 안경 중에서 하나를 쓰고 살아갑니다. 즉 상황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두 가지 안경이 있는데 하나는 <현실의 안경>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의 안경>입니다.
  민수기 13, 14장을 보시면 이 두 개의 안경이 명백하게 구별되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가네스 바네아에서 약속의 땅을 정탐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현실의 안경>을 쓰고 가나안 땅을 정탐했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정탐보고를 했습니다. 즉 그 땅은 정복하기 힘든 땅이고, 거인인 그 땅의 거민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메뚜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말한 정탐꾼들과 그들을 따른 출애굽 1세대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들은 현실적으로는 정확하게 맞는 보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현실의 안경>이 아니라 <믿음의 안경>을 쓰고 가나안 땅을 정탐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어려운 현실을 모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정탐 보고를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능히 그 땅을 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들어가라고 명하신 땅이기 때문에 두려워말고 들어갑시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약속을 붙든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대로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안경을 쓰고 살아갑니까? 우리가 현실의 안경을 쓰고 살아가게 되면 똑똑하다는 소리는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믿음의 역사,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가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의 안경이 아니라 믿음의 안경을 쓰고 사람이나 상황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앞으로 세 번 부인할 베드로를 향하여 반석과 같은 믿음의 소유자로 세워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그 예수님의 믿음대로 베드로는 초대교회에 반석과 같은 일군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 늘 믿음의 안경을 써야 합니다. 즉 장점이나 가능성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축복하고 세워주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을 통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우리는 믿음의 안경을 써야 합니다. 즉 어려운 상황만 보지 말고, 그 어렵고 답답한 상황을 통해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떠한 위기가 와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실 하나님을 믿음의 안경을 쓰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들의 믿음대로 되게 하십니다. 믿음의 세계가 항상 그러합니다. 된 대로 혹은 본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대로 보게 되고,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영생을 누리고 행복을 누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나 환경에 지배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복을 누를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이 오기만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천국처럼 완벽한 상황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기 마련인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의 안경을 쓰고 믿음으로 행복하길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 축복하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복하기를 선택하면 그 믿음대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복을 선택하면 행복할 상황들도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믿음을 따라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의 안경>을 쓰고 살아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들이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만 듣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7의 말씀을 보시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의 안경이 흐려질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금 믿음으로 상황과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영생과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두 번째 우리들이 영생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려면 성령 안에서 늘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 17절을 보시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을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계속해서 기도함으로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성령 충만한 상태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계속해서 성령 충만한 상태로 살아가면 어떻게 됩니까? 성령의 열매들이 맺혀지게 됩니다. 또한 그 성령의 열매들이 맺힐 때에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희락 즉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기쁨과 행복이 넘칩니다. 우리가 좀 전의 찬송으로 고백했듯이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영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찬송가 495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송가 495장의 작시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높은 산이나 거친 들 혹은 초가집이나 궁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들이 쉬지 않는 기도 혹은 찬송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면 그 어디든지 하늘나라가 되고 영생과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근본적으로 성령께서 주시는 내적이고 거룩한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즉 피상적이고 감각적인 쾌락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거룩한 기쁨, 영혼 깊숙한 곳에서 샘솟는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 안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려면 불순종하거나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일단 불순종하고 죄를 지으면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이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거룩한 생활 속에서 성령 충만하면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기쁨과 평화가 샘솟게 될 것입니다.

  또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순간순간 모든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기도로 맡기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많은 경우에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염려로 현재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미래를 살지 말고 오늘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즉 마태복음 6:34을 보시면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루하루를 누리고, 현재를 누리며 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계획 없이 살라는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들이 미래에 대해서 막연히 혹은 근거도 없이 근심하지 말고 현재를 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는 과거로 흘려보내시기 바랍니다. 또한 아직 오직 않은 미래는 선하신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는 행복을 누리고, 현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나오는 만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며칠 분량의 만나를 한꺼번에 주신 것이 아니라 하루 분량씩 주셨습니다. 그것도 광야 40년 동안 변함없이 주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일의 은혜는 내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받은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 미래에 대한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매 순간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현재를 누려야 합니다.
  빌립보서 4:6-7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하지 말고 염려를 기도로 바꾸면 하나님의 평강과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3. 감사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 번째 우리가 영생을 누리고 행복하게 살려면 감사하는 마음과 순종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 18절을 보시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먼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다닐 때에 바나나를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바나나가 많이 귀하고, 비쌌습니다. 그래서 소풍 때에도 반에서 한 두 명만 싸오곤 했습니다. 그 때 생각하기를 “저 바나나 먹으면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바나나를 실컷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 때문에 지속적으로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많이 먹으면 배 나오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환경이나 상황 때문에 행복한 것은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환경이나 상황이 바뀌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환경이나 상황이 바뀌면 일시적으로 행복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원하던 대로 바뀌어도 사람의 마음은 또 다른 사람, 더 좋은 환경을 원합니다. 환경이나 상황이 아무리 바뀌어도 감사하고 자족하는 마음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환경이나 상황을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기 이전에 감사하고 자족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하고 자족하는 마음이 회복되지 않고는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 처해도 불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처한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상황이나 사람들에게로 우리들을 인도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매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들이 처한 모든 상황에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주관하심을 믿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특별히 18절의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감사하고 행복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며 감사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생과 행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는 영생과 행복을 누리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행복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복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과 관계를 행복하게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가정생활, 직장생활 더 나아가서 신앙생활을 의무감에서 혹은 불평하면서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행복한 관계를 가꾸며 행복한 마음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영광을 거두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늘 영생과 행복을 누리고 사심으로 하나님의 큰 기쁨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 :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은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줄을 믿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영생과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주님이 만나게 해 주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주님이 허락하신 상황에서 행복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삶의 시간들을 억지와 의무감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 그리고 충성으로 채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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