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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믿는 사람들의 감사 (히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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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을 맞이한 여러분들의 마음에 진정한 감사가 있습니까? 솔직하게 생각하고 솔직하게 말해봅시다. 정말로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납니까?

요즘 우리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과 짜증이 훨씬 많이 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고 정치적인 불안정과 지도층 사람들의 갖가지 파렴치하고 도덕 불감증에 걸린 큰 사건들이 줄을 잊는 속에서 사회적인 전반적인 분위기가 가라앉고 그래서 다들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금년 들어 우리 성도들의 삶을 돌아보면 사고도 많았고 질병도 많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성도들도 많았습니다.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 벌써 또 한해를 정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감사절기를 맞아합니다.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 생각해보아도 감사할 일이 금방 떠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살아야할 많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절기를 주신 것은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감사의 절기를 통해서  감사해야할 근본적인 이유들을 다시 찾을 수 있고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할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원망과 불평은 하면 할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고 마귀와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더욱 감사한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를 생활화하고 습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불평하는 것을 습관화하고 생활화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감사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좋으신 하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많은 것들을 바라보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였습니다. 단순한 기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안에서 기대하고 바라는 것들이 반드시 우리에게 현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기대할 수 있는 미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이 시작될 때 그들은 너무도 어려운 상황속에 있었습니다. 함께 한 사람들 중에 1/3이 죽었고 양식도 많이 잃고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질병과 싸우며 모진 세월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첫 곡식을 거두게 되었을 때 진실로 그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된 것입니다. 어려움 속에서의 감사는 내일의 희망이 됩니다. 그래서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재무장관을 지냈던 마르틴 바덴의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입니다. 그는 원래 자유주의 사상을 지녔던 사람인데 젊은 시절 집권 세력인 극 보수파에 밀려나는 바람에 무척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한번은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돈이 없어서 싸구려 여관에 하룻밤을 묵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도둑이 와서 신발을 훔쳐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어찌나 화가 났던지 그는 도둑에게 있는 욕, 없는 욕 다 퍼붓고 난 다음에 하나님까지 원망했습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나처럼 가난한 사람의 구두를 훔쳐가는 것을 뻔히 바라보시면서 그대로 내버려 놓았단 말인가!” 자기가 구두 간수 잘못해 놓고 난 다음에 구두 잃어버린 것을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고 원망까지 했습니다.

마침 그날은 주일이었는데 여관주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마르티를 달래며 그러지 말고 함께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는 “무엇을 신고 간단 말입니까? 이 눈 위에 맨발벗고 내가 어떻게 교회가요?” 그래서 여관집 주인이 창고에서 허름한 구두 한 켤레를 가지고 나와서 “이것 신고 갑시다.” 그 간청에 못 이겨서 신발이 맞지 않는데도 허름한 신발을 신고 함께 교회를 갔는데 참 희안하게도 자기가 앉는 옆자리에 누가 앉아 있느냐.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두 다리가 없는 그 사람은 옆에 자기가 와서 앉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 기도를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았습니다. “하나님 저를 돌보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이 삭막한 세상에서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다리가 없어도 이렇게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게 해주시니 감사하고 또 다리가 없으니까 신발 살 걱정도 안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말이 가슴에 탁 부딪혔습니다. 자기 보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마르티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이 사람은 두 다리가 없어도 이렇게 감사하는데 나는 두 다리가 멀쩡한데도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구두 훔친 사람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는 즉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두 다리가 있는 것을 감사합니다. 이분은 두 다리가 없는데도 감사하는데 나는 두 다리가 있으니 얼마나 더 감사합니까? 신발 잃은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너무 낡은 신 너무 오래 신으니까 새신을 바꾸어 신으라고 낡은 신을 없애 주시니 감사합니다. 없애주신 하나님은 새신을 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날 이후 마르틴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인생이 점차 변화되었고 마침내 독일의 재무장관으로써 국가에 크게 봉사하며 국민에게 존경받는 정치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구두를 감사했는데 그의 온 생애가 변화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적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는 삶을 살 때 우리 인생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원망, 불평, 탄식하면 있는 것도 다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삶은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에는 능력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능력입니까? 삶을 달라지게 하는 능력입니다. 미래를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를 생활화하고 감사가 체질이 되게 해야 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렸습니까? 그러면 지금 바로 감사를 다시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 감사가 몸에 배게 하고 습관이 되게 하시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가르친 것이기 때문에 감사하는 사람의 삶을 책임져 주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유명한 영국의 목사였던 스펄젼은 말하기를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태양을 주시고 태양을 보고 감사하면 촛불도 전등불도 달빛도 태양빛도 필요 없는 천국을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촛불을 가지고 불평을 하면 다 잃어버립니다. 태양빛 아래서 감사하지 아니하면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보고 감사하겠습니까?

