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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는 자에게 주시는 영생 (요 3: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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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쓴 존 번연(John Bunyan)은, 인생과 영혼에 대한 의문이 자기 마음에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구원 받기 전 까지는 이 진리를 확실히 알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분명히 깨닫기 전까지는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리라. 아니, 이 문제를 해결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지구 어디라도 갈 것이며 무엇이라도 할 것이다.”
그의 이러한 결심이 예수님을 만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존 번연에게 자신을 나타내셔서 깨닫게 해 주셨고 진리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존 번연은 주님을 찾은 그 놀라운 감격을 기록하여 위대한 저서 ‘천로역정’을 남겼습니다.
그 책에 나타난 기독교도의 모습은 존 번연 자신의 모습이자 지금도 진리를 찾고 있는 순례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많은 고난과 고통을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며, 위대한 주의 진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크리스천 곧 기독도라는 주인공이 순례의 여정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 ‘신실’과 ‘소망’이라는 이름의 두 사람과 만나 함께 길을 가다가, 의미가 없는 헛된 박람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장사꾼들은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물건들을 사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애써 귀를 막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한 장사꾼이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무엇을 사길 원하십니까?”
이때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진리를 사기 원 합니다”
그들은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 진리를 얻기 원했습니다. 그들은 오늘이 있다가 내일 없어지는 것이 아닌 진리를 얻기 원했습니다. 그들은 물질이 아닌 내 인생에 대한 대답을 얻기 원했습니다. 바로 그들은 영광스러운 진리를 얻어서 자신들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현대를 특징짓는 많은 요소 가운데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인한 인간 소외 현상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물질이 풍요하면 사는 것도 행복하리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이제 시골에는 젊은이가 없습니다. 좀 더 쉽게 그리고 많이 돈 벌 수 있는 곳, 그리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래서 시골에는 연세 많으신 부모님만 삽니다. 물질의 풍요가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가 아니라 흩어지게 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물질의 풍요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을 상품화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애쓰고 발버둥 치는데도 뭔가 채워지지 않은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애쓰고 발버둥 쳐서 좀 살만하다 싶은데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고민하고 그래서 물질이 아닌 보이지 아니하는 영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집니다.

로또 복권의 열풍이 좀 줄었지만, 여전히 거기에 기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처음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누군가 한 사람 잘 살라고 조금씩 혹은 넉넉하게 모아 준다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국가에서도 그렇게 생긴 돈을 좋은 곳에만 사용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열심히 뭔가 하는데 늘 모자람을 경험하는 사람들, 무언가 삶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 힘든 삶의 계속으로 이제 지쳐 있는 사람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고 크게 도울만한 빽 도 없는 사람들 이들에게 몇 백억 또는 몇 십억이라는 당첨금은 희망이요 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어, 몇 백억 또는 몇 십억이 당첨금을 받는다고 해서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첨의 기쁨은 순간이고, 또 다른 고민과 아픔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영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2절 “사랑하는 이여, 나는 그대의 영혼이 평안함 같이, 그대에게 모든 일이 잘 되고 그대가 건강하기를 빕니다.”
“영혼이 평안함 같이” 그리고 나서 모든 일이 잘 되고 건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평안함 없이는 모든 일이 잘 되어도 늘 허전합니다. 건강하여도 늘 뭔가 아쉬운 것 같은 겁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돈이 많으면 육신은 행복할지 몰라도 영혼은 아닙니다. 학식이 많으면 육신은 행복할지 몰라도 영혼은 아닙니다. 건강하면 육신은 행복 할지 몰라도 영혼은 아닙니다. 돈이 많기 때문에, 배운 게 많기 때문에, 건강하기 때문에 영혼도 행복한 것 아닙니다.
육신의 연약함에 있는 사람들 몸만 건강하면 다른 것은 바랄 것도 없을 것 같지요? 몸만 안 아프면 마치 천국일 것 같지요? 몸도 건강하면 좋지요. 모두들 건강하시길 늘 기도한 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국 희망으로 여겨야 할 것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돈은 없어도 이것이 있으면 됩니다.
못 배워도 이것이 있으면 됩니다.
병들어도 이것이 있으면 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영생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우리가 정말로 추구하고 희망으로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본문의 주제는 영생입니다.
‘영생’은 글자 그대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생을 오해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죽은 다음에 오는 생명으로 생각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죽었다가 다시 부활 할 때 비로소 주어지는 생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저 세상을 위한 보험으로 여깁니다. 섬김과 봉사 역시 죽은 뒤에 오는 세상을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생이란, 죽은 이후에 계속되는 생명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입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곧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국, 하나님의 나라. 그건 미국, 한국, 일본, 이런 식으로 정해진 장소를 이야기 하는 것 아닙니다.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을 말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늘, 그 곳이 어디든 간에,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 있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여기가 하나님의 나라요, 여러분이 집에 계셔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거기가 하나님의 나라요, 여러분이 병들어 누워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곳도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것이 영생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생을 소유한 사람은 언제나 기쁨이 있습니다.
이 생명을 소유한 사람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생명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끊임없이 공급하시는 주님의 영적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저 세상에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말입니다.

