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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합니다 (고전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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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범 흉악이와 평생을 옳은 일만 하며 살아온 바름이가 죽어 염라대왕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먼저 흉악이를 보고 염라대왕이 물었습니다. "너는 이승에서 뭘 하고 지냈는고?" "예 .... 저는 사람들의 나태함을 긴장감으로 바꾸어주어 생활에 활력소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오호~ 그래 ? 어디 한번 조회를 해보지" 하며 천국 컴퓨터를 작동시켰으나 갑자기 컴퓨터가 다운되어 버리는 게 아닌가. 염라대왕은 설마 거짓말을 할까 싶어 말했습니다. "그래 ! 내 너의 말을 믿도록 하지. 너는 저기 꿀물 통에 들어가 있어라." 하지만 한 평생 남을 속이며 살아온 흉악이는 염라대왕의 말이 못미더워 꿀단지에 손가락만 담그고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바름이를 쳐다보며 염라대왕이 물었습니다. "너는 이승에서 뭘 하며 지냈는고?" "저는 한 평생 특별히 한 것도 없고, 그냥 살다가 왔습니다." "오호! 그래, 별 볼일 없는 인생이었구나. 컴퓨터 조회고 뭐고 너는 저기 똥물통에 들어가 있거라!" 하지만 바름이는 미련없이 똥물통에 풍덩 뛰어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염라대왕은 뭔가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어 컴퓨터가 복구되자마자 둘의 파일을 컴토하게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둘의 판결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사부재리라. 몇 날을 고민 끝에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른 염라대왕은 둘을 불러 소리쳤습니다. "니들은 서로 몸을 핥아 주거라~~~~"

세상에는 선과 악이 함께 하는 모습을 봅니다.

지구를 뒤덮는 대홍수 때, 온갖 동물들이 노아의 방주로 들어왔습니다. 이때 선(善)도 급히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선을 태워주기를 거절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암수 한 쌍이 아니면 태우지 않는다!" 그래서 선은 숲으로 돌아가 제 짝이 될 상대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악(惡)을 데리고 와 방주를 탔습니다. 그 이후로 선이 있는 곳에 악이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탈무드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도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있습니다. 로마제국 말기에 아주 대조적으로 유명한 두 여인이 있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와 네로 황제의 어머니 아그립피나가 그들입니다. 모니카는 방탕한 아들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13년 동안이나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을 회개시켜 성자로 탄생케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이라든가 <신의 도성>과 같은 저술을 한 그는 초기 기독교 교회의 최대의 사상가로, 우리 기독교의 체계는 그의 신학 사상에서 만은 틀이 잡힌 것입니다. 그는 모범적인 신학자요,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결코 그처럼 위대한 신학자, 그처럼 위대한 책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누스라고 하면 으레 어머니 모니카도 함께 기억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네로 황제의 어머니 아그립피나 역시 아들을 무척 사랑하는 어머니였습니다.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아들을 하루 빨리 황제로 세우기 위해 남편을 암살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드디어 아들을 황제 위에 앉혔지만 그로 해서 무슨 일이 생겼는가 ? 네로는 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맙니다. 아그립피나가 자식을 사랑한 결과는 폭군의 탄생이요 파멸이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모니카나 아그립피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신앙적으로 사랑한 모니카는 아들을 성자로 만들었고, 야심적으로 사랑한 아그립피나는 자식도 망치고 자신도 망했습니다. 같은 어머니이지만 한쪽은 천사요, 한쪽은 악마였다 할 수 있습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지체를 혀라고 하기도 합니다.

어느 나라의 왕이 두 신하를 불러서 한 가지씩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과 가장 선한 것을 가져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임무를 맡은 신하들은 온 세상을 두루 다닌 후에 상자 하나씩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은 신하의 상자를 열어보니 거기에는 사람의 혀가 들어 있었습니다. 가장 악한 것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은 신하의 상자를 열어보니 거기에도 사람의 혀가 들어 있었습니다. 두 신하는 혀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라고, 가장 악한 것이라고 열띤 논쟁을 벌였습니다. 왕은 양자의 이야기를 다 들어본 후에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도 혀요, 가장 선한 것도 혀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사람의 혀야말로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도, 가장 악한 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을 비방하고 헐뜯는 부정적인 언어를 말한다면 혀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이 지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형제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언어를 말한다면 혀는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악의 결말은 비참합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세계 기독교 교육 세미나가 있을 때 한 방에서 지내면서 친구가 된 독일 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독일이 패전할 때 12세의 소년으로 히틀러 유겐트(소년단)였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독일 청년들과 국민은 망하기 닷새 전까지도 상상도 못할 무기를 히틀러가 내놓아 연합군을 섬멸하리라고 믿고 있었다고 합니다.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자기 집 지하실에서 자살하였습니다. 그는 죽기 전날 애인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자살할 독약을 실험하기 위하여 오래 키운 애완견에게 먹이고 개의 최후를 지켜보았습니다. 죽은 후 불을 질러 달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신부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습니다. 그때서야 긴장이 풀린 부하들은 총통 관저식당에 모여 댄스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수없이 인간을 괴롭힌 악마의 허무한 최후였습니다.

