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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 (히 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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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오늘 제가 기분이 좋습니다. 여러분과 같이 예배를 드려서 좋구요. 원 장로님 오셔서 감사하구요.
우리나라 야구가 세계 야구대회인 WBC 4강에 올라서 오늘 12시에 일본하고 준결승 경기를 합니다. 내친김에 우승하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6전 전승했는데 거의가 1점차로 승리예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안타 수는 적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승리를 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집중력의 승리다.’라고 합니다.
야구는 그렇잖아요. 안타 많이 쳐야 하지만 그런데 산발적으로 안타를 치면 점수가 안됩니다. 계속해서 한사람, 다음 사람, 그 다음 사람 이렇게 몰아서 쳐야 점수가 되는 거지요. 이종범 처럼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점수가 되게 하려면 필요한 때에, 아주 시기적절하게, 때를 맞춰서 안타를 쳐야 점수가 되는 거거든요. 뭐든지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잘 해야 되지만 때를 잘 맞추는 것이 우리 성공의 비결이 있는 것입니다.

콩나물국 끓여 보셨어요? 너무나 오래 끓여도 안됩니다. 너무 일찍 열면 비린내가 나서 못 먹습니다. 알맞은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가 중요합니다. 밥도 마찬가지로 끊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뜸도 들고 때가 되어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범사에 기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어날 때가 있는가 하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습니다.

