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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 12: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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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다 하나님의 사랑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이 자리에 함께 계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말에는 능력이 있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옛날 헬라의 어느 상인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바닥에서 세상에서 성공하는 지혜, 사람을 얻고 지위를 얻고 돈을 얻고 출세하는 지혜를 팔겠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싸들고 몰려들었습니다. 성공하는 지혜를 얻겠다는 거죠! 상인은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 들고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성공의 비결은 ‘말조심 하십시오!’ 이겁니다.”
말조심 하라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하고는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말조심하는 것에 성공이 있고 지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성공의 비결은 말에 있다는 것 말입니다.

우리의 사는 삶 속에서 늘 하는 얘기가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냥 빚을 갚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냥 빚을 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단지 말로 말입니다.

오늘 성경에도 '말을 잘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특별히 말에는 능력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말의 능력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말의 능력은 두 가지 입니다.

첫번째는 말에는 사람을 아는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나의 속마음을 아는 능력이 있습니다.
특히 말에는 내 마음을 아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알려고 하지 말고 나를 알려고 하면 내가 어떤 말을 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내가 지금 바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꼬인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유행가 가사 중에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어떻게 아냐?’ 하는데 나를 아는 방법 중의 하나는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34-35을 같이 봅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악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 사람이 악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아십니까?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하십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말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보고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말을 통해서 보여 집니다. 그리고 나의 말은 나의 속사람이고 나의 인격이란 말입니다.
우리 말에도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말을 해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느냐? 에 따라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인격이 어떤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엔 이런 일이 없습니다만은 전에 이런 일이있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의정부까지 흑인 병사 두 사람이 택시를 탔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신호등에 걸려 차가 서 있는데 옆 다른 차선에도 택시가 서 있었습니다. 서로 아는 기사들끼리 이야기를 나눕니다. “손님 몇 명이나 태웠어?” “응, 연탄 두 장.” 흑인을 두고 말할 때 기사들끼리는 그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그 흑인들이 우리말을 모를 거라는 생각에 그런 말을 주고받은 것이지요. 드디어 의정부까지 도착하여 택시에서 내린 흑인병사 두 사람은 요금을 물었습니다. 기사가 미터기를 보니 5만원이 나왔습니다. “5만원입니다.” 그러자 흑인 병사는 700원만 주었습니다. 운전기사는 의아해서 말했습니다. “아니 손님, 5만원이라니까요.” 그때 흑인 병사가 말했습니다. “연탄 한 장 가격이 350원이니까... 연탄 두 장 값 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랬다고 합니다. 말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앞 22절에는 예수님이 시각과 언어 이중 장애자인 사람의 병을 고쳐 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앞 못보는 시각과 말 못하는 언어라는 두 가지 장애를 가진 장애우가 고침을 받아 눈을 뜨고 보고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을 사람들이 보고 깜짝 놀랍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하신 일을 보고 평가하기를 "이런 기적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왕이신 메시야’가 하시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시각과 언어 장애우가 고침을 받은 일을 보고는 이렇게 고치신 예수님..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을 ‘메시야’.. ‘이스라엘의 구원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뭐라고 합니까?
24절에 보면 “ 바리새인들이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쫒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귀신이 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왕 귀신의 힘으로 했다고 합니다. 소위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안다는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남보다 많이 가졌다고 힘께나 쓴 다는 부자들... 소위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다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하신 일을 귀신의 힘을 입어서 한 일이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귀신의 앞잡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독사의 자식들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던 뱀으로 가장한 사탄이 생각나십니까? 바로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독사의 자식은 사탄의 자식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남의 좋은 일을 보고 비난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사탄, 귀신의 자식들입니다. 하다못해 하나님의 일을 하신 예수님을 귀신이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이 독사의 자식입니다.
여러분 부자도 지옥 가는 것 아시지요? 부자이기 때문에, 남보다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운 것 때문에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다는 것 때문에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말조심해야 합니다. 함부로 판단하는 것! 비난하는 것!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독사의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말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말이 나의 인격을 나타내고 있다면 나의 인격은 과연 어떤 모습입니까?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잘'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과 '잘'말하는 사람은 어떻게 다릅니까?
'말'을 잘하는 것은 입의 모양에 의해서 결정이 됩니다.
'잘'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에 의해서 결정이 됩니다.

