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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 안에 뿌리 내린 삶(골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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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뿌리를 언제나 그리스도에게

미국의 존 홉킨스 대학의 교수요 외과의사인 켈리 박사는 전도자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양복에 늘 장미를 꼽고 다니는데 그 장미가 왜 그런지 한참을 지나도 시들지를 않았습니다. 언제나 금방 꺾어서 꽂은 것 같아서 사람들이 의아해 했습니다. 하루는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그 장미가 시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양복 앞섶을 뒤집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그 섶의 밑바닥에는 조그마한 물병주머니가 따로 있었고 장미는 그 작은 물병에 꽂혀 있었습니다. 이때 그는 말하기를 우리 사람들이 시들지 않고 향기 나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삶의 뿌리를 언제나 그리스도에게 두어야 한다고 하면서 전도했다고 합니다.

생명이 있기 위해서는 뿌리가 살아 있어야 한다

고목나무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생명이 있어야 하고 생명이 있기 위해서는 뿌리가 썩지 않고 살아 있어야 합니다. 무슨 식물이든지 뿌리가 깊이 박혀야 튼튼한 식물이 됩니다. 뿌리가 깊으면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어지간한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습니다. 꽃이 아름답고 많이 핍니다. 열매도 많이 맺습니다. 식물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조직이나 국가나 단체 등도 역사적 뿌리가 깊어야 든든합니다. 안전합니다.

식물이든지 사회 공동체든지 뿌리가 깊이 내려야 든든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나를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일들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걸맞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신앙이 흔들리면 그 파장이 심합니다. 그러므로 뿌리가 깊어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뿌리가 깊다고 해서 든든한 것은 아닙니다. 역사의 뿌리보다도 우리가 깊이 내려야 할 뿌리가 있습니다.

삶의 뿌리

삶의 뿌리가 뽑혔을 때 우리의 삶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까? 가정이라는 삶의 뿌리가 뽑혀버릴 때 인간의 삶은 그대로 시들어 버리고, 뿌리를 내릴 새로운 터를 찾지 못하면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란 그 뿌리를 든든히 내릴 땅을 찾는 노력의 연속이라고 하겠습니다. 삶의 뿌리를 얼마나 깊이 얼마나 든든하게 내렸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모습은 많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일수록 그 가지가 번성하고 그 잎이 무성하며 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삶도 어디다 어떻게 뿌리를 내렸느냐에 따라 번성하기도 하고 시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땅 기름진 토양에 뿌리를 내리려고 애를 쓰며, 우리의 삶의 가지를 번성케 할 온갖 거름을 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뿌리를 일차적으로 내리고 있는 곳은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은 말할 것도 없이 대단히 중요한 삶의 자리입니다. 실직 노숙자들은 바로 이 가정이 없거나 떠난 사람들입니다. 가정이 없다는 것은 외톨이가 된다는 것이며,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화목하게 가꾸어야 하는 까닭은 그래야 우리의 삶이 뿌리를 든든히 내리면서 꽃도 피울 수 있고 열매도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아들이나 양로원에서 지내는 노인들의 삶에 빛이 없는 것은 그들의 뿌리가 뽑혔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그 가족들이 힘을 모아 어떻게 해서든지 견뎌내지만, 가정이 없는 사람은 쉽게 무너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꾸리고 지키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의 뿌리를 든든히 내리는 것이며,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대가족을 이루었던 일은 그런 면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봅니다. 지금 핵가족화 된 가정들은 그 뿌리가 깊지 못하여 쉽게 흔들려 깨어지기 쉬운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 형제들이 많거나 일가친척이 많은 사람은 그들의 도움을 통해서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지만, 형제나 친척이 없는 사람들은 대단히 힘들게 그 어려움을 극복하여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설이나 추석에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고생길이면서도 고향을 찾아 내려가는 것은 거기에 삶의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그 뿌리를 잘 가꾸어 놓으면 어려울 때 큰 힘이 되기에 힘들지만 고향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뿌리