직장을 잃고 몇 년째 먹고사는 것까지 심각하게 어려운 지경에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절대로 감사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불평과 원망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더더욱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감사하면 그  감사가 희망을 가져다줍니다. 나라고 언제까지 평범하게만 살라는 법이 정해진 것입니까?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품지 않은 복은 절대로 현실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들이 우리를 묶어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도 있고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있습니다.

믿음의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실이 힘들고 어려우면 더 많은 희망을 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희망을 믿음으로 붙들면 반드시 하나님이 그 희망을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감사하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감사를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며 살아라.

미국의 존 고다드 라는 사람은 15살 때 자기가 살아가면서 꼭 하고 싶은 꿈 127가지를 수첩에 적에 두었는데 그 꿈을 하나하나 달성하여 47세가 되던 1972년에 103개의 꿈을 실천 하였습니다. 그가 적어 놓은 꿈들은 결코 쉽게 달성하거나 간단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세계의 주요 고산지대 등반하기, 큰 강 탐사, 1마일을 5분 안에 주파하기, 브리테니커 백과사전 전 권 읽기 등등 만만치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뭐 이런 꿈들을 꾸는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끊임없는 도전가이고 새로운 일을 생각하며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나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꿈들을 적어놓고 하나 하나 성실하게 도전하여 수많은 꿈을 실현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삶의 새로운 동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감사한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감사한 것입니다. 현실이 힘들다고 어렵다고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감사할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는 것들이 현실이 되고 실상이 될 것입니다. 지금보다 휠씬 높은 단계로 도약하는 모습을 상상하십시오. 우리들의 가정이 회복되고 번창하는 것을 그려보십시오. 부부관계에서 사랑이 더 깊어지고 우리의 자녀들이 형통한 길로 나아가는 것을 기도하십시오. 그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기도하고 마음에 품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언제라도 어떤 상황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적으로도 하나님이 주신 비젼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나도 12명의 제자를 만들고 싶습니다. 나에게 12명의 제자를 주옵소서. 이런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목표와 소망이 없는 사람은 평생 살아도 한명의 제자도 만들지 못하겠지만 지금부터 이 비젼을 품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제자가 붙여지고 그 제들이 12이 되고 그 제자들이 또 제자를 삼아가며 세상을 정복해나가게 될 것입니다. 교회도, 가정도, 개인의 삶이나 국가에도 언제나 이런 희망과 꿈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바로 희망과 꿈의 사람이고 그 꿈과 비젼을 세상에 선포하고 제시하고 그 꿈으로 세상을 이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희망인 교회가 그 안에 희망이 없고 감사가 없다면 어떻게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습니까?  믿음을 가진 우리는 그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비젼과 꿈을 품읍시다. 그리고 그러한 꿈과 비젼을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합시다. 그러면 세상도 교회를 보면서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퇴직 후 명함이 없는 상실감을 맛본다고 합니다. 퇴직을 하고 나면 사람들을 만나서 내가 누구라고 소개할 때 명함을 내놓을 수 있는 처지가 못 됩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을 어떻게 압니까? 명함을 보고 ‘아~ 이 사람 삼성회사에 나가는 구나! LG에 나가는구나! 아 이 사람은 SK에 나가는 구나 이렇게 알고 그 직위를 알고 대접을 합니다. 그러나 퇴직을 하고 나면 명함이 없으니 정체성 상실입니다. 이 세상에서 있을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공중에 떠버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김영진 박사는 이 상실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의 자긍심은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어느 직장이나 분야에 소속됨으로써 자연히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후광의 효과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면 위상이 달라진다. 명함내밀 일도 없고 어디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회사 앞 술집에서 외상술 먹을 입장도 안 될 때 상실감을 느낍니다. 자기는 잃어버린 존재구나! 버림받은 존재구나! 하고 느끼게 될 때 상실감이 대단히 크다는 것입니다.

