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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실추된 명성 (수 6:2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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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사용하는 단어가 변한다.
그 중에 하나가 이름이라는 단어입니다. 예전에는 자기 피알을 잘해야 한다.
요즘에는 브랜드의 가치를 극대화하라 이런 식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름이 값을 합니다. 요즈음은 이름값 하는 시대입니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의 브랜드가치는 우리나라 돈으로 100조원이라고 합니다.
이 브랜드 가치는 회사의 공장, 부동산등의 유형의 자산가치가 아니라 코카콜라의 순수한 이름의 가치가 100조원입니다.
이렇게 이름값, 브랜드는 수익으로 연결되고 그 이름값에 대한 가치는 무궁무진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위험한 것은 그 이름이 한번 실추되면 그 명성을 회복하는 것이 참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이름/// 그 명성을 회복하지 못해 끝내 주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도 브랜드 명성이라는 단어가 기록되어있습니다.
27절
하나님이라는 이 이름의 브랜드가 여리고전쟁의 승리로 온 땅에 퍼졌습니다.
지금 여호와의 브랜드가치가 최고조까지 올라갔습니다.
뉴스시간 말미에 항상 앵커들이 주식시황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러면 현장에 나가있는 증권사 패널은 오늘의 주식시황을 안내합니다.
여리고 승리 후에 여호와라는 브랜드가 최고의 상장가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명성은 홍해를 가르고 요단강을 가르면서  지속적으로 반등에 반등을 거듭하다가 여리고 승리이후에 최고조에 달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수아의 명성이 온땅에 퍼졌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정확하게 말해서 하나님의 명성이 온 땅에 높아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명성이 온 땅에 높아졌는데 7장에 와서는 하나님의 명성이 급격하게 추락하는 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이 바로 아이성의 패배입니다.

여리고전투 다음이 아이성 전투였습니다.
아이성 전투는 글자그대로 아이들과 싸울 정도로 게임이 안되는 전쟁이었습니다.
정탐군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보고합니다. 보잘 것 없는 작은 성이므로 모든 군대를 다 동원할 필요가 없고 한 2-3천명만 보내어서 정복합시다
그래서 3000명만 보내었더니 전투에서 36명의 희생자를 내고 도망쳐오는 어처구니없는 패배를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도여러분
이 사소한 전쟁이 가나안전쟁사에 무슨 커다란 의미를 가지겠는가? 과소평가할 수 있겠지만
이 아이성전투는 가나안정복전쟁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어집니다.
한마디로 이 싸움을 계기로 전세가 역전되어집니다. 지금까지 가난안사람들은 사기면에서 기가 죽어있었습니다. 저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함께하는 군대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길 수 없다는 패배감이 있었는데 아! 싸워보니 우리가 이겼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커다란 자신감을 회복했습니다. 여호와의 명성 때문에 싸우기조차 두려워했는데
싸워보니 이긴다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의 군대도 별 수 없구나 이제 두려워 할 필요없다
한마디로 전세가 역전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승승장구하던 이스라엘이 보잘것 없는 아이성에서 실패하는 것을 보면서 영적가나안을 향하여 진군하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1) 주신 은혜로(주신 축복으로) 방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관리하지 못하면 방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타락으로 치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신앙의 2.3세대들이 신앙의 축복을 물려받았지만 방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승리 뒤에 오는 시험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축복 뒤에 오는 시험을 경계해야 합니다.
여리고의 승리로 여호와의 명성이 온 땅에 퍼졌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우리의 성공과 영광을 그냥 보고 있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누리는 축복과 부흥을 마냥 축하해 주지는 않습니다. 사단은 언제나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이간질 할려고 호시탐탐 노립니다.

