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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의 축복 이야기 (창 12:1-4, 히 1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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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아침마다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벨의 순교 이야기”에 이어서 새해 첫 주일에는 “에녹의 동행 이야기”를 했고, 새해 두 번째 주일인 지난 주일에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아침 새해 세 번째 주일을 맞아 “아브라함의 축복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일마다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석 주 동안 매일 새벽마다 80여명 이상의 성도들이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면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때로는 90여명 또는 100여명 이상의 성도들이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면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은혜를 받지 못한 분들은 오늘 아침부터라도 마음을 활짝 열고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내일 새벽부터라도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면서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축복 이야기”를 세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은 순종과 떠남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아비 친척 집을 떠났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지난 주일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은 순종으로 구원 얻게 된다는 사실을 지난 주일 말씀 드렸습니다. 지난 주일 아더 핑크라는 신학자의 말을 인용했는데 오늘 아침 다시 인용합니다. “참되게 회개한 사람은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을 받고 앞으로 있을 분노를 피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당장 천국으로 가는 것은 아니고 아직 세상에 있는데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유혹과 쾌락이 넘실거리고 있다.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서 걷는 길이다. 영혼의 구원은 복종의 길 끝에 있다.” 귀 담아 들어야 할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인 동시에 순종의 조상이었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믿음이 중요하지만 순종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이유도 그의 순종에 있었고, 아브라함이 축복의 사람이 된 이유도 그의 순종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히11:8을 다시 읽습니다.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창12:4을 읽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지난 주일 노아가 들음의 사람이었고 순종의 사람이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아브라함도 들음의 사람이었고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과 순종과 떠남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했을 때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크게는 세상에 대한 집착에서 떠나라는 말씀이었고 가깝게는 집과 가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은 미래 지향적이고 모험적인 믿음의 삶을 살라는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비슷한 말씀을 했습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이나 손자 손녀들]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10:37).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때로는 고향이 믿음의 생활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고, 집이 믿음의 생활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고, 아비나 어미나 아들이나 딸이나 손자나 손녀가 믿음의 생활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떠나는 것이 모험적인 미래를 창조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브람에게 있어서 고향과 친척들이 믿음 생활에 방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브람에게 있어서 고향과 친척을 떠나는 것이 모험적인 미래를 창조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산 정권 아래 있던 고향이 저의 믿음 생활에 방해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떠나는 것이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었지만, 그것이 저로 하여금 믿음의 생활을 보다 철저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모험적인 미래를 창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울로 온지 14년 후 다시 서울을 떠나 혼자서 미국으로 유학을 간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믿음의 생활을 보다 철저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모험적인 미래를 창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어떤 의미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고향과 집과 가족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고 고향과 집과 가족을 떠나는 것입니다. 고향과 집과 가족에 집착해서 거기에 마음과 생각과 시간을 빼앗기면서 믿음의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신자들은 불행한 신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순종과 떠남의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은혜와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믿음과 순종과 떠남의 사람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복을 받되 복의 근원이 될 정도로 큰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재물과 자손의 복은 물론 땅의 복도 하늘의 복도 현재의 복도 미래의 복도 모두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은혜와 복까지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은혜와 복과 명예는 우주적이고 영원무궁한 것이었습니다. 거지 나사로가 천사들에게 들려서 천국에 올라갔을 때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고 했습니다.

  저도 아브라함 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은혜와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처럼 우주적인 은혜와 복을 받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래도 은혜와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도 아브라함처럼 본토 아비 친척 집을 떠났습니다. 믿음의 생활과 순종의 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키면서 믿음과 순종과 헌신의 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의 삶을 풍성하게 축복해주셨습니다. 공부도 마음껏 하게 하셨고, 일도 마음껏 하게 하셨고, 건강한 몸도 주셨고, 물질적인 복도 많이 주셨습니다.

  제가 가는 곳에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복을 내려주시곤 했습니다. 중학생 때 대구에서 3년 동안 피난 생활을 했는데 그때 저는 둘째 이모님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때 이모님이 시장에서 천 장사를 했는데 장사를 잘 해서 돈을 잘 벌었습니다. 어느날 저녁 시장에서 돌아오신 이모님이 기분이 좋아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야, 메헥아, 오늘 시장에서 점을 쳤는데 우리 집이 너 때문에 복을 많이 받는 대. 네가 우리 집 복 덩이래.” 그 말에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귀신도 바로 아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 피난 생활을 하면서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기도를 했으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으실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 제가 같은 반의 친구 하나에게 공부를 가르쳐주었는데 운동만 하고 공부를 하지않던 원주라는 그 친구가 공부를 잘 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의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면서 저를 보면 저를 천사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여러가지 많은 복을 베풀어주시곤 했습니다.

  제가 신반포 집에서 27년 동안 살았습니다. 25평 짜리 아파트 집에서 너무 오래 살았는데 공기가 좀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파트 매매가 없어서 이사를 가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한 반 년이 지난 어느날 제가 복덕방에 들러 집을 내 놓았습니다. 바로 며칠 후 집을 사려는 사람이 집에 와서 집을 보고 갔습니다. 두 주 후에 그 사람이 다시 왔습니다. 아파트를 여러 곳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저희 아파트를 사려고 하면서 계약을 하자고 했습니다. 나중에 복덕방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그 사람이 아파트를 사기 전에 점쟁이 한데 가서 점을 쳤는데 저희가 살던 아파트인 16동 207호가 행운이 있는 아파트라는 점괘가 나와서 저희 아파트를 사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귀신이 알기는 참 잘 아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50년 전에도 잘 알더니 50년 후에도 잘 아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들, 귀신이 있는 게 틀림 없지요? 그런데 아직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바보 중에서도 상 바보지요.

