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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총과 지혜의 길 (행 7: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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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 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 들어 큰 환난이 있을 쌔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요셉이 보내어 그 부친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세겜으로 옮기워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사도행전 7:9-16.

  사랑을 많이 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베풀 줄 압니다. 가정에서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사람은 결혼한 후에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힘듭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베풀고, 경험 있는 사람이 경험을 나눠줄 수 있으며, 공부를 해본 사람이 자식들 공부에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요셉의 이야기가 그와 같습니다. 스데반은 순교하기 직전 설교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줄줄이 나오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택과 축복을 받아 전 세계 방방곡곡에 나눠주었습니다. 요셉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역시 은총을 베풀며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삶에도 아브라함과 요셉의 믿음의 이야기들이 반복되어 그 은총이 우리의 가족과 가문과 교회와 한국 사회에도 반복되기를 원합니다.

  요셉에게는 네 가지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임재의 은총입니다. 요셉은 시련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9절). 요셉은 어린 시절에 형들의 미움을 사 아버지의 심부름을 갔다가 형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다가 맏형 르우벤이 살려 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돈을 받고 요셉을 팔았고 아버지에게는 양의 피를 바른 옷을 갖다 주며 짐승에게 먹혔을 거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요셉은 어린 시절에 가족으로부터 미움과 시기와 거부를 당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보다 더한 어려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자기 가족에게 배반당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일 것입니다. 여러분도 가족이나 친구에게 배반을 당했을 수 있습니다. 자녀가 대학에 떨어졌을 수도 있고, 사업이 잘못될 수도 있고, 몸이 아플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믿고 알고 있으면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복되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에도, 불행하고 아프고 힘든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같이 계시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확실히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그는 애굽에 팔려갔지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더라”는 이 말 한마디가 요셉의 미래를 잘 암시합니다. 어렵고 고통스럽고 실망스럽고 낙심되는 그 순간에도 요셉처럼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고 믿고 전진하면 반드시 요셉의 축복이 나타납니다.

  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구원의 확신입니다.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녀도 이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게 달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시고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은 나를 영원히 사랑하신다.’ 이것이 구원의 확신입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임재의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알고 사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요셉처럼 노예로 팔려가는 불행을 당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 끝이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는 것 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감동 주셔서 예수님과 여러분이 영원히 하나 된 이 사실을 확신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리라.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것이 우리 주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모든 환란에서 건져내사 애굽의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10절). 은총(favor)이란 상대방이 나를 특별히 좋아해서 나에게 선과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이 잘 쓰는 참 좋은 표현 하나가 "You are very special to me"(너는 내게 정말 특별해)라는 말입니다. 자녀가 다섯이라면 다섯 명 각자에게 따로 말해야 합니다. 모두 다 있는 데서 “너희 모두가 내게 특별해”라고 하면 별로 재미가 없어요. 하나씩 불러서 말해줘야 아빠와 엄마가 나를 특별히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favor’입니다. 사람에게는 이런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만 선택하신 줄 아십니까? 여러분도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이 보이고 영혼이 보이고 예수님이 보이고 십자가의 은혜가 보입니다.

  요즘 골프 동호회 회원 10명이 예배에 참석하고 계십니다. 이 분들은 예수 믿는 회원 한 분에게 걸려서 몇 주 전부터 우리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보니까 5명은 2부 예배에 나오셨는데 나머지 5명은 안보여서 “어디 가셨습니까?” 했더니 1부 예배에 왔다 가셨다는군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세상에 골프 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당신들이 여기에 걸렸어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선택하셨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이분들의 눈을 뜨게, 귀가 열리게, 마음이 트이게 하셔서 하나님이,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천국이 보이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favor)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도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Special favor! 우리가 이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요셉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은총을 받으면 사람에게도 은총을 받습니다. 예수님도 “사람과 하나님 앞에 은총을 입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 받은 은총을 인하여 사람들에게도 은총을 입기를 원합니다.

  요셉은 어머니의 은총을 입은 아들입니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요셉이 태어나기 전, 10명의 형이 있었고 레아가 낳은 디나라는 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라헬에게 은총이 나타나 요셉이 태어났으니 라헬이 그를 얼마나 사랑했겠습니까! 아이들이 어렸을 때 충분한 사랑을 받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저도 아이가 셋 있습니다. 첫째 아이는 참 특별하게 여겨졌습니다. 자라면서 하는 모든 것이 다 신기하기만 했어요. '아' 소리만 내도 "와~ 쟤가 아 하네!", 'A'만 해도 "와~ 천재구나!" 하면서 첫째 아이가 하는 것은 무조건 다 최고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다 경험하고 나니까 둘째 아이가 '아' 해 봤자 그거 뭐 옛날에 다 들은 거예요. 그런데 막내는 마지막이니까 또 특별하게 여겨졌어요. 둘째가 참 어려워요. 그래서 ‘second syndrom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격적이고 형을 끌어내리고 동생을 윽박지르는 경향입니다. 그래야 자기가 살거든요. 형과 동생 사이에 끼어서 죽을 지경이고 부모의 관심을 받기가 힘들지요. 우리 집도 둘째 아이가 잘 울었어요. 저는 운다고 아이를 구박을 했지요. "너 왜 맨날 우냐?"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second syndrome 이었어요. 내가 둘째가 특별하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 잘못을 깨닫고 어느 날 둘째만 데리고 맥도날드에 갔습니다. 그 아이가 ‘나도 아빠에게 특별한 존재’라고 느낄 때까지 여러 번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랬더니 점점 울지도 않고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다 큰 요즘에 보니까 제일 편해요. 그래서 지금도 저는 초기에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아이들을 만나거나 전화를 하면 "You are special. I love you!" 이렇게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의 자녀들 중에도 누군가 자기가 좀 특별하지 않다고 느끼는 아이가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부터 요셉처럼 특별한 아들이요 딸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맥도날드에 데려가시기 바랍니다. 단둘이만 데이트 하세요.