미국 여성 사업가 오스틴은 여자의 속옷 특히 빅 사이즈... 몸집이 뚱뚱한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속옷을 팔아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속옷 사이즈 표시를 ‘뚱보형’ 사이즈라고 있는 그대로 표시했을 때는 잘 팔리지 않던 것을 ‘퀸즈 사이즈’. ‘여왕이 입는 사이즈’ 라고 이름을 바꾼 후에는 불티가 나듯 잘 팔렸다고 합니다. 당신은 뚱보가 아니라 여왕이라고 불러 주는 것입니다. 같은 것이라도 무엇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상대방이 받는 느낌은 다른 것입니다. 잘 말하는 것이 오스틴을 성공하도록 한 것입니다.

영화 ‘말아톤’ 이라는 영화의 주인공 배형진은 자폐아입니다. 정상적인 활동이 힘든 장애입니다. 그러나 배형진의 어머니는 말을 잘하는 것보다 잘 말해서 놀라운 성취를 맛본 사람입니다.
“형진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 “형진이의 몸은 끝내줘요”
그 어머니는 잘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 결과 배형진 군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말에서 사실이 중요하고 다음은 진실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의 결과입니다.
내 말을 듣고 그 결과가 좋은 결과를 낳도록 하는 말이어야 합니다.
가령, 못생긴 사람에게 “넌 왜 그렇게 못생겼니?”라고 한다면 그 말은 사실이고 진실이지만 그 진실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이 희망을 얻고 목표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말의 결과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말에는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이 있습니다.
살리는 말은 들었을 때 힘을 얻고 용기를 얻고 위로를 얻어 생산적으로 되게 하는 말입니다. 죽이는 말은 들었을 때 의욕이 상실되어 그 결과 비생산적이게 되는 말입니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잘' 말하지 못하면 소용없고 아무리 '말'을 더듬거리며 못하는 사람도 '잘' 말하면 말 잘하는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말 잘하기로 치면 사기꾼이나, 아나운서들이 최고일 것입니다. 잘 말하는 사람은 목사나, 신부, 성인들입니다. 그러나 목사라도 말만 잘하면 말쟁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니 '말'만 잘하려고 하지 말고 '잘' 말하기를 애써야 합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말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는 말에는 역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36-37을 같이 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말이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심판을 받고 의롭다 하는 것과 정죄함입니다. 말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말에는 역사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말 한마디에 사람들의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의 저자인 에모토 마사루는 물과 소리의 영향력에 대해서 연구를 한 사람인데... 물이 좋은 말,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들으면 좋은 결정인 육각수의 결정을 가지지만 나쁜 말, 시끄러운 헤비메탈과 같은 음악을 들으면 물의 결정이 깨어져 흩어진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였습니다.
그 책을 보게 되면 문제는 우리 몸의 70-80%가 물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물로 보지 말라'고 했는데 알고 보면 사람은 물입니다. 사람이 좋은 말을 들으면 우리 몸의 물성분이 육각수로 바뀌어 우리 몸을 유익하게 만들지만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 말을 들으면 물의 형체가 깨어져서 몸에 안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암세포를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에는 역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에 사람들의 삶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 한마디에 세상의 모든 것들, 해, 달, 별은 물론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가 생겼습니다. 저 나무나 동물, 바다의 물고기도 하나님이 말씀 한마디로 만드셨습니다. “해가 있으라!" 하면 해가 생긴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어서 선포한 대로 됐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실 때 그의 이름은 바요나 시몬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든든한 반석이라는 뜻이고 바요나 시몬은 겁쟁이 비둘기 시몬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 결과 겁쟁이 시몬이 반석 같은 베드로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말의 권세와 능력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말의 권세를 믿고 말하면 그 말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11:23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 말하는 것이 그대로 되리라!”

