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은 빛이시다 (요일 1:5-10)

  • 잡초 잡초
  • 515
  • 0

첨부 1


찬송가429장 1절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되신 주
저 본향 집을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 걸음 씩 늘 인도 하옵소서

오늘 본문말씀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합니다.
이 말은 요한 1서에 나오는 말씀 중
중요한 단어를 열거하라면 생명, 기쁨 사랑, 진리라는 말들인데
이 모든 것의 본질적인 근원이 하나님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깨닫고 붙들 수 있는 말씀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사도요한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1. 오늘 사도요한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5절)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가장 귀한 복이 무엇일까요?
빛이신 하나님과 교제를 여는 것입니다.
왜? 빛되신 하나님과 교제를 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복일까요?
먼저 빛을 생각해 보세요.
빛은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빛이 없는 곳에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빛되신 하나님은 바로 나의 생명의 근원입니다.
빛은 또한 색깔, 즉 칼라의 근원입니다.
빛이 없는 곳에는 색깔이 없습니다. 즉 물체를 분간할 수 없습니다.
내 인생에 하나님의 빛이 비춰지지 아니하면
내 인생의 삶의 의미를 모릅니다.
빛은 어두움을 물리칩니다.
어두움은 폭풍으로도, 군대로도 물리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권력으로도 돈으로도 물리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빛이 들어오면 저절로 물러갑니다.
이 빛은 하나님이시오, 요1:4절에 예수님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 마음에 영접한 사람은
구원의 생명,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죄된 생활을 버리고 빛된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사도요한이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말씀을 통해 <2>
하나님은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분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성도는
어두운 생활, 죄의 습성과 생활을 버려야할 것을 말합니다.
엡5:8-9절에
[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 고 합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갔을 때에는 어두움의 자녀이더니
지금은 예수 믿고 빛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행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인생의 최대의 복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성도의 삶 - 바로 빛 가운데 행하는 삶으로
부자로 권력자로 스타로 지식이 엘리트로 사는 것이 복이 아니라
비록 가난하고 무명하게 살더라도
착하게 살고 진실되게 사는 것이 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빛 되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예수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2.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예수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해 보일 수 있습니까?(6-7절)
1)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라 ] 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우리의 생활에 빛의 열매가 없다면
그리고 옛날과 다름없이 어둠 속에 그대로 머무는 생활을 한다면
이런 자는 거짓말을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사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빨간 거짓말은 하지 아니한다 해도
하얀 거짓말, 또는 습관적 거짓말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교인들의 거짓말에 대한 불감증을 이렇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어느 신사가 길을 가다가 사내 아이들이 개 한 마리를 가운데 놓고
둘러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사는 개가 불쌍해서 가까이 가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한 아이가 [ 강아지 한 마리가 길을 잃었는데 우리가 서로 이 개를 갖고 싶어해요.
그래서 거짓말을 제일 잘하는 아이가 이 개를 갖기로 했어요 ] 라고 합니다. 신사는 <3>
[ 얘들아, 거짓말 시합을 하면 안 된다. 거짓말이 죄라는 것을 모르니?
내가 너희 나이 때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단다] 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바로 그때 한 아이가 한숨을 크게 쉬며 이렇게 말했다.
[ 좋아, 저분이 1등이야. 저분께 강아지를 드리자. ]
이것이 우리 모습이 아닐까요.
그래서 엡4:25절
[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
예수 믿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는 자임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빛되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은2) 예수의 피로 깨끗함을 받은 거룩한 공동체가 된다는 것입니다.7절 말씀을 보면
[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 ] 고 합니다.
빛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의 특징은 성도 간의 교제가 있는데
성도 간에 교제가 있으려면 먼저 속죄함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가족이 되려면 같은 피를 나누어야 하듯이
예수의 보혈로 속죄함을 받아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라야
예수 공동체 즉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강조해서 말한다면
빛 가운데 살지 아니하는 자들은
성도 간의 교제를 하지 아니하는데
이유는 죄악 된 생활을 버리지 못하고 어두운데 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7절에서 다시 핵심 단어인 ‘사귐’이란 말을 발견하게 됩니다.이 뜻은 ‘코이노니아’란 의미로
성경에만 나오는 유일하고도 놀라운 말입니다.
크리스천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주 안에서 한 몸 된 형제들과의 영적 교제입니다.‘사귐’이란 단어가
고후13:13절에는 ‘교통’이라고 번역돼 있는데
이 말은 성서 속에 나오는 아주 중요한 단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성령의 내적 사역으로 인해
이 같은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요한은 이것을 가리켜 “빛 가운데 행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바로 예수공동체의 교제권 안에 들옴을 말합니다.요한은 형제들과의 사귐에 있어 솔직하고 진실된 자세를 권면하고 있고<4>
우리가 이러한 자세로 교제에 임한다면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정말로 진실된 교제가 교회에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상호간의 교제는 하려고 하지 않고
형제와의 진정한 교제 없이 하나님하고만 교제하는 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진정한 교제는 요13:의 예수님의 발씻어 주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너희도 서로 발 씻어 주라고 합니다.
서로 서로 발 씻어 줄 수 있는 섬김이 있어야
그래야 참된 교제인 것입니다.그렇게 함으로써 점점 겸손해져서
더욱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만한 놀라운 교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우리 형제들과 교통을 나누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우리 다같이 이와 같은 값진 특권에 동참합시다.

