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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등불을 끄지 맙시다 (출 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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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성전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하나하나 지시하셨습니다. 이 성전에 하나님이 임재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올리브를 찧어서 짜낸 깨끗한 기름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기름으로 등잔불을 켜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불이 꺼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론과 그 후손들은 그 등불을 회막 안 증거 궤 앞 휘장 밖에 켜 두라고 하셨습니다.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서 꺼지지 않도록 보살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자칫 그냥 슬쩍 지나가기 쉬운 부분입니다. 성막 안에 금빛 찬란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은 금도 보석도 아닙니다. 방 안에 켜 놓은 등잔불입니다. 그리고 그 등잔불은 늘 꺼지지 않도록 감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반드시 깨끗한 감람나무 열매에서 짠 기름이어야 합니다. 다른 기름을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보다 더 밝은 기름도 있습니다. 여기 빛(등불)은 세상의 빛인 교회를 뜻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야 합니다. 교회는 어둠을 향한 빛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가 대단히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교인도 많습니다. 1,200만 명이 넘습니다. 성경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어둠의 권세가 주관하고 있습니다. 암흑의 세력이 판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이 있습니다. 참과 거짓을 가리는 잣대입니다. 아무리 법이 있어도 끝가지 가리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한 사람의 범인이 열 사람을 괴롭힙니다. 그래서 정말 법대로 잘 했는지 살피는 기구가 있습니다. 감사원입니다. 하물며 최고의 권력기관인 청와대까지도 살피는 기구가 있습니다. 그래야 밝은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종탑 높이 세우고 십자가 등불 밝게 켰다고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 구실을 해야 합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어야 합니다. 이 어둠이 있는 한 우리는 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둠은 권력으로도 물리칠 수 없습니다. 이 어둠은 힘으로도 안 됩니다.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습니다. 빛입니다. 빛 앞에는 아무리 짙은 어두움도 물러갑니다. 가로등이 없는 곳은 대단히 불편합니다. 캐나다 토론토는 밤이 더 아름답다고 합니다. 모든 빌딩과 사무실에 불을 켜 놓는답니다. 그 이유는 도적을 막기 위해서랍니다. 대낮에도 자동차 미등을 켜고 다닙니다. 사고예방에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빛입니다. 사회의 빛입니다. 저도 “등불을 끄지 맙시다.”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Ⅰ. 교회는 사회에 대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요즈음 교회에 대한 사회의 눈이 그리 곱지만은 않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사회에 대해 도대체 무엇을 하느냐고 꾸짖습니다. 얼마 전 저는 인터넷에 오른 글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우리 목사들도 세금(갑근세)을 내야 되느냐 내지 말아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비춰진 교회에 대한 비판의 글이었습니다.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어두운 모습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너무 건물을 크게 짓는다. 그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고 합니다. 또 주일에 교회 오는 사람들의 차 때문에 주민들의 불편이 많다고 합니다. 그 말들 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형교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국 전체 교회의 75%는 개척교회 수준입니다. 자립이 어려운 교회들입니다. 큰 교회는 사회를 위해 대단한 일들을 많이 합니다. 또 우리도 깨달아야 할 것도 많습니다. 우리는 빛입니다. 소금입니다. 사회의 양심입니다. 심장입니다. 우리는 이 사회를 향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경찰서 100개(10개인지 정확한 기억 없음) 짓는 것 보다 예배당 하나 짓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경찰서 필요 없다는 것 아닙니다. 교회는 국가 권력 기관이 아닙니다. 신앙으로 스스로 고쳐 나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관입니다. 옥에도 티가 있습니다. 그렇듯이 물의를 일으키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걸 두고 교회 전체가 다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성막 안에 등불은 절대 끄지 말아야 합니다. 제사장이 이를 감시했습니다. 어느 날 어느 집에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도 밤에 결혼식을 더러 합니다. 유대인들은 그것이 풍속이었습니다. 신부 집에는 신부가 꾸미고 기다립니다. 또 신부의 친구들이 신랑을 맞으려고 등불을 들고 기다립니다. 어떤 신랑은 초저녁에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부분 신랑은 깊은 밤중에 옵니다. 결혼식의 절정은 이 순간입니다. 어떤 신부의 친구들은 아예 새벽까지 갈 수 있도록 기름을 넉넉하게 준비합니다. 그런데 어떤 신부의 친구는 초저녁에 올 줄 알고 기름을 적게 준비했습니다.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그는 다른 데 가서 사 올 수도 없습니다. 친구의 기름을 빌리면 둘 다 낭패를 당합니다. 그래서 기름을 넉넉하게 준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늘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의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저의 은사이신 교수님께서 “복음의 빛”이라는 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주일학교 교과서만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회사입니다. 아주 잘 된 책입니다. 저는 관심 있게 본 적이 있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 자체가 빛입니다. 소금입니다. 복음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빛이십니다. 우리도 빛입니다. 우리는 늘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빛은 어둠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 빛이 곧 우리 안에 있는 믿음으로 더 밝아집니다. 점점 사회는 어두워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빛이 빛을 비추지 못하면 있으나마나입니다. 교회는 빛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영접하면 변합니다. 우리나라도 사형수가 변했습니다. 깡패 두목이 변해 목사 된 사람도 있습니다. 사기꾼이 변해 목사 된 사람도 있습니다. 연예인 중에도 임동진, 윤항기 목사 등이 있고, 체육인으로 이영무 목사님 등, 많습니다. 그들은 목회의 길을 걷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연예인들 중에 신앙을 간증하며 예수님 전하는 사람 얼마나 많습니까? 구봉서 장로, 서수남 장로. 그 외에도 많습니다. 그들이 다 빛입니다. 목사가 전하는 복음과는 다른 맛을 느끼지요. 교회는 늘 새로움을 만드는 변화의 곳입니다. 국회의원들 보세요. 당은 다르지만 국회의원들이 정기적으로 기도모임, 성경 공부하는 모임을 갖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더 많은 빛을 발하기를 바라십니다. 지금 세상은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촛불이어야 합니다. 내가 변해야 합니다. 내가 희생해야 합니다. 내가 달라지면 됩니다. 이 세상은 답답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이 변하면 세상도 변합니다. 우리는 빛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예수님을 빛이라 했습니다. 빛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핍박했습니다.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교회는 늘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절대 절망하면 안 됩니다.