예)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일 시킨 후 한가로이 왕궁을 거닐고 있을 때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저질렸습니다. 승리뒤에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축복을 받고 자만심에 빠졌을 때 시험이 찾아온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다”라고 놀라운 신앙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아낌없이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신앙고백 직후에 사탄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을 방해할 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너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초대 예루살렘교회에 하루에 삼천 오천명이 돌아오는 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직후에 사탄은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건을 일으키고 맙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헌금을 다 내지 않고 교회를 속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개인이나 교회가 부흥했을 때 곧 위기의 순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 어느 교회--- 강대상 뒤에 커텐색깔을 무엇을 할 것인가? 교회가 분열 됨
러시아 정교회가 소련공산당, 레닌에게 무너지기 직전의 가장 뜨거운 논란? 십자가끝에 천사가 얼마나 앉을 수 있을까? 그것이 가장 뜨거운 논란 거리였습니다.
저도 영적으로 우리교회 그때마다 다양한 통로로 공격 분별하고 기도로 잘 방어하고 있는 것 같애요?
그러므로 은혜로 말미암아 방종할 수 있다는 이 아이성의 경고를 우리는 잘 받아들여야
찰스 스펼전이 이런 말을 "가난하고 병들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하고 건강하고 평안할 때 은혜위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스러울 때 물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하고 건강하고 평안할 때에는 그 은혜만 가지고 안됩니다. 은혜위에 은혜가 필요합니다.
가난 할 때 보다 병들었을 때 보다 두배 세배의 은혜를 받지 않으면  나태해지고 방종해지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때 그토록 교회를 열심히 찾다가도 응답을 받고 축복이 주어지면 교회를 찾아오는 횟수가 줄어듭니다.
그러므로 부하고 건강하고 평안할 때, 더 은혜를 사모하고 더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

여리고성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어떤 자세를 취했습니까?
그들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이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모든 백성이 하나님앞에 기도햇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또한 그 절박한 순간에도 할례까지 행하였습니다그런데 아이성의 전투에서 아침에 일어나 흔적이 없습니다. 기도한 기록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린 흔적도 없습니다.
이렇게 큰 승리 큰 부흥 뒤에 나태하고 방종해 져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이루었다.  내가 이제 해 내었다. 이제 성공과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라고 영적긴장이 풀어지는 순간에 사단의 공격과 시험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이것을 영적진공상태라고 합니다. 영적진공상태란 신자의 삶속에 기도와 말씀이 사라진 기간을 영적진공상태라고 합니다.
신자의 삶속에 영적인 삶이 정지된 기간이 영적인 진공상태입니다.
신자는 결코 영적진공상태가 없어야 합니다.
늘 깨어 적당한 영적 긴장 속에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함정이 있다면 “ 자기만족”입니다
이제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의 성장을 멈추어 버립니다.
여러분 다윗이 범죄 했을 때를 한번 보십시오, 이 순간 다윗의 영적인 삶은 정지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유혹받은 전후에 어느 곳에선가 기도한 일이 없습니다.
대체로 신자들이 범죄 하는 장면을 보게 되면 그 사건의 전후에 반드시 없는 것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영적인 삶이 정지되었을 때 기도와 말씀을 공급받는 일이 정지되었을 때 사단을 그 기회를 노리게 됩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저 천국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영적전투는 계속됩니다.
여리고에서 승리하였다고 이 땅에서의 영적전투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제 건강이 회복되었고 부해졌고 평안해 졌다 해서 영적전투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저 하늘나라에서 면류관을 차지할 때 까지 영적전투는 피해갈 수 없습니다.


지금 아이성 전투!!에서는 전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축복이 주여졌을 때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셨군요!! 시간이 지나면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분을 보면 모든 공 예배에 참석할려는 원칙 - 가정에 불편을 좀 끼치겠지만!!
공예배에 참석해서 하나님께 공로상 출석상받기위해서 이 응답을 주십시오
자신의 신앙생활에 견제장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속에 영적진공상태를 없에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은 견제세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견제장치가 없으면 나태해지고 쉽게 식어져 버리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저는 이사짐을 보면서  --자치생활// 겨울이 되면) 연탄을 많이 갈았다. 11시 12시//
연탄집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집게도 바로 밖에 꺼집어 내는 순간 순식간에 식어버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신앙을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한번 받은 은혜,, 그 놀라운 신앙의 간증들,  그 놀라운 신앙의 감격들,, 그 첫사랑,, 그 크신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 어느새 바닥나고 날라가 버리는 경우를 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견제장치가 필요합니다. 예배에 자주 참석해야 하고 교회란 이름으로 모이고 모여서 찬양하고 모여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여서 예배할 때 불이 붙어지고 불이 옆사람에게 전이가 되어지고 신령한 도전이 주어지고 나태햇던 신앙생활이 회개가 되고
숨어있는 죄악이 발견되고 새로운 각오와 분발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받은 은혜와 축복이 방종으로 흐려지 않기 위해서는 신앙의 견제세력을 여러분 삶 속에 꼭 두시기를 바랍니다.

