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 (막 2:1~12)

  • 잡초 잡초
  • 421
  • 0

첨부 1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환자에게 ‘이 사람아,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마가 2:5)

  예수님을 만난다면 인간의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은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 14:6),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람들로 예수님을 만나게 해줄 수 있다면 사람들은 인생의 문제해결과 함께,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큰 전환을 이룰 것입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주고 예수 그리스도께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답과 함께 인간의 문제를 해결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한다는 것은 가장 값진 것을 나누어주는 참된 나눔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전해주고 예수님께 사람을 인도하는 행위를 증언자로 말씀하시면서 전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귀중한 일로 여기셨기에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에게 전도할 것을 마지막 명령으로 당부하신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 28:19-20)

  성경은 예수님을 만나게 해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이란 곳의 어떤 사람의 집에 머물고 계실 때에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온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중풍병자의 병은 중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병은 죄를 범함으로 그 죄에 의해 만들어진 병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무력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의 친구들은 그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인도했습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죄에서 용서받고 중풍 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죄의 멍에에서 자유를 얻었고,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됨으로 스스로 자신의 생활에 책임질 수 있는 구원의 삶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인도한 네 친구는 저주받은 친구의 인생을 구원하는 값진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하여 친구를 살린 생명의 은인이 된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사랑은 예수님께 사람을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 인도하면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인생을 구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알게 해주고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전도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럼 전도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전도는 확신에서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예수님에 대한 나의 확신이 무엇이냐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풍병자의 네 친구는 예수님께 친구를 데려가면 예수님께서 고쳐주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기에 어려운 조건에서도 친구를 예수님께로 데려갔습니다.

  나의 확신이 무엇이냐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누가 우리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줍니까? 죄가 만들어놓은 문제투성의 삶을 누가 바로 잡아줍니까? 인간이기에 인간으로 진실할 때에 밀려오는 공허감과 절망감을 누가 해결해 주시겠습니까? 영혼의 상처의 고통과 아픔의 삶을 누가 치료해 주겠습니까? 누가 나의 육신의 질병을 치료해 주겠습니까? 이 세상 인간의 세계 속에 발생하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 문제는 누가 해결해 주겠습니까?

  예수님만이 이러한 모든 것의 답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36)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가 만든 모든 문제의 해답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때에,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 있게 소개해 주고 예수님을 만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라”(딤후 3:14)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확신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십시다. 예수님에 대해, 그 분만이 우리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명한 그리스도인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40일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그들을 만나 부활의 주님을 확증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이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을 증거 하는 증언자가 되도록 성령이 임하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 성령의 강림하심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대로 그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시자 그들은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확신을 가진 베드로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두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행 2:38).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람을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행 2:38-39) 베드로의 이 확신 있는 증거에 삼 천명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확신 있는 믿음을 가지고 기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살리는 복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전도는 참 사랑에서 하는 것입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병상에서 고통 당하는 친구를 극진히 사랑했습니다. 여러분, 이 친구들의 사랑을 보십시오. 친구들은 중풍병자인 친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사랑하는 친구를 고치고자 예수님께 데려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친구를 침상에 뉘이고 그 침상의 네 모퉁이를 메고 예수님께로 향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집에 사람이 많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붕은 평평하고 외부의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메고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지붕은 들보를 중심으로 작은 나무들을 걸치고 짚으로 덮고 진흙을 발라놓은 것이기에, 그 지붕을 벗겨내고 친구의 침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방안에 모여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흙먼지가 쏟아져 내리는 무례한 일이 됨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사랑은 네 친구의 마음이 하나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수고의 헌신을 하게 했습니다. 사랑은 적극적이고 모험적인 결단을 하게 했습니다. 사랑은 용감하게 행동하게 했습니다. 네 친구의 합심하는 희생과 수고 적극적이고 모험적인 용감한 행동을 보시고 예수님은 중풍병장에게 죄의 용서와 함께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사랑에 대하여 성경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다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참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가장귀한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희생하게 하시는 사랑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랑을 가지고 이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을 가졌기에 인간영혼구원에 한마음으로 함께 하는 성도가 되십시다.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적극적이고 모험적인 희생을 기뻐하는 믿음을 가지십시다.

  전도는 사랑의 행동입니다. 전도하는 수고와 전도하는 적극성과 모험적인 용기는 사람의 생명을 사랑하는 사랑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사람들을 예수님께 소개하고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그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전도는 구원해야 한다는 열망에서 하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구원시키기 위해 예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친구를 살려야 한다는 뜨거운 열망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친구를 향한 사랑과 그 친구를 질병에서 구원해야 한다는 뜨거운 마음이 친구를 예수님께 데리고 간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학생 때에 저를 가르쳐 주신 교회학교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그분은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우리들을 가르쳤는데 교회에서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한 몸에 받으신 선생님이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머니는 고생하시면서 아들을 공부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과로와 영양실조로 중병을 앓게 되에 죽음을 앞에 두고 의식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선생님은 자기의 손가락을 베어 핏방울이 떨어지는 손가락을 어머니에 입에 물려주었습니다. 어머니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의 뜨거운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기적적으로 어머니가 살아나셨습니다. 부모님을 향한 선생님의 효심을  모든 사람이 칭찬했습니다. 어머니를 죽음에서 살려내야 한다는 선생님의 뜨거운 마음은 손을 베는 일을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구원의 뜨거운 열망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희생시키셨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셔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너무 두려우셨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갈 수 있으면 그렇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셨습니다. 뼈 조각과 쇠 조각이 달린 채찍으로 채찍형을 당하셨습니다. 로마군인들의 채찍질에 살이 터지고 뼈가 드러났습니다. 머리에는 가시관을 엮어 씌우므로 피가 흘러 내렸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로마군인들은 십자가에 예수님을 눕히고 예수님의 양손과 겹친 발목에 쇠못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자 피와 물을 쏟으셨습니다. 이 때 하늘은 어두워 졌습니다. 하나님도 아들의 십자가의 아픔을 차마 보실 수 없어 눈을 감으셨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 십자가의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약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는 우리 모든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사53:3-6)

  왜 하나님은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아픔을 자처하셨습니까? 왜 예수님은 가혹하고 잔혹한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까? 그것은 인간구원의 뜨거운 열망 때문에 자초하신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사람들을 죄와 죽음과 멸망에서 구원해야 한다는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의 인간구원의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해야 한다는 뜨거운 마음이 전도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도시기를 바랍니다. 인간구원의 뜨거운 열망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복된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김성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