  한 마디 더합니다. 우리가 수지로 이사를 갔는데 우리가 이사를 간 다음 반포 아파트의 값은 1억원이 내렸고 수지 아파트의 값은 1억원이 올랐다고 합니다. 수지에 있는 복덕방 주인은 저를 보면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교수님이 욕심이 없이 이사를 하니까 복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현금으로 당장 이익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물질적인 복을 많이 주셨습니다. 이틀 전에 재정부 기록을 서은숙 권사님과 함께 보았는데 저희가 작년에 강변교회에 헌금한 액수가 8천만원이 넘었습니다. 다른 데 쓴 것을 합치면 1억원은 될 것입니다. 이만하면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물질적으로도 너무 큰 은혜와 복을 주셨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동안 물질적으로도 마음껏 도우면서 살았습니다. 아파트 이야기와 돈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해서 미안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영적인 복을 많이 주셨을 뿐 아니라 물질적인 복도 많이 주셨음을 말하다 보니 아파트 이야기와 돈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학문적인 복도 많이 주셨고, 일의 복도 많이 주셨고, 건강의 복도 많이 주셨고, 가정의 복도 많이 주셨고, 교회의 복도 많이 주셨습니다. 며칠 전에 한 달 만에 우재우 집사님, 류효근 목사님, 정영휘 집사님들과 계속해서 탁구를 10번 쳤는데 10번 다 제가 이겼습니다. 실력이 약한 사람들과 쳐서 제가 이겼다고 생각할지 모르시겠지만 우재우 집사님과 탁구를 한 번 쳐 보시면 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은혜와 복을 저에게 많이 주셨습니다. 강변교회와 강변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축복들 중의 하나입니다. 감사한 것뿐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하다가 저의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을 보면 저는 아무래도 왕자 병에 걸린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합니다. 왕자 병이나 공주 병은 구제 불능의 병이긴 하지만 그래도 행복한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설교로 다시 돌아와서 말씀 드리면 아브라함은 은혜와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셋째, 아브라함은 은혜와 축복 나누어준 사람이었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3).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창22:18). 은혜와 복을 받는 것도 귀하지만 은혜와 복을 나누어 주는 것은 더욱 더 귀합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었고 복의 통로가 되었고 복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를 통해서 누군가가 위로를 받고 은혜를 받고 복을 받을 수 있다면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롯이 복을 받았고 그의 아내 사라가 복을 받았고 그의 아들 이삭이 복을 받았고 그의 손자 야곱이 복을 받았고 그의 후손들이 모두 복을 받았습니다.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라”(창17:16). 아브라함 때문에 사라가 복을 받았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창16:24). 아브라함 때문에 이삭이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으리라”(창28:13,14). 아브라함 때문에 야곱과 그의 후손이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나”(출2:24). 아브라함 때문에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자손이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 아브라함 때문에 그리고 그의 자손 예수님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죄사함과 구원과 임마누엘의 은혜와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십 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야”(눅13:16). 십 팔년 동안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있던 한 여자도 아브라함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9). 아브라함 때문에 삭개오도 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아브라함 때문에 은혜와 복을 받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인류에게 은혜와 복을 전하는 은혜와 축복의 통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하다가 또 저의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저를 통해서도 위로와 은혜와 복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선교사들이 부족한 저를 통해서 그리고 강변 성도들을 통해서 많은 위로와 은혜와 복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에 있는 우리 조선족 학생들이 저를 통해서 그리고 강변 성도들을 통해서 많은 위로와 은혜와 복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개척교회 사역자들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도, 외국인 노동자들도, 노숙자들도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위로와 은혜와 복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한복음주의협의회 모임 후 기독교 언론의 지도자인 최명국 주필이 극동방송국의 권영범 장로님과 함께 제 방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최명국 박사가 그동안 저를 통해서 받은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한 시간 이상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또 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연변대학에 다니는 예란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저와 여러분들이 예란이에게 베푼 사랑과 은혜가 고마워서 일부러 지난 주일 우리 교회를 찾아오셨습니다.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의 인사를 저와 여러분들에게 전했습니다. 중국에서 선물을 가지고 오셨는데, 버섯과 홍삼캔디와 예쁜 박쓰로 포장된 것을 선물로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 포장된 선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중국산 담배입니다. 70평생 교회라는 곳에 가 본 일이 없고 목사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중국산 담배를 선물로 가지고 오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 예배를 마치고 제 방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하는 중 자기도 이제부터는 교회에 다니기로 작정을 했고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을 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예란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은혜와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은혜와 복의 통로가 되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 강변교회에 일주일에 한번씩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와 사랑의 손길을 펴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습니다. 사랑의 편지를 쓰고 양재천에 나가서 사랑의 손길을 펴는 성도들도 여러 명 있습니다.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후손 된 증거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아침 아브라함의 축복 이야기를 했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은 순종과 떠남의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은혜와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셋째, 아브라함은 은혜와 복을 나누어준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모두 아브라함처럼 순종과 떠남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모두 아브라함처럼 은혜와 복을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모두 아브라함처럼 은혜와 복을 많이 나누어주는 축복의 통로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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