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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히 노하여 (삼상 20:24-34, 엡 4:25-32, 마 5: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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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다 열 왕 가운데 웃시야 왕은 16살 때 왕위에 올라서 52년 동안 장기에 걸쳐 통치하였습니다. 그의 통치기간 초기에는 스가랴가 왕의 자문역으로 있으면서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왕은 스가랴가 가르쳐 주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웃시야 왕과 모든 일이 잘 진행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국방을 든든히 하였으며, 국민들이 안심하고 자기 생업에 종사하므로 그야말로 국태민안 하였습니다. 자연히 웃시야 왕의 명성이 사방으로 퍼졌고 각국에서 왕에게 조공을 바쳤습니다. 이 모든 일은 그가 하나님을 잘 섬겼을 때 하나님이 도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의 자문역을 맡았던 스가랴가 죽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왕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졌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왕은 숱한 업적을 쌓았기 때문에 너도나도 왕의 치적을 입이 마르도록 칭송했습니다. 그랬으면 웃시야 왕으로서는 당연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로라”고 교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헤롯 왕이 시돈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했더니 그 연설을 들은 아첨꾼들이 헤롯 앞에서 “이는 바로 신의 음성입니다”하고 손을 비볐습니다. 그런데 이 미련한 헤롯 왕도 역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영광을 인간인 자신이 찬탈하려 했습니다. 그랬을 때 성경에는 단 한마디로 그의 종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았으므로 충이 먹어 죽으니라”.

그런데 웃시야 왕도 역시 교만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월권을 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이스라엘에는 3가지 중요한 직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이었습니다. 이 3직분은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입법 사법 행정부가 서로 독립적으로 자기 기능을 수행하듯이 왕은 왕으로서의 직무, 선지자는 선지자로서의 직무, 제사장은 제사장으로서의 고유한 직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만해진 웃시야 왕은 자기가 해서는 안 될 영역인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성전에 들어가서 오직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분향을 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제사장이었던 아사랴가 왕의 이 월권행위를 가로막았습니다. “임금님은 들으시오. 분향하는 일은 오직 이 일을 수행하도록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만이 할 수 있습니다. 왕이 할 일이 아닙니다. 왕께서는 지금 하나님께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니 속히 이 거룩한 곳에서 물러나십시오”.

만일 웃시야가 겸손했더라면 제사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교만에 빠진 그는 감히 왕이 하는 일을 가로막는 사람을, 그가 비록 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분향을 막 시작하려던 왕이 제사장의 이 말을 듣고 그것도 성전 제단 앞에서 몹시 화를 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웃시야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샀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입니다. 그 즉시 그는 성전에서 쫓겨났고 평생 나환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의 부당한 분노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가 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분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이 아니라 내 감정 나아가서는 내 감정을 지배하는 사탄의 조종을 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십계명에서는 “살인하지 말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형제에게 노하는 것”이 바로 살인과 다름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2. 오늘은 본문에서 몇 가지 분노에 대하여 살펴 보겠습니다.

(1) 사울 왕의 분노가 있습니다.

30절에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라고 했습니다. 왜 부왕인 사울이 왕자인 요나단에게 그토록 화를 냈습니까? 그것은 요나단이 다윗을 위해 변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인 사울 왕이 이미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나단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더 안타깝고 슬픈 일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아버지가 사리를 올바르게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비록 아버지요 왕이지만 이미 모든 판단력을 잃어버린 왕에게 무조건 맹종할 수 없는 것이 요나단의 신앙이요 또 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을 지켜주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지금 다윗이 왕의 행사에 결근하도록 한 것도 사실은 왕자 요나단이 친구요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을 보호하기 위하여 꾸민 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볼 때 왕자인 요나단이 자기의 원수인 다윗을 보호하고 변호하는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죽어 없어져야한다고 생각한 사울에게 이런 왕자가 어찌 용납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여기 사울을 보면 그야말로 분노 탱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왕으로서 아버지로서 할 수 없는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라고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다윗을 죽이려고 하던 사울이 자기 아들인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고 대들기 까지 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울의 분노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순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분노입니다. 자기 눈에 거슬리는 말도, 행동도, 아니 존재 그 자체까지도 용납할 수 없다 그 말입니다. 이런 이기적 감정 폭발은 결국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요,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요, 그리고 자기 자신을 망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이런 감정 폭발을 스스럼없이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현실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서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아닙니까? 이리하여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때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이기적인 죄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2) 요나단의 분노가 있습니다.