월간조선 2002년 5월호에 재벌 계열사 대표이사였다가 퇴직한 한 사람이 인터뷰한 내용이 있는데 “기자가 퇴직 후 가장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문제점이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주고받던 명함을 내줄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당혹스러운 변화인지 모릅니다. 무심결에 사람을 만나서 자기소개하려고 포켓에 명함을 찾아보니 명함이 없습니다. 아~ 내가 정말 회사를 그만두었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오면 마음속에 버림받은 심정 소외받은 심정, 허무감이 물결치듯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상실을 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고통입니다.

정신적인 상실감을 느낄 때 그것은 더 큰 충격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부들이 사십대 이후에 방황하는 것은 젊을 때는 남편 섬기며 자식 기른다고 정신없이 지내다가 이제는 남편은 사회에 출세해서 사회에 바쁘고 자식들은 다 커서 나가고 나면 홀로 남습니다. 그때에 상실감을 느낍니다. ”나는 뭐냐! 지금까지 남편 섬기고 자식 위해서 희생하고 살았는데 이제 남편은 남편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다 떠나가고 나는 무엇이냐!“ 묻게 됩니다. 거기에 깊은 상실감을 느끼고 버림받은 심정,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를 믿게 되면 십자가 대속으로 새로 피조 된 자아를 발견하기 때문에 정체성 위기에 처하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냐! 나는 예수 십자가를 통하여 죄 용서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과 평안을 받은 사랑받는 사람이다.

나는 누구냐! 나는 죄와 마귀에서 벗어나고 거룩함과 성령충만 받은 사람이다.

나는 누구냐!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치료함을 받고 건강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누구냐! 그리스도께서 나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되어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누구냐! 예수님께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시고 나를 위해서 부활하심으로 나는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받은 사람이다.

이렇게 우리는 자기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주소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믿게 된 것을 제일 감사해야 되고 잃어버린 나를 찾았으니 너무너무 감사해야 되고 우리의 삶 속에 소망이 있으니 감사해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근본적으로 감사해야할 이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항상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평소의 삶의 스타일이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기 때문에 거기서 또 다른 감사할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오랜 동안 질병을 통해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도,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인해서 마음이 불편한 사람도,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손해를 본 사람도, 계획했던 것들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답답한 사람도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좋으신 하나님이 지금도 나의 편이 되어 주시고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손을 다시 한번 꽉 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한걸음 한 걸음 다시 시작하리라. 다시 걸어가리라. 이 마음을 가지면 다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감사를 되 찾으면 희망이 보입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의욕이 솟아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막을 지날 때에도 우리를 안으시거나 우리를 업고서 가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깊은 웅덩이에 빠져 있을 때에도 손을 내미는 정도가 아니라 그분이 직접 깊은 웅덩이 속으로 들어오셔서 우릴 그 등에 업고 올라오시고 나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에 비교해서 근본적으로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으니 이 토대위에 서서 좋은 것은 좋아서 감사하고 좋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좋게 만들어 주실 것이니 감사하고 현재에 우리 환경을 보고 불평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감사하십시다. 나의 짐을 지시고 나의 일을 해주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이 두 손을 활짝 펴고 ‘자 내게 업혀라. 강을 건너 주마. 내게 안겨라 사막을 내가 지나가게 해 주마’ 하시는 그 주님과 함께 사는데 우리가 어떻게 주야로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병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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