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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분을 바라보라(출 7: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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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7:8-13

오늘 저는 ‘그 분을 바라보라’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저희 집 냉장고에 보면 아주 이쁜 여자의 사진이 있습니다. 최근에 저희 집에 오신 분들이 냉장고에 붙혀있는 사진을 보면서 사모님이 저렇게 이쁘시냐고 하는 겁니다. 오는 분들마다 그럽니다. 그런데 그 사진은 저희 집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 중에 한 사람인 ‘김태희’입니다. 김태희가 의류모델로 나온 사진인데 어느날 집사람이 그것을 붙혀놓고 나도 김태희처럼 이쁜 몸매를 만들겠다고 하는 겁니다.
바로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이 법칙은 바로 야곱이 양떼를 늘릴때에 사용했던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 법칙을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에 사용하면 바로 오늘 본문과 같은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능력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과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서 애굽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했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입이 둔한 사람이기 때문에 바로가 자기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가 바로 앞에서 신처럼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모세에 엄청난 하나님의 신적인 권위를 덧입혀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바로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바로를 설득할 필요가 없고, 바로는 돌이키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럴 마음을 주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로와 그의 백성들을 버리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문제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에는 우리가 말을 잘하고 못하고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바로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께 매달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곰곰이 생각하면서 모세가 바로에게 단순히 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전하는 것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첫 번째는 그 당시 애굽이라는 나라는 세계 최강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최강의 나라의 왕이라는 신분은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울 것입니다. 두 번째는 모세 개인적인 문제인데 바로 자기가 왕자의 신분으로 있을 때에 함께 했던 배 다른 형제라는 것입니다. 람세스라는 책이라든지 모세에 대한 영화에 보면 모세가 함께 교육 받고 나중에는 왕위를 갖고 경쟁하는 존재가 바로 이 바로왕입니다. 그러니 심리적으로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면 나가서 담대하게 전하겠는데 모세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서 아마 더 불편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가장 편하게 설교하는 때가 언제인 줄 아십니까? 바로 와이프가 없을 때입니다. 두 번째로 편할 때는 언제인 줄 아십니까? 바로 여러분이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강의하거나 설교하는 때입니다. 왜냐하면 아는 사람이기에 더 신경쓰는 것입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실수가 용납되지만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실수조차도 크게 다가서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여전도회 총회가 있어서 내년도에 봉사하실 일꾼이 뽑혔습니다. 그리고 곧 남전도회도 일꾼을 뽑을 것입니다. 교육부서도 교사와 임원들을 뽑을 것입니다. 그런데 뽑히시는 분들 대다수가 바로 모세의 마음일 것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할 줄 모릅니다. 능력이 안 됩니다. 말을 못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고 난 후에는 이런 말들이 쏙! 들어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능력 없는 자를 들어 쓰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과거 40년은 바로의 궁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최근 40년의 모세는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자로 살았습니다. 여기에 50세 이상 되신분들 중에 학교에서 배웠던 거 얼마나 기억하고 계십니까? 아마 다 까먹고 가물가물 하실 것입니다. 과거의 모세는 똑똑했을지 모르지만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 치고 있는 동안에 그는 그저 평범한 유목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이 갑자기 나타나서 바로에게 가서 나의 대변인 역할을 하라고 하니 당연히 하나님 앞에 투정 부릴만도 합니다.
내년에 일하실 여러분들, 투정은 하나님께만 부리시고 어떠한 직분이 오더라도 순종하시면 하나님이 능력 주실 줄 믿습니다.

자! 그러면 순종하는 자에게 어떠한 도움과 능력이 있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모세를 가장 위대한 설교자요,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설교자로서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언어 문제였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다 보니 바로 왕이라는 존재에게 가서 그들의 수준에서 말하는 것이 힘들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이 문제 때문에 여러번 하나님 앞에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 대신에 아론이라는 도우미를 붙혀 주십니다.
하나님은 100% 다 잘하는 사람 보다는 부족한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부족하고 겸손한 자를 쓰셔야 하나님이 도울 부분이 있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교만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종들은 다들 하나 같이 부족한 존재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심했던 사람이고 12제자들은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직업이거나 천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택하신 종들을 완전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을 무엇인가 부족한 상태로 내버려 두십니다. 약한 부분에 대해서도 그대로 내버려두십니다. 그 약한 부분을 인하여 그들이 항상 깨어 있어 기도하게 하시고, 더 이상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이 항상 그들에게 머물러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을 늘 답답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가지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말을 잘 못하는 지도자가 얼마나 우스워 보입니까? 바로왕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고 아론이 통역해 주어야 하는 모세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해 보입니까? 그것도 당당하게 가서 우리 민족을 구원하겠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7:1절에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신처럼 대접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엑 하나님의 능력을 입혀 주셔서 그를 통하여 무서운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자기가 말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로에게 가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바로를 설득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지 모세으 설득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설득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떠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을 잘 한다고 하나님의 일을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없어서 하나님의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두 번째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본문 7:8-13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모세와 아론에게 기적을 요구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만약 바로가 너희에게 기적을 보이라고 요구하면 너희 지팡이를 바로 앞에 던져라. 그러면 그것이 뱀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절을 보면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 가서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아론이 바로와 그 신하들 앞에서 지팡이를 던졌을 때 그 지팡이는 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바로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는 애굽의 박사와 박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아론이 행한 것을 모방하여 지팡이로 뱀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술사들의 지팡이를 삼켜 버립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기적을 행한 자가 모세와 아론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그런 요구를 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시면서 이런 기적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지팡이를 던진 자는 모세가 아니라 아론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적의 근원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모세로 하여금 기적을 독점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론의 지팡이로 그런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모두 하나님의 허락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 없이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가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 든 자들을 치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마치 자기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셨을 때 어떤 사람이 귀신들린 자기 아들을 데리고 제자들에게로 왔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자기들은 왜 아이를 고치지 못했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능력은 제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늘 새롭게 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그들에게는 기도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우리 안에 무슨 고유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위하여 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맡은 직분에 항상 두렵고 떨리는 이유는 나 자신의 기준에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모습을 갖고 직분을 맡고 일을 하게 되었을 때는 항상 기도해야 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큰 문제는 금식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지팡이가 뱀이 되는 것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하나님의 기적중에 아주 작은 것입니다. 앞으로 더 큰 기적들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런 오류에 빠질때가 있습니다. 큰 것만 기적이고 작은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모습에서도 큰 문제에만 하나님이 도와주시기를 바라고 작은 문제는 하나님 앞에 묻지도 않고 도움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은 마술사들에 의하여 사용되고 있는 뱀들조차도 응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부분에만 신경을 쓰시고 작은 부분이라고 해서 그냥 넘어가시지 않습니다. 작은 뱀의 세계였지만 사탄의 세력에 의하여 잘못 사용되고 있는 뱀들을 응징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부분에서도 결코 만홀히 여김을 당하기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부분에서도 철저하게 이기시고 승리하십니다. 하나님은 작은 영광도 놓치지 아니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황의 깊은 부분에도 간섭하셔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늘 대강대강 하는 버릇이 있게 때문에 “설마 이런 작은 부분까지 하나님께서 간섭하실까?”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영역까지 간섭하셔서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승리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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