때를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때가 있기 때문에 그때를 잘 만나서 결혼한 부부가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두 남녀가 결혼을 하게 됐는데,, 주변에서 어떻게 결혼을 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름 때문에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맞선을 보는데 서로 통성명을 하잖아요. 남자가 하는 말이 “‘철’이라고 합니다. 성은 ‘전’이고요.” 그러면 이름이 ‘전철’이지요. 그러니까 상대방 여자 분이 막 웃더래요. “왜 웃습니까? 초면에···· ” 그랬더니 “예. 제 이름은 ‘호선’이예요. 성은 ‘이’씨구요.” ‘이호선’ 두 사람 이름을 합치니까 ‘전철 이호선’ ‘이호선 전철’이 되잖아요. ‘우리가 천생연분이구나’해서 결혼을 했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세상의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때가 맞아야 하는 겁니다. 한 소년이 엄마와 함께 과일가게에 갔습니다. 엄마가 과일을 사는 동안에 소년은 앵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과일가게 주인아저씨는 ‘얘가 앵두가 먹고 싶은 모양이구나?’ 생각하고는 “얘야 앵두가 먹고 싶으면 한 손 집어 먹어라” 아이가 좋아서 집어 먹을 줄 알았는데 가만히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과일가게 주인아저씨가 하는 말씀이 “얘! 넌 먹으라고 했는데 왜 안먹니? 왜 그렇게 숙기가 없어? 자 내가 줄게” 하고는 아저씨가 한주먹 집어주니까 “감사합니다.”하고 소년이 받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아니 넌 아저씨가 집어 먹으라고 할 때는 집지 않더니 아저씨가 직접 주니까 받았니?” 그랬더니 이 아기가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엄마! 내 손보다 아저씨 손이 더 크잖아요.” 이 아이는 때를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이 소년이 성공했습니다. 어린 내 손보다 어른의 손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작은 손이 아닌 큰 손이 쥐어 줄줄 아는 때를 아는 소년이 바로 그 유명한 ‘카네기’입니다. 카네기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때’ 적당한 때, 시기적절한 때를 맞출 줄 아는 것이 성공과 승리의 비결입니다.
지금부터 30년 전만 해도 타자기 하나만 있으면 아주 대단했거든요. 학교 다닐 때 타자로 쳐서 리포트를 내면 점수도 더 받았습니다. 그때 스미스 코로나 하나만 있으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타자기 회사지만 IBM은 그 후에 컴퓨터 회사로 전환을 하니까 세계적인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미스회사는 계속 타자기만 만들다가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회사 이름도 없습니다. 변화해야 될 때 하지 못하니까 안되는 겁니다. 때를 맞춰야 성공을 하는 겁니다.
소니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워크맨 만들어서 돈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다가 CD가 나오니까 CD플레이를 만들어서 팔다보니까 또 조그만한 MP3 player가 나오잖아요. 조그만한 컴퓨터 칩에다가 저장을 합니다. 변화되려고 할 때 안하면 실패를 하는 겁니다.
변화하려고 할 때 변화하는 사람이, 때를 맞추는 사람이 성공을 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때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인생을 향하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우리로 잘 살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처음 만드셨을 때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셨고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내가 네 이름을 창대케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겠다.” 하시더니 히브리서 6장 14절에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계시록 21장에도 우리가 저 천국에 가서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 가서 살게 되는데 동서남북 12 진주 문이 있고 보석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곳에서 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목적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이런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힘으로 천국을 이루어 보려고 합니다. 그거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게 하시려고 ,아니 하나님을 믿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시려고 때를 맞춰서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거든요.
오늘 성경말씀을 보게 되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다는 겁니다. 때를 따르는 때가 언제입니까? 언제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을 알고 축복 받는 은혜를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때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때를 알면 우리는 성공도 하고 승리도 하고 축복받는 삶을 살게 될 수가 있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때를 잘 알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계획하신 복을 충만히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은 첫째 어려울 때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불가학력적인 일들이 일어납니다. 코미디언 김형곤 씨의 죽음이 그렇습니다. 건강하려고 운동하고 잘살아보자고 웃자고 하던 그분이 이렇게 갑자기 죽을지 어떻게 알았습니까? 우리에게는 홍수나 가뭄, 벼락같이 천재지변의 일이든지, 전쟁과 같이 갑자기 죽는다든지 병든다든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어리적인 사람들은 이런 불가학력적인 일이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때에 무관심해집니다. 아니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에 대해서 가르친 것을 보세요. 농사를 지어서 풍년이 되니까 이 어리석은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합니까? ‘창고를 크게 짓고 천년만년 잘살아 보자’ 하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오늘밤 네 생명을 가지고 가면 그 많은 재산이 네 것이 되겠느냐?” 돈이면 다 된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건강이면 다 된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겸손하게 준비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상황이 좋던 나쁘던 간에 원망이나 불평을 하면 안됩니다. 어렵다고 궁상도 떨지 말아요. 누가 도와주지 않습니다. 죽겠다고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더 천히 여깁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느긋하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어려울 때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미국의 국무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는 흑인 여성입니다. 지난 16일 시드니대학에서 ‘자유에 대한’ 강연을 했습니다. 이날 흑인으로 그것도 여성이 성공에 대한 비결의 질문에 대해 단 한마디로 말하기를 “인종차별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고 했습니다. 사실 3-4년 전 미국사회에서 흑인을 인종차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백인 우월주의자인 KKK란 유색인종들을 테러하고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라이스는 자기가 태어났을 때에는 식당이나 호텔에도 갈수 없었고, 학교j에 가면 백인들과 같이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흑인들끼리만 모여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가학력적인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라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도 지금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어떤 세상을 보고 싶은지 생각해 보고 그 세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의 잣대로 세상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어려움이 우리 인생의 전부가 다 아니라는 겁니다. 보고 싶은 세상을 생각하고 노력하라!! 왜요?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주인은 백인이 아닙니다. 힘있는 자가 세상을 다스리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가질 수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흑인 여성을 도와 주셨습니다. 인종차별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세계를 다스리셔서 이 여인으로 하여금 우뚝 서게 하셨습니다.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겁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하나님이 주신은 은혜가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은혜를 받으라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풍랑이는 바다에서 제자들이 두려워 떠니까 주무시던 주님이 일어 나셔서 ‘바다여 잠잠하라! 바람이여 그쳐라!’고 하시니까 바다도 잠잠해지고 바람도 그쳤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말을 했지요.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길래 바다도 순종하는가?!’
우리는 병나면 어렵습니다. 죽어도 어렵습니다. 풍랑이 일어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어려움을 해결하실 분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 불평합니까? 무엇 때문에 원망을 합니까? 원망과 불평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문제를 뛰어넘어서 우리의 삶을 복되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이드포스트에 실렸던 간증입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폭풍우 허리케인으로 얼마나 바람이 센지 호수의 제방이 무너져서 호숫가에 살던 찰스 시어즈 집에 물이 잠겼습니다. 아내, 3명의 자녀와 함께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물은 점점 불어오고 꼼짝없이 죽게 됐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이젠 틀렸어요. 다 죽게 됐어요.”라고 하니 아내가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여보 우리는 살 수 있어요.” 아내가 ‘우리는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생각이 나더래요. 오랫동안 하나님을 잊고 교회를 떠나 살았는데 그래도 예수님이 생각이 나는데요. 힘이 생기더랍니다.
“여보! 우리가 주님을 잊고 있었네요. 주님이 살려주실 거예요.” 그러는 순간에도 물이 점점 차올라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가족들은 겨우 목만 물 밖으로 내 놓고 있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물속에 잠깁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도우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니 힘이 나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432장)

찬송을 부르는데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나는지 소망을 감당할 수 없어서 찬송을 부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는 겁니다. 그 순간 주님이 내려다보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놀라운 일은 호숫가에 있었던 한 낡은 배 하나가 자기네 쪽으로 가까이 오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족은 그 배를 타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어려울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를 따라서 크신 은혜를 주십니다. 그때 우리가 바라봐야 될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 세상의 주인이시는 주님이십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로 하여금 복되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어려울 때에 은혜주시는 때입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은 둘째, 내가 약할 때 은혜를 주십니다.

