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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망의 무지개 (창 9: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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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에게 무지개를 보여 주시며 소망으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는데 이것은 물과 비로 인해서 두려움 속에 있었던 노아의 가족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내 인생에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두개의 무지개가 있다. 첫번째 무지개는 1991년 아프리카 선교 때에 보았던 것이다. 젊은이 15명과 함께 6주 동안의 선교를 시작하였는데 두려움과 걱정으로 막막한 마음이었다. 건조기였기 때문에 비를 기대할 수 없었지만 몇 일 전부터 기적적인 비가 내렸고 한다. 초목이 온통 초록색으로 덮히고 풀을 뜯는 동물들도 보였다. 6 주간 동안 어떻게 섬겨야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에 갑자기 쌍무지개가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문제도 없다. It’s O.K.’라고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들리는 듯 하였다. 그것은 지금의 Kingdom Dream의 목회를 위한 힘이 되었다. 두번째 무지개는 1년반 전에 동부로부터 남가주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보았다. 남가주 사랑의 교회 부임을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 차를 타고 대륙 횡단을 하였다. 그러던 중에 북쪽을 향하다가 허허벌판을 지나고 국경을 넘어서 캐나다 지역으로 접어 들었을 때에 갑자기 차가 고장이 났다. 대충 응급 조처를 하고 가슴을 조리며 운전을 하는데 내 앞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비도 오지 않는 상황 속에서 만난 무지개는 분명히 하나님의 메시지였다. ‘너는 괜찮다. 내가 너와 함께 간다.’라는 메시지를 듣고 그 약속으로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다. 내게는 이렇게 무지개에 대한 특별한 감동이 있다

하나님은 이같이 결정적인 상황에서 무지개를 보여 주신다. 사람들은 무지개를 물리학적으로 물방울과 빛의 조화로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은 무지개가 주는 상징적 의미를 주시는 것이다. 마치 Valentine’s Day때에 아이들이 heart-shape을 선물 받을 때에 그 안에 담긴 마음의 의미를 느끼는 것과 같다. 오늘, 무지개가 주는 상징적인 약속의 메시지를 듣고 그 앞에서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돌아보자.

(1)평화를 선포하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가족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13-15절에서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물을 이제로부터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비와 물로 다시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었다. ‘Rainbow’란 단어에서 ‘bow’는 장군의 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님은 장군의 모습으로 그 활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서운 활을 하늘에 걸어 놓았다는 의미가 된다. 마지막 때가 올 때까지 화살을 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주시겠다고 선포하신 것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께서는 장군의 모습이었는가? 그 분은 평화의 메시지를 가지고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오셨다. 그래서 예수의 또다른 이름이 Prince of Peace이다. 어떤 사람이 밤 하늘을 올려보다가 엄청난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분이 우리를 대적하신다면 그 앞에서 과연 누가 살아 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두려움에 휩싸여서 이렇게 질문을 하였다. “하나님, 당신은 우리의 아군입니까 혹은 적군입니까?” 그때에 하나님께서 “나는 너의 아군이다. 그래서 나의 독생자를 네게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 함으로 너희에게 나의 사랑을 보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그 사람은 훌륭한 목사가 되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 대신 그의 독생자를 죽이며 모든 분노를 쏟아부으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자.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정죄함이 없이 구원을 받게된다

(2)언약을 끝내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성경에서 무지개를 말씀하신 곳은 세 곳(겔1:28, 계4:3, 계10:1)인데 그 중에 계시록4장3절을 보자.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창세기에서는 언약을 시작하며 무지개를 말씀하셨고 계시록은 언약의 마지막 단계에서 말씀하셨다. 특히 계시록의 무지개는 천국의 보좌에 둘려있는 모습이다. 모든 언약을 다 이루시고 모든 역사의 승리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를 두르고 있는 무지개를 상상해 보라. 노아 시대를 심판하신 후 온 땅에 자손을 번성케 하라고 하셨고 모든 언약을 진행하신 후 그 백성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언약의 완성을 무지개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지개로 하신 약속을 끝내 이루신다는 것이다. 이 언약은 우리의 부족함과는 상관이 없이 이루어진다. 물의 심판을 끝내신 후에, 9장에서는 부패될 세상에 대한 언급이 있고 후반부에서는 노아의 실족한 모습도 나온다. 당시의 세상은 이미 창조 때와는 많이 다른 세상이다. 8장을 보면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죄악뿐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이 이미 알고 계셨다. 의인이었던 노아도 실족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노아를 의인으로 인정하셔서 세상을 구원하신 직후에 이러한 노아의 모습은 정말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창세기만을 보면 이러한 모습이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성경 전체를 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뛰어 넘어서 언약을 세우고 끝까지 신실하게 그 언약을 완성하신다. 우리의 부족함과 죄악을 뛰어 넘어서 언약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이다. 무지개를 통해서 우리와 함께 이루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상고해 보자.

