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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섭리(요한복음 19: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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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
요한복음 19:23-30

가끔 저는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시는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이곳까지 오게 하셔서 이런 모양으로 서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잘 나오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저와같은 이런 고민을 한번쯤 해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별로 죄지은 것도 없는데 삶이 어려울때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때로는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왜 여기까지 이끌고 오셨는지 하나님께 묻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총리가 되기까지의 요셉의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의 섭리가 너무나도 이상하다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또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섭리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요셉은 형제들의 질투로 구덩이에 갇히고 또 애굽에 은 20에 팔려갑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보디발의 집에서는 가정총무로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데 보디발의 아내의 계략으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 후에 요셉이 꿈을 잘 해몽해서 애굽의 총리가 되는 놀라운 사람이 됩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섭리가 이상하다고 밖에 생각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요셉이 그렇게 큰 잘못을 한것도 없는데 17세의 어린 나이로 남의 집의 하인으로 일을 해야 하고, 또 하나님께 범죄하기 않기 위하여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쳤는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고 하는 사실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듭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기에 충분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요셉의 입장이나 우리의 입장이나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뿐만아니라 총리가 되어서 한번도 정치와 행정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정치를 잘 할 수 있는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인간적으로 볼때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듭니다.
요셉은 마치 하나님이 강제적으로 세운 낙하산 인사와 같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하나님의 섭리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친 일로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의 입장에서보면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를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감옥으로 가게 만든것입니다.
10대후반과 20대초반의 혈기왕성한 젊은 청년에게 가장 민감한 것이 바로 성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할지라도 한번의 유혹은 거절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계속되는 유혹은 결코 견딜수가 없습니다.
아름드리처럼 큰 나무도 10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답고 예쁜 여자가 한번, 두 번 계속 유혹하면 넘어가지 않을 남자가 없습니다. 하물며 20대의 혈기 왕성한 청년은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100% 유혹에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그가 유혹에 넘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속될 유혹으로부터 요셉을 피신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감옥대학에서 한번도 해보지 못한 정치 공부를 했던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들어가는 감옥에서 정치를 배우고 나라 살림살이를 배워서 그가 3년의 과정을 마쳤을때에는 애굽의 관습에 따라 관직에 오를 수 잇는 30세의 나이로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준비하심과 섭리에 놀라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세상적인 유혹을 전혀 받지 않고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에 요셉을 보내서 실무를 두루 겸비한 최고의 강사진으로 공부시키는 하나님의 섭리에 놀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흔히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부분중의 하나가 하나님은 큰 일에만 섭리하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 하나 하나의 매우 사소한 것 까지도 섭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4절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
지금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십자가 위 머리 부분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푯말을 써 놓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들을 위해서 옷을 모두 벗겨진채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때 벗은 예수님의 옷을 십자가 밑에 있던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서로 가지기 위해서 제비를 뽑았다고 성경을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이 옷을 나누기 위해서 제비를 뽑은 그것이 이미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십자가 밑에 있던 군병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의 옷을 가지기 위해서 제비뽑는 것이 이미 예언 된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들은 어쩌면 장난이나 재미 삼아서 또는 자기들이 옷이나 한 벌 더 얻어보려는 생각으로 제비뽑기를 했을 것입니다. 자기들은 별 생각없이 재미로 한 것이 성경에 이미 예언으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는 것는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0:29 “너희 아버지께서 하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참새가 사람의 손에 팔리고 땅에 떨어지는 조차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36절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원래 십자가에 달려 있는 사람은 숨이 끊어졌나를 확인하기 위해서 다리를 꺾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군병들이 죽은 것을 이미 확인하고 다리를 꺾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역시 이미 성경에 예언을 해 놓은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매우 작은것, 사소한 것 까지도 간섭하고 계신것입니다.
우리는 삶이 힘들고 어렵고 지칠때 특별히 비전이 보이지 않을때 불안감을 떨쳐버릴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힘든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전이 보이지 않을때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불안과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때는 하나님이 어디에서 일하고 계시는지 보이지도 않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일하심은 더더욱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사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고민이 하나님의 나를 향한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말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습니다라고 하지만 어떻게 하나님이 나에게 역사하고 있는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만 안다면 지금의 어려움은 견디고 이길수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안다면 우리가 그 일하심에 같이 동참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28절을 보라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돌아가실 때에 예수님은 극도의 갈증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목마름의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 보세요. 예수님이 목마르다는 말을 무엇 때문에 하십니까?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죽는 순간까지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목마르다는 인간적인 괴로움을 호소한 것은 의도적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괴로움을 호소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것을 묵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이루어야겠다는 열망과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죽는 순간에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예수님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묵상을 습관처럼 했습니다. 그래서 죽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묵상하고 있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이길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내것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의 문제는 전부 이것입니다. 삶의 고난과 어려움의 현장에 말씀이 살아 있어야 하는데 말씀이 없습니다. 불안하고 비전이 보이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를때도 말씀이 우리안에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을 내것으로 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의 어려움과 고난은 얼마든지 이길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해서 내것으로 삼으면 하나님이 내안에 충만합니다. 그러면 현재의 고난과 어려움은 얼마든지 이길수가 있어요.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할 수가 있어요. 누가 하나님앞에 헌신하고 봉사합니까? 물질이 많은 사람입니까? 건강한 사람입니까? 젊은 사람입니까?
아니오. 전부 아닙니다. 그 사람안에 하나님으로 채워진 사람입니다. 물질이 없어도, 건강하지 못해도, 젊지 못해도 하나님으로 채워지면 하나님께 헌신을 합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도 하나님의 일에 동참을 합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점검해 봅시다.
말씀을 얼마나 읽습니까? 말씀을 얼마나 묵상합니까? 그래서 하나님으로 얼마나 채워져 있습니까?
삶이 공허하고 재미가 없습니까? 답답하고 불안합니까? 하나님으로 채우십시오. 그 어떤 것으로도 공허한 마음을 채울수 없어요. 불안한 마음을 잠재울수 없어요. 하나님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해결책이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진 사람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부흥회를 20년 인도하신 목사님
한 번은 큰 교회 부흥회를 마쳤는데 강사비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상히 여기며 그냥 집으로 오다가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빼앗겼습니다. 나중에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줬는 줄 알고 깜박 잊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받았다면 강도에게 다 빼앗겼을 것입니다.
==>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의 소중한 것을 깨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원만,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 채워진 사람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합니다.

제임스 톤힐 경은 유명한 모자이크 화가이다. 하루는 런던의 성 바울 교회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놓은 받침대 위에서 하는 위태한 작업이었다. 톤힐 경은 일을 하는 도중 서너발씩 물러나서 되어져 가는 그림을 살피면서 계속하곤 했다.

그를 돕던 하인이 톤힐 경을 바라보니 위험 직전이었는데 경이 반발만 뒤로 내디디면 떨어져버릴 찰라였다. 하인은 얼른 페인트 통을 들어서 그 모자이크 그림에다 던져 버렸다. 톤힐 경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그 모자이크 그림 앞으로 달려갔다.

그림의 못 쓰게 된 것을 알고 몹시 화를 냈다. 하인을 마구 책망하려고 하던 톤힐 경은 하인의 결단적인 행동으로 비록 그림은 다 버렸지만 자기의 생명이 구원받은 것을 깨달았고 그에게 크게 감사를 했다는 것이다.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위기를 만났을때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께 열심히 부르짖고 찾지 않았습니까? 그럴때 그 위기로 소종한 것을 잃어버렸지만 하나님의 일하심과 은혜를 발견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우리 한마음 교회 모든 성도가 하나님으로 충만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항상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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