사랑입니다.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것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 세상이 어떠합니까?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 사는 세상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세상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의인 10명이 없어 멸망당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은 그때 보다 나은 줄 아십니까? 생각해 보세요. 지금의 세상은 우리 어렸을 때 보다 순수함이 없어요. 따뜻한 정이 없어요. 더 악해진 모습을 봅니다. 이런 세상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죄인을 불러 구원하시려고 오신 예수님,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이지만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랑으로 여러분과 저가 구원 받은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불 뱀을 보내셨고, 많은 사람이 그 불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하나님의 종인 모세에게 기도하기를 원했고,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놋 뱀을 만들어 장대 높이 달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했고, 그래서 누구든지 그 뱀을 바라보는 자는 살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죄는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17절,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 세상을 구원 하시려는 것이다.”
이 사랑, 이 은혜는 누구에게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특정인, 특정 민족에게만 주어진 것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 누구에게든 주어진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구원 받는 것 아닙니다. 이젠 우리가 선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한 쪽은 구원, 한 쪽은 심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전을 던져서 결정 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멸망인 것입니다.
지금 세상의 악함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다 하더라도 이기적이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사랑뿐입니다.
수많은 범죄 사건들. 그들 대부분이 세상의 사랑이 없음에 그리 되었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도 그 자신을 사랑 했습니다. 그랬기에 다들 잘 사는데 자기가 못 사는 것이 억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기적이었습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사랑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랑이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공의로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역시 그냥 덮어 두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심판이 함께 있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심판 하셨습니다. 그 심판 앞에 사람은 모두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담당 하신 것입니다.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그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사랑으로는 오히려 더 악해지고 혼란스러워집니다. 자기중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내 것만 챙기는 사람 있습니다. 내 식구만 챙기는 사람 있습니다. 이건 사랑이 아닙니다. 이건 소유욕입니다. 예수 말씀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누구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하시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랑이 여러분과 저를 살렸습니다.
이 사랑만이 세상을 살립니다.

믿음입니다.
불 뱀 사건은 민수기 21:4-9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출애굽하고 광야 생활하는 것, 그것은 지긋지긋한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가나안을 목전에 두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슴은 한껏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또 광야 그 지긋지긋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랬다가 불 뱀에 물려 죽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모세가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게 하고 그것을 쳐다보면 살게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뱀에 물렸는데, 그래서 죽어가는 사람이 그것 쳐다본다고 살아난다니 이해가 됩니까?
그런데 그랬습니다. 그것을 쳐다 본 사람은 살아났습니다.
여기, 그것을 쳐다보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모세로 통해 들려주신 말씀이 하나님이 말씀이라고 믿고, 그대로 순종한 사람들은 구원 받았습니다. 모세를 통해 해 놓으신 이 어처구니없는, 장대에 매달린 놋 뱀을 믿음으로 쳐다 본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음을 가지시길 축원 합니다.
그런데 잘못 믿고 있습니다.
놋 뱀 때문에 고침 받은 줄 아는 것입니다. 놋 뱀을 쳐다보니 고침 받았기에 놋 뱀이 고친 줄 아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가 만든 놋 뱀을 히스기야 왕 때까지도 분향하고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18:4, 히스기야 왕이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가 만들었던 놋 뱀을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어 버렸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만 세상 속에서 치어 살다보니까 그냥 세상 상식으로 살아가려고만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 상식을 초월한 믿음입니다.
세상 상식으로 나이가 들면 일할 수 없습니다. 기억력도 떨어지고, 힘도 약해지고,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아닙니다.
미국의 상원의원이었으며 위대한 법률가였던 코에이트씨가 건강이 나빠져 영국에 가서 6개월 동안 요양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65세였습니다. 상원의원인 친구 한 사람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충분히 요양을 하였으니 10년은 더 일 할 수 있겠군.” 이때 코에이트씨는 정색하고 말했습니다. “십년이란 세월을 생각해 본 일이 없어요. 나는 영생을 믿으니까 천년 살 것을 생각하고 일합니다.”
천년을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60. 70. 80. 90. 이런 숫자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코미디언 조지 번스. 그가 100세가 되던 해가 1996년 1월 20일이였습니다. 그는 100세가 되었지만, 1월20일부터 4주간 동안 무대에 설 것을 런던 팔라디엄과 이미 계약을 맺었습니다. 번스는 이렇게 말 합니다.
“늙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녹스는 것을 걱정하라.”
“나는 저 세상에 오래 전에 등록을 마쳤기 때문에 죽지도 않고 은퇴도 없다.”
그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지금도 어디에서도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여러분이 있는 그곳 그 순간이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에게 사랑을 주셨습니다. 사랑 받을 만한 아무 자격도 없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 하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 삶아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언제나 어디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 돈도 많이 버십시오.
세상을 사는 동안 건강 하십시오.
세상을 사는 동안 세상 적으로 크게 출세하십시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입니다. 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코미디언 조지번스의 말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이미 등록했기에 죽지도 않고 은퇴도 없습니다. 그저 순간순간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과 저에게 주님의 능력이 늘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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