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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둘람 공동체 (삼상 22:1-10, 행 2:43-47, 마 16: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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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 비유 가운데 겨자씨 비유를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씨 중에 가장 작은 것이로되 땅에 심겨져서 싹이 나고 자라게 되면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어 각종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복음의 능력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갓난아기, 나중에 갈릴리 한 구석에서 시작된 작은 예수 공동체, 그리고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탄생한 기독교 공동체가 당시에는 겨자씨와 같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그 작은 공동체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세상 끝 날까지 모든 지역으로, 모든 민족에게로 전파되고 확장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처음은 너무도 미약하였습니다. 처음에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은 불과 3-4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제자단이 다 이루어지고 났을 때도 12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라나섰습니다. 예수님과 늘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명을 받들어 복음을 전하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 공동체였고, 나중에 교회를 탄생시킨 묘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에 선교사들이 와서 복음을 전했을 때도 역시 그 시작은 매우 미미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선교사들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얻기 위하여 찾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그들을 받아서 숙식을 해결해 주었고, 글을 가르쳤으며, 병도 고쳐주었습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모여든 몇몇 사람들이 씨앗이 되어 오늘 “한국 교회”라고 하는 거목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실 때 이렇게 한 알의 밀 같은 작은 씨앗을 가지고 역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흔히 “다윗의 왕국”이라고 일컫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사람들은 장차 메시야가 와서 회복할 나라는 “다윗의 왕국”이라고 믿었습니다. 당시 적어도 예수님에게 메시야의 기대를 가졌던 사람들은 그가 바로 “다윗의 자손”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사실 복음서를 보면 마1:1에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할 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했습니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재림하실 주님을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이룬 다윗 왕국은 바로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본향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다윗왕국은 맨 처음에 어떻게 형성 되었습니까?

(1) 다윗의 망명지에서 싹이 텄습니다.

22:1에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그에게로 모였다”고 했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을 보면 다윗의 가족들을 비롯하여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등이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다윗 때문에 당시정권에 의하여 요주의 인물이 되고, 박해의 대상이 되고, 억울한 피해를 당한 소외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아둘람 다윗의 피난처로 모여들었습니다. 다윗은 그들을 다 맞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피난지 아둘람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거기서 그들을 훈련하였습니다. 

각양각색의 불평분자들이 모였으므로 처음에 그들은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틈만 있으면 서로 다투고, 반항하며, 불평을 터뜨렸던 것과도 방불합니다. 모세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맡아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율법으로 교육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 기간이 40년이었습니다. 거기서 훈련받고 거듭난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중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다윗도 이 아둘람 공동체 사람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켰습니다. 신앙 중심의 공동체가 되도록 그들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찬송으로 그들의 심령을 부드럽게 함양했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서로 받아주며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로 만들어나갔습니다. 동시에 일단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하여 군사훈련도 시켰습니다.

이 사람들이 나중에 다윗 왕국을 세우기 위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토대로 해서 다윗은 그 위대한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용광로에서 나온 순금과도 같이 연단 받고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서부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그 중심에 누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봅시다”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마치 다윗에게 모여 온 사람들같이 연약하다면 다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다 문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약하고 허물투성이인 인간들만의 모임뿐이라고 한다면 여기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가운데 주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단 우리가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실 때입니다. 다윗이 저 공동체의 우두머리가 된 것처럼 예수께서 명실 공히 우리들의 머리가 되셔야 합니다. 이런 일이 개인적으로는 물론 가정에서, 구역에서, 각급 교회학교에서 그리고 각 자치단체에서 이루어질 때 우리 서부교회는 그야말로 내일 이 안동의 역사를 바꾸어나가는 창조적 소수가 될 줄로 믿습니다.

(2) 사도행전 2:에 보면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가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데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a. 신앙의 홀로서기를 위한 훈련입니다. 즉 신앙의 자립을 말합니다. 일찍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위대한 신앙 고백을 들으신 우리 주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 각 사람의 신앙이야말로 우리 교회가 그 위에 든든하게 세워지는 반석이라 그 말입니다.

누구든지 처음 교회 나오는 사람은 아직 신앙적으로 유아이기 때문에 인도자, 안내자, 양육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다른 사람에게 끌려서만 다닌다면 신앙적 유아기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태어난 아기가 자라듯 날마다 신앙이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남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주를 고백하고 믿고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적극적으로 교회가 하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b.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더불어 함께하는 모듬살이의 훈련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몸과 지체로 비유했습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여러 지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든 지체는 머리에 의하여 움직여야 합니다. 여기서 머리가 누구이십니까? 교회의 주인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의 주인도 그리스도이시며, 너의 주인도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의 주인이십니다. 여기 교회 통일의 요소가 있습니다. 가장 훌륭한 교회는 예수께서 주인 되시는 교회입니다.

스위스의 제네바에 가면 칼빈이 목회하던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 교회 벽에 돌에 새겨진 그림이 있는데 가운데 예수님이 있고 왼쪽에 선지자들, 그리고 오른쪽에 사도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은 그 얼굴을 오른쪽으로 향하여 중앙에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도들은 그 얼굴을 왼쪽으로 향하여 역시 중앙에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께서 주가 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그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집중할 때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지체는 서로 다릅니다. 위치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역할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각기 자기 역할을 다하면서 서로를 도울 때 몸이 제대로 기능을 다하게 됩니다. 교회도 그래야 합니다. 서로 함께 하는 교회야말로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가 됩니다.

2. 그런데 아둘람 공동체는 환란 받는 공동체였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피난 가서 거한 곳이 아둘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 다윗과 연계되어 환란 받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그대로 두면 아무 쓸모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마치 용광로 같은 아둘람으로 불러 모으시고 거기서 연단을 시키십니다. 그 아둘람의 연단을 받은 사람들이 나중에 다윗 왕국을 위한 초석과 같은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참 하나님의 섭리는 놀랍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그 선민공동체로 만드시기 위하여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거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이스라엘에게는 용광로의 풀무불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금보다 귀한 이스라엘 선민 공동체가 탄생했습니다.

예수공동체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예수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공동체를 통하여 제자로 사도로 다듬어졌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기독교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초대 교회는 출발하면서부터 박해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이 땅에서 그들이 발붙일 곳도 없을 만큼 혹독한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땅굴로 내려가야만 했습니다. 이런 연단을 통하여 기독교 공동체는 역사를 변화시킬 능력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서부교회 공동체도 역시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교회 역사를 보면 일제 때 교회가 아예 안동교회와 합하여 없어지기까지 했습니다. 해방 후 복구하기는 했으나 예배 처소조차도 없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예배당은 6.25후 아직 시가지가 제대로 회복되기 전에 모든 성도들이 정말 눈물 흘리며 땀 흘리며 건축하였습니다. 이런 역사를 거쳐 내려오면서 우리 서부교회는 서부교회공동체로 형성되었습니다. 고난이 우리를 연단하여 주의 몸인 교회를 이루었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합력위선의 은총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에벤에셀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건축하고 있는 이 성전도 축복된 역사가 되도록 만들어나가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일에 참여하는 여러분에게 반드시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때문에 절대로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홀로서기만 확실하다면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영적으로 육적으로 더욱 유익되게 만들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아둘람 공동체는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그래서 “우리가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이 지켜주셨고, 연단시키셨습니다. 그리하여 바로 그들이 다윗왕국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확신합니다. 아둘람같은 역사를 걸어온 우리 서부교회 공동체가 이 땅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들어 쓰시는 교회로 만들어 주실 줄 믿으며 아들람 사람 같은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새 역사를 창조해 가실 줄 믿습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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