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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③ :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눅 23: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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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③ : 내 몫에 태인 십자가(눅23:18~27)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이 되면 다른 때보다 유난히 십자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십자가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물론 부활도 중요하지만 십자가가 있어야 부활이 있기에 십자가는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 어떠한가는 십자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십자가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사랑한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알면 알수록 십자가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는 예수님의 시대나 오늘의 시대나 인기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기피 대상이요 혐오 대상입니다. 물론 요즘에는 흔히 십자가를 갖고 데커레이션도 하고, 악세세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어디까지나 ‘사형 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저주와 고난, 그리고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십자가를 사랑해야 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십자가가 구원이 되고, 축복과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내가 사랑하며 내가 감당할 십자가가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고소 당하셔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재판 받는 장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는 장면, 십자가를 지고 가다 너무 무거워서 구레네 시몬이 대신 지고 가는 장면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두 가지 십자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1] 저주의 십자가 : 예수님의 대속으로 구원의 십자가가 됨

  십자가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형 틀입니다. 여러분, 인류 역사 상 가장 잔인한 사형 제도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얼른 생각하면 혹 단두대가 떠오를지 모릅니다. 잘 아시는 대로 단두대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공포 정치 시대에 사용되던 사형 제도입니다. 단두대 는 불어로 기요틴(guillotine)인데, 당시 의사이며 입헌의회 의원이던 기요탱의 이름에서 유래한 명칭입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고통이 가장 적고 처형 시간도 가장 짧다는 이유로 단두대 형을 제안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단두대와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인류 역사 상 전무후무하게 가장 잔인한 사형법입니다. 사람을 실컷 고문한 후 산 채로 십자가에 못 박아 매단 채 며칠에서 심지어 일주일 동안 피를 말려 죽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십자가 위에 6시간 동안 달려 계시다가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면 혹 예수님이 다른 사형수들에 비해 고통을 적게 받으신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밤새 한숨도 주무시지 못한 채 채찍질과 각종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그 고통이 너무 커서 6시간 만에 운명하신 겁니다. 그 고통은 한 마디로 지옥의 고통에 대한 예고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그런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무죄하신 그분이 ... ! 본문을 보면 빌라도 총독 스스로가 예수님의 세 번씩이나 무죄함을 선언합니다.(22절)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지만 빌라도는 아무리 심문해 봐도 죄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고소한 죄목은 반역자인데 가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자기들 말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라고 말한 것이 신성 모독죄라고 비난했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말씀하신 것뿐입니다. 더욱이 로마법으로 사형시킬 아무런 명목이 없습니다. 빌라도는 무죄하신 예수를 못 박을 수 없어서 어떻게 해서든 석방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묘수가 사면이었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에 사형수 한 사람을 사면해 주는 제도를 활용하려고 한 것입니다. 살인자 바라바와 예수님 중에서 한 명을 석방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의 사주를 받은 무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그 소리가 워낙 커지자 소요 사태를 두려한 빌라도가 굴복하고 사형 선고를 내립니다. 23절~25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저희의 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

  예수님은 이렇게 해서 무죄하신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사용해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뭐라고 증거합니까? 요1:29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구약시대 짐승 제물에게 백성의 죄를 지워서 피 흘려 죽게 한 것처럼 예수님이 대속의 제물로 죽으신 겁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사실을 미리 예언했습니다. 사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원죄가 있고, 살아가면서 사언행(思言行) 즉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다 악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자범죄(自犯罪)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죄의 결과가 죽음입니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 ” 육신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 후에 영원한 죽음이 있습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 심판은 영원한 지옥 형벌입니다. 그 고통이 영원한데, 얼마나 큰지 예수님이 심지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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