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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미 7:7-11, 히 12:1-3, 요 1: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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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6년 새해 첫날이요 첫 주일입니다. 이날 교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 하나님 앞에서 새 출발을 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알파와 오메가이신 우리 주님께서 새해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은혜와 복으로 충만케 채워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일찍이 주의 종들에게 “네가 어디로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하신 그 약속이 오늘 주님 앞에 나온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니 요셉이 형통하였더라”고 하는 말씀이 있는데 금년 2006년은 “여호와께서 000와 함께 하셔서 000가 형통하였더라”고 하는 신령한 이력을 모두 쌓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특히 금년 2006년은 우리 서부교회에 있어서 기념할만한 해가 될 것입니다. 새 성전이 완공되면 이제까지 우리 교회의 터전을 쌓아 온 이 금곡동을 떠나서 안동의 신개발지역인 태화동 새 성전으로 이사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의 새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하여 가게 된 것과 같은 새 출발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고 하셨는데 오늘 우리에게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하나님의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새 땅으로 가게 된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대로 새 사명자가 되게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어떤 학생이 주말에 뉴욕에 가면서 출발 직전에 마침 자기 앞을 지나가는 신학교수 한분을 만나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뉴욕으로 주말여행을 떠납니다. 내가 주일날 뉴욕에서 어느 교회에 가면 내 인생이 뒤집힐만한 재미를 보고 올 수 있을까요?” 그러나 교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청년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재미있는 교회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인생이 “뒤집혀야 하겠다”는 말은 맞지만 “인생이 뒤집힐 만한 재미”를 보려고 교회에 간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교수는 “학생, 주말에 뉴욕에 가거든 교회에 가지 말고 네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유명한 극장에 가봐라. 거기 가면 네 인생이 뒤집혀지는 재미를 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사형 선고를 하면서도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질문했는데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진리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고 재미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해를 맞이하여 첫 날 첫 주일, 교회에 나온 여러분, 단지 인생의 재미가 아니라 참 생명의 진리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나서 이 일년을 주님과 함께 동행 하므로 승리하고 성취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늘 내 마음대로 계획을 세우고, 내 생각, 내 주관, 내 판단에 따라 행동해 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개입할 수 있는 여백도 남겨두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금년에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들읍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오셔서 주장하시도록 주님께 기회를 드리십시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 주님께서 땀을 피같이 흘리시면서 “아버지,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듯이 우리도 이런 기도와 함께 이 한해를 출발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이 땅에서 최상의 것으로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2. 2006년, 우리 각 사람은 물론 우리 교회에 있어서 새로운 기원이 될만한 이 뜻 깊은 해에 우리교회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라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표어를 제시합니다. 복음서에 보면 한번은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신 일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이 나타났다!”고 하면서 공포에 떨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가 “주님, 만일 주님이시면 나를 명하여 바다위로 걸어오라 하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 주님의 허락과 함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바다 위를 걸어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베드로의 눈에는 큰 풍랑이 자기를 삼킬 듯이 밀려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바다 속으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구원하소서!” 라고 외치며 허우적거리면서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베드로를 건져 주시면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사정없이 몰아닥치는 세속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우리 눈에 주님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 그 반대로 우리 시선이 주님에게서 떠나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에게 우리 시선을 고정시키고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본질을 찾아야 하고 본연의 사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라봅시다”라고 했습니다.

특히 우리가 이제 새 성전을 준공하고 그리로 이사하게 될 때 자칫하면 “건물 신드롬”에 바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라봅시다”라고 했습니다.

(1) 먼저 우리 신앙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지체로 구성된 우리 교회에 있어서 예수님은 머리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신앙의 대상이요 목표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외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같이 혼란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신앙의 대상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공연히 길 가시다가 느닷없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데 이 기본적인 일에 대한 확인이 없으면 그동안의 수고가 하루아침에 무위로 끝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새로 짓는 새 성전의 건물은 매우 필요하고 또 더없이 소중합니다. 2006년도를 위한 우리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 새 성전과 함께 펼쳐나가기를 원하는 우리의 큰 꿈들, 이런 것들이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또 더러는 성급하게 재촉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부터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부터 모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나와 우리 교회의 주인이 되시도록 모셔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을 버려두고 자기들끼리만 돌아가던 그 부모들처럼 하루 종일의 수고가 허사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국의 교회들이 왜 이렇게 혼란한지 아십니까? 교회에 주인을 제대로 모시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 결과 서울 어떤 교회는 40여년을 공들여 쌓은 탑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대구 어떤 교회는 마치 독일의 쾰른 대성당을 연상케 하는 거창한 석조 예배당을 언덕 위에 우뚝 세워놓고도 계속 인간인 자기들끼리 서로 주인이 되겠다고 싸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각 사람과 특히 우리 교회에 참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 자리에 모시고 주님을 믿고 주님 뜻을 따라 교회를 섬겨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 우리 삶을 위해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작년에 제천 명락교회를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그 교회에서 사회봉사를 하면서 내건 세 가지 구호가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처럼”이었습니다. 여기 우리 삶을 위하여 중요한 말은 “예수님처럼”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에서 “작은 그리스도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 그 말입니다. 앗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하루는 제자들을 데리고 하루 종일 거리를 돌다 그냥 돌아 온 일이 있었습니다. 제자 중 한 사람이 “선생님, 오늘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거리를 돌기만 하다 돌아왔는데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프란체스코의 대답은 “그냥 돌기만 해도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예수님을 생각하였을 것이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안동 땅에 서부교회가 있고, 성도 여러분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소돔 성의 의인 열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욱 힘써 주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이웃과의 관계에 대하여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까지 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처럼 사는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표지요, 여기에 흡인력이 있습니다. 여기서 충만한 사랑이 세상으로 흘러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새롭게 더욱 새롭게 주님의 사랑을 충전해야 합니다.

(3) 우리의 사명을 위해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불과 33년, 그것도 공생애는 불과 3년 동안만 세상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떠나셨으나 성령 강림으로 그의 몸인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하시던 사역을 감당하는데 그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마4:23에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서부”라는 영어 WEST의 철자를 머리글자로 해서 “예배, 전도, 봉사, 교육”이라는 네 개의 큰 기둥을 사역의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먼저, 예배를 바르게 드리고, 예배를 열심히 드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전도하는 교회가 되고 전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선교신학자 브룬너는 “뜨겁지 않은 것은 불이 아니듯이 선교(전도)하지 않는 교회나 성도는 교회도 아니고 성도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금년에는 모두 한 사람 이상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봉사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섬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섬길 때 명실 공히 주님의 제자, 주님의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육입니다. 글자 순서로 봐서 마지막이지 우리 주님에게는 가르치시는 일이 맨 처음이었습니다. 복음을 가르치고, 복음에 토대한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니 우리 성도들은 배우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르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대망의 2006년 새해를 맞이하여 무엇보다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바로 믿고, 바로 살고, 사명을 바로 감당하므로 큰 승리와 성취가 이루어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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