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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사람 (마 6: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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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에 있어 ‘물질’이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영혼과 더불어 육체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물질 가치의 척도인 ‘돈’ 역시 중요한 것입니다. 물과 공기에 비유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에 버금가게 중요한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야!”

  성경에서도 물질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합니다. 신기한 것은 고상하신 예수님도 물질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비유 38개 중에서 16개 이상이 물질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를 보면, 기도에 관한 언급이 5백번 정도인데 비해 물질에 관한 언급은 2천 번이 넘습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암시해 줍니까? 하나는 그만큼 물질이 인간의 삶에 중요하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물질생활이 신앙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이 좋은 사람?” 하면 어떤 사람을 생각합니까?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 기도 많이 하는 사람? 말씀대로 사는 사람? 전도 많이 하는 사람? 봉사 많이 하는 사람? 맞습니다. 그런데 빠진 게 있습니다. 헌금 많이 하는 사람? 부분적으로 맞을 수도 있지만,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물질생활을 성경적으로 바르게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복된 인생을 살고,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너무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 짧은 시간이지만 ‘성경적 물질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부디 이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 모두 물질생활에서 승리하시고 복된 인생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1] 물질에 관한 말씀 : 나 자신을 위한 말씀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 말씀 중에서도 엑기스와 같이 소중한 말씀입니다. 그 가운데 본문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물질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보물’은 물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19절과 20절에서 반복하며 힘주어 강조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어떤 표현입니까? ‘너희를 위하여’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바로 너희 자신을 위한 축복의 말씀이니 명심하라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물질 이야기를 꺼내시니까 혹시 부담을 느끼십니까? “돈 내라는 이야기 아냐?” 예, 돈 내라는 이야기도 물론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좀더 포괄적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생활 전반에 관한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목사가 헌금 이야기 하면 아주 싫어합니다. 전도해 보면 의외로 헌금 문제로 시험을 받아 교회 안 나간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사이비 교회나 일부 몰지각한 목회자들이 나쁜 의도로 헌금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어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를 왕왕 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본인들이 스스로 오해하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러다 보니까 목회자들 중에는 가급적 교회에서 헌금 이야기를 안 꺼내는 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어쩌면 저도 그 부류에 속하는 한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홍 목사는, 신반포교회는 헌금 이야기 안 해서 참 좋아~ 교회 건축 할 때도 헌금 강조하지 않아도 잘 됐잖아. 매년 재정도 모자라지 않잖아.” 물론 좋은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라 듣기 좋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스스로 헌금하시는 성도들에게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가슴이 뜨끔해 집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님이 그렇게 강조하시는 물질문제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것은 분명한 직무유기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헌금 이야기가 아니라 물질생활에 관한 종합적인 말씀을 전하는 게 중요한데, 헌금 이야기 안 하려고 물질 문제를 소홀히 한다면 정말 곤란한 일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그리스도인의 물질생활에 관해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이 점을 양해하시고, “아, 오늘 말씀은 나 자신을 위한 축복의 말씀이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쪼록 저도 여러분도 물질생활에 승리하심으로 하나님께 칭찬받고 복된 인생 살아가시기를 다시 한번 축원합니다.

[2] 성경적 물질관 : 하나님이 주인, 인간은 청지기

  본문을 관찰해 보면 짧지만, 중요한 성경적 물질관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몇 가지를 정리해 드립니다.

  ① 물질의 가치 : 중요한 수단
  본문에 나오는 ‘보물’이란 말은 ‘물질’ 혹은 ‘돈’을 가리킨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보물이라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역시 중요시합니다. 그렇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대로 물질은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물질 자체를 선하게 혹은 악하게 보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에 있어 오해를 합니다. 물질은 악한 것이므로, 부자는 나쁘고 가난한 자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성경적이 아닙니다. 반대로, 물질을 무조건 선한 것으로 보고, 물질이면 만사 오케이인 것처럼 마치 행복의 마스터키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이것 역시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은 물질이 중립적 가치를 지닌 ‘수단’ 혹은 ‘도구’라고 말씀합니다. 물질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 선악이 결정됩니다.

  ② 물질의 주인 :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모든 물질의 주인이십니다. 이것이 창조 원리입니다. 이 원리대로 하나님이 물질의 주인이 되면 선하게 됩니다. 반대로 인간이 주인이 되려고 하면, 되지도 못하고 악하게 됩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창조 당시 하나님이 물질세계를 지으시고 인간에게 그것을 다스리도록 맡기셨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주인의 뜻을 받들어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겁니다. 