우리가 진정한 사귐 즉 내적 교제권 속에 들어올 때
그리스도인은 속죄함의 은혜와 기쁨을 체험합니다.
속죄함의 은혜를 맛보지 못한 교인들은
신앙생활 속에 힘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왜 우리가 속죄함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까?
롬8:1-2절에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이 법에서 너를 행방하였느니라 ]
정죄함이 없다는 말은 심판받지 아니한다, 망하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속함 받은 백성 망하지 아니할 줄 믿습니다.
이 확신 갖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확신 있는 성도는 [ 금문교 다리 밑에 철사망과 같다 ]고 합니다.

그리고 속죄함의 은혜 속에 자유함의 기쁨이 있습니다.
가끔 죽전 네거리에 대형스크린이나 아니면 광고 현수막에 보면
<거듭남의 비밀> 또는 <속죄함의 기쁨> 이란 집회포스타가 걸립니다.
그 동네가 어느 동네입니까? 구원파이지요.
그런데 이 사람들 한가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5>
바로 속죄함의 기쁨입니다.

그런데 지금 요한 공동체 안에 문제가 무엇입니까?
영지주의 이단이 침투하여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흔들어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감격과 기쁨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3. 사도 요한이 지적하는 영지주의 이단의 특징이 무엇이며
그들의 약점이 무엇입니까?(8절)
대표적인 것이 영지주의자들인데 영지주의 이단이란 어떤 자들인가 하면?
영지주의(Gnosticism)란 지식을 의미하는 헬라어 'gnosis'에서 비롯된 것으로 영지주의자들은 특별히 구별된 신비로운 지식을
자기들만이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일체의 물질과 육체는 악한 것이며,
인간은 육체 속에 갇혀있는 '영원한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지주의자들의 최종목적은
우리가 유배되어 있는 육채와 물질적 세계로부터 이탈하는 것이었다.
육체와 물질은 악한 것이므로,
대부분의 기독교적 영지주의자들은 천상의 메신저였던 그리스도가
우리들과 같은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육체가 단지 유령에 지나지 않으며
기적적으로 진짜 육체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하는
'가현설(假現說:Docetism)'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니 영지주의자들은
예수의 성육신 사건을 부인하거나
예수님의 몸은 사람의 몸과 다르다는 가현설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요1서2:22, 4:2절에 분명하게 언급된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것을 부인하는
저들을 적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이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자기들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신비한 지식,
즉 그노시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8절 보세요.
[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
대부분의 이단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독선적 분파주의입니다.
자기들만 잘 믿고, 자기들만 의롭고, 심지어 자기들만 구원받고
기성교회는 다 썩었고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만 바로 믿기 때문에
결국 자기들이 기성교회와 세상을 심판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빛되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6>
그 사람이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빛을 받은 사람이 혹 죄를 범하는 일과
아주 죄 가운에서 살아가는 것과는 그 차이가 엄청납니다.
빛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어둠의 유혹이 와도 그 유혹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혹 죄를 범해도 곧 빛으로 그 어두움을 물리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러니 혹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우리가 살 길이 있습니다.
4. 죄인된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9절)
9절에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
우리가 어둠에 속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죄가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의 생활에 들어왔을 때에