예) 3년전에 설교가 준비되었다. 감기도 있고 해서 바로 3년 전 그 설교노트 들고 주일 설교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어제 것을 가지고 오늘을 우려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3년전에 주시는 감동 있을 것이고 오늘 이 현장에서 이 양떼들에게 주시는 감동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 고향은 경남고성군   
농촌이라 쌀을 부쳐줍니다. 묵은 쌀이  밥맛이 너무 없어요!!
햇살은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깨닫는 것은 무엇인가하면???  목사로서 성도에게 영의 양식을 공급하는 것 목사의 한 가지 중요한 의무인데 묵은 양식을 공급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늘 하나님과 새로운 만남이 있고 그 신선한 만남 속에 나오는 새 은혜를 말씀으로 공급해야 하는 것이 목사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인 나부터 늘 새날이어야 하며 새 은혜가 있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목사인 내가 늘 신령한 도전을 받을 수 있도록 늘 하나님과 신선한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 김준곤 목사님의 예
원로 대학생선교회 총재이신 김준곤 목사님 --  우리가 그분께 흠모하는 것은
늘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 80의 고령에도 늘 복음// 예수그리스도라는 이 단어에 늘 도전받는 사실// 영원한 청년이라고 부른다.
늘 복음과 예수그리스도 앞에 푸르고 푸른 신앙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고후5:14에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 도다
늘 복음 예수그리스도에게 신령한 도전을 받으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년까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라는 단어만 그에게 들리면 그는 신령한 도전을 받았고
늘 가슴이 울렁거렸고 그 예수그리스도 앞에 새로운 각오를 다짐했다는 것입니다.

어제의 화려했던 여리고의 신앙승리가 오늘의 신앙승리를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과거의 화려한 신앙경력이 오늘의 신앙승리를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한 마리의 목마른 사슴처럼 오늘도 나에게 주님의 새로운 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영적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새 은혜를 받기위해 몸부림치며 새 은혜를 받기위해 눈물 흘리고 주님의 늘 신선한 만남 때문에 얼굴이 상기가 되어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시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품이 좋으나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
시편92편의 저자가 매일 매일 주님의 인자히심과 성실하심을 새롭게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아침에는 이런 모습의 주의 인자하심을 경험하였고 그 날 밤 잠자리에 들 때는 
하룻동안 자신에게 베푸신 주님의 성실하심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침상에서 새롭게 경험한  주님을 노래하였습니다.
매일 새 은혜/ 새 도전 새 감격 속에 살아갔습니다.

성도여러분!! 과거의 화려한 신앙승리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매일 매일 하나님의 신령한 도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과 신선한 만남을 가지면서 그 하나님 앞에 새로운 분발과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이렇게 이스라엘이 아이성의 어이없는 실패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신 은혜로 자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실패원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간 한 사람의 탐욕 때문이었.
하나님은 여리고성을 정복한 이후에 모든 전리품은 아무것도 취하지 말고 반드시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간이 이 명령을 어겼습니다.
금과 은을 보자 탐심이 생겨서 은밀하게 그것을 숨겼습니다. 바로 그 아간 한사람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체가 패배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아간이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절을 보시면 아간의 증조부는 세라입니다. 세라 - 새싹 - 떡잎이라는 뜻
그의 아비는 갈미 - 풍성한 열매 - 그러면 아들의 이름은 무엇이냐? 사고뭉치
이것을 종합해 보면 아간의 가문의 매우 대단한 신앙가문입니다. 신앙의 새싹을 피어낸 할아버지를 두었고 신앙의 풍성한 열매를 맺은 아버지를 둔 훌륭한 신앙가문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신앙가문의 후손인 아간이 죄를 지으므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체가 패배하였고 자신도 아골 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불살라 죽었습니다.
그래서 아간은 후손이 없습니다. 조상들이 물려준 축복이 자신의 대에서 단절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여러분 다른 사람이 죄를 범한 것이 아닙니다. 이토록 좋은 신앙조상을 둔 아간이 죄를 지었습니다.
훌륭한 신앙의 가문도 내가 새롭게 하나님께 도전을 받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앙의 연조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오늘 내가 하나님과 새 만남 새 은혜를 받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늘 새로워져야 합니다. 늘 거듭나야 합니다. 늘 성장해가야 합니다.

