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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마지막장은 하나님이 쓰신다 (욥 4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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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프랑스 국민들은 한 사건을 기억합니다. 2차 대전 당시 국경을 지키던 1,200명의 프랑스 군인들은 크리스마스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 안은 군인들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군인들은 빨리 가자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기관사는 노선에 급경사와 급커브가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타고 있으면 위험해서 출발시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사람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내가 왜'하며 고집을 피웠습니다.
오히려 장교 하나가 기관사에게 총을 빼들고 이 기차를 움직이지 않으면 총을 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기관사는 할 수 없이 기차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 급경사가 나타났습니다.
기차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내려갔고, 결국 급커브를 돌다 탈선하고 말았습니다.
그 기차에 탔던 대부분의 군인들은 전쟁터가 아닌 기차 안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고집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고집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엘리사의 고집은 대단했습니다.
스승이었던 엘리야가 '여기 머물라'해도 절대로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그 고집 때문에 스승의 영감보다 더 갑절이나 받았습니다.

우리는 욥기서에서 욥의 고집을 보고 있습니다. '자신은 절대 잘못한 일이 없고, 그래서 죄인이 아니다'라는 고집입니다. 자신은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는 것입니다.(욥32:2)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자 친구들은 할 말을 잃고 돌아섰습니다. 욥은 자기의 고집을 누구에게도 한 마디도 지지 않습니다. 대꾸하고 달려들면서 논쟁하려 합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고집을 피웠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같은 태도를 보입니다.
이 고집이 3장부터 42장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욥기서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7절의 시작인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라는 구절입니다.
여기에 '이'라는 지시대명사는 바로 직전의 문장을 받는 대명사입니다.
그런데 바로 위에는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욥의 회개가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이라면 7절은 '여호와께서 욥의 회개를 받으시고' 혹은 '여호와께서 욥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렇게 이어져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욥41:34절에 있습니다. 그러면 문장구조상 욥42:1~6절은 괄호로 처리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연결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왜 성경이 이렇게 기록되었을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욥기서가 던져주는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욥기서 3장부터 그는 자신의 친구들과 끊임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욥을 보고 침묵하신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개입하십니다. 38장에서 드디어 폭풍가운데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41:34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42장에서 욥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로막고 자기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는데, 한마디도 지지않고 하나님께 덤비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욥의 잘못된 태도는 욥40:3~5절에도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욥이 입을 열고 대꾸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런 욥에게 하나님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계십니다.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시 욥이 그 버릇을 못 버리고 하나님 앞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에"(7절)의 말씀 속에 담긴 뜻은 욥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욥의 고백을 듣지 않으시고,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욥은 엄청난 고난을 당하고 있었지만 아직 그의 자아(自我)가 살아있습니다. 특히 그 입이 살아있습니다.
입술로는 그럴듯하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셨습니다.

계속되는 본문에서 욥의 자아에 대한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욥의 친구들을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 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욥42:8)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은 열네마리의 짐승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을 기쁘게 받으시겠다고 하십니다. 또 하나 바치는 사람은 욥의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을 기쁘게 받으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제물은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에게 가서' 번제를 드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본문을 해석하는 key-word를 발견할 수 있는데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8절),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9절) 라는 구절입니다.
'욥을 기쁘게 받으리라, 받으셨다.' 이것은 제사용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욥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욥 앞에서 제물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불에 타고 있습니다.
그 끔찍한 모습을 욥이 보고 있습니다. 그 욥에게 제물처럼 철저하게 죽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핵심은 내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한, 고난은 계속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발견하는 진리느 무엇일까요? 개인과 역사를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것이 내 맘대로 되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마지막은 하나님이 장식하십니다.
결론을 하나님께서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집을 피워도 하나님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마무리는 그분의 의도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장을 쓰신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언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마침표는 하나님이 찍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습니까? 어떤 상황이든지 아직 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내 삶에 개입하실 것입니다. 아니 이미 개입해 계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유익되게 마무리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장은 하나님이 쓰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마무리하십니다. 결론은 하나님이 내리십니다.
이 믿음이 연말을 맞이한 모두의 가슴에 깊이 새겨지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옥성석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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