우리가 가진 말의 권세와 능력이란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 경부고속도로를 누가 건설했습니까?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노동을 한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 아닙니다. 이 말은 대통령의 말에 권세가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움직여서 고속도로를 건설하도록 했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권세를 가지고 말을 할 때 내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우리의 말이 심판을 받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독교 가정사역기관의 조사에서 자녀가 부모로부터 가장 상처받는 말은 “네가 제대로 하는 게 뭐가 있어”라는 말이 비난의 말이었다고 합니다.
또 자녀에게 부모가 가장 상처받는 말은 “엄마 아빠 때문에 창피해 죽겠어요.”라는 말이었습니다. 부모 자식만큼 사랑하는 관계가 어디있습니까? 그러나 부모나 자녀 양쪽 다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말에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상처를 받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린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들입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 이 자리에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라도 우리가 서로 비난을 하고 비 판을 하면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할 때 가장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힘이 되는 말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했더니 부모가 자녀에게 “이 세상에서 네가 가장 소중하단다." "하나님이 귀한 자식을 주어서 감사하다,” 소중함을 말할 때에 자녀들의 마음에 기쁨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녀는 부모에게 “누구보다 우리 부모님을 존경해요." "부모님을 사랑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기쁘고 즐겁다고 그럽니다.

여러분 오늘 집에 돌아가셔서 인정하고 칭찬하는 말을 가족들에게 해 보세요.
“얘야, 나는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단다!” “부모님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얼마나 행복해 할까요?
예배가 끝나고도 성도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 한마디를 하면서 다 천국을 이루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천국 살다가 천국에 가야지요. 우리가 의로운 사람으로 살면 인정과 격려와 칭찬을 받는다는 겁니다.


때로는 침묵이 힘을 주기도 합니다. 말에는 관계를 이어주는 것이 있고 관계를 단절시키는 말이 있다.

가령 늦게 귀가한 남편에게
“매일 12시에 집에 들어오면 여기가 하숙집이지 가정이예요?”
라고 했다면 비난과 비판의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말을 듣고 상대방이 바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감정이 나빠지면 오히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 집은 하숙이다!”
그러고 안들어 오는 수도 있습니다. 남을 비난, 비판은 부정적인 칭찬, 비웃음, 욕설, 분석, 추궁, 비교 하는 언어 등은 관계를 단절시키고 악화시키는 말입니다. 물론 지시, 강요, 경고, 위협, 훈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난, 비판, 부정적인 칭찬, 비웃음, 욕설, 분석, 추궁, 비교 하는 언어, 지시, 강요, 경고, 위협, 훈계하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스페인의 격언 중에 "성 빈첸시오의 물을 마셔라."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 아세요?
하루는 어떤 부인이 빈첸시오 페러 수도사를 찾아왔습니다. 이 부인은 매사에 신경질적인 남편 때문에 수 없다며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가정이 평화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빈첸시오 수도사는 는 부인을 자신의 수도원으로 데리고 가서 수도원 우물의 물을 퍼주면서 하는 말이
“이 물을 가지고 집으로 가 남편이 돌아오거든 부인은 그 물을 즉시 한 모금 마시십시오. 단 삼켜서는 안 됩니다. 물을 입에 물고 있으면 반드시 놀라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

부인은 빈첸시오 수도사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남편은 늘 그랬던 것처럼 저녁에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이유도 묻지 않고 악담과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부인은 빈첸시오 수도사가 일러준 대로 즉시 물 한 모금을 입에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물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이내 조용해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부인이 악다구니로 덤볐을 터이고, 그래서 늘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부인이 아무 대꾸를 하지 않자 제풀에 조용해지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빈첸시오 수도사가 일러준 그 비밀의 물을 여러 번 사용해 보았고 때마다 놀라운 효과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화를 내도 아무 대꾸를 하지 않는 부인 앞에서 남편은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점차 부인의 말에 상냥스럽게 대답을 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부인의 인내와 고상함을 칭찬하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부인은 남편이 달라진 것에 매우 만족을 하여 서둘러 빈첸시오 수도사를 찾아가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성 빈첸시오가 웃으며 설명을 하였습니다.
"기적을 일으킨 것은 수도원의 물이 아니었습니다. 전에는 꼬박꼬박하는 당신의 말대답이 남편을 화나게 했지만, 이제는 당신의 침묵이 남편을 부드럽게 만든 것입니다."

