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이 가라사대(창 1:3-5)

  • 잡초 잡초
  • 329
  • 0

첨부 1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은 말을 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말이 다 그대로 성취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전혀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는 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한 말을 순진하게 다 믿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세기를 대할 때에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처음에 세상이 만들어질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말씀 하나만으로 없던 것이 존재하게 되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니,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니까 빛이 있었습니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되라고 말씀하시니까 다 그렇게 되었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우리 속에 있는 생각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지요. 내가 말하는 것이 다 그대로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꼭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생각의 표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봉독해 드린 이 짧은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설교제목으로 몇 가지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Ⅰ. 첫 번째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능력입니다.
 
  본문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할 일이 없는, 일을 성취시키는, 창조하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면 빛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이 생기라’ 하시니 하늘이 생겼고, ‘물이 한쪽으로 몰려서 육지가 드러나라’ 하시니 육지가 드러났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말입니다.

  눅 1:37절 말씀과 같이,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창세기를 살펴보면서 이 창세기가 어떤 목적을 위해 기록되었는가 하는 점을 확실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지난 주일에 말씀을 드렸지요.
  이 창세기는 처음부터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인들의 믿음을 붙들어주고 그들이 이 세상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창세기의 말씀을 받은 교회는 어느 교회입니까?
  그것은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를 방황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회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여 년 동안 종살이 하던 애굽은 어떤 나라입니까?
  애굽은 다신교의 나라였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신들이 있었고, 주술과 우상숭배가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뱀을 만들었을 때 애굽의 주술사들도 뱀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계시지요?
 
  애굽은 주술이 아주 뛰어난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태양과 달을 섬겼고, 바다와 강을 섬겼으며, 심지어는 독사나 가축 같은 짐승을 섬겼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400여 년 동안이나 이 애굽에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영향을 받았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잘 모르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창세기는 바로 이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태양이나 땅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 지금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부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특별한 하나님, 인간이 의미를 부여한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를 찾아와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던 이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창세기인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하며 우리들의 신앙을 붙들어주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이 말씀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았습니다.

  모세가 나일 강이 피가 될 것이라고 하면 피가 되었습니다.
  모세의 말에 하늘에서 우박이 내리기도 하고, 모세의 말에 파리가 몰려들기도 하고, 모세의 말에 애굽의 모든 장자들이 죽기도 하고, 모세의 말에 홍해가 갈라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것이 나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능력의 말씀으로 이 세상이 처음 창조되었다는 것을 그들에게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로 빛이 생기고 하늘이 생기고 바다가 생기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수많은 말씀을 설교로 듣고 공부하고 매일매일 읽고 읽는데도 왜 우리의 삶은 변하지 않고 있을까?
►천지를 창조하셨던 그 능력의 말씀이 오늘 나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가?
  오늘 우리들은 수많은 말씀을 들어도 변하지 않는 우리의 완악한 본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고집을 꺾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위대한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고집을 꺾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모든 빛과 태양과 지구와 아름다운 자연보다 더 값진 것은 스스로 자기의 고집을 꺾고 기쁨으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위대한 창조보다 더 위대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내 고집을 꺾기만 하면 절대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이 창조의 말씀이 내 속에서 역사해서 내 삶을 새롭게 만드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붙들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성도들,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아름답게 사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능력과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Ⅱ.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본문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빛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태양 빛을 생각합니다만, 본문 3절에 나오는 빛은 태양 빛이 아닙니다. 해나 달이나 별은 하나님께서 넷째  날에 창조하셨기 때문에 아직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3절에 나오는 ‘빛’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태양 빛이 있기 전에 더 근원적인 빛이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빛은 넷째 날부터 태양과 달과 별로 대치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빛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 빛은 항상 있으며, 이 빛이 있기 때문에 태양도 빛나고 달과 별들도 빛을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보다 먼저 빛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내 줍니다.

  성경에서 빛을 이야기 할 때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진리를 깨달을 때 빛이 비취었다고 말합니다.
  둘째는 도덕적인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의롭고 정당하게 살 뿐 아니라 책임을 지는 존재로 살라는 뜻입니다.
  셋째로 성경에서 빛은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불결한 것이나 추악한 것은 조금도 있을 수 없으며, 오직 기쁨과 감사와 영광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첫날 창조하신 빛은 정말 눈에 보이는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빛의 의미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빛 가운데 인도하실 때 그들은 이미 진리를 깨달았으며, 죄를 용서 받았고, 도적적인 책임이 있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본문 4절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표현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에 잘 일치했고 조화를 이루었다는 뜻이며, 모순이나 갈등이 전혀 없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두움을 나누어 서로 섞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빛은 빛이고, 어둠은 어둠이었습니다. 빛도 아니고 어둠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신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둠이 섞이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는 하나님의 성품과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빛과 어둠이 나뉘는 것보다는 중간을 좋아합니다.
  어느 한쪽에 들어가면 책임을 져야 하고 공격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마귀는 할 수 있는 한 우리의 소속을 불명확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지 세상에 속한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되게 합니다.
►구원받은 것도 아니고 구원받지 못한 것도 아닌 것처럼 살게 합니다.
►교회에 오면 괜찮은 그리스도인으로, 그리고 노는 자리나 죄 짓는 자리에 가면 결코 빠지지 않는 훌륭한 세상 인으로 살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세상의 자녀는 분명히 구분됩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가 빛의 자녀가 아니면 어둠의 자녀입니다. 그 중간 상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 때문에 이 구분이 모호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추악한 죄의 충동을 느낄 때 과연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지 의심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주관적인 느낌과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빛의 자녀인 줄로 믿습니다.