어제의 축복이///  조상들의 신앙헌신이// 어제의 화려한 승리가 오늘을 보장하지 않습니.
내가 오늘 주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있는가?
나는 날마다 주님 앞에 새로워지고 있는가?
나는 날마다 주님 앞에 날마다 신령한 도전을 받고 있는가?
지금 이 나이에도 나는 예수그리스도 앞에 감격과 눈물이 있는가?
지금 이 연령에도 나는 날마다 주님을 구하고 있는가?
이것이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입니다.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패배를 당한 뒤에 지도자인 여호수아는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요?
여호수아는 기도했습니다.
신앙의 패배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내 신앙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나의 자만 나의 안주 나의 방종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여호수아는 패배의 원인을 알지 못해 기도했습니다.
처음에는 왜 패배를 주십니까? 왜 우리에게 또다시 내리막길을 주십니까? 라고 강하게 항변하다가 마지막에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9절에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명성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패배로 말미암아 온 세상 앞에 여호와의 브랜드가치가 떨어졌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것이 여호수아의 슬픔이었습니다.
패배로 인한 인명손실과 사기저하를 걱정하기 전에 실추된 하나님의 명성 때문에 마음이 슬펐습니다.
자신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우게 된 것이 제일 마음에 아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명성이 자신들의 방종으로 실추된 것이 제일 마음에 걸렸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가장 호소력 있는 기도가 어떤 기도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탄식하는 기도, 하나님의 명성에 누가 될까바 탄식하는 기도가 가장 호소력 있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내용을 가지고 기도한 여호수아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십니다.
10절에 여호수아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려 있느냐 이제 일어나라
여호수아를 회복시키시며 패배의 원인을 알려 줍니다.
1) 너희들의 자만 때문이었다. 2) 아간의 범죄 때문이었다.
내가 준 축복을 방종으로 사용했기 때문임을 알게 됩니다.
이 일이 후에 한두 번 여호수아의 실수가 있지만 여호수아는 늘 하나님과 신선한 만남을 유지하며 삽니다.
늘 하나님과 하나님나라에 늘 신령한 도전을 받으며 죽을 때까지 그의 신앙은 푸른 신앙을 유지해 갑니다.

우리는 여호수아를 가리켜 영원한 청년 여호수아!! 노년이 될 때까지 복음, 그리스도 이 단어만 들어도 젊은이처럼 비전에 불붙는 사람이 여호수아였습니다.
늘 하나님과 신선한 만남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총기가 흐려지지 않았고 분별력이 쇠하여지지 않았으며 젊은이들과 함께 밤을 세워 복음을 이야기하고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하나님나라를 이야기해도 더 신선하고 더 역동적인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여호수아였습니다.
나중에 가나안을 정복한 후에 -- 땅을 분배  1등공신인데 제일 나중에 땅을 분배
그리고 가장 자투리 땅을 분배받습니다. 분별력과 깨어 있는 신앙이 늘 흘려지지 않았습니
갈렙/// 85세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다 회피하고 그러나 반드시 정복해야 할 땅
85세의 갈렙이 자원합니다.
늘 청년같은 신앙 늘 신령한 도전을 받으며 산 영원한 청년 여호수아 갈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이렇게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에 누를 끼치는 것이 가장 슬픈 일입니다.
우리의 자만 때문에 주신 축복을 처음에는 하나님이 해 주셧다고 했다가  내 것이라고 고집하는 방종 때문에 우리는 많은 패배를/// 많은 내리막길을 경험합니다.
그로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을 실추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 신자의 삶 속에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내 것이라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히 여기지 마십시오.
어제의 승리 어제의 신앙감격으로 만족하지 말고 날마다 주님앞에 새날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세월이 흘려가고 신앙의 연조가 깊어가도 늘 하나님과 신선한 만남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의 목자로서 멈출 때, 자라지 않을 때, 안주할 때, 자만할 때, 신령한 도전이 여러분의 삶 속에 사라질 때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쪼록!! 영원한 청년 여호수아!! 영원한 청년 김집사!!
복음, 그리스도 앞에 늘 충격으로 반응하면서 늘 푸르고 푸른 신앙을 유지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문찬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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