그 어둠을 속히 물리치면 우리는 계속 빛에 속한 자로 살아갑니다.
여기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이 제시되어 있는데
바로 <자백>입니다. 이것은 회개를 뜻합니다.
회개는 우리 중에 있는 모든 죄와 모든 불의를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미국의 형사재판과정을 보면 재판부는 먼저 피의자에게
자신이 죄를 지었는지 아니면 무죄인지를 밝히도록 요구합니다.
만일 피의자가 죄를 시인하면 그 다음엔 형량만을 결정하면 되지만,
죄가 없다고 계속 고집하면 그 사람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조사하고 그것이 매듭 지어져야 비로소 형량을 정할 수 있습니다.
환자의 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아픈 곳이 전혀 없는데
식구들이 강제로 나를 병원에 데려온 것이라고 우기는 사람은
가장 치료하기 힘든 사람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백에 대해 저는 이렇게 비유합니다.
저희 어릴 때, 50년대 후반 60년 초반에 보면
가끔 밤중에 동네에 갑자기 헌병들이 닥쳐 가택수사를 합니다.
6.25직후 군에서 탈영한 도망병
또는 군 입대를 기피한 기피자들 잡으러 온 것입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는 가방끈이 짧아서 자식들 호적을 제대로 올리지 못했어요.
그때는 또 유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홍역을 치러야 호적에 갖다 올립니다.
그래서 형이 죽고 동생이 태어나면 1,2년 정도 차이 나는 것은 상관없이<7>
그대로 동생을 형 호적에 그대로 두어버립니다.
어떨 적에는 호적이 잘못되어
그때는 일찍 결혼을 하니 20살에 장가가서 아들 둘을 놓고 서른이 되었는데
호적에는 20살이 되어 군에 영장이 나왔어요
그러면 군에 안가고 기피해 버립니다.
하루는 동네 청년 만덕이가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숲 속에서 뭐가 부시럭 하길래 산짐승 인줄 알고 깜짝 놀라 보니
짐승같은 사람이 나옵니다.
가만히 보니 제작년에 군에간 동네 친구 영철이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 야, 너 영철이 아버지아이가? ]
[ 쉿! 만덕아 네 봤다 카지마레이
네 봤다 하면 나는 잡혀가면 감옥가야 한다 ]
그러니 만덕이가 하는 말이
[ 야이 병신아, 지서 앞에 가봐라. 이달 말까지 기피자 자진 신고기간이라서
너 가서 자수만 하면 니 군대 안가도 괜찮고 감옥안가도 된다 카더라 ] 이게 복음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은 죽을 인생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발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철이 아버지가 지서에 찼아 갔습니다.
지서 순경이 [ 어떻게 왔어요 ] [ 내가 기피자인데 신고하러 왔심더 ]
[ 그래요, 거기 앉어소,
이름, 생년월일 본적 주소, 자, 여기 도장 찍었소. 됐구마 가소 ]
왜? 대통령이 사면령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신 신고만 하면 끝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다 담당하시고 골고다 언덕에서 대신 십자가에 죽으실 때
[ 다 이루었다, 다 사면되었다 ] 고 선언하셨기 때문에
내가 죄인입니다. 맞심더 내가 잘못했심더, 주님 앞에 자백하기만 하면
나의 생명록 책에 빨간 줄이 깨끗하게 지워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사도 요한은 왜 이렇게 우리의 죄를 자백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까?
이처럼 자백하지 않은 죄들로 인해 우리의 "양심이 둔해지고"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끊어짐으로 어둠가운데 거하여
그 결과 영적 생명의 성숙이 현저하게 방해받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자라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사실은 바로 이 점이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고 거듭났더라도 자라지 않고
여전히 어린아이로 남아 있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이 문제를 요1서2:12절 이하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가 죄인인 줄 모르고 <8>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있습니다.
5. 우리가 죄없다 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잘못이 있습니까?(10절)
10절 말씀 보세요
[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
저는 이 말씀을 대하니 어릴 때 생각이 납니다.
우리 어릴 때 일 년에 목욕 두 번 하고 살 때 있었잖아요.
설날이 다가오는데 큰집에 불 떼어 물 덮혀 하는 목욕탕이 있었어요.
엄마가 목욕가자 하면 안 가요, 떼 어디있노? 괜찮다는 거지요
그럼 엄마가 거짓말 하는 것입니까? 내가 거짓말 하는 것입니까?
아직 신앙의 철이 들 더니깐, 교회 오면 회개하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어요.