  요셉은 또한 아버지의 특별한 은총을 입었습니다. 옷도 특별하게 입혔기 때문에 질투를 당했고 팔려가서 고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어머니의 은총과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경험이 있어요.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결국은 다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가운데 어린 시절에 부모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지 못한 분이 있으면 부모님을 용서해 드리세요. 이제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 받고 요셉처럼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알고 깨달아 은총을 베풀며 사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바로 왕과 애굽에 은총을 베풀었으며, 자기 가문 75명에게 은총이 되었고, 아버지의 소원대로 고향으로 모셔 장례를 치러드리는 은총을 베풀었고, 자기를 팔아버린 형들을 전부다 용서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이 넉넉하니까요. 은혜와 사랑과 친절을 충분히 받아본 사람들은 얼마든지 그대로 베풀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인간의 사랑, 부모의 사랑은 부족했을지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여러분 속에 풍족히 넘쳐서 그 체험 때문에 용서할 수 없던 사람들도 다 용서해 주고 은총을 베푸는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둘째로, 요셉은 지혜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두 가지의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약3:13-18). 세상적인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마귀적인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선한 지혜와 악한 지혜입니다. 이 둘은 그 뿌리가 다릅니다. 참된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라고 잠언은 말씀하십니다. 뿌리가 선해야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 수많은 열매들이 맺힙니다. 그 지혜가 어떤 지혜인지 어떻게 분별합니까? 그 열매를, 결과를 보면 압니다. 야고보서 3장에 보면 악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13-16절).

  이 악마적 지혜의 특징은 첫째, 시기입니다. 남을 질투하는 것입니다. 이는 세속적이고 육적이고 악마적인 지혜입니다. 시기하는 마음으로 움직이면 이미 큰 문젯거리입니다. 둘째, 국어 성경에는 다툼으로 번역되었으나 싸우는 것이라기보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self-seeking)을 말합니다. 모든 것을 자기 유익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지혜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므로 벌써 방향이 다릅니다. 셋째, 자기 자랑을 합니다. 넷째, 거짓말을 합니다. 진리가 그 안에 없습니다. 다섯째, 세상적입니다. 그 지혜의 근원이 세상에서 오는 것입니다. 여섯째, 정욕적입니다. 정욕은 감각적인(sensual) 것을 의미합니다. 이성적 신앙적 영적 판단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일곱째, 마귀적입니다. 그 뿌리가 마귀이므로 결과는 혼란을 일으킵니다. 여덟째, 악한 일입니다. 열매들이 혼란을 일으키고 그 결과가 나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잘하겠다고 말했어도 결과가 나쁘면 나쁜 것입니다. 아직 우리 속에도 이런 좋지 않은 지혜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깨끗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편 선한 지혜, 영적인 지혜, 하나님의 지혜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약3:17-18).

  첫째, 깨끗합니다. 어떻게 깨끗합니까? 자꾸 씻는 것입니다. 어떻게 씻습니까? 말씀으로, 예배로, 기도로, 회개로 씻습니다. 남의 더러운 얼굴을 보면 "왜 저렇게 더러운가? 혹시 내 얼굴도 저렇게 더럽지 않은가? 내게도 잘못이 있지 않은가?" 하며 자기를 계속 씻어 갑니다. 이것이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입니다. 여러분, 지속적으로 자신을 씻어서 깨끗한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거기서 놀라운 하늘의 지혜가 나타납니다.

  둘째, 평화스럽습니다. 위로서부터 오는 지혜는 평화를 도모합니다. 제가 여러 번 이야기 했습니다. 내 속에 사랑이 없으면 사랑을 줄 수 없고 내 속에 평화가 없으면 평화를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에 평화를 주시옵소서. 성령의 폭풍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와 같이 계심을 믿고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심을 믿고 나를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나에게 평화를 주시옵소서." 여러분이 평화로우면 다른 사람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위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셋째, 관용입니다. 부드러운 것입니다.

