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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희망의 새벽을 보라 (창 15: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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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 15장 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임하실 때 "여기나는 풀무"로
그 다음에는 "타오르는 횃불"로 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뜨거운 풀무불에서 나는 연기를 한번 머릿속에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가오시면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신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에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한 역사적 사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시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풀무불, 즉 시련의 시간을 통과 하여야 하고, 그 시련의 역사를 지나고 나면,
그 건너편에 '타오르는 횃불'의 미래, 즉 새로운 새벽이 기다리고 있음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애굽까지 내려가서 430년 내 종살이 하게 될 것을 예언하시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련에 관한 예언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 시련의 건너편에는 회복과 축복의 타오르는 횃불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본문 16절에도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무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풀무불을 지나 타오르는 횃불의 미래가 준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법칙이 담겨있습니다.
먼저 연단을 통하여 철저히 낮아지고, 깨어지고 그 다음에 '풀무불에 달구어진 쇳덩이'가 쓸모 있는 연장이 되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쓰시기 전에 먼저 "깨뜨리시는 과정"을 통과하게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극적인 장면을 잘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야곱의 일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얍복강가 나루터에서의 사건"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의 모습으로 거기서 야곱을 만나 밤새 씨름을 하시지만
결국 야곱의 환도 뼈를 쳐 위골시키시고야 야곱을 떨어뜨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 일로 야곱이 다리를 절게 됩니다.
즉 기세가 한풀 꺾인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실력, 자기 집념, 끈기, 집착에서 내려앉은 아픔의 체험이었습니다.
철저한 깨어짐이 있고나서 야곱은 새 이름을 받게 됩니다.
그 이름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 이름은 훗날 '한 사람'의 이름에서 '위대한 한 민족의 이름'이 됩니다.
야곱의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부서지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 받는 순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은 사울이 바울된 극적 사건도 잘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의 전환점이 '얍복나루'였다면, 바울의 인생의 전환점을 '다메섹'이었습니다.
사울이라는 유대인 청년이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핍박자"를 가만히 보시니까, 그의 열정이 '복음 증거자'가 갖추어야 할 소중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강렬한 빛"으로 임하여 이 청년을 쓰러뜨립니다.
이때 사울은 이런 음성을 듣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 채를 뒷발질 하기에 네게 고생이니라"(행26:14)
가시 채라는 것은 수레바퀴 비슷한 것에 선인장 가시같이 굵고 긴 가시가 촘촘히 나 있는 형상입니다.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 가시 채를 뒷발질로 차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자기 딴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데 그것이 다 소용없는 짓이더라는 것입니다.

사울이 잠시 눈이 멀고, 무력한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그 역시 한풀 기세가 꺾이고 맙니다.
이때 사울도 깨어지고 맙니다.
천하에 기세등등한 사울이 앞을 볼 수 없어 남의 도움을 얻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나서는,
하나님과 그 음성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 역시 이때 "바울"이라고 하는 새 이름을 얻게 됩니다.
풀무불을 지나고 나서 비로소 그도 '복음의 횃불'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풀무불은 듣기만 하여도 뜨겁고, 괴로운 이름이지만,
이 풀무불을 잘 통과한 사람에게는 뜨겁게 타오르는 횃불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풀무불을 잘 통과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풀무불에서 그만 주저앉거나 질식해 버리거나 타 버리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수성가족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풀무불속에서 '방황'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이미 깨어지고 녹아져서 하나님의 쓰실만한 연장으로 만들어져 가고 계십니까?

오늘 우리 주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풀무불을 지나 '활활 타오르는 횃불'로 빛을 비추이는 삶을 살아가길 원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횃불이 되길 원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여야 할까요?

1.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온전한 헌신입니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특별언약'을 주셨습니다.
본문 4-5에서는 '자손의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본문 7절에서는 '땅을 기업으로 주마' 약속까지 하셨습니다.
하지만 8절에서는 아브라함은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하고 반문하여 증거를 요구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9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된 암소와 삼년된 암염소와 삼년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세 개를 취할지니라"
이것들은 지금 이 순간 아브라함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소중한 재산목록들입니다.

게다가 3년 된 것은 짐승이 가장 값이 나갈 시기가 그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과 기업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아멘, 감사합니다'하지를 못하고, '제가 그런 복을 받을 거라는 표징을 보여주세요'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네 가진 재산 중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와라'하십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대화입니다.

여러분은 인생 중 가장 소중한 시기 즉, "황금기"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지금이 황금기 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좋은것', '남 주기 아까운 그것'을 가져오라고 명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네게 주겠다고 한 축복이 네 것이 될 것이지 확인하고 싶으냐'
'그러면 네게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을 내게로 가져와라' 하십니다.