골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

믿음의 뿌리가 깊지 못하면 언제든지 흔들립니다. 개인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 와도 믿음의 뿌리가 깊이 박혀 있으면 요동치 않습니다. 모든 것은 믿음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를 찾아오는 시험은 너무 큽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향하여 찾아오는 시험은 너무 무섭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실 수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이길 수 없습니다. 믿음의 뿌리가 깊게 내리도록 하려면 말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지 않고 듣지 않는다면 목사라도 믿음의 뿌리가 깊지 못합니다. 아무리 직분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말씀이 없으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청산유수 같이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한마디도 없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는 말 한마디 없다면 그것은 믿음의 생활이 아닙니다. 일주일 내내 성경책을 가방 속에 넣어 다니다가 아니면 차안에 넣어 다니다가 주일날 교회에 올 때 겨우 끄집어내어 갖고 온다면 믿음의 뿌리가 깊게 내릴 수 있겠습니까?

믿음의 뿌리가 깊이 내리지 않으면 말 한마디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작은 행도 하나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믿음의 뿌리가 깊이 내리지 못하면 교회다운 모습이 나타낼 수 없습니다. 즉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고 심판을 믿고 구원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약하면 결국 빛을 제대로 낼 수 없고 소금의 맛을 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교회의 믿음의 뿌리가 깊게 내리려면 지도자들의 믿음의 뿌리가 깊이 내려야 합니다. 지도자들의 믿음의 모습이 덕이 되지 못하고 본이 되지 못한다면 믿음의 뿌리가 깊이 내릴 수 없습니다.

믿음의 뿌리가 얕으냐 깊으냐는 언제 알 수 있습니까? 바람이 불어봐야 압니다. 날씨가 가물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뿌리가 깊지 못하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뿌리가 흔들려서 곧 말라죽습니다. 가뭄이 조금만 심해도 잎이 시들어지고 말라죽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깊으면 어지간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지간한 가뭄이 와도 시들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믿음의 뿌리가 깊으냐? 얕으냐? 는 어려운 환난의 바람이 불거나 사람의 마음을 건조하게 만드는 일들이 발생할 때 비로소 판단됩니다. 똑같은 어려운 시험이라도 믿음의 뿌리가 있는 교회는 오히려 그것을 바탕으로 더욱 견고해 집니다. 그러나 믿음의 뿌리가 깊지 못한 교회는 온통 흔들리며 성도들이 떨어져 나가고 실족하여 교회에 나오지 않거나 믿음생활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뿌리가 깊이 내려서 흔들림 없는 든든한 반석 같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뿌리

머리로 하고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닌 가슴과 몸으로 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뿌리가 깊어야 합니다. 사랑은 만병통치약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 죄악을 다 덮고도 남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인류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그러나 미움은 허다한 죄를 만들어 냅니다. 사랑은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관용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묶인 것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얽어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면 그리스도의 삶을 나타내는 것이 사랑입니다. 모든 일을 하실 때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하십시오. 그러면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의 뿌리가 깊이 내리면 절대로 넘어지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쉽게 흔들립니다.