  넷째, 양순입니다. 양보를 잘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양보를 했으나 결국에는 내가 다 얻습니다. 이삭과 아브라함과 룻의 예가 그렇습니다. 내가 양보를 했는데 결과는 다 내 것입니다. 양보를 했는데 하나님이 부어주시고 축복해 주시고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자기가 잘난 것 같았는데 마지막 가면 그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버리면서 양보를 잘 하는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지혜입니다.

  지난주에 싱가포르를 방문했다가 그곳 사람 몇 분과 점심을 같이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30년이 넘는 친구들로 그 동네에서 유명한 아주 성공한 사업가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50세가 넘도록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놀렸습니다. "너 아직도 결혼을 안 하면 어떻게 하냐?" 했더니 "왜 결혼을 하냐? 이상한 사람들이네.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열심히 돈을 모았는데 결혼하는 날로 그 돈의 절반이 아내 것이 될 것 아닌가.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지! 그럴 순 없어!" 아마 싱가포르 법은 일단 결혼을 하면 재산의 절반이 배우자의 것이 되는가봅니다. 자기가 죽도록 번 돈을 결혼 한번으로 아내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말입니다. 친구들이 "아기를 낳아봐. 아기 낳으면 틀리다" 하니까 "아기를 낳으면 그 자식들이 다 가져가지 않냐?" 하더군요.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이 "너는 돈 밖에 모르는군. 너는 돈이 하나님이야!" 하면서 흉을 보더군요.

  하나님의 지혜는 가진 것을 주면 그것이 변해서 축복으로 돌아오고 또 축복으로 돌아옵니다. 돈은 쓰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갖고 있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써야 돌아옵니다. 이 컵에 지금 물이 가득 차 있는데 마셔야 다시 부어줍니다. 안 마시면 물이 썩습니다. 양보하는 것이 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여러분이 양보하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아름다운 모습과 영적 지혜를 보시고 가만 계실 것 같습니까? 반드시 채워 주십니다. 롯은 요단의 그 아름다운 초원들을 모두 차지했습니다. 자기가 다 가진 줄 알았습니다. 삼촌 아브라함 생각은 추호도 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낙심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고개를 들어 동서남북을 쳐다보라!" 하셨습니다. 또 "하늘을 쳐다보라!" 하셨습니다. 그 때가 밤이었는지 하늘에는 별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롯은 자기가 다 가진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네가 눈으로 본 모든 것이 다 네 것이다. 내가 너에게 주겠다!" 영적인 지혜, 하나님의 지혜가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요셉이 경험했고, 여러분과 저도 이 지혜를 구하면 똑같은 은총을 경험할 것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또한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습니다.” 편벽은 편애하는 것으로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을 말합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사람은 싫어. 이런 사람은 좋아"라고 할 때 편견이 있는 것입니다. 만나 보기도 전에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편벽, 편견, 편애가 있습니다. 이런 것은 하늘로부터 온 지혜가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온 지혜는 품는 것이죠. 이럴 때 좋은 열매들이 나타납니다. 즉 하늘의 지혜, 영적인 지혜, 선한 지혜는 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뿌리가 하나님이요, 성령님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을 요셉이 받았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서 요셉이 받은 축복을 모두 체험하게 되길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요셉은 구원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모든 환란에서 건져내사"(행7:10). 모든 환란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제가 싱가포르에서 만난 분들은 처음 만난 분들인데 그분들이 점심을 사줘서 잘 대접받았습니다. 목사가 앉아서 대접만 받고 가려니 좀 안된 생각이 들어서 "여러분이 목사를 대접했습니다. 제가 목사로서 여러분을 위해 할 수 있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여러분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습니다. 둘째는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제가 떠나기 전에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고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했더니 "무슨 좋은 소식입니까?" 하더군요. "God loves you! 하나님께서 당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영원 전부터 사랑하셨는데 여러분이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땅 끝까지 가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일러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여러분의 죄를 사해주시고 하늘나라를 주실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간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문젯거리가 있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는 오래 살지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영원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떠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말씀을 전하고 나서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주니 고마워하셨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비행장까지 따라 나왔습니다. 헤어질 때 제가 그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Lony, remember. God loves you with eternal love.“ (하나님께서 당신을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했더니 "Thank you!"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구원해 주십니다. 이 구원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쪽에서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 쪽에서 나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어 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생의 축복이 있습니다. 이 구원을 받고 아는 사람이 구원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에서도 구원해 주셨습니다. 형들로부터, 상인들로부터,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감옥 간수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애굽의 총리로 만들어 주셔서 많은 은총을 왕과 나라와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며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축복이 여러분의 것임을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부친 사후에도 끝까지 부친의 소원을 들어 드린 사람,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고 남들을 도와주고 어려움에서 구원해줄 수 있는 이런 종류의 사람이 요셉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사람, 요셉 같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나눠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가문의 역사와이 교회의 역사와 우리 사회와 동네와 직장의 역사 속에, 여러분이 아브라함이 되시고 요셉과 같은 은총을 받아서 그 은총을 충분히 나누고 베풀며 사는 하나님의 축복이 꼭 있기를 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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