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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광 나타내신 예수 (요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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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네 번째입니다. 먼저 1절에서 3절을 보겠습니다. 사흘 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성경에 사흘 째 되던 날이라고 기록된 것을 보니 예수님께서 몇 사람을 제자로 삼고난 뒤 한 사흘 쯤 되던 날인가 봅니다. 그 날 예수님께서 사시는 동네인 나사렛에서 가까운 동네인 가나에서 결혼식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결혼식은 저녁 늦게 거행되고 결혼한 신랑 신부는 신혼여행을 가지 않고 곧바로 신혼집으로 갑니다. 저녁 늦게 신혼집으로 행진해서 가는데 횃불을 환하게 들어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고 들러리들을 세워 온 동네를 돌면서 동네 사람들이 다 보게 합니다. 이를 본 동네 사람들은 이들을 축하하고 축복해줍니다. 결혼잔치는 보통 일주일 동안 지속되는데 워낙 힘들고 놀고 즐기던 것이 없던 시대였으므로 이 때 잔치는 큰 이슈이고 모든 사람들이 다 즐길 수 있는 행사였습니다. 그 잔치동안 신혼부부는 예복을 입고 있으며 신혼집을 개방하므로 모든 친구들이 와서 축복해 줍니다. 잔치 동안 신혼부부는 왕과 왕비와 같은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이 때 동네 사람들은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잔치를 하면 돼지 한 마리를 잡아 나누어 먹었는데 여러분도 그 때의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초대받아 참석한 것이 이 잔치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 잔치 집에 어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유대인의 잔치에 가장 중요한 것이 뭐니뭐니 해도 포도주였는데 이렇게 중요한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잔치 집으로서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 집이 넉넉하지 못해서 포도주를 빠듯하게 준비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마셨는지 그만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집에 예수님께서 가신 것입니다. 넉넉한 가정에 가신 것이 아니라, 세상적으로 높은 사람의 집에 가신 것이 아니라 결혼 잔치에 가장 중요한 포도주도 넉넉하게 준비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가정에 가셨다는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더욱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때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는 첫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첫 시점을 가난한 집에서 출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십니다. 남녀노소 무론하고 가진 집도 없는 집도 모두 사랑합니다만 그 중에서 예수님께서 더 사랑하는 집은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아픔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진 사람, 높은 사람은 예수님이 가지 않아도 올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없는 사람은 찾아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병든 사람 역시 처음에는 조금 아는 척해도 시간이 지나면 찾아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초청을 받아들이고 거절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초청은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의 초청입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미움 받고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 그것이 자기 탓이든 아니든 세상 사람들로부터 귀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의 초청을 우리 주님께서는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이 잔치 집에 계셨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 집일을 도와주려고 왔던 것 같습니다. 옛날에 우리나라도 잔치가 벌어지게 되면 동네 사람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한 사람을 모셨는데 그 사람은 모자라는 음식을 가장 잘 분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이런 분으로 초청을 받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이 집의 딱한 사정, 이 집에 가장 중요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정을 예수님께 말씀합니다. 사실 어머니 마리아는 자기 아들에게 그 말을 하면서도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성경이 오늘 포도주를 만든 것이 예수님의 첫 기적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예수님께서는 이전에 이런 기적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어머니는 예수님에게 이것을 말했습니다. 그냥 아들을 믿은 것입니다. 이것이든 저것이든 마리아는 믿었습니다. 본능적으로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았고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알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똑똑해서 이와는 반대로 알고 이해하려고 하는데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너무나 한계가 많습니다. 우리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열 번 태어나도 세상에 있는 것의 만분의 일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보여준 것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그냥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나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믿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에게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하든 그냥 예수님에게 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깜깜해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믿음이 있는 사람은 빛을 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절망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절대로 잃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빛을 주고 희망과 소망을 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유도 없이 행복합니다. 일이 해결되지 않아도 믿음만 있으면 행복합니다. 예수님께 가는 사람, 예수님을 찾는 사람, 예수님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아무리 힘들 때에도 예수님께 말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예수님에게 가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보다 천 배, 만 배 똑똑하다는 사람도 모두 예수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이런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왜 그런지 몰라도 이런 노래가 나오게 됩니다. 아직 깜깜한데 있어도 푸른 초장에 있는 것 같고 아주 황폐한 곳이 있지만 이미 풍성한 시내물이 흐르는 곳이 있는 것같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인생 살다 보면 속상하고 억울하고 분통터질 때가 많습니다. 도무지 화를 견디지 못할 때가 있지만 예수님에게 가기만 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고 잔잔한 바다와 같이 됩니다. 