그리스도 안에 뿌리 내린 삶

우리 삶의 뿌리를 지탱해 주는 민족이나 나라나 지역이나 가문이나 가정이 모두 불안정할 대 문제입니다. 이런 것들이 영원하지 못하고 일시적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늘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신앙을 갖고 살아갑니다.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도 나름대로 신앙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신앙이 어떤 종교적인 형식을 갖추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으로 우리 속에 불안과 두려움이 있는 한 신앙심은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신앙이 체계적으로 삶의 근원을 밝혀주므로 사람들이 가진 두려움을 벗게 하여 신앙으로 그 삶을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의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은 그의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삶의 뿌리를 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곧 만물의 으뜸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뿌리를 깊이 내리면 우리의 삶은 새로워지고, 크게 번성하며, 아름다운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악을 정복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흔들어 놓을 세력은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며 영원한 삶의 토양이 되신 것입니다. 거기에 뿌리를 내리기만 하면 누구도 그 나무를 뽑아버릴 사람이 없으며, 누구도 그 과수원을 해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 뿌리를 깊이 박고 그로부터 충분한 영양분과 수분을 얻어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충성하는 인생을 살려면 예수라는 반석 위에 세움을 입어야 합니다. 뿌리를 잘 내린 나무처럼 바위 위에 세워진 집처럼 우리가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고 든든히 세워지기 만하면 절대 흔들리거나 쓰러지지 않을 것이며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바로 알고 인격적으로 깊이 사귀면서 예수에게 사로잡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듯이 집을 세우듯이 철저하게 알고 교제한다면 믿음이 강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넘치는 감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의 뿌리가 어디에 내려져 있습니까? 재물이나 지식이나 명예나 권력 그 모두가 한 때는 인간의 삶을 지탱시켜 주는 좋은 토양이라고 생각되었지만, 그런 것들은 그지없이 불안한 것들이어서 우리의 삶을 뒤흔들리게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도 흔들리고 나라도 흔들리며 민족도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 물질문명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삶의 뿌리를 내릴 진정한 토양이 되지 못함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삶의 뿌리를 내리고 그가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을 공급받으므로 그 생명력으로 오늘의 고난을 헤치며, 오늘의 역경을 뚫고 나가야 할 때입니다. 헛된 욕망을 따라 쓸데없이 바쁘게 뛸 것이 아니라 이제는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나의 삶의 뿌리를 그리스도 안에 깊이 내리기 위하여 기도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여 할 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그리스도 안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리면서 보다 아름답게 가지를 뻗으며,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뿌리가 깊이 내려지면 자연적으로 얻는 것은 열매입니다. 잎이 무성하면 그 그늘 아래에 와서 쉼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가 있으면 새들이 와서 집을 짓고 먹을 얻어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가 이렇게 믿음의 뿌리와 사랑의 뿌리와 지역사회에 뿌리를 깊이 내리면 구원의 열매를 많이 맺을 것입니다.

나무의 미래는 건강한 뿌리에 있습니다. 건강한 뿌리를 가진 나무는 어디에 심기었느냐에 따라 나무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나무는 좋은 땅에 심기어야 합니다. 좋은 땅이란 물이 잘 흐르는 땅입니다. 물이 막힌 땅은 나무가 결실 할 수 없습니다. 물의 흐름이 좋은 땅에 심기운 나무만이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는 물의 흐름이 좋은 땅에 심기운 나무입니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는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시 1:3).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아니하고,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습니다(렘 17:8).

뿌리 깊은 영성의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

뿌리 깊은 영성은 뿌리를 하나님께 깊이 내린 사람입니다. 뿌리 깊은 영성은 위로 성장하기 전에 아래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나무의 크기는 뿌리에서 결정됩니다. 나무의 높이와 넓이는 뿌리가 땅 아래로 얼마나 성장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위로 성장하기 위해 아래로 성장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고독한 길입니다. 인간의 내면의 심층에 있는 욕망 중에 하나는, 위로 올라가고 싶고 밖으로 드러나고 싶은 욕망입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인기를 얻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려놓고 뿌리를 깊이 내리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래로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자신을 은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깊은 영성을 소유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오랜 기간 동안 아래로 성장하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려가고, 떨어지고, 버림받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모세는 아래로 성장하는 시간을 오랜 세월 동안 보내야 했습니다. 동족의 버림을 받아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보냈습니다. 잊혀진 존재로 40년을 보냈습니다. 기나긴 내려감의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내려감을 통해 모세는 온유한 성품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황량한 광야에서 머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키웠습니다. 외모를 가꾸기보다 내면을 가꾸었습니다. 육신의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에 복종하는 훈련을 감수했습니다.

뿌리 깊은 영성의 모범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마구간으로 내려 가셨습니다. 구유로 내려가셨습니다. 십자가와 음부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기 전에 깊이 내려가는 영성을 소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먼저 위로 올라가기 전에 자신을 감추고 아래로 성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영성의 향기는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향기입니다. 우리 함께 뿌리 깊은 영성을 추구합시다. 우리를 부르는 뿌리 깊은 영성의 세계 속으로 들어갑시다.

성도 여러분, 삶의 뿌리, 믿음의 뿌리, 사랑의 뿌리를 그리스도 안에 깊게 내리도록 합시다. 그리고 꿈은 크게 가지고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 영암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서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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