(1)소망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구원을 완성하기 전까지 다시는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세상은 전쟁과 부패와 온갖 죄악으로 변질되어가고 있지만 걱정하지 말자. 세상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로 운행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언약을 붙잡자. 우리에게는 변하지 않는 소망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환난 가운데서 소망을 가지라고 권면하고 있다. 왜냐하면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소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환란도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27년을 감옥 안에서 지낸 넬슨 만델라는 딸의 이름을 ‘Hope’이라고 지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버리지 않았다. 성경은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이 우리에게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사탄은 믿음, 소망, 사랑을 우리로부터 빼앗으려고 하지만 우리는 빼앗기지 않는다. 아버지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소망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소멸되지 않는다.

(2)위기를 기회로 삼으십시오.
  심판이 끝난 후 노아의 가족들은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죽었고 살아 있는 것이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곳은 소망의 무지개가 빛나는 세상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위기 가운데 소망을 갖고 이를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와 우리 가족을 통해서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확신할 수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근처에 ‘아이벨리아 반도’라는 곳이 있다. 이 이름의 의미는 ‘세상의 끝’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반도를 ‘Starting Place’ 혹은 ‘Launching Place’라고 부른다. ‘세상의 끝’이 아니라 ‘세상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시작’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결국 신세계를 찾게 되었다. 지난 주에 남가주에서 목회하는 중국 목사들을 만나서 대화하였다. 우리 교회의 새벽 예배에 성도들을 데리고 오고 싶다는 것이다. 그들이 물어보기를, 대만에는 오직 3% 만이 기독교인이고, 중국이 아무리 폭발했다고 해도10% 정도인데 어떻게 한국은 30% 이상의 많은 기독교인이 있는냐는 것이다. 거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기도하는 백성이라는 사실과 한국을 위해서 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렸다는 이유이다. 우리를 찾아온 선교사들의 피, 일정시대 때에는 신사참배를 반대한 순교자들의 피, 6.25때에는 공산당들에게 희생된 순교자들의 피, 이들의 피가 이어졌기 때문에 한국에는 30%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가능했다. 순교자의 피로 세워진 교회이니 부흥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삼은 우리의 조상들 때문이었다. 우리가 예배한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자신과 우리의 가족이 위험을 당해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연속적인 피흘림과 박해 속에서도 소망을 갖을 수 있는 이유는? 나는 힘이 들어도, 칼과 총 앞에서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이유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서 우리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이 되는 소망을 갖기 때문이다. 수단에는 내륙전쟁으로 부모들 잃고 이후에 미국으로 와서 신학생이 된 많은 학생들이 있다.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면 정부로부터 순교 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우리 수단에서는 엄청난 부흥이 이루어지고 있다. 박해와 순교를 통과한 자들은 알곡같은 신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기회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더이상 위기가 위기일 수 없었다. 그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위기 중에서도 확신하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위기가 좋은 기회일 뿐이다.

(3)소망의 하나님을 전하십시오.
  약속을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 부족한 자들을 그저 Let go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다. 정말로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소망을 주신 하나님이라면 우리는 그 하나님을 전해야 한다. 무지개가 있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입도 없는 하늘이 그 분의 하신 일을 선포하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받은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소식이 있을 때에 전하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WBC game을 보고나서 내게 급히 승전보를 알려주는 아들을 보고 얼마나 좋으면 이렇게 급히 전화를 해주는지를 생각하였다. 뉴욕에서 루치아 파바로치의 마지막 공연이 있었는데 모든 연주가 끝난 직후 일곱 차례의 앙콜이 계속되었다. 너무나 좋으니까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진짜 좋은 것이 무엇인가? Sports와 Performance를 보고도 그렇게 좋아한다면, 막힌 담을 헐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두번 이기고 세번째 지는 야구같은 우리의 인생보다 끝없이 승리하고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향해서 앙콜과 Bravo를 올려드리자. 할렐루야와 아멘을 올려드리자. “세상아 보아라, 신실하신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을 보아라.” 세상은 알 수가 없다. 영원히 승리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전해야 한다. 지금은 먹구름이 물러가고 무지개가 보이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무지개로 보여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세상을 향해서 외치며 나아가야 한다. (김승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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