  빛에 속한다고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나에게는 문제가 많습니다. 내 삶을 내가 더 이상 책임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 삶을 예수님께 구체적으로 맡긴 사람이 바로 빛의 사람인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빛이 없는 곳은 단순히 어두운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어둠의 사자들이 날뛰게 되어 있습니다.
  빛없이 사는 사람들은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삶의 가치를 상실하며 죄책감에 빠지고 마음의 상처를 깊이 받은 상태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어두운 곳에 비추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어둠의 세력들이 싹 사라져 버립니다.
  열등감도, 죄책감도, 운명적인 사고방식도, 악한 습관들도 다 사라집니다. 그래서 빛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는 것은 단순한 지적 깨달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나를 얽매고 있는 좋지 못한 생각들과 여러 복잡한 것들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빛의 삶으로 담대히 걸어갈 수 있는 용기와 힘과 결단을 주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아래로 오십시오.
  그러면 어둠이 뿌려 놓은 인생의 상처와 고통과 나를 지배하는 사슬들이 끊어질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무거운 사슬을 몸에 칭칭 감고 살고 있습니다.
►교회에 올 때도 잔뜩 사슬을 감고 옵니다.
►누구와 관계가 불편하면 그것이 나를 지배해 버립니다.
►누가 나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한 마디 하면 그것이 나를 지배해 버립니다.
►과거에 실패했던 경험이 나를 지배해 버립니다.
►몸에 수많은 사슬과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은 그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우리로 하여금 기뻐 뛰며 감사하게 만들고, 내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하며, 어느 누구도 짓밟을 수 없는 내 속의 자유와 인격의 소중함을 깨닫게 합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더 많은 빛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어둠의 냉기가 아직도 구석구석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더 많은 하나님의 빛이 우리에게 비추어 이 어둠을 완전히 몰아내고, 삶의 두려움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과거 실패에 대한 죄책감과 운명적인 사고방식을 전부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되찾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진정한 찬양이 나오고, 헌신이 나오고, 봉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빛의 삶인 것입니다.

  말씀의 빛을 통하여 어두움의 모든 것을 물리치고, 빛 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Ⅲ. 본문 5절을 보십시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 빛을 거두심으로 밤이 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을 때 첫째 날이 지났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밤낮의 구별이 없는 것입니다.
  밤에도 불을 켜고 무언가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할 일이 많고 가질 것이 많아서 잠 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 자고 좀더 일하고, 안 자고 좀더 공부하고, 안 자고 좀더 놉니다. 밤을 아까워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어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차피 이 세상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고, 모든 학문을 다 습득할 수 없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사람은 낮이 지나면 밤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자기의 한계를 깨달아서 밤이 오면 자야 합니다.
  안 자고 공부하고, 안 자고 놀고, 안 자고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조의 법칙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밤마다 우리의 한계를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조금 일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아주 짧습니다.

  우리는 나에게 낮이 주어졌고, 무엇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곧 밤이 옵니다. 밤이 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법칙에 복종해야 합니다.

  밤이 오면 일하는 것보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잠을 자야 합니다. 밤에는 무조건 자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도 밤이 되면 재워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법칙입니다.
  몇 해 전에 벼룩시장에‘KBS 연중 캠페인 경제를 살립시다’ 라는 시리즈 중‘수면 부족도 경제적 손실입니다’ 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일 년에 수면 부족으로 인한 경제 손실이 우리나라만 따져도 3조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부족한 잠 때문에 깜빡 졸다가 교통사고를 내거나 산재를 당하는 경우, 누적된 피로로 건강을 해치는 경우, 집중력이 떨어져서 맡은 일을 제대로 못해내는 경우 등 수면부족이 몰고 오는 경제손실이 생각보다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분한 수면시간도 경제활동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잠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귀중한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빛은 모든 것의 근원입니다. 태양이 있기 전에 이 빛이 있었고, 이 빛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이 물러납니다.
►우리가 어둠 가운데 있을 때에는 내 생활에 많은 악한 습관들과 죄악의 모습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빛이 어둠을 물리치듯이 말씀은 이 모든 것을 물리칠 것입니다.

►그리고 밤낮이 교차되고 있는 것은 내가 신이 아니요, 하나님의 법칙에 순종해야 할 피조물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낮에는 직장에서, 캠퍼스에서, 사업장에서, 가정에서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고 편안히 잠들 수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될 것이며,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며, 병든 자도 고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은 우리에게 있는 모든 어둠을 물리칩니다.
►인생의 상처와 고통, 과거에 실패했던 경험, 내일에 대한 염려,  수많은 사슬과 무거운 짐들을 내어 좇습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더욱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냉기를 물리치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순종하십시오.

  그리하면,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