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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대인들과 우리들 (요 5: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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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을 때 한국 예수전도단을 만든 오대원 선교사는 세 가지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스승의 글처럼, 또 하나는 전쟁터의 전략 명령서처럼, 그리고 가장 분명할 것으로는 애인이 보내준 연애 편지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애인이 편지 속에 메시지를 담을 때 그 편지를 내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읽고 생각하고 또 읽고 생각하지 아니한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처럼 성경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기초는 읽기이지만 성경을 듣고 배우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일을 통해 더욱 하나님이 원하는 거룩한 사람이 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연애 편지일 때 신나게 배우고 읽을 것이다.

오늘 우리들이 성경을 읽고 듣고 배우고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성경을 배우고 공부하므로 예수를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에게로 와야 하고 그 예수에게 허리를 굽히고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고백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보내신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거룩해진다. 죄를 이기는 것은 나의 결심이 아니고 사랑의 능력이다. 만약에 성경 공부가 그렇게 되지 아니하면 성경 공부는 지적인 축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교회에서 신앙 고백은 분명하고 참된 크리스챤으로 성장하기 위해 성경 공부를 하지만 신앙이 생성되지 못하고 지식만 쌓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경을 통독하고 성경 시리즈를 다 공부하고 성경 구절을 모두 암송하였어도 예수께 나오지 않고 예수를 모르는 영혼이라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들과 똑같은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성경에 대한 태도는 무엇인가?

1. 지적인 능력은 옳았다.
요5:39下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얼마나 올바른 사고방식인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다는 생각, 그것은 성경을 신앙의 궁극적 문제와 관심을 해결하는 경전으로 알고 있다는 말이다. 영생은 진짜 생명을 가졌다는 뜻이다. 질적인 생명, 가치있는 생명을 뜻한다. 영생을 얻는 줄 아는 유대인들, 그들은 얼마나 옳은 것인가?

2.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옳았다.
요5:39中 "성경을 상고하거니와...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하였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소중히 여겼기에 그 성경을 열심히 살피며 연구하였던 것이다. 상고란 말은 자세히, 부지런히 살핀다는 뜻이다. 성경을 먼지 묻는 책으로 내던져 놓지 않고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유대인들은 세 가지 파의 종교인으로 나뉜다.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 엣세네인들이 그것이다. 이 중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말씀 그대로 지키려고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이었다. 엣세네인들은 아예 광야에서 살았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아예 베껴서 사본으로 만들며 살았다. 그것이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쿰란 사본인데 성경을 얼마나 철저히 상고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참 올바른 일이다. 우리가 성경을 전수받은 것도 유대인의 이런 자세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인가? 생각도 바르고 연구하는 열심도 올바른데 그 결과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즉, 성경이 증거하는 사람은 예수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성경의 초점이다. 그러나 그 성경을 공부하면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알지 못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성경이 생명의 책임을 알면서도 초점을 다른 곳에 두고 성경을 읽은 것이다. 그것이 잘못된 태도이다.

첫째,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심을 믿지 아니하고 성경을 공부하였다. (요5:38)

요5: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라."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성경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상고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를 보내셨음을 믿지 아니하면 말씀이 사람의 내면 속에 거하지 않는다. 백 번, 천 번 말씀을 읽었어도 신학 박사가 되어 성경을 지식적으로 다 꿰뚫었어도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성경 공부는 헛된 노력이다. 성경을 공부했으되 말씀이 거하지 않는 이론과 관념의 공부인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분이다. 이것을 믿고 성경을 읽어야 하나님의 마음이 보인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보이고 넘치는 사람이 보인다. 우리 중에도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성경을 교양인이 되려고 읽고 묵상하기에 머리만 키우고 아는 척하는 교만한 신앙인, 잔소리만 하는 신앙인이 너무도 많다. 하나님을 먼저 믿으라. 사랑이 보인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함 없이 성경을 공부하였다. (요5:42)