  ‘청지기’(벧전4:10)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헬라어로 ‘오이코노모스’인데, ‘오이코스’(집)이란 단어와 ‘메노’(관리하다)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말하자면 주인을 대신해서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청지기로 살아갈 때 물질생활을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경제라는 단어입니다. 영어로 Economy인데, 이 단어가 바로 헬라어 ‘오이코노모스’(청지기)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입니다. 경제 활동을 잘 하는 방법은 곧 청지기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가 3장 보면, 에덴 동산에 침투한 뱀(사단)이 여자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게 만듭니다. 그때 사단이 유혹한 말이 무엇입니까?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겁니다.(창3:5 참조) 새빨간 거짓말이죠.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이 됩니까?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범죄한 인간은 죄의 종이 되고, 물질의 종이 됩니다.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롬6:23)으로 영원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요8:34 “ ...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창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본문 19절.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  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고대에는 은행 제도가 없어서 집에 돈을 보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도둑이 허술한 흙벽을 뚫고 들어와 강탈해 갔습니다. 혹은 돈에 좀이 슬거나 녹이 슬어서 없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은행 제도가 있으니까, 안전합니까? 인간이 영원히 소유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잠시 소유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잠시 빌려 갖고 있을 뿐입니다. 실패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빼앗기거나 손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곧 물질의 가변성, 유한성입니다. 오늘날도 도적과 좀과 동록이 형태는 다르지만 수두룩합니다.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예기치 않은 지출이 생깁니다. 도난이나 사업 실패, 잘못된 투자로 돈을 날리고, 빌려 줬다 떼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흔히 이런 말을 하죠. 사람이 술을 마시는데, 그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삼켜버린다고 합니다. 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돈을 벌고 쓰는 것 같지만, 그 다음에는 돈이 돈을 법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돈이 사람을 삼켜버립니다. 인간이 청지기임을 망각하고 주인 행세를 하면 오히려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맡기기 전까지 결코 물질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성경은 누누이 증거합니다.

시39: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잠23: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전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물질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욕심을 부리고 집착하다 보면 우상숭배가 됩니다. 이런 사실을 유의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과 나 자신의 청지기임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3] 청지기의 삶 :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

  거듭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청지기로 살아가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그런 사람이 신앙이 좋은 사람이요, 하나님이 진정 축복하는 복된 인생입니다.

  ① 하나님의 주권 고백 : 십일조 헌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 마음속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고백은 입술을 거쳐 행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특히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려면 물질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헌금입니다. 그 가운데 핵심이 십일조 제도입니다. 하나님은 그 고백의 진정성을 확인하시고자 십일조 헌금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정말 내가 너의 주인이냐?” 물으십니다. 그래서 무조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고, 주신 것 중의 10분의 1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고개를 넘어야 진정으로 성숙한 신앙이요, 물질생활에서 참 자유와 기쁨, 축복을 얻게 됩니다.

  어느 책을 보니까 십일조 헌금을 군대의 훈련에 비유해서 설명해 놓은 게 있는데, 적절한 것 같아서 소개해 드립니다. 비행기에서 낙하하는 특수 훈련에서 예비 단계로 모형 타워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이 있습니다. 그 높이가 ‘십일’(11)미터인데, 인간이 가장 크게 공포를 느끼는 높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닥에 쿠션 장치를 해두고, 또 안전하게 줄을 묶어놓고 하는 훈련이라 괜찮습니다. 하지만 맨 처음에는 겁이 납니다. 그래서 머뭇거리면 조교가 뒤에서 밀쳐냅니다. 그러면 하는 수 없이 떨어지는데, 한 번 두 번 하다 보면 할만 하거든요. 그 후에 실제 비행기에서 낙하산 하나 메고 뛰어 내려도 여유가 생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십일조를 처음 하려고 하면 겁이 납니다. 손해 보는 것 같고, 생활이 어려워질 것도 같고 ... 그러나 괜찮습니다. 오히려 여유가 생기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풍성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증하십니다.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약속 붙들고 담대하게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평생 물질 문제에서 자유함을 얻고 풍성한 복을 누릴 줄로 믿습니다.
 
