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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을 팔아 생명을 사세요 (사 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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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는 사고파는 이야기가 더러 나옵니다. 대부분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비유한 말씀들입니다.
누가복음 22:30,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싸움이라는 겁니다. 영적인 싸움입니다.

잠언 23:23,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진리는 어떻게 해서든 사되 아무리 어려워도 팔지 말라는 겁니다. 여기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어떻게 해서든 믿어야 하고, 또한 이 믿음은 어떤 경우든 잃어버려선 안 됩니다. 왜? 예수님이 곧 구원이니까.
마태복음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물과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사야 할 것이 하나님의 나라인 겁니다.

오늘 본문 1절,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젓을 사라.”
“내게 와서 사라.”
사야합니다. 그런데 누가 사러가나요? 물로 나아가는 자는 누구입니까? 목마른 사람입니다. 속담에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 “목이 말라야”
그런데 모두들 목마름을 못 느낍니다. 생활의 넉넉함, 먹을거리의 풍성함,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옛날보다 훨씬 잘 삽니다. 지금들 애쓰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넉넉하게 살자고 하는 것입니다. 여행도 하고, 차도 굴리고, 가끔 외식도 하고…….
문제는 배는 불렀는데 영혼은 굶주렸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적존재입니다. 그럼에도 그 영혼이 굶주림을 먹을거리로 채우려고 합니다. 영혼의 굶주림을 느낄 때마다 더 먹는 것, 입는 것 등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합니다. 그러다 안 되면 술, 마약을 찾습니다. 마약으로 인한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팔이 부러지면? 병원에 가야합니다. 육신의 질병은 병원으로 가면 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압니다. 그런데 영혼이 병들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릅니다.
의원은 병자에게 필요하듯이, 예수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불러 구원시키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혼의 병은 죄인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죄 없는 자가 있습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모두가 영적으로 병든 자입니다. 이들을 치료할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만이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다.” 왜?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 밖에 허락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는 분입니다. 누가 여러분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어요?  공자? 소크라테스? 노자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여러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대속재물이 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리로 오라”고 사십니다.
“내게 나아오라”
(3절)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6절)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7절)
이건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영원히 죽습니다. 그 영혼이 죽습니다. 살아 움직이지만 그 안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천하를 다 얻어도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본문의 물, 젖과 포도주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옷은 좀 허름한 것 입어도 되지만 물과 포도주와 젖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물과 젖과 포도주. 장식품이 아닙니다. 이건 생명과 직결된 것입니다. 이건 반드시 사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보고 당신께 나아와 사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것 아닙니다. 만약 복음이 공자나 노자가 말한 것 같이 세상 사는 이야기라면 꼭 믿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 사는 좋은 이야기야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러나 복음은 내 영혼을 살리는 겁니다.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믿으면 살고 안 믿으면 죽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어떻게 할 거냐?” 하고 지금, 당장, 우리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성경은 곳곳마다 생명 걸고 그 복음을 사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무얼 얻어요? 영원한 생명 얻어요. 그렇다면 생명을 값으로 치면 얼마나 될까? 얼마면 살 수 있겠어요? 돈으로 계산이 안 됩니다. 생명은 생명으로만 살 수 있어요.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생명을 내 놓으셨다.” 돌이 떡이 되게 해서 배불리 먹는 것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사뿐하게 뛰어 내리는 것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권세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값을 치러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무얼 요구 하셨어요? 그래요. 생명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거듭나지 아니하면.”

“물과 젖과 포도주를 사라.” 그랬더니 물이랑 우유랑 포도주 사다 놓고 “다 됐다?” 아니에요. 복음을 사라는 것입니다. 생명 보다 소중한 복음을 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있는 것 다 팔아서.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은 샀습니다. 값진 진주를 발견한 진주 장사는 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샀습니다.
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까? 그분에게 영생이 있으니까요. 은혜의 창고는 바닥이 나질 않으니까요.
그러나 그 은혜서 창고 문 언제나 열려 있는 것 아닙니다. “언젠가 어떻게 되겠지.” 이것으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창고는 바닥나지 않으니 언제라도” 그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당장 그것을 사야 한다는 겁니다. 언제 어느 때 주님 오실지 모르니까요.