섣불리 남을 골려 주려고 덤비다가 오히려 자기가 망신당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남을 물속에 집어넣으려면 자기 스스로가 먼저 물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어떤 질이 좋지 못한 관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스위프트를 만났을 때 자기의 말재주를 가지고 스위프트를 골려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관리는 스위프트에게, "한 마디 묻겠습니다. 악마와 목사와의 사이에 소송이 일어났다면, 선생의 의견으로서는 어느 쪽이 이긴다고 생각하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스위프트는 작가인 동시에 목사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를 조롱해서 하는 말임을 얼른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나 스위프트는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악마가 이길 것입니다." 스위프트의 이 말에 관리는 어째서 그러냐고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스위프트는 그제서야 자기가 참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왜냐 하면, 악마는 관청 전부를 자기편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이 말을 들은 관리는 슬그머니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요사스러운 말을 꾸며서 선량한 사람을 골리려던 관리에게 "너는 악마다"라는 말을 재치 있게 표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악은 번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철학자 볼테르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하였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개와 비슷하다. 먼데서 개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동네에 있는 모든 개가 따라서 짖기 때문이다.” 이래서 우리 사회의 전염병적인 악한 사상과 악한 흐름은 우리 사이에서 확산되어 나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악한 행동은 또 다른 악한 행동을 불러 옵니다. 한 시골에 수박농사를 짓는 농부가 살았습니다. 땀 흘리면서 열심히 가꾼 결과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아무리 수박밭을 잘 지키려고 해도 아침이 되면 몇 통씩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속이 상해서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다가 멋진 묘안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주사기 속에 농약을 넣어서 수박 한 통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수박밭 입구에 이러한 경고문을 붙였습니다. “이 수박밭의 수박 한 통에는 농약이 들어 있음. 먹다가 죽어도 책임 안질 것임. 주인백” 그로부터 한 주일 정도 지났습니다. 주인이 써놓은 경고문 옆에 또 다른 경고문이 붙었습니다. 도적이 써놓은 것이었습니다. “이 수박밭에 있는 수박들 가운데 두 통에 농약이 들었음. 그 가운데 한 통은 주인이 알고, 또 한 통은 도적이 앎. 도적 백” 악으로는 악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악을 이기는 것은 오직 선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감동시키시는 것처럼, 우리 크리스천들의 선한 행동과 사랑이 이웃을 감동시키고 변화를 시킵니다.

악의 열매는 자신이 거둡니다. 어떤 청년이 이웃집과 나란히 살면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어느 날 청년이 이웃집 아저씨와 농사일로 크게 싸웠습니다. 화가 난 이 청년은 밤에 이웃 아저씨 밭에 몰래 잡초 씨를 뿌려버렸습니다. 그 밭에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났습니다. 이웃집 아저씨는 해마다 잡초를 뽑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청년은 고소했습니다. 그러다 이 청년이 이웃집 아저씨의 딸과 연애를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아저씨는 지참금으로 그 청년에게 그 밭을 주었습니다. 이 청년은 그 밭에서 잡초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 30년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원수를 갚아 보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뼈아픈 통한뿐입니다. 악은 악으로 돌아 옵니다. 그리고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은 성경이 말씀한 진리입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생각(기조마이)은 '계산된 것을 보관한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기록해 둡니까 ? 원한을 갚을 기회가  오면 갚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악한 것을 생각 한다"는 말은 남이 내게 입힌 상처나  피해를 두고두고 또 생각하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분노가 가득차서 상대방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악한 마음 자세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성품이나 행동에 대해 나쁘게 평가하고 항상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입니다.

원한을 품고 있다가 원수를 갚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이 인간관계를 늘 선하게만 갖는다는 것이 너무너무 어려운 일인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라면 악한 것을 두고두고 기억한다든지 늘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라 던지 하는 것들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의지적으로 할 수 있는 데로 주위 사람들의 좋은 점과 밝은 점만을 보려고 노력하며 할 수 있으면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옛날 원시 사회에서는 어떤 해를 입게 되면 그 원수의  원한을  잊지 않고 갚기 위해 집안에 잘  보이는 곳에다 어떤 표적을 세워 놓고 들며 날며 원수를 갚을 날을 고대하며 칼을 갈았다고 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평소에는 그렇게 순하게 보이지만  누구든지 자기에게 사람들 앞에서 무안을 주면 꼭 기억했다가 원수를 갚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어떤 사람들은 남의 잘 못이나 비행을 비밀 수첩에다 적어 놓았다가 유사시에 하나님께서도 다 용서하시고 자신도 용서해 준다고 말해 놓고는 그것을 조목조목 따져서 짓밟아 버리는 사람도 있다합니다. 수첩에는 기록해 놓지는 않아도 마음속에 깊이 새겨 놓고 기회를 기다리는 것도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되 기억도 아니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사43:25)고 하셨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고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위함이다고 하신 말씀을 유의해야 합니다.