요5: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성경을 읽으면서 공부하면서 예수께로 나오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없이 성경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낸 연애 편지가 성경이라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어야 그 연애 편지인 성경이 제대로 읽혀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나를 사랑하여 예수를 보내고 그 예수를 보낸 것을 알려주는 성경을 믿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읽고 배우면서도 율법의 사람, 정죄와 심판의 사람이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고사하고 비판하고 무감각한 마음이 된다. 짝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내게 와 닿지를 않는다. 성경을 영생의 책이라고 귀중히 여기고 상고한다 하더라도 나를 사랑하여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없이 성경 공부하는 것은 문자 전달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말씀을 들을 때 참으로 중요한 것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사건과 역사는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과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그 하나님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예수를 보내신 분, 예수를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므로 영접하면 영접하고 성경을 상고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인애가 보인다. 하나님의 슬픔이 보인다. 하나님의 탄식과 분노와 의로움이 보인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보이고 하나님이 무엇을 소원하시며 내게 바라시는지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보이면 죄를 이긴다. 죄의 속임수, 달콤함을 이긴다. 세상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성경 공부에서 스토리를 아는 것은 겉뜻이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속뜻이다. 지식을 쌓고 응답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사랑과의 대면이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요5:43) 성경이 바로 이해되고 눈물이 나고 감격이 샘솟는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성경을 공부하였다. (요5:44)

요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성경을 상고하려면 성경을 공부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자 해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고 성경을 상고하면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임의대로 인용하고 사용한다. 요5:44下의 말씀을 보면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자" 하였다. 사람이 자기 영광만 취하려 하면 성경을 아무리 많이 안다 하더라도 생명이 될 수 없다. 능력이 될 수 없다. 자기 영광만 구하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결국 자기의 이익만 추구하고 자기의 사견만 배 채우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도 없고 그 사랑 때문에 보내신 예수를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영광만 취하는 사람이 아무리 성경을 읽는다 하더라도 어찌 하나님의 뜻을 알겠는가?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예수께로 나아가기 어렵다. 자기 영광을 구하는 이는 성경은 있어도 세상만 사랑하게 되고 성경은 장식품이 된다. 말씀을 인용하되 사사롭게 쓰므로 순종이 없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가르치고 선포할 때 우리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 그 유일하신 영광은 예수이며 예수를 믿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나는 오목천교회에 와서 성경 공부 베델 시리즈를 꾸준히 가르쳤다. 신앙의 변화, 예수를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성경 공부에 있다고 확신하고 가르쳤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께로 나오지 못하는 성경 공부가 되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지 못하는 성경 공부가 된 이유가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성경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판하고 "어떻게"라는 질문만 던지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인 아들을 구하지 않으며 이는 자기 영광을 구하는 자세로 성경 공부하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유대인들과 똑같이 성경 공부하면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시작하는 것이지만 이런 잘못된 태도와 관점 때문에 그리스도 없는 지식, 공부에 맴돌면 안된다.

성경 공부는 무슨 책을 다 마스터 했다, CCC 10단계를 다 배웠다, 내가 성경을 안다, 그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품성이 변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므로 그리스도의 품성을 더 깊이 알고 그분에게까지 자라나는데 있다. 그래서 날마다 거룩해지고 죄를 싸워서 이기고 그리스도를 알고 닮는데 있다.
성경 공부는 신앙의 기초이다. 늘 하나님을 알아가는 생활의 지름길이다. 성화의 양식이다. 유대인들의 오류가 우리 크리스챤에의 오류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초점을 바로하고 성경을 상고하자. 엠마오 성경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을 지식 교육이 되지 말게 하자. 하나님을 믿고(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하며(아들을 영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아들을 믿는) 참된 태도로 성경 공부에 동참하자. 그러면 우리는 예수를 알게 된다. 성경 속에서 보여주시는 예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제자의 길을 걷게 된다. 성경 공부에 뛰어들자.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뛰어들자. 지난 주에 시작한 성경 공부에 이어서 다른 교회에 다니다가 우리 교회에 새로 오신 분, 또 처음 교회에 나오시게 되신 분, 새 가족들이 많이 있는데 새 가족을 위한 그룹 성경 공부를 시작하려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함』 예수 안에서 거룩하게 자라나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다 등록하고 공부하자. 예수를 믿고 영접케 된다.

유대인보다 더 열심히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자. 배우고 연구하자. 그러나 우리는 크리스쳔이다.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의 사랑하는 뜨거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들이 되자. 그러면 성경은 진짜 영생을 주고 진짜 눈물과 진짜 인생을 줄 것이다. (김철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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