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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삿 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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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6:11-16) 『[11] 주의 천사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의 땅 오브라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와서 앉았다. 그 때에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몰래 밀이삭을 타작하고 있었다. [12] 주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힘센 장사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되물었다. "감히 여쭙습니다만,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어째서 우리가 이 모든 어려움을 겪습니까 ? 주께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어 우리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셨다고,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말하였는데, 그 모든 기적이 다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 지금은 주께서 우리를 버리시기까지 하셔서, 우리가 미디안 사람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 [14] 그러자 주께서 그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라. 내가 친히 너를 보낸다. " [15] 기드온이 주께 아뢰었다. "감히 여쭙습니다만,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습니까 ? 보시는 바와 같이 나의 가문은 므낫세 지파 가운데서도 가장 약하고, 또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도 가장 어린 사람입니다. " [16] 그러나 주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니, 네가 미디안 사람들을 마치 한 사람을 쳐부수듯 쳐부술 것이다. " 하고 말씀하셨다.』

할렐루야!
감사의 풍성한 열매가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오늘도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어린 시절, 교회학교 선생님들에게 들었던 동화같은 이야기가 바로 [기드온의 3백용사] 이야기였습니다. 300명으로 -성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메뚜기 떼같은 미디안의 군대를 무찌른 이 역전의 드라마에는 함성, 횃불, 항아리 등의 소품과 함께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멋진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드는 성경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영웅 기드온의 출발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사로 잡힌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더욱 용기있는 삶의 자리로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오늘 성서의 배경

사사시대... 출애굽과 광야생활을 거쳐 가나안의 일곱족속을 무찌르고 약속의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아직 왕정정치는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을 들어 쓰셔서 일하게 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사사(judges)>로 불리웠던 사람들입니다.

사사 기드온이 부름을 받았던 때도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의 침략과 약탈로 인하여 탄식이 하늘에 사무쳤던 때입니다. 6장 초반부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또 - 이 ‘또’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반복되는 [죄-심판-부르짖음-구원]이라는 도식을 거치면서도 이스라엘은 ‘또’ 하나님 앞에 악을 저질렀습니다. -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7년동안이나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산에 굴을 파고 숨어들기도 했습니다.

[4] 그들은 이스라엘을 마주보고 진을 쳐놓고는 가사에 이르기까지, 온 땅의 소산물을 망쳐 놓았다. [5] 그들은, 가축 떼를 몰고 장막을 가지고 메뚜기 떼처럼 쳐들어왔는데, 사람과 낙타가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들이 들어와서 온 땅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또’ -여기서도 ‘또’, Again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6] 이스라엘이 미디안 때문에, 전혀 기를 펴지 못하게 되자,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울부짖었다. [7]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 사람들 때문에, 주께 울부짖을 때에...

자,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의 한 남자를 찾아 옵니다.

■ 우습게 보이는 기드온

그의 이름은 기드온.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만나기 위해 찾아 온 사람은 우스운 꼴로 여호와의 사자와 대면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위대한 사사중의 사사인 기드온의 첫 등장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우습기까지 합니다.

그는 미디안 사람의 눈을 피해서 포도주 틀 안에서 타작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미디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씨만 심기 시작하면 쳐들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왔다가 그냥 가는 게 아니라 아예 텐트 쳐 놓고 주둔하면서 약탈을 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곡식 털기가 무섭게 빼앗가 가버리는 그들을 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뚜기떼가 휩쓸고 지나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기드온의 처지가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원래 곡식을 털려면 바람이 불어 오는 곳에서 해야 마땅한데 미디안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서 기드온은 커다란 술틀 안에 숨어 들어가 거기서 밀이삭을 타작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11] 그 때에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몰래 밀이삭을 타작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술틀은 주로 포도원 안에 만드는 데 포도를 넣고 발로 밟아 즙을 내는 장치입니다. 주로 단단한 바위를 사각형으로 파내어 만들었고, 약 2m 정도의 크기였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공간이겠죠?
우리는 성경의 인물들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위인들 가운데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도 아주 평범한 소시민 가운데 한 사람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 정도만 되도 괜찮죠. 어떨 땐 더 소심하고, 더 이기적이고, 더 우유부단한 모습인 경우가 있습니다. 때론 온화한 성품이지 못하고 과격하고, 화를 잘 내며, 실수가 잦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또 때로는 바울 같은 경우, 하나님에 대해 더 적대적이고도 반항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우는 사도 요한은 어찌나 성격이 과격한지 별명이 ‘우레의 아들-보아너게’라고 불리우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그 좁은 포도주틀 속에 기어 들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죽여 밀타작을 하는 모습을... 기드온의 이 모습은 자기 스스로도 자신에게 화를 낼 정도로 나약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항변하듯이 외쳤습니다.

[13]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어째서 우리가 이 모든 어려움을 겪습니까 ?

또, 이렇게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해 의문점을 가질 뿐 아니라 그분의 능력에 대해서도 불신감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13] 주께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어 우리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셨다고,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말하였는데, 그 모든 기적이 다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지금은 주께서 우리를 버리시기까지 하셔서, 우리가 미디안 사람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지금 현재의 기드온에겐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 위대하신 능력의 이야기는 조상들 때에나 있었던 ‘전설따라 삼천리’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가 느끼는 하나님, 그가 지금 현재 이 자리에서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은 ‘버리시고’, ‘적의 손에 넘어가도록’ 놔 두시는 무기력한 하나님으로 밖엔 보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 기드온의 가능성을 보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오천가족 여러분,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사자는 기드온을 찾아와 그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큰 용사여~, 힘센 장사여~, Mighty warrior!
이 호칭은 포도주틀 안에 쳐박혀 있는 기드온에겐 안 어울리는 호칭인 듯 싶습니다. 사실 기드온 자신도 이 호칭을 듣고는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여호와의 사자는 한 술 더 떠서 기드온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었습니다.