34절에 (요나단이) “심히 노하여 식탁에서 떠났다”고 했습니다. 여기 요나단은 왜 심히 노했습니까? 부왕인 사울이 아무 죄도 없는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일이 너무 분해서 아들이지만 그는 다윗을 위하여 심히 노했습니다. 죄는커녕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사울을 위하여 더없이 충성된 신하인 다윗이 그토록 아버지의 미움을 받게 된 것이 너무 마음아파서 심히 노했습니다. 부자사이이지만 아버지 사울의 분노와 아들 요나단의 분노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요나단의 모습은 그의 진실한 신앙 때문이요, 그 신앙으로 다윗과 맺은 우정에 지극히 충실한 친구로서의 의리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요나단의 우정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웠겠습니까?

옛날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7년 흉년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가나안 땅에도 역시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애굽에 갔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고 여러 가지로 테스트를 합니다. 결국 요셉이 형들을 용서해 주고 그 일가족을 받아들이도록 한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습니까? 나중에 요셉이 베냐민에게 불리하도록 일을 꾸미고는 베냐민을 잡아두려고 했을 때 형제 가운데서 유다가 나서서 “내가 베냐민을 대신하여 종이 되겠으니 제발 베냐민만은 아버지께 보내주십시오”라고 울면서 간청했습니다. 과거 자기를 팔아먹을 때 형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제간의 의리였습니다. 이 모습을 본 요셉이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엉엉 울면서 자기가 바로 요셉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일가족이 애굽으로 이사 오게 되어 그 흉년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웃을 자기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했으며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곁에 있는 형제가 바로 익명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형제를 사랑하고 위해 주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다윗에게는 분노가 없었습니까?

사실 다윗은 사울 왕이 그토록 까닭 없이 자기를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지만 한번도 그 왕을 미워하거나 죽이겠다고 생각한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건 가운데 둘을 들 수 있습니다. 한번은 다윗을 추격하던 왕과 그 군대들이 피곤해서 모도 곤하게 잠에 빠져 있을 때 다윗일행 중 한 사람이 가만히 왕의 진중으로 가서 물병을 가져 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왕을 해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또 한번은 다윗이 숨은 굴속으로 왕이 용변을 보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그때도 다윗은 왕의 옷을 좀 베었을 뿐 왕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가 홍안 소년이었을 때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습니다. 특히 골리앗이라고 하는 거인 장군이 사정없이 이스라엘을 협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왕은 물론 온 이스라엘 군인들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 채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마구 훼방하는데도 누구하나 그 방자한 골리앗을 대항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설사 저 거장 골리앗을 이길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아니 설사 그에게 죽임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정없이 훼방하는 저 이방인에게 누군가는 한번쯤 분노라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 다윗이 본 안타까운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도저히 이것을 그냥 듣고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비록 군사경험은 없다고 할지라도, 아직 나이가 어려서 골리앗과 일대 일로 싸워서 이긴다는 승산은 없을는지 모르지만 저 오만방자한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만은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다윗이 썩 나서서 골리앗을 향하여 물매를 던졌습니다. 그가 한 말을 들어보면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가노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이렇게 분노 했을 때 하나님은 다윗을 도와주셨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이겼고 결국 이스라엘은 천적 블레셋을 물리치고 승전했습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가룟 유다에게 인솔된 로마 군인들이 그 현장으로 몰려와서 예수님을 체포했습니다. 그때 썩 나서서 칼을 휘둘러 군인 중 한 사람의 귀를 자른 제자가 누구였습니까? 베드로였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거두라”고 하셨지만 사랑하는 선생님이 체포당하는 현장에서 적어도 칼이라도 휘두를 수 있는 의분을 가졌던 베드로가 수사도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여러분의 감정을 다스리십니까? 단지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욕구 때문에 형제에게 그렇게 혈기를 부리셨습니까? 예수님은 그것이 바로 살인죄라고 하셨습니다. 성령 충만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속사람을 주장하시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형제를 위하여 얼마나 그 사랑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어려운 형제, 부당한 처우를 당하는 이웃을 위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사랑을 나타내는데 인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십자가 사랑의 내용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주님을 위하여, 그리고 주님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여러분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나설 수 있습니까? 어떤 분들은 공연히 바깥으로 다니면서 교회를 비방하는 언행을 서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몸에 못 박는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성도 여러분, 주님을 위하여, 형제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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