살다보면 힘이 딸릴 때가 있습니다. 될 것 같아도 안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사람의 힘으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공산당입니다. 공산당이 망했잖아요. 사람의 힘으로 다 못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꾸 사람의 힘으로 다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내가 힘이 없어서 실패를 하게 되면 낙심하고 절망을 합니다.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아무것도 못합니다. 어려서부터 엄마뱃속에서부터 예수를 믿었다고는 하는데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모태신앙”이 아니라 “못해신앙”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내가 오랫동안 예수를 믿어도 우리가 못하는 것은 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세요. 집 떠나서 3년 동안 주님을 따라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눈으로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자기들도 능력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일이 생기니까 다 도망가잖아요. 내 힘으로 뭔가 해보려고 하는데 안되니까 다 떠나버리잖아요. 살 때는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이 왕이 될 것 같으니까 네가 일등이냐? 내가 일등이냐? 서로 1,2등을 다투고 있습니다. 이러던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오직 성령의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하나님 앞에 주님이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모여서 기도합니다. 성령 주시옵소서. 성령을 받으니까 사람들이 달라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약해 졌을 때에 하나님이 그때에 도우시는 은혜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디슨의 말 중에 “천재가 되는 비결이 무엇이냐?” “나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99%의 노력만을 중시합니다.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1%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에디슨은 1%를 귀하게 여기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를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더욱 하나님만 바라보게 됐다는 겁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 매달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1%의 창조적인 능력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그로 하여금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했다는 겁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겁니다. 내 경험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요즘 고난 속에서 ‘나는 죄없다’라고 생각을 하니까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할 때 해결이 되는 겁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선지자를 보세요. 갈멜산에서 바알,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의 영적대결에서 승리한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그도 약한 인간입니다. 이세벨왕비가 죽인다고 위협할 때 그 능력을 간 곳없고 도망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힘주세요. 능력주세요”라고 기도 하지 않고 “죽여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이 모습이 본래 인간의 모습이고 약한 모습입니다. 그가 가졌던 영적인 경험이 그를 살리는 게 아닙니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내가 옛날에 어떻게 했고... 뭘 했고... 하나도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왜 자꾸 옛날 얘기를 하는지... 그게 뭐 어떻다는 겁니까? 옛날에 밥 안 먹었으면 지금 밥 안 먹습니까? 똑같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순간순간 그때그때마다 능력을 받아야 사는 것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을 보세요. 몸에 병이 세 가지가 있는데 기도해도 낫지 않습니다. 이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의 병을 고쳐준 사람이었습니다. 죽은 사람도 살렸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병은 못 고칩니다. 그 순간 그가 깨닫습니다. “나는 약한 존재다. 나는 하나님의 능력, 치유의 능력, 죽은 자도 살렸지만 나는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고후 12장에 말하기를 “나는 약할 때 온전해 지는데...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가 고백하기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시고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일을 하신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꽃을 든 남자’라는 화장품의 강석창 사장의 간증입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허약한 체질 때문에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가정형편이나 개인적인 상황을 봐서는 그에게는 아무런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부터 열심히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업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화장품 회사에 취직을 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열심히 기도하며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실적을 인정받아 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강사장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믿음을 가지고 회사 이름을 ‘소망화장품’이라고 붙였습니다. 제품이 생산되자 회사는 나날이 번창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차 교만해져 자기는 사업에 천재적인 소질을 지녔다는 자만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승용차는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는데 강사장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 후로 그는 교만한 마음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지금까지 살아있음을 고백하며 지금까지의 교만을 철저히 회개하고 회사의 모든 운영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아니라 능력주시는 하나님으로 할 수 있을 줄로 믿고 은혜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약해도 주님은 강하십니다. 여러분 강하신 주님으로 승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은 셋째, 스스로 약해 질 때 은혜를 주십니다.