[14] 그러자 주께서 그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라. 내가 친히 너를 보낸다."

이 말을 들은 기드온은 자기가 생각해도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처지에, 이 상황에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입니까?

[15] 기드온이 주께 아뢰었다. "감히 여쭙습니다만,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습니까? 보시는 바와 같이 나의 가문은 므낫세 지파 가운데서도 가장 약하고, 또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도 가장 어린 사람입니다."

기드온의 말은 다음의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히...”
“내가 어떻게?”
“보시는 바와 같이...”
“가장 약하고...”
“가장 어리고...”

이 말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이런 말은 누가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까?
자신감도 없고,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고,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라고는 한 구석도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성경의 위대한 역사, 위대한 인물들의 삶에 반드시 있는 장면...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기드온에게도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잠자고 있던 사무엘을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셨던 하나님.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목동 모세를 찾아 오셔서, ‘모세야, 모세야~’라고 부르셨던 하나님...
고기를 잡고 있었던 베드로, 안드레에게 오셔서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던 예수님...

■ 기드온, 하나님과 대면하여 서다.

저 하나 먹고 살자고 포도주틀 속에 숨어서 타작을 하는 기드온, 자기 한 몸 돌보기에도 벅찰 것 같은 사람 기드온, 심지어는 가족들 가운데서도 두드러지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적지않은 열등감으로 자신을 비하하던 사람 기드온...

이제 그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 오셨습니다.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만났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시각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드온을 <큰 용사>가 될 재목감으로 보고 계십니다. 씨앗 속에서 거목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을 보시면서 장래 믿음의 민족, 온 세계가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복의 근원이 되는 비전을 보고 계십니다.
1885년 4월 5일, 제물포 항에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언더우드 선교사와 함께 이 땅에 첫 발을 디딜 때 이 땅은 눈이 파란 서양인들의 눈에 보기엔 ‘땅 끝’ 일 수 밖에 없는 동방의 작은 땅이었지만 한명의 선교사가 첫 발을 디딘 후로 120년 후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세계에 파송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분이 세계선교의 비전을 품고 내 디딘 그 첫 발자국이 동양의 예루살렘, 세계선교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던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도 들려지길 바랍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우리가 이달의 찬양으로 불렀던 <파송의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세상 이기신 주 늘 함께... 너와 동행 하시며 네게 새 힘 늘 주시리!

우리 옆사람에게 축복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인사해 볼까요?
“큰 용사이신 OOO 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십니다.”

사랑하는 오천가족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의 현실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보십니다.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 28:20)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 43:2-3)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물같이 다 휩쓸어 가 버리는 시험 앞에 놓인 분이 계십니까?
불같이 맹렬하게 우리를 태워 버릴 듯하게 이글거리는 시험이 찾아 든 분이 계십니까?
믿음으로 살아 보려고 힘쓰고 애쓰는데도 하나님이 마치 나를 버리시진 않으셨는지... 의심과 불안에 마음을 졸이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선포가 여러분 속에 들려지길 바랍니다.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믿음의 배짱을 한번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오천교회의 부흥을 확신하면서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외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보낸 것 아닙니까? 그러니 책임 져 주십시오!”

■ 하나님이 보내셨으니...

이번 주만 지나면 이제 12월이 됩니다. 새해 일꾼들을 세우기도 하고, 또 각 영역에 맞는 적임자들을 선택해 일을 맡길 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으신 분들... 오늘 본 기드온의 모습처럼 “나는 작고, 약하고, 내가 어떻게...?”라고 핑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드온처럼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뭘로 그걸 다 합니까? 뭘로 할 수 있죠?” 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제가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하나님 제게 감당할 능력을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감당할 시험 밖에 주시지 않는다고 했는데 하물며 사명 주시고, 하나님의 일을 맡기실 때에 능력도 주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한 사람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이, 가문이 위대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렇게 믿는 믿음이 그렇게 되게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부정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보시지 않으십니다. 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이 땅에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이 교회 안에서 각자의 몫을 다할 수 있도록 만드시고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지금 내가 어떤 처지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 처지에서 어떤 곳을 바라 보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또 내가 나를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이... 하나님의 목적이 나를 어떻게 쓰시고자 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후에 믿음이 없는 기드온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 여러 가지 표적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한 표적을 경험한 후, 기드온은 바알의 단을 헐고 신상을 쪼개는 결단의 사람이 됩니다. 또한 단 300명의 군사만 인솔해 해변의 모래가 많은 것처럼 그렇게 많은 미디안과 아말렉의 군대를 무찌르는 쾌거를 이룹니다. 그렇게 많은 군대를 한 사람을 치는 것처럼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위의 말씀의 약속을 지켜 주셨던 것입니다.

함께 하실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
아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내신 것이 아닙니까?
우리 다 같이 외쳐 봅시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인 아닙니까?”
“하나님,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부족한 자신을 하나님 앞에 기꺼이 드리기로 작정하는 여러분을 위해 제게 축복의 권한을 주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 드리고 싶습니다.
부족하지만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큰 용사’로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영이 늘 함께 동행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정연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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