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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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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감사절을 맞은 오천가족들의 삶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기쁨이 차고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사무엘 존슨은 "감사는 위대한 교양의 결실이다 야비한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2가지 별명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은 받는 자>, 또 하나는 <감사하는 자>라는 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골로새서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원리를 교훈하고 계십니다.

■ 평강으로부터 오는 감사
본문15절 말씀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케 하라."했습니다. 마음은 인격의 좌표요 그 삶의 실제이며 생명의 근원(잠4;23)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먹기 여하에 따라 그의 삶이 감사 샘이 될 수도 있고 불평의 시궁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위한 1단계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에 대한 느낌입니다.
데모크리토스는 "행복과 불행은 모두 마음에 달려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방 문을 걸어 잠그고 불안에 떨며 있었던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주신 첫마디 말은,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평강은 영어 성경에는 Peace 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Peace be with you!"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주장한다’라는 단어인 헬라어 ‘브라뷰에토’는 <조절, 관리, 지휘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평강이, 평화가, Peace 가 우리의 삶을 운전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는 감사하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평화가 깨진 가정엔 감사가 있을리 없습니다. 평화가 깨진 인간관계에서는 서로 감사하는 말이 오갈 리가 없습니다. 오직 으르렁 거리며 서로를 위협하는 독설과 욕설이 오갈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것들을 감사할 때에 거기서부터 평강이 시작됩니다.

어떤 부부가 잠을 자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에 자다가 말고 남편이 고함을 지르면서 벌떡 일어나더니 땀을 뻘뻘 흘리는게 아닙니까? 부인이 놀라서 남편에게 물었다.
부인 : 당신 왜 그래요?
남편 : 나 지금 끔찍한 악몽을 꾸었지 모야.
부인 : 아니 대체 무슨 꿈인데 그렇게 놀랐어요?
남편 : 이효리와 당신이 나를 차지하려고 막 싸우지 모야....
부인 : (부인이 웃으면서....) 호호호~. 당신도... 그건 좋은 꿈이잖아요?
남편: 그렇긴 한데 꿈에서 그만 당신이 이겼단 말이야~~~^^;

내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치 못하는 사람은... 축복의 환경이 악몽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내 마음에 평화가 있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가정에 평화가, 우리 교회에 평화가, 우리 나라에 평화가 넘쳐 흐르게 하옵소서.”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여러 목적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화목제물(the fellowship offerings)>로 오신 것입니다.
죄로 깨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해시키시기 위해, 갈라진 서로간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요 13:34-35) 『[34]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나의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

평강이 충만할 때에 우리는 진정한 감사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말씀과 찬양이 빚어내는 명품, 감사.
마음으로 평강을 느끼며 감사하게 된다면 그 열매는 입술로 나타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마음의 평화는 입술로, 말로 표현됩니다. 언어는 인격의 집이요, 사상의 옷이기도 합니다. 말은 너무 쉽게 내 뱉을 수 있고, 또 말 많이 한다고 해서 세금 더 내는 것 없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기도 하고, 또 말의 보배로운 기능을 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열변을 토하면서 설교 하시고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어떻게 떡으로만 살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 때에 듣고 계시던 할머니가 손을 번쩍 드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맞시유, 사람이 밥두 같이 먹어야 사는구만유~~” *^^*

성경은 말을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 말에 곡조를 붙이니 찬양이 됩니다.
찬양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요. 지난 주 목요일, 소리엘이 찬양집회에 와서 노래했습니다. 노래 몇곡 부르고 간다고 하니 사람들이 앵콜을 외치는 겁니다. 아무리 설교 은혜롭게 잘 해도 앵콜하는 성도들 한명도 없더라고요.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라는 노래를 음반으로도, 또 교회에서도 숱하게 들었는데 그걸 들으면서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고, 또 불러 달라고 앵콜하는 겁니다. 이것이 찬양의 힘입니다. 반복해서 고백할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입술의 열매가 될까요~....