십자가에 가기만 하면 그렇게 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이런 평안을 주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지금도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어지는 4~5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좀 신경쓰고 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부탁했는데 예수님의 대답이 불손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한 말은 불손한 것이 아니라 당시에 보통 쓰는 말투였습니다. 그리고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는 말은 ‘나는 그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 라는 말이 아니라 ‘어머니 걱정하지 마시고 저한테 맡기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라는 말뜻입니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에게 여자여 라고 말하는 것은 그 당시에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 라고 한 말은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우선 아직 제가 나설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제가 나설 때가 아니라고 하면서 예수님이 나서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바로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실 때마다 그냥 기적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한 걸음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하여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냥 나타내거나 누구를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항상 그 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더 가까이 가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과 많이 다릅니다. 그리고 성경은 여러 번 예수님의 때를 말하고 있는데 그 모든 때가 십자가의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어머니 저는 아직 십자가를 질 때가 아닙니다.’ 라는 말입니다. 이 말들을 전부 모아서 의미를 살펴보면 ‘어머니께서 이 집의 딱한 사정을 보고 저보고 부탁을 하시기 때문에 제가 기적을 만들기는 만들겠습니다만 이번에 제가 만드는 기적은 저의 본래의 사명인 십자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만 어머니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일 뿐입니다’ 라는 말입니다. 인간 예수님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어른의 말에 순종하는 젊은 사람을 하나님은 좋아하십니다.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난 후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5절)라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또 그냥 믿은 것입니다. 아직까지 예수님은 어떤 일도 하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예수님에게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자기만 믿었을 뿐 아니라 하인들에게도 자기 믿음을 믿고 따라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적은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기적은 이런 믿음에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곳에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6절에서 11절입니다.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잔치집에 돌항아리 몇 개가 있었는데 이 돌항아리의 용도는 손 씻는 물을 넣는데 쓰입니다. 이 지방 사람들은 자주 손을 씻었습니다. 특별히 이방인들을 접촉하고 난 뒤에는 손을 씻었습니다. 식사 중간 중간에도 손을 여러 번 씻었습니다. 위생적인 목적보다는 종교적인 목적이 더 많았습니다. 부정을 제거하는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6절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돌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하시고 곧바로 물을 떠서 사람들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연회장이라고 하는 사람은 잔치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하객들을 책임지는 사람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 분이 맛을 보고난 후에 깜짝 놀라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라고 말했는데 아마 사람들이 전부 다 모인 앞에서 이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이런 기적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좀 드러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가나에서 그것도 손님도 별로 없는 이런 집에서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자꾸 자랑하고 이름을 내고 싶습니다만 우리 하나님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세상의 일이고 교회는 그런 것이 아니다, 신앙인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교회와 교회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너무 세속화되어 있습니다. 기업을 하는 사람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만 교회는 사업이나 영업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식으로 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 집에 가서, 꼭 필요한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고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교회의 일이라고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신혼부부가 이 포도주를 끝까지 준비하지 못했더라면 얼마나 낭패를 보았겠습니까? 이런 어려움을 겪고 정말 낭패를 당하는 사람들을 아껴주고 챙겨주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바는 잘난 사람, 돈 많은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교회를 필요로 하고 기독교를 필요로 하고 우리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교회가 되라고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물이 포도주로 바뀌듯 모든 것이 바뀝니다. 질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사람이 바뀝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속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이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계서야 합니다. 이 나라에 예수가 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바뀝니다. 예수가 오시게 되면 안 되는 일이 되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문제가 해결로 바뀌게 됩니다. 부끄러움을 당하고 조롱을 받던 사람이 더 이상 조롱받지 않고 칭찬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시대에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이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킴으로써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위대한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까? 위대한 변화가 있을 때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놀라운 변화가 오늘날 우리와 우리 가정과 이 나라에 필요합니다. 그것은 단 하나 예수를 중심에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운데 모시게 되면 예수님은 모든 것을 최고의 것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김태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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