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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능력과 지혜의 십자가 (고전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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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 아퀴나스가 어느 날 부름을 받고 교황청에 가서 교황을 만났습니다. 교황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마침 세계 각국으로부터 오는 보화를 가득 실은 마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교황이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초대 교황이었던 베드로 사도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고 말했지만 이제 우리는 금은보화를 저렇게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오는 저 많은 보화를 보십시오. 그리고 이 웅장한 건물들과 화려한 장식들을 보십시오.” 그 말을 들은 아퀴나스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교황님,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오늘 우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성당을 지었습니다. 금으로 기둥을 세웠고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았습니다. 실로 엄청난 건물입니다. 또 우리는 땅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신자들도 정말 많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은과 금은 정말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가졌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은 우리에게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까지 교회는 그 무엇보다 성장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유기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반드시 성장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몸집이 커지고 건물이 화려해진다고 해서 반드시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세워 가야 하는 것은 살찐 교회가 아닙니다. 주님이 이 땅에 세우시기를 원하셨던 교회여야 합니다. 교회 창립 10주년에 즈음하여 오늘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이 기뻐하실 건강한 교회를 세워 가기로 다짐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얼마 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책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것만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그 책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안겨 주었습니다. 물론 교회가 작아야 반드시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또한 그 반대로 교회가 커야만 반드시 아름다운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교회가 성경적으로 바로 서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 시대에 허락하신 교회의 사명을 성실하게 잘 감당하느냐 하는 점이 진짜 문제라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라는 말입니다.

  영적인 위기가 어디서부터 시작됩니까? 교회의 위기가 어디서 옵니까? 웅장한 건물이 없어서 문제가 아닙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파이프 오르간이 없어서 문제도 아닙니다. 교회의 영적인 위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없기 때문에 쳄滂홱募?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증거하는 것을 그 본질로 삼을 때 교회는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건강했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간직하고 있을 때 승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름의 능력이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를 죄인이라고 고발하는 사탄을 잠잠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입니다. 누구든지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그 이름을 부를 때 어두움의 자식이 빛의 자녀로 변하는 은혜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 곧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리를 포기하시고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죽음 가운데 머물러 계실 수 없으셨습니다. 마침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유의 주가 되셔서 오늘도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오늘도 그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 가운데서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즉,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믿는 믿음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 복음의 능력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모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분열과 혼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가져야 할 본질적인 내용은 잊어버리고 갈등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 당시 고린도 사회를 지배하던 세상의 문화가 교회에 침투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영광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교회는 영적으로 더 깊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누가 더 많이 배웠으며, 누가 더 부자이며, 누구의 영향력이 더 강한가 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누가 더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며 누가 더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은사도, 봉사도, 사역도 모두 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 위한 방편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지배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의 가치가 지배하는 교회가 되고 말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시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전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들은 제사를 드리는 일을 통해서 장사를 하고 폭리를 취했습니다. 부자가 인정받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은 온통 돈에 집중되었습니다. 돈 버는 재미에 하나님의 말씀도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 방법만 강구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채찍으로 그들을 내어쫓으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사람들은 흔히 가진 돈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사람들이 나누는 거의 모든 이야기의 내용이 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돈 이야기를 빼면 할 말이 없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도 그럴 것이 어디서나 돈 많은 사람이 행세를 하고 선망의 대상이 되며 인정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의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는 재테크, 일억 만들기, 부자 아빠, 백배로 이익을 남기는 투자, 부동산 투기 등입니다. 돈을 주제로 한 매스컴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을 조급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세상은 온통 돈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돈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나 예수님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가 가진 지식이나 권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교회는 건강했습니다. 교회는 은과 금의 이야기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은과 금을 구하는 장소도 아닙니다. 자기의 지식이나 권력을 자랑하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의 것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린도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경제, 정치, 외교, 학문에 있어서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곳이었습니다. 각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온 국제적 도시였기 때문에 종교적으로는 자연히 종교 혼합주의적 경향이 강했습니다. 지정학적으로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또 상업적으로 번창한 국제적인 도시였고, 따라서 부요한 도시였습니다. 철학과 당시의 최고의 학문이었던 수사학이 발달하여 유명한 학자들이 많이 있던 헬라 철학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고린도는 세상의 영광으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풍족하면서도 도덕적막?타락한 도시 고린도에 있는 교회가 세상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많은 문제에 휘말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들을 향해서 사도 바울은 소리 높혀 외치고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세상의 외적인 영광이 아니라 초라한 십자가에서 나온다고... 결국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설교의 핵심은 문제의 해답이 복음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지혜에 대한 사도 바울의 대답은 십자가의 도, 즉 복음의 능력이었습니다.

  고린도는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며 그것을 제일의 가치로 삼고 살아가는데 그런 가치관이 교회 안에도 들어와서 세상의 헛된 영광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즉 교회가 외형적인 것, 더 많은 것, 더 높은 것, 더 큰 것만 최고의 가치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교회 안에 분파가 생기고 은사도 최고의 것만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 영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얼핏 보기에는 미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십자가의 복음으로 세워지는 것이 주님의 몸된 교회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습니다. 십자가 대속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새 생명을 얻고 담대히 하나님 보좌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십자가를 붙들었고, 그 십자가를 자랑하며 전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의 방식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대신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의 방식이 바로 십자가 아닙니까? 오늘 교회가 새롭게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십자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있다면 감각적인 세상 문화가 아니라 십자가의 능력,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가 더욱 더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교회가 소위 세상 문화를 따를 것 같으면 그 옛날 고린도 교회처럼 영적인 혼란과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다스리심,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그 십자가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사순절 절기는 교회의 삶을 점검하는 때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특히 십자가를 굳게 붙들고 있는가 하는 것을 점검해야 합니다. 오직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만을 믿고 의지하며 그 주님의 뒤를 따라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를 달게 지고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끝까지 순례자의 길을 걷기로 다짐하는 여러분 모두의 삶의 현장에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평강이 넘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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