우리 감사의 찬송 같이 불러 볼까요?
김종호 청년께서 멋진 연주를 해 주시고 우리가 같이 찬양했으면 좋겠습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론 봄철에 감사 외론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 길가에 장미 꽃 감사 장미 꽃 가시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 내게 건강 주심 감사 또한 연약함 감사 햇빛을 주심도 감사 구름 또한 감사해
땀흘리는 수고도 감사 저녁의 안식 감사 부요도 가난도 감사 모든 것 다 감사해

자, 이 대목에서 한번 퀴즈를 내 보겠습니다. 제가 일부러 이 찬양을 준비하면서 이 찬양을 부르면서 감사를 몇 번 하나 세어 봤습니다. 몇 번 나올까요? ==> 28번.

저희 어머님이 쓰시는 말 가운데 입에 붙은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만 들으시면, “아유~ 감사하지... 감사해~...”라는 말을 무지 많이 하십니다.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급한 일, 당황한 일을 갑자기 당했을 때에 저도 일부러 습관을 들여서 “주여~”라는 말이 자주 내 입에 붙도록 연습했더니 갑자기 차가 옆에서 끼어 들어와서 “우이쒸~”라는 말보다 먼저 “주여~”라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언제 교통사고 나서 하나님이 부르실지도 모르는데 이왕이면 인생의 마지막 말이 욕하고 가는 것 보다는 “주여~” 찾고 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잠 18:20)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열매가 사람의 배를 채워 주고,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의 결과로 만족하게 된다.』

(히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말이 워낙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에 말은 지혜로 잘 싸서 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되면 지혜로워집니다. 지혜롭게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는 일에 말이 쓰여져야 합니다.

(엡 5:4) 『더러운 말이나 어리석은 말, 또는 상스러운 농담은 여러분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감사에 찬 말을 하십시오.』

마음에 감사함으로 찬양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감사의 꽃이 피는 화원, 삶의 자리.
17절 말씀을 다시 볼까요?

(골 3:17) 『그리고 말을 하든지 일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

모든 것! 우리의 삶의 매 순간 순간을 말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의 삶 자체가 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우화가 있죠?
호랑이가 깊은 웅덩이에 빠져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불쌍히 여겨 살려 줬답니다. 웅덩이에서 나온 호랑이가 입맛을 쩍쩍 다시더니 배고파 견딜 수 없노 라며 구해 준 사람을 잡아먹겠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사람은 너를 살려 준 나를 잡아먹겠다니 이럴 수가 있느냐며 설득했지만 호랑이는 그건 지나간 일이고 지금은 너를 잡아먹어야 되겠다며 덤볐습니다.
다급해진 사람은 그러면 물어보고 결정 하자며 나무를 찾아갔습니다. 전후 사정을 다 듣고 난 나무는 잡아먹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들이란 걸핏하면 나무를 찍고 자르고 불어 던지곤 했는데 나라고 사람 편 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소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한참 생각하더니 잡아먹는 게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밭 갈고 짐 나르고 험한 일 시키다가 걸핏하면 도살장으로 끌고 가 때려죽이고 안창살 따로 떼고 안심살 따로 떼고, 갈비는 토막 내고…, 껍질 벗겨서 북만들어서 매일 밤마다 두들겨 대니 사람이 고약하다는 겁니다.
마침 그 때 토끼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토끼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토끼가 말만 들어선 잘 모르겠다며 당시 상황을 재연해 보자고, 현장검증을 해 보자고 했습니다. 호랑이는 원위치인 웅덩이로 들어가고 사람은 웅덩이 가에서 있고…, 원위치로 돌아가자 토끼는 이대로가 좋겠다며 가버렸고 사람 역시 웅덩이에 침을 뱉고 가던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 끝에 써 있는 말은 이런 말입니다.
"은혜를 배신하는 자는 호랑이 꼴이 되느니라."

우찌무라 간조라고 하는 일본의 유명한 목사님이자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사람이 받는 저주는 병들었거나 가난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 가지 저주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 저주요,
둘째로 성경을 보고도,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들으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 저주요,
셋째로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 저주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얼마나 감사에 대한 말씀, 권면을 많이 듣습니까? 하지만 그 말씀이 내것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아이, 오늘 교회 갔더니 하루 종일 감사하라는 말만 듣고 왔잖아.. 에이... 짜증나~” 이렇게 말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1988년 미국대통령 선거가 진행될 때에 중요한 이슈는 사형제도 폐지였습니다. 민주당 후보 듀카키스는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듀카키스가 CNN 토크쇼에 초청받아 인터뷰를 하는데 앵커가 묻습니다.
“사형제도 폐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된다고 하셨죠? 그런데 만약 당신 부인이 괴한에게 끌려가서 성폭행 당한 후 살해당했다고 합시다. 범인이 잡혔는데 그 때도 당신은 여전히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고서는 듀카키스는 머뭇거리며 말을 더듬었습니다. 결국 그 토크쇼 때문에 그가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요?
남의 이야기는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할 때는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감사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설교하기는 쉽습니다. 항상 감사하라고 외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나의 말씀이 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저도 이 설교를 하면서 감사가 더 생활화 되어야 겠다는 결심을 해 봅니다.