"성빈첸시오의 물을 마셔라."라는 스페인의 격언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엎질러진 물'보다 더 거둬들이기 힘든 것은 '툭 뱉은 말'일 것입니다. 생각 없이 툭 뱉은 말 때문에 싸움이 생기고 갈등이 생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를 입고 갈라설 때가 있습니다. 특히 상대방의 말을 듣고 감정이 상해 되받아 치는 말들은 극단적인 말이기가 쉽습니다.

남의 나라 속담이기는 하지만 마음속에 새겨두고 마음으로라도 입안에 물을 머금을 수 있다면, 우리는 소중한 관계를 훨씬 잘 지켜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잠11:12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혜가 없는 사람은 이웃을 비웃지만 명철한 사람은 침묵을 지킨다”고 하셨습니다. 침묵은 명철한 사람의 잘 말하는 비결입니다.

말에는 역사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말 잘하는 두 번째 비결은 침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벧전 4:11에 “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했습니다. 여러분 말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은 살리우는 말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들을 살리셨습니다. ‘땅이 혼돈하며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이러한 상태를 창조주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혼돈은 질서로, 흑암은 밝음으로 공허는 내용물이 꽉 찬 풍성한 삶으로 바꿔졌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셨고 망가진 것들을 회복시키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아 죄인이 의인이 되고 사탄의 종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지옥에 있는 영혼이 하늘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뀐 것이지요.

성령님은 보혜사이십니다. 헬라어로 ‘파라 클레토스’입니다. 파라클레토스는 변호사라는 말입니다. 죄인의 입장에 서서 이 사람이 죄인임을, 이 사람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고 돕기 위한 변호사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변호하시고 격려하시고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살리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탄처럼 분열시키고 죽이려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을 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 같이 하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처럼 살리우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히4:12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

또 딤후3:15을 보면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성경의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고 승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왜? 요1:1에 “말씀이 곧 하나님” 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주는 것은 하나님을 드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농부였던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큰 용사 기드온이 되어 300명으로 메뚜기 떼와 같은 미디안 군대를 쳐부쉈습니다. 목동 다윗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어 위대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음을 깨달으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복주시기를 원한다"
말을 하려거든, 말 한마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 같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창조주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령님도, 다 살리는 일을 하셨다. 그 씨를 받은 우리도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살리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 살리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반면에 마귀는 참소하는 자입니다.
계시록 12장 10절에 보게 되면 참소하는자 "디아콜로스"라고 했습니다. 참소라는 말은 남을 헐뜯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마귀는 헐뜯는 명수입니다. 그러니 예수님도 마귀에게 참소를 당하신 것 아닙니까?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역사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만일 다른 사람의 허물을 끄집어내어서 즐긴다면 결과적으로 마귀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죽이는 말, 저주와 폄하의 말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갈라 놓습니다.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하지 않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내 말을 듣고 저 사람이 살리워 지기를 바라시기 바랍니다. 의롭다함을 받는 사람은 인정과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은 침묵합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 받고 힘을 받습니다.
우리가 주일날 설교말씀을 집에 가서 테잎으로 들으면 얼마나 힘이 됩니까? 전 제가 한 설교를 들으면 너무 은혜가 돼서 저도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이게 내가 하는 설교 맞나?'할 정도로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저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을 깜짝깜짝 놀랩니다. 설교 테잎 자주 들으시고 은혜를 받으셨으면 남에게도 권해 주세요. 그것이 복을 빌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구역 교재로 쓰고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성실하게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겠습니까? 이거라도 한번쯤 읽어 보면 얼마나 은혜가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참으로 말에는 능력이 있는데 그 말을 통해서 나릉 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말을 잘 하고, 잘 말을 해서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들이야 말로 믿는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좆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말에는 능력이 있는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잘 말을 해서 이 한주간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 속에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창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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