이때는 헌신할 때입니다. 주를 위해 나의 것을 바칠 때입니다. 여러분 자연의 법칙은 심으면 거두게 돼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어야 거둡니다. 이 세상의 법칙만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적인 법칙도 심어야 거두게 돼있습니다. 영의 눈이 뜨지 못한 사람은 자연의 법칙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법칙을 못 봅니다. 남이 하는 축복을 보면서도 그 축복을 내 축복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감겨있어서 그렇습니다. 영의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해주십니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심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가 어렵습니다.
천안에 호두과자로 성공한 심복순 권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호두과자를 시작할 때 “하나님 사업의 절반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십일조가 아닙니다. 절반을 바치겠다고 하니까 하나님이 사업에 그렇게 복을 주시는 겁니다. 예배당 7개를 짓고 하나님이 더 복을 주시는 겁니다. 이분은 철저하게 심는 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영적인 법칙을 아셨던 분이었던 겁니다. 해보신 분은 아시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시간을 드리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리고,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리고, 하나님 앞에 헌신을 드릴 때에 하나님을 이것을 절대로 잊지 않으시고 응답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성전건축을 계획할 때에 하나님은 때가 아니라고 거절을 했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도 복을 주시는데 하나님의 성전건축 계획만으로도 복을 주시는데..... 그래서 자손만대까지 복을 받잖아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왜요? 다윗의 족속이 유대족속이잖아요. 이 유대인이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틀림이 없습니다.
미국의 교회를 보게 되면 부러운 것이 무엇이냐면 미국 교인들은 교회에 재산을 바칠 줄 압니다. 헌금시간에도 접시위에 일불, 이불 이렇게 하는데 세상을 떠날 때 보면 교회에 재산을 바칩니다. 빌게이츠가 세계에서 일등가는 부자잖아요. 그런데 이 집안이 나라의 정책 가운데 반대하는 것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상속세를 폐지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합니다.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을 반대합니다. 오히려 상속세를 올리라고까지 합니다. 우리하고 생각이 이렇게 다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복을 받는지를 잘 압니다. 돈 물려줘서 복 받는 것이 아니고 집 물려줘서 복 받는 것이 아니고 잠시 잠깐은 잘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은 그렇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 대해서 얘기를 했습니다. 그 책을 읽어 보시게 되면 부자아빠와 가난한 아빠의 차가 무엇입니까? 자녀들이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고 할 때 도우라고 말하는 것은 부자아빠이고 왜 그게 복 받는 비결이니까요. 반대로 가난한 아빠는 “이놈아 네가 돈이 어디 있느냐? 나중에 네가 돈을 벌어서 하거라 ”라고 하니까 가난해 지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적인 법칙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심어야 거두는 겁니다. 맨땅에서 거두려고 하는 것은 도둑 심보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심어야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들은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을 늘 생각하며 사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내 능력이 떨어져 약해질 때 능력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내가 주를 헌신하여 스스로 힘이 약해질 때에 심는 대로 거두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보지 말라는 겁니다. 시대를 보지 말라는 겁니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주실거라 생각하십시오.

어느 외과 의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하는 말이 “외과의 좋은 의사가 되려면 두 가지를 잘해야 한다. 하나는 환자들의 상태라든지 상처, 고름 등을 지저분하게 생각하지 말고 더 가까이 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외과의사는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잘라내야 하고 붙여야 하면 붙여야 하고 하니까 관찰을 잘해야 한다.”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시범을 보이는 겁니다. “여기 고름이 있지”하면서 이만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고름을 지저분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러면서 손가락을 고름담은 그릇에 넣더니 입으로 쭉 빠는 겁니다. 시험이니 학생들도 하라고 지시를 합니다. 학생들이 질겁을 하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면서도... 시험이니까 다들 손가락을 고름 담은 그릇에 손을 넣고는 그 손가락을 입으로 빨았습니다. 뭐 아주 끔찍한 거죠.
선생님은 학생들을 보면서 잘했다고 칭찬을 하실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50점이다. 왜? 너희들은 지저분한 것은 합격했지만 관찰이라고 하는 면은 너희들이 생각을 안했다.” “자 봐라 나는 이 손가락으로 찔러서 빤 것은 세 번째 손가락으로 빨았다.”
여러분 우리들이 이 얘기 속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잘 보세요. 주어지는 상황 속에서 잘했다, 고생했다는 것이 중요하지만 절반입니다.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을 때만 좋아하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 없이도 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인생들이 되지 마세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자,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말하기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에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려울 때, 힘이 약할 때, 그리고 스스로 약해졌을 때 나를 위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 한주간도 주의 은혜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찬송 가운데 이런 것이 있잖아요.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령의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주시고 늘 지켜주시리

(후렴)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오창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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