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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의 진짜 실력은 기도입니다 (막 14: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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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조심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부인하고 떠나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모든 제자들이 다 자신만만하게 이렇게 큰 소리를 쳤습니다.
막14:31절을 읽겠습니다.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그렇습니다. 의욕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의욕에는 반드시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진짜 실력이 무엇일가요? 그것은 기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것이 겟세마네의 기도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의 실력이 없이는 어떠한 승리도 있을 수 없다, 모든 승리의 뿌리는 기도의 승리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진짜 실습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신 겟세마네 기도를 분석하여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1.예수님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홀로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32절을 읽겠습니다.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조용한 곳에서 홀로 오랜 시간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홀로 기도하셨듯이 우리도 우리의 삶의 전환기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혼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여기 “홀로 기도한다, 충분히 기도한다”라는 말을 “혼자만의 리듬으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저는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합심기도가 뜨거운 불을 붙이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약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자기 리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리듬대로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혼자서 오래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강한 뿌리를 가지고 있는 나무가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마귀의 어떤 유혹에도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변화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원뿌리를 만들어 열두 지파가 되게 하는 놀라운 뜻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홀로 오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야만 했습니다.
창32:23-24절을 보면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이 씨름을 기도의 씨름이라고 해석하지 않습니까?
어찌 보면 주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랜 기도로 승리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자기만의 리듬을 가지고 기도를 통해서 문제를 푸는 법을 배워야 그것이 진짜 영적인 실력이 되는 것입니다.

4월이 되면 우리 교회는 새로운 일이 시작됩니다.
저는 3월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힘을 집중하고 스스로가 기도로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할 중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4월에 새성전 건축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잘 준비된 가운데 4월에 다시 한번 힘있게 하나님 앞에서 우리 교회가 시온의 대로를 달리는 아름다운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2.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렇게 큰소리치는 사람만 데려가셨습니다.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수제자만을 데려갔다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큰소리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큰소리치고 자신만만한 사람들을 자기 스스로가 시험하게 만들어서 스스로의 연약함이 얼마인지를 깨닫게 만드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기도라는 이런 대 주제 앞에 부딪히게 될 때 큰소리쳤던 모든 사람이 다 굴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큰소리침과 교만을 꺾을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혹시 기도없이 인격수양을 통해서 내가 낮아지고 균형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자체가 교만인 것입니다.
오직 기도의 능력 외에는 우리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없고, 우리를 낮출 수 없고, 우리 삶 가운데 균형을 갖출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겸손하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수제자들, 또 다른 말로 하면 가장 큰 소리쳤던 사람들을 데려가셔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시험해보고 자기 자신의 어려움과 연약함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셨던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다 보면 대개 성도들이 큰소리치는 부분 때문에 하나님 앞에 훈련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거의 다 그렇습니다만 말끝마다 “고난이 별거냐!”라고 큰소리를 칩니다.
그러면 정말 하나님이 그 사람을 고난의 길로 인도하여 “너도 겪어 보고 승리해 보아라!”하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그 분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난은 정말 생각과 현실과는 다르구나”
그렇습니다.
그 한 부분을 기도를 통해 보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관계에 대해서 자신만만합니다.
가정 하나 컨트롤을 못하느냐고 큰소리치는 사람의 가정에 큰 어려움을 주어서 그것을 푸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겸손하게 낮아지게 만들고 모든 일이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는 풀릴 수 없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항상 건강을 자랑합니다.
항상 나같이 식이요법을 잘하고 운동을 날마다 하면 “의사는 다 굶어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자기 발로 병원에 가지도 못할 정도로 병이 들어 가지고 결국 나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부딪힘을 통해서 깨닫게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삶의 현장 속에서, 우리 삶에 만만하게 보이는 부분들이 절대로 만만한 것이 아니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기억하십시오,
기도 떠난 겸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기도를 통해서 스스로의 낮아짐과 균형을 배울 수 있는 신실한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고 구할 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3-34절을 읽겠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은 스스로의 심정과 두려움의 모습을 표현하시며 간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 너무 닫혀져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우울한 모습은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속을 보이지 않고 그것을 키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자꾸 속이는 위선적인 삶이 우리를 파괴적인 모습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다 연약한 종들입니다. 부족한 종들입니다. 내가 이렇게 약한 존재입니다. 내가 이렇게 부족한 존재입니다. 도와주십시오”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의 모습으로 병자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기도하면서 교만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면서 가식 속에 있을 수 없습니다.
왜 우리가 오래 기도해야 되는지 아십니까?
우리에게는 관성이 있기 때문에 기도훈련이 잘 안된 사람은 처음부터 자기의 원래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15분, 지독하게 딱딱한 사람은 30분 간절히 기도하다 깊은 기도 속에 들어갈 때, 어느 순간인가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과 하나님과 만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물론 평상시에 기도의 삶이 깊어진 사람들은 5분에도 그런 단계에 들어갈 수 있고 10분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이 자기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래 기도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만나고, 내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신실한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4.한 시간의 기도가 그 사람 인생의 운명을 바꾸게 합니다.
3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여기 “한 시 동안”을 어떤 사람들은 “짧은 시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문 성경을 보면 “한 시간”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한 시간 동안도 깨어있을 수 없더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최소 분량, 연약함 가운데 넘어지지 아니하고 우리 스스로를 지키고 깨어있고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한 미니멈은 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시간 동안도 깨어서 있을 수 없더냐”하시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라고 위로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일 먼저 시도해야 될 것은 힘들고 부족해도 한 시간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시간 기도하게 되면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시험에 들지 않는 신앙, 자는 신앙이 아닌 깨어있는 신앙이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부족하지만 우리가 20분이 되었든 30분이 되었던 계속 시도함을 통해서 모든 성도들이 하루에 한 시간씩 기도하는 운동이 벌어진다고 하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과 기적을 맛볼 수 있는 거룩한 성도들이 될 줄로 확신합니다.
오늘부터 우리 고현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이 기도를 통해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응답받는 믿음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합심기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리듬으로 혼자 오래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삶의 매순간의 난제들 속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부터 자기 리듬으로 기도하는 것을 통해서 승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의욕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실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짜 실력은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소개하신 한 시간만이라도 깨어서 기도하면 이 한 시간의 기도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뇌관과 같이 역사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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