젊은 나이에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입에서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오랜 지병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아무리 기도하고 부르짖어도 고쳐주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병은 더 깊어가는 자신을 보면서 과연 입에서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평생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야 할 어린 장애아 자녀를 갖고 씨름하는 그 부모의 입에서 정말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이력서를 수십통 써 가지고 다니면서 취직 해보려고 하지만 회사에서 면접 한번 해보지 못하는 젊은이의 입에서 과연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까?

저나 여러분이나 이런 입장에서 생각해야 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비현실적이고 이상론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그냥 적당히 보고 넘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러면 안 된다고 합니다. 비현실적이라고 변명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다른 표시가 감사입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에 가서 모진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하며 거듭되는 흉년 속에서 금식기도를 선포했습니다. 그래도 안 되니까, 더 금식하자, 죽을 각오 하고 기도하자. 이에 한 젊은이가 손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금식기도 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자.
금식기도하면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섭섭한 이야기 하는 것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니까, 감사하십시다. 우리가 유럽에서 올 때에 예수 잘 믿기 위해 왔는데, 이곳에는 믿음의 자유가 있습니다. 거기서는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았지만, 여기에는 정치적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언제 죽어도 우리는 하늘나라 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하십시다. 금식기도하면서 이들의 얼굴이 무너져 내렸는데, 감사를 하면서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우리를 그 땅에서 구출해 내신 하나님 앞으로도 우리를 잘 살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믿음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유태인 어머니가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지만 자식들은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어떻게 훌륭하게 키웠냐는 질문에 자신은 세마디 밖에 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첫째,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큰 일에든 작은 일에든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둘째, 원망·불평하는 사람과 놀지 말아라. 원망불평도 들으면 자꾸 옮기게 되고 끼리끼리 다니면 전염이 된다.
셋째, 감사하는 사람과 놀아라. 감사도 전염이 된다.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이 유치부 어린이들을 데리고 열심히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천당에 가려면.. 만약 내가 집과 자동차를 팔아서 그 돈을 몽땅 교회에 준다면 천국에 가게 될까요?" "아뇨!" 라고 아이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만약 내가 매일같이 교회 청소를 한다면 천국에 가게 될까요?"
아이들의 대답은 역시 "노오!"였다.
"그럼 내가 동물들에게 잘해주면 천국에 가게 되는 걸까요?" "아뇨!"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갈 수 있는 거죠?"
이제 대답을 기다리는 선생님을 향해 다섯 살 된 녀석이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선생님, 천국 갈려면요~ 죽어야 돼요!"
“....”

맞습니다. 가정이 천국이 되려면, 이 동네가 천국이 되려면, 이 나라가 천국이 되려면 죽어야 됩니다. 뭐가 죽어야 할까요?
불평·불만·감사치 못하는 마음이 죽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오천가족 여러분,
오늘 새벽에 들으신 말씀처럼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옛 자아, 즉 아브람이 죽고 새 사람, 아브라함으로 다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옆사람과 인사하십니다.
“불평은 죽고, 감사가 사시기 바랍니다.”
옆 사람에게 한가지씩이라도 감사할 제목을 담아서 감사 인사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감사 하더라고요.
“저보다 조금 못생기셔서 내가 잘 나 보이는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런 감사 하시지 말고요.... 자, 한번 감사 인사를 나눠 볼까요?

우리 다함께 감사 찬양 한곡 하시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주께 감사드리세 날 위해 이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나의 맘과 뜻 다해 주를 사랑합니다.
날 위해 이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내가 약할 때 강함 주고 가난할 때 우리를 부요케 하신 나의 주 감사--! 감사--!
(정연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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