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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금처럼 녹아지라(막 9:4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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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마가복음 9장 말씀 속에서 우리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서로 화목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형제, 자매들끼리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지난 6월 6일 현충일에는 우리 교회 남전도회들이 '가족동반 나들이'를 하였는데,
다녀오신 분들에게 '어땠는냐'고 물으니 한결같이 "너무너무 재미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자식 키우는 부모치고 자녀들이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 보기 좋은 분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저 부모에게 기쁨을 안겨주려면 형제간에 화목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감싸주고, 어려운 일 있을 때 서로 돕고 힘이 되어주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최고입니다.
목사는 우리 성도들이 형제끼리, 자매끼리, 친 형제 자매처럼 화목하고
서로 돕고, 힘 모아 기도로 동역하고 격려하며 신앙으로 끌고 밀어주고 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사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성도의 무리에 동화되지 못하고 "외롭게"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픕니다.

체질적으로 어디를 가나 잘 섞이는 분이 있고, 체질적으로 낯을 가리고 남들이 다가올 때까지
마음 열지 않고 기다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 모두다 예수님 체질, 수성교회체질로 바뀌시길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가조동반으로 야외에 나가서 요리도 함께 하여 나눠먹고, 게임도 하고, 운동도 하고,
밤새 이야기꽃도 피우다 보면, 주일날 예배당에서 멀찌감치서 얼굴이나 보던 때와는 너무 다른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이때 사니는 이야기하고, 기도 제목들도 나누고, 혈통이 같은 형제보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나눈 믿음의형제자매가 얼마나 귀하고 귀한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본문에서 우리들에게서 '화목한 모습을 보길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9장의 주제는 "화목"이요,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몇 가지 암시적인 방법으로 "하나 되는 길"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앞의 본문 29절 말씀을 봅시다.
'기도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의 무능력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떤 사람의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을 데려온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이 사람은 자기 아들이 귀신에 사로잡혀서 거꾸러지고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파리하여 가는 것을 보다 못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달라'고 부탁한 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제자들은 누구도 능히 귀신쫓는일을 하질 못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처음마나고 자기들 힘으로 감당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현실을 안타깝게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명령하셨습니다.
이에 귀신이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갔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스승인 예수님께 조용히 묻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때 예수님이 주신 말씀이 29절에 "기도"라고 나와 있습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기도가 능력인데, 기도하지 아니하고 용기만 가지고도 소용이 없고, 기도 없이 큰소리치고, 다 아는 척하여도 소용없고,
아무것도 해낼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고, 능력을 얻어야 담을 헐고 하나 됨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기도의 사람이 막힌 담을 헐어낼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화해할 수 있는 용기도 얻습니다.
이 '기도'가 하나 됨을 향한 크리스챤들의 갖추어야 할 큰 덕목이라고 암시한 다음,
그 다음에는 '경재심, 승부욕을 버리라'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믿는 무리 속에서 '내가 으뜸이 되고자 하는 마음, 시기, 질투하는 마음이 있는 한 하나 됨은 있을 수 없다'
본문 9장 33절 이하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오면서 길에서 뭔가 심각한 '언쟁'이 있었음을 알고,
그것이 무엇 때문이냐고 물으십니다.
'너희가 지금까지 그렇게 심각하게 나눈 대화가 무엇이냐, 무엇이 지금 너희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느냐.'
이때 제자들은 잠잠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제자들 간에도 자기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경쟁심'을 가지고, 그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 지는 것을
예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본문 35절에 예수님은 "끝이 되어라"
"섬기는 자가 되어라" 하면서 어린 아이를 용납하는 너그러움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은 "나만 옳다"고 하는 편견, 고집, 아집이 있어서는 하나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나는 나대로 살아가는데 그것이 남에게 상처가 되고, 절망감을 안겨주고 덕을 끼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가 되려면 자기 하고픈 말다하고, 자기하고픈 것 다하면서 살아선 안 됩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나 그것이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고, 실망시키고, 낙심케 한다고 하면 멈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차라리 절름발이로, 차라리 한 눈, 할 발만 가진 장애를 입어서라도 범죄하여 지옥에 가는 것보다는 낫다"

이렇게 예수님은 마가복음 9장에서 "하나 됨의 길"에 관하여 강조하신 다음, 본문 마지막 50절에서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 하라"고 결론을 내리고 계십니다.
기도하고, 승부욕 버리고, 어린 아이 같은 자를 용납하는 너그러움을 갖추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라고 교훈을 하신 예수님이
'소금을 네 속에 두라. 그리고 서로 화목 하라'고 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볼 때마다 내 속에 소금이 있는가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 교회에 소금이 있습니까?
우리 성가대에, 봉사부에, 전도부에, 선교부에, 주일학교에, 우리 직장과 사회에 소금이 있는가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 '하나 되자'고 역설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진실로 하나 됨을 이루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어찌하여 '하나 되자'는 외침은 많은데 하나 되는 일이 어려운 것일까요?
그것은 "진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 되자는 외침 속에 누구라도 이기주의가 내재되어 있거나 거짓과 위선을 안고 있으면 결코 하나 될 순 없습니다.
정치하는 분들이 왜 지탄의 대상의 됩니까?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하나로 뭉치자고 하는데, 사실 각자 꿍꿍이속이 다르기에
결국 또 다시 분열되고, 깨어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야합과 화합이 얼마나 다른 것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내 이득을 얻기 위하여 합치는 것이 야합이고,
내 이득을 과감히 포기하고 나를 희생하면서 하나를 이루는 것이 화합입니다.
1934년에 일찍이 인도의 간디는 "이렇게 가다간 나라가 망한다"하면서 일곱 가지 망국론을 가르쳤습니다.