황성주 박사의 "성서 건강학”이란 글에
목욕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진취적이고 매사에 적극적인 경우가 많고
대체로 건강하고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목욕을 싫어하는 사람은
어딘가 모르게 위축되어 있고 자기 관리에 대한 의욕이 결여되어 있고.
심신이 건강치 못한 경우가 많답니다.
신앙생활에도 목욕은 자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백과 참회가 없는 신앙생활은 무기력증에 빠져들게 마련입니다.
노폐물을 제거하는 기능이 마비되고서야
어찌 생동감 있는 영적생활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불완전한 인간이 왜곡된 사회구조 속에서
왜곡된 인격을 가진 이웃들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한
죄를 짓는 일을 피할 수 없다.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죄를 안 짓는 것은 불가능하나
죄를 인정하고 죄에서 돌이키는 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들어올 수 있는 길은 항상 열어두고 있습니다.
진흙바닥에 넘어진 어린아이가 곧 바로 부모에게 달려가듯
죄를 깨달은 즉시 사랑의 하나님 앞에 "잘못했습니다"고 자백하는
탄력있는 신앙생활이 성숙한 크리스천의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고백은 우리의 일이고
용서와 깨끗케 해주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죄 고백의 깊이에 따라 신앙의 성숙도가 좌우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은 곧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결론 <9>
빛의 아들들인 그리스도인들이 빛의 생활을 하려면
죄를 자백하는 회개하는 생활이 필수적입니다.
죄없다 하지 마시고, 죄없는 척 하지 마시고
자백하는 신앙, 회개하는 신앙이 되어
빛 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주님을 모시고 성도들의 교제권 안에 들어와
삶이 기쁜 샘이 되어 바다처럼 넘치는
참된 웰빙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문>
주님! 얼마나 많이 저의 죄를 숨기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그 때마다 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온전치 못한 저로인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가리게 했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위기 앞에서 그 자리를 잠시 모면하기 위해
혹은 내 부끄러움이 드러날까봐 두려움 때문에 의도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저희 자신을 문득 문득 발견하곤 합니다.
그렇게 거짓말을 할 때에
저희 심장이 벌렁거리고 얼굴이 붉어지며
나도 모르게 긴장의 제스추어를 드러내보이게 되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것은 우리의 양심 속에서 거짓말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강력한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저희에게 그런 감각이 살아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러나 거짓말도 습관이어서 곧 점점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분간조차 할 수 없으며거짓말을 하면서도 너무도 태연한 얼굴에 조금의 심적 동요도 없게 될까봐
하나님 아버지, 그것이 가장 두려운 일입니다.
저희가 그런 무감각한 자리에까지 이르지 않도록 저희를 지켜주시옵소서.
어떤 형태의 것이든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정직이 우리의 상징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도 거짓말을 하게 될 상황에서 저희 입술을 지켜주시고
저희 양심의 감각을 통해서 그 거짓말이 폭로됨으로 인해
더 이상 거짓말로 다른 이들을 속이려 들지 않게 하옵소서.
(김성덕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