여러분!
예나 지금이나 거두길 원한다면 심어야 하는 게 이치입니다.
로마서 12장은 지금도 우리 크리스천의 삶의 대헌장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양과 염소, 비둘기가 아니고 우리 몸 전체를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물으셨습니다.
'얘야, 나는 네게 모든 것을 다 줄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는 네 전부를 나에게 줄 용의가 있느냐? 이때 아브라함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10절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그는 제사를 드리려고 소, 양, 염소를 반으로 쪼개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작은 제물이 새는 쪼개지 않았습니다.
순종하다가 불순종한 것입니다. 헌신하긴 하였는데 온전히 드리질 못한 것입니다.
온전한 헌신을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분은 거창한 기도를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은 비록 작은 사업인지라 맘껏 드릴 순 없지만 제게 복은 주셔서 대기업을 이루게 해주시면 크게 드리겠습니다.
얼른 듣기에는 참 신앙 좋은 것 같으나 미래에 크레 드릴 결심이면
지금부터 오늘부터 작은 것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내 취미생활은 건드리지 마세요 시간 바치면 되잖아요', '내 돈은 넘겨보지 마세요'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 네 전부를 바쳐라' '그래야 내가 너를 사용하겠나' 풀무불을 지나 타오르는 횃불이 되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깨뜨리시는 과정을 통과하여야 합니다.

사도행전 28장 27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백성을 연단하시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거기 소회향이라는 식물이 등장 합니다.
일종의 꽃씨인데 떡을 만들어 먹을 때 속에 넣는 것이라고 합니다.
헌데 사도행전 28장 본문에 소회 향을 작대기로 털고
대회 향은 막대기로 털고 곡식은 수레바퀴에 넣고 돌리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식으로 묘사하면 참깨는 작은 작대기로 두드려 털고 콩은 도리깨질을 해서 털고
보리는 방아에 넣고 찍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바 되어서 사람 되어 갈 때 깨 같은 사람은 작대기로 툭툭 쳐서 깨우쳐 주시고
콩같은 사람은 도리깨질 하듯 두들겨 주셔서 깨우치지 시기도 하시고
어떤 사람은 그 정도만 가지고는 절대 곡물이 되지 않겠기에 절구방아에 넣고 사정없이 찧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에 풍파가 몰아치거든 하나님이 나를 사람다운 사람, 하나님다운 인생 만드시기 위하여 도리깨질 하십니다.
절구에 넣고 사정없이 찧고 계시다 하시길 바랍니다.
도리깨질을 당하고 풀무불속에 던져지는 일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산산이 녹아지고 부서져야 하나님이 쓰시고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면
이 한해는 나 자신이 죽어지고 하나님이 쓰실만한 일군으로 다시 탄생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미국에 블라드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엘리트코스를 밟고 보스턴대학의 교수로 있었는데
이 여인은 구원의 감격도 모른 채 그저 교회에만 나가는 신앙인 이였습니다.
당뇨병을 앓고 있던 이 여인은 합병증이 찾아오고 인생의 위기를 느낄 때 간절히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병세는 혼전될 기미를 보이질 않았습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혹시 이 질병에 제가 고난을 당하면서 나 자신이 녹아지고 하나님을 위하여 할일이 없을까요?'
그리고는 대학교수직을 포기하고 선교사로 남은 생을 헌신하게 됩니다.
선교사로 남은 생을 살면서 감동받을 때마다 시를 썻는데 그 시들 중 이런 시도 있었습니다.
'주님 뜻을 이루소서 조용한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이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내가 깨어지고 있는 것은 지금 내가 횃불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풀무불을 지나 타오르는 횃불가은 삶을 살고자 하다면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지금의 고통의 건너편에서 나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봐야 합니다.
고통은 너무 힘겹지만 반드시 끝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새벽이 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지금 희망의 새벽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본문에 아브라함의 자손
즉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야 할 풀무불은 400년간의 애굽생활이였습니다.
하지만 14절 '그 나라(애굽)를 내가 장차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애굽을 징계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 풀무불같은 애굽에서 이끌고 나올 때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15절 '너는(결국)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고난과 고통은 계속 되는 게 아닙니다. 평안하게 지낼 미래도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을 부여잡고 지금의 고난을 견뎌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 오늘 본문 17절의 장면 입니다.
여기가 클라이막스입니다.
'해가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사이로 지나더라'
먼저는 풀무연기를 보았고 연기가 지난 다음에 횃불이 등장 하였습니다.
횃불은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사이에 '언약관계'가 성립 된 것을 의미합니다.
언약이라는 히브리말 '베리트'가 영어로는 'To Cut'(자르다)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옛 유대풍습에 동물을 반으로 갈라놓고 그 사이를 언약당사자들이 함께 지나는 것으로
언약성립이 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오늘 분문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횃불만이 지납니다.
즉 이 언약은 하나님이 맺으신 일방적인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백성이 되고 이 언약을 붙들고 고난의 길을 이기면서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언약 백성 됨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맙니다.
정치적 해방을 가져다 줄 메시야는 없다고 단정케 된 것입니다.
그 실망감은 너무나 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엠마오를 가던 두 제자는 자기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소망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저들은 곧 다시 예구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자기들의 인생을 주님 앞에 드릴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말씀 붙드는 순간, 그들의 희망이 살아난 것입니다.
풀무불연기 속에 갇혀 계신 분은 여기 안계십니까?
저 건너편에 주님이 예비하신 횃불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주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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