한 젊은이가 소크라테스를 찾아왔습니다. 지혜와 학식을 원해 먼 길을 왔노라고 말하는 그 젊은이를 소크라테스는 바다로 데려갔습니다. 물이 허리까지 차는 곳으로 데려가서 갑자기 청년의 머리를 물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버둥거리는 청년. 그러나 그냥 두었습니다. 한 참 후 거의 죽을 뻔 한 청년을 데리고 해변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물속에 있을 때, 자네가 가장 갈급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 젊은이이가 대답합니다. “숨을 쉬고 싶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말합니다. “자네가 물속에서 공기를 원했던 것만큼 지혜와 학식을 원한다면 그것을 가르쳐 달라고 그 누구에게 물을 필요 없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속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숨을 쉬고 싶은 심정 그대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사서 먹으라.”고 하십니다.
복음은 이론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그냥 묵상하는 것 아닙니다. 말씀을 읽거나 듣고 그냥 “옳습니다.”하고 고개 끄덕거리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맛보는 것입니다.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소중한가? 그렇다고 장롱 깊숙이 넣어두어선 안 됩니다. 진열장에 잘 진열하고 보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물과 젖과 포도주를 왜 샀을까? 먹으려고 샀습니다.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먹어본 사람만이 맛을 압니다. 한때 C.F 중에, 샘표간장이 있었습니다. 그 노래 중에 보면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간장” 그랬습니다.
신앙생활이 왜 재미없습니까? 신앙생활이 왜 힘듭니까? 맛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맛을 본다는 것은?
요한계시록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말씀을 읽고 듣고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 그것이 곧 맛을 본다는 것입니다.
  백화점이나 마트의 “시식코너”에서 먹으라고 권합니다. 어떤 사람은 먹고, 어떤 사람은 안 먹는다. 그 자리에 서서 몇 개씩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먹을거리에 대한 맛을 누가 알아요? 먹어본 사람입니다. 그것도 몇 개씩 먹어 본 사람입니다. 말씀에 순종해 보십시오. 어떻게 되나?
잘 아는 신명기 28:1-6. 거기에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시만 약속한 복이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말씀에 순종해 보세요. 그게 복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맛을 아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먹고 누리는 것입니다.

병들었습니다. 성경 읽으니까 열두 해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믿음으로 손을 대었더니 고침 받았습니다. 그 능력은 어디에 나갔어요? 예수님으로부터.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는 겁니다. 능력은 예수님께서 나갔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결정입니다. 그러나 그 능력을 내 것으로 하는 것은 내 믿음입니다.
먼저 읽고 들어야합니다.
본문 (2절)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절)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2절의 “좋은 것”, “기름진 것”은 3절의 ‘영혼을 살리는 양식’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희가 어찌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즉 영혼을 살릴 수 없는 것을 위해, 배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들 즉 아무리 수고해서 모아 들인다 해도 영혼의 살릴 수 없기에 헛되고 마는 것들을 위해 수고하고 있습니다(2절).
출애굽. 그때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관심은? 먹는 것입니다. 마시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야 말로 살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들 때문에 그들의 영혼까지 살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 했고,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13장 가네스 바네아.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의 보고는 “우린 죽었다.”는 겁니다.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기에, 그 땅에 사는 사람은 거인들이기에, 우리 육신이 거기 가서 편안하게 살기는 틀렸다는 겁니다. 역시 육신의 문제였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겁니다. 먹고 사는 것? “그들이 우리의 밥이다.”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 분명하면 육신이 사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육신이 살기위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까먹습니다. 육신이 살기 위해서는 시간도, 돈도, 힘도 엄청나게 투자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위해서는 눈곱만치 드립니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하나님! 하나님!” “주여! 주여!”
마태복음 6:33에서 예수님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2절은 “내게 듣고 들을 지어다”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얻으리라.” 누구 말씀? 하나님 말씀입니다! 세상에 이 보다 더 확실한 것 어디 있어요? 세상 약속은 도장을 몇 개 씩 찍어도 깨질 때 허다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으로 틀림없습니다. 그런데도 “아멘” 그러면서도 양식이 아닌 것 위해 죽자 사자 뛰어 다녀요?
양식이 아닌 것 배부르게 못 할 것. 즉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 얻으려고 할 짓 안 할 짓 다 하면서 하나님의 일은 바빠서 못하겠다고요?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말 같아요?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습게 들려요?

출애굽. 그들이 가는 곳은 젓과 물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렇다고 문제 그대로 젓과 굴이 흘러요? 아니지요. 그 말은 곧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다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면 젓과 꿀도 풍성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 누가 들어갔어요?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고, 늘 불평하던 사람들 그들의 광야에서 다 죽었어요.

사랑 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듣는 자의 것입니다.
생명을 주고 생명을 사는 자의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물과 포도주와 젖을 파는 곳입니다. 강대상은 진리라고 하는 최고의 상품을 진열해 놓는 곳입니다. 누구든지 나와 사먹기만 하면 새로운 기쁨과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제, 생명을 팔아 생명을 사십시오.
이제, 세상의 생명을 팔아 영원한 생명을 사십시오.
(이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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