  ② 잘 버는 법 : 하나님의 법도대로
 
  모든 물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내가 일해서 버는 것 같지만,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게 아니라, 훔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돈을 벌어야 합니다. 정직, 근면, 성실 등의 덕목들을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

  ③ 잘 쓰는 법 : 누리고, 드리는 삶
  ‘버는 축복’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쓰는 축복’입니다. 실컷 벌어놓고 쓰지 못하는 경우 많은데, 불쌍한 일입니다. 우리는 바르게 벌되, 번 것 중에서 십일조를 드린 후 나머지를 갖고 잘 써야 합니다. 잘 쓰는 법은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잘 누리는 법, 잘 드리는 법 등입니다. 

i) 잘 누리기 :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을 갖고 누릴 분복을 갖고 있습니다. 누리는 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은 사회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에서나 교회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거나 상처를 주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주변에 가난한 이웃이 있는데도 무관심 한 채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죄악입니다. 이런 사항을 주의하면 얼마든지 누려도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물질을 통해 주시는 기쁨입니다.

  벌써 고인이 된 지 오래된 어느 재벌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말년에 속병으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흰죽에 간장을 찍어 연명했습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혀를 차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 있으면 뭐 해?” 맞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버는 축복과 더불어 ‘누리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ii) 잘 드리기 : 모든 사람이 그래야 되지만, 특히 그리스도인은 누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마6:20~21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여기서 보물을 하늘에 쌓는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장차 하늘나라에 가서도  하나님 앞에 기억되고 칭찬받을 영원한 가치와 목적을 위해 사용하라는 겁니다. 이것은 낭비가 아닙니다.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심지어 정당하게 누리는 것도 결국은 사라지는 겁니다. 그러나 영원한 가치를 위해 사용하는 것, 즉 하나님께 드리는 것만이 영원히 남게 됩니다. 이것은 천국은행에 예금하는 겁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가 한번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설교를 했답니다. “여러분! 돈 많이 버십시오!” 그랬더니 사람들이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그 중 한 사람이 “그 목사 설교 잘 하네” 하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웨슬리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근검절약해서 많이 저축하십시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그 목사 정말 설교 잘 하네” 하고 맞장구를 칩니다. 그런데 이어서 이렇게 설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많이 드리십시오!” 그 말을 들은 그 사람은 인상을 쓰면서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그 목사 잘 하다가 막판에 죽을 쑤네.”

  여러분, 버는 것도 축복이고 누리는 것도 축복일 수 있지만, 가장 큰 축복은 드리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 이게 가장 큰 축복일까요?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가 안 그런가 ... ? 여러분, 신앙은 있는데 물질이 없습니까? 그건 괜찮습니다. 앞으로 주실 수도 있고, 없다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다 살아갈 만큼 주십니다. 하지만 물질은 있는데 신앙이 없는 것은 한심한 일입니다. 당장은 풍족할지 모르지만 멸망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도 없고 신앙도 없으면 너무 억울합니다. 그런데 신앙도 있고 물질도 있고, 물질을 바르게 사용할 만한 성숙함도 갖고 있다면 얼마나 좋은 겁니까?

  아프리카 차드 선교 현지를 둘러보면서 저는 목사라도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짐을 느꼈습니다. 쓸 데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그럴 때가 종종 있고, 다른 선교지에 가서도 그럴 때가 있지만, 이번에는 더욱 절실했습니다. 선교 현지에서 물질이 살아 움직였습니다. 여러분이 드린 헌금이 사역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다닙니다. 자동차가 되어 복음전도자들은 태우고 다닙니다. 건물이 되어 사람들을 모아 구원하며 그 인생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돈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죽은 돈이 아니라 ‘산 돈’입니다.
 
  여러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고, 남은 위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 은혜, 물질을 주신 은혜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또한 불쌍한 영혼과 사람들을 위해 사랑으로 드리는 겁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나 자신을 위한 것’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드리는 자에게 풍성한 물질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 ” 그리고 저 천국에서 영원한 기업과 영광스런 상급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딤전6:18~19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성도 여러분! 물질을 ‘버는 복’도 받으시고 ‘누리는 복’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 가난해도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며, 주신 것에 자족하시되 더 주실 것을 기대하고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오늘 말씀을 기억하고 가장 큰 복 ‘드리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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