1.원칙 없는 정치
2.도덕 없는 상업
3.노동 없는 부
4.인격 없는 학생
5.인간성 없는 과학
6.양심 없는 쾌락
7.희생 없는 신앙 입니다.

지금 우리시대 우리 민족이 귀담아 듣고 적용해야 할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이리도 하나되가가 힘든가. 그것은 자기를 희생시키면서 하나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전과 같이 진 중동의 6일 전쟁 상대가 안 되는 전쟁 이였지만 조국의 전쟁발발 소식에 중동국가의 젊은이들은
장병을 피하여(국적을 바꾸진 않았지만) 달아났고,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해외유학 학업을 중단하고
고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합니다. 민족이 하나가 되면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 되자 그 외치는 지도자들이 자기자식은 군에 안 보내겠다고 국적 바꾸는 지.
정말 전쟁이 벌어지면 정말 민족의 앞날은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민족이 하나 됨을 이끌어 내는 진정한 민족 화합을 이루어 낼 줄 아는 소금 같은 지도자가 있는 것이 아쉬움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강조하고 계십니다.
"너의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 하라" 옛날 분들은 음식 장만하고 손님을 청하여 대접하면서
꼭 빠뜨리지 않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음식의 간이 맞나 모르겠네요.".
'간이 맞는다.'는 말은 그 집의 고유한 음식의 맛이 손님에게 적당한가를 묻는 것입니다.
짜고 싱거운 정도가 '간' 입니다. 결국 소금은 음식의 맛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금은 절이는 방법으로 방부제 역할을 한다.
소금은 부패방지역할을 하는 동시에 소금의 중요한 역할은 뻣뻣한 것을 죽여 부드럽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여러분 구약 레위기 2장 13절의 말씀을 보시면
"너 모든 소제물(이것은 채소를 드리는 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여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하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 '연악의 소금'이라는 말이 아주 중요! 합니다. 소금언역. 언약의 소금이라는 말은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셔야 할 것은 구약의 제물이란 아무리 귀한 것이어도 그대로 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것을 잡아야 합니다.
제물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송아지를 암양을 비둘기를 제단 앞에서 잡아 그 되는 받습니다. 그리고 잡기 전에 이 제물들은 '깨끗한 것'이어야 합니다.
병든 것 죽어가는 것은 안 됩니다.

레위기 2장 13절은 소제를 드릴 때는 칼로 잡는 것이 아니고 소금으로 잡으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소금은 시퍼렇게 살아있는 식물을 부드럽게 숨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소금으로 드리는 제사법입니다.

"소금을 치라"는 말씀은 "네가 숨죽어야 하겠다", "어깨에 힘들어간 네가 힘을 빼야 하겠다",
"너무 눈이 높은 네가 좀 낮추어야겠다",
"네가 가장 잘 났고 똑똑한 줄로 아는 네가 이제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 하여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소금치라'고 하시는데 내가 소금치지 아니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친히 소금을 치십니다.
숨죽이고, 힘 빼시고, 낮아지게 말 들어 버리시고 겸손하게 하십니다.
소금 치시는 하나님의 역할이 무섭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는 만드시기 위하여 사람 자기교만이 산산이 부숴질때까지
진노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십니다.

잘난 줄 아는 사람 자기 힘으로 여기까지 온 줄 착각하는 사람, 그 생각 깨끗이 청산하고 하나님 앞에 두 손들 때까지
하나님은 소금을 치십니다.
받으실 만한 제물 만드시는 하나님의 방법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헌신될 때에는
성도가 화합 하는데 아무 장애가 없는 "부드럽게 숨죽이는 자"로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연납되는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 되어야 할 믿음의 공동체에서 하나 됨을 이루지 못하는 요인은 아직도 숨이 덜 죽은 가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숨이 덜 죽으면 은혜를 못 받습니다.
성도간의 교제도 모르고 공동체 속에 하나 되는 것이 불편하고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이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소금입니다.
여러분 소금의 특성이 형체는 녹아져도 맛은 잃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수님도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요 12장 24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은 땅에 떨어져 죽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은 땅에 떨어져 죽어진다 형체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 씨앗은 곡식의 많은 열매로 나타나는 것 같이 소금의 역할이 이렇습니다.

옛날 어느 집사님이 돌에 맞아 순교 하였습니다.
그는 비록 돌무더기 속에 피투성이가 되어 숨을 거두지만 그의 신앙은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떠나지 않았습니까?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 된 우리와 하나님사이에 화목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그분은 화목제물로 생을 내어 놓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그 분의 거룩한 형체는 다 사라진 것 같은데 그분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화목케 하는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신 것 입니다. 이것이 소금 입니다.
나는 죽고 없어지나 그로 인하여 하나 됨이 일어나고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 되기를 외치는 이 말씀에서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가 바로 소금이라. 네가 녹아지고 네가 숨이 죽어야 한다. 그래서 화해와 화목의 역사가 이뤄진다"
우리 가정, 우리 수성교회, 우리 대한민국 가슴에 '녹아진 소금'들로 인하여
화해와 화목의 역사가 일어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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