남의 죄를 기억하고 있으면 사실은 나 자신이 손해입니다. 악한 생각을  품고 있으면 자신이 악해 지고 독해 져서 심신에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사람의 인상이 굳어있어 보기가 사납고 마음에 분노가 있으면 마음이 편치않습니다. 원한을 품고 있다가 갚아도 편안해 질수 없습니다. 당한 상대도 그냥 있지 않게 되어 틈을 엿 보게 되어 계속적인 앙 갚음이 있게 되어 고통이 떠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기억하느냐 하는 것은 인생의 중대한 과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악한 것 나쁜 것은 잘 기억하고 있으나 은혜 받은 일 사랑받은 일들은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 18:21-35)

  아브라함 링컨은 평소에 "남의 친절은 잊지 않고 남의 잘못은 기억지 않았다"고 합니다.

  혹시 비밀 장부가 있어 남의 어떤 비행이나 잘못을 기록하는  것이 있으면 오늘 돌아가 다 찢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에 기록해 놓고 이것만은 용서 할 수 없어 하는 것도 버리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악한 것을 생각하는 것은 다 도말하고 찢고 불에 태워서 깨끗한 마음, 사랑이 가득 찬 마음으로 함께합시다.

  왜요?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할  때 나다나엘이 뭐라고 했습니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 라고 할 때 오히려 주님은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로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도리어 칭찬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형제와 이웃의 허물을 잊어버립시다. 머리속에 보관해둔 여러 상처의 기록들을 찢어버립시다.  그때에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진정 거리낌 없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음악도 차이가 있다합니다. 미국의 도로시 리탈락 박사는 최근 2년 동안 템플뷰엘 대학에서 록 뮤직의 식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지속적으로 실험했습니다. 박사는 하루에 세 시간씩 록 뮤직과 사탄 적인 음악을 식물에 들려주었더니 한 달도 못 가 끔찍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린 호박에 주름살이 생기고 토마토는 납작해졌으며 옥수수는 구부러졌습니다. 그 반면 왈츠와 세레나데를 들려준 식물은 생기를 띠고 싱그럽게 자랐으며, 열매도 알차고 윤기가 있었습니다. 식물도 그런데 사람은 오죽할까, 청소년들이 사탄 적인 음악을 계속 들으면 영혼과 생활이 파괴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악한 생각을 버리고 교제의 악수를 하여야 합니다. 미국 부통령을 역임한 험프리의 장례식 날 험프리 미망인의 옆자리에는 놀랍게도 평생의 정적(政敵)인 닉슨 대통령이 앉아 있었다합니다. 상원의원인 험프리는 닉슨을 가장 괴롭힌 정치인이었다합니다. 그런데 험프리는 죽기 사흘 전에 잭슨 목사에게 당부했다합니다. “죽기 전에 닉슨 대통령을 만나게 해주오. 그에게 용서를 구해야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소” 닉슨은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비행기로 달려와 손을 맞잡고 화해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멋진 화해의 악수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선은 다같이 이기게 합니다. 미국의 수도가 워싱턴으로 결정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워싱턴은 도로포장이 되지 않아 비가 오면 도시가 온통 진흙탕으로 변했습니. 도로는 널빤지를 깔아놓아 겨우 한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평소 라이벌 의식이 강했던 두 하원의원이 좁은 길에서 마주쳤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직설적인 란돌프의원은 팔짱을 낀 채 버티고 서서 그레이의원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나는 악당이나 위선자에게는 길을 비켜주지 않는답니다” 그러자 예의바른 그레이의원이 정중하게 인사한 후 말했습니다. “나는 악당에게는 언제나 길을 비켜준답니다” 그는 구두를 벗고 흙탕물로 내려서서 란돌프가 지나가도록 배려했습니다. 그 순간 란돌프의 얼굴이 상기되고 말았습니다. 악으로 악을 이기면 승자와 패자로 나뉩니다. 그러나 선으로 악을 이기면 모두 승자가 됩니다. 예수님이 인류에게 가르쳐주신 승리의 열쇠는 사랑입니다. (인터넷정보클럽- 선으로 악을 이기면 모두 승자가 된다.)

악은 잊어야 합니다. 아프리카에 사는 무징가는 글을 모르는 나이가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서야 예수를 믿게 되었기에 더욱더 예수를 사랑하였습니다. 어느 날 무징가는 세례를 받기 위해 예비문답을 받으러 목사에게 갔습니다. 목사가 물었습니다.  "누가 당신을 위하여 죽었습니까?" "예수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내 대신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습니다." 무징가는 이렇게 대답하며 일단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글을 몰라 예비문답을 대비해 공부할 수도 없었던 무장가였기에 목사의 처음 질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다행히 처음 질문은 무징가가 너무도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이었던 때문입니다.  목사는 계속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를 시험하는 악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무징가는 순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악의 이름'을 아무리 생각해 내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악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만이 그의 가슴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잘못 대답하면 교회에 입교하지 못할까봐 무징가는 목소리까지 떨면서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이름을 알았었으며 제가 예수를 알기 전에는 그가 가끔 저를 찾아왔었으나 이제는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름을 잊어버렸어요."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합니다. 이 말씀대로 악한 생각을 버리는 진정한 사랑의 사람들이 됩시다.
(강성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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