Ⅱ. 등불답게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9-10은 빛은 이래야 된다는 정답을 내려놓았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이어서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빛의 열매입니다. 빛다운 삶입니다.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고 했습니다. 신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착하다는 것 잘 아시지요. 착한 사마리아인을 아시지요. 우리는 어떤 사람을 “저 사람 굉장히 착한 사람이야”라고 하지요. 그렇습니다. 신자의 열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제 기분대로 사는 것 아닙니다. 제 멋대로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빛입니다. 세상의 빛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또 빛의 자녀입니다. “너의 빛을 비춰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곧 생활에 나타납니다. 우리는 착해야 합니다. 우리는 저 사람 참 착하다는 말을 합니다. 이와 같이 세상 사람이 우리를 보고 착하다는 칭찬을 해야 합니다. 저 사람 나쁘다거나 저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등의 말을 들으면 빛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빛의 아버지”라 했습니다.(약1:17)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큰 사랑입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죗값을 대신 치르신 것입니다. 그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빛의 자녀답게 착해야 합니다. 곧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구약시대는 제사장의 옷은 구별되었습니다. 천주교회에서도 신부님이나 수녀는 제복을 입습니다. 생활하는 데 상당한 제약을 받습니다. 그러나 참 편안하기도 할 것입니다. 아예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광고하지 않아도 남이 그렇게 알아줍니다. 구세군에서는 목사를“사관”이라고 합니다. 군복을 입습니다. 그런데 그 제복이 우리를 빛답게 하는 것도 많습니다. 목사, 목사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짐입니다. 그러나 열어놓고 살면 오히려 자유롭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의롭게 삽니다. 그렇게 살도록 교회 안에서 법도 만들어졌습니다. 한 생명을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는 의롭게 사셨습니다. 나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의인은 이 세상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명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 도시는 불타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그 큰 도시에 의인 10명이 없으리라고 생각 못 했습니다. 우리는 의롭게 살아야 빛입니다. 모든 죄의 으뜸은 “불의”입니다. 의롭지 못함입니다. 그리고 “진실함”입니다. 어떤 이가 목사 되겠다고 신학 공부한다고 왔습니다. 목사(교역자)는 첫째 진실해야 한다, 두 번째 최선을 다해야 한다,(성실) 그 다음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진실입니다. 기도도 진실해야 합니다. 말도 진실해야 합니다. 봉사도 진실해야 합니다. 헌금도 진실해야 합니다. 그 만큼 진실은 가치가 있습니다. 성전 안에 불(등잔)은 불입니다. 불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꺼지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빛입니다. 착함도 의로움도 진실함도 일시적이지 않습니다. 성전 안의 불은 꺼지면 큰일입니다. 제사장이 늘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맺는 말 :

성막을 다 지었습니다. 화려합니다. 금빛 찬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흘려버릴 뻔한 것이 있습니다. 등잔불입니다. 물론 목적은 밝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름은 반드시 좋은 감람유이어야 합니다. 반드시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입니다. 성전의 등을 꺼트리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빛입니다. 언제나 누구나 길 잃은 사람의 등대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언제나 착해야 합니다. 의로워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기본자세입니다. 늘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의 표준입니다. 세상의 길잡이입니다. 그러니 빛이신 예수님을 닮은 빛의 자녀답게 삽시다. 빛은 빛 자체를 위해 있지 않습니다. 사물을 밝히기 위해 있습니다. 늘 주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6.3.19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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