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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나귀와 나뭇가지 (마 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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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근성

요즈음 대한민국 매스컴에 제일 많이 오르내리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하인즈 워드’(Hines Ward)라는 미국 프로 풋볼(NFL) 선수입니다. “1976년생, 키 183cm, 체중 98kg, 풋볼 선수로는 그리 크지 않은 체구지만 와이드리시버 포지션에서 빼어난 활약으로 소속팀을 슈퍼볼 우승에 올려놓아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았다.” 신문에 나온 기사내용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가 미국 프로 풋볼이 어떤 경기인지, 슈퍼볼이라는 것이 대체 뭔지, 더군다나 와이드리시버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알게 뭡니까? 거의 관심 없지요. 우리가 그에게 그토록 관심을 갖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바로 이 흑인선수의 어머니가 한국 사람인 한국계 미국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혼혈아, 속어로는 ‘튀기’라고 부르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며칠 전 이 하인즈 워드 선수가 어머니와 함께 자기가 태어난 서울을 방문했는데 아주 난리입니다. 호텔과 자동차회사 방송국들이 서로 모시려고 경쟁이고 가는 곳마다 인파가 몰려들어 사인을 받겠다고 하는 통에 여행일정까지 취소했다고 합니다. 더욱이 정부에서는 혼혈아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습니다.

물론 반갑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뉴스를 보면서 반가운 마음보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을 표현할 때 흔히 쓰는 말이 바로 ‘냄비근성’ 아닙니까? 뚝배기는 끓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잘 식지 않는데 반해 냄비는 쉽게 끓어오르고 너무 쉽게 식어버리듯 우리 국민들의 단점 중 하나가 무슨 일만 생기면 갑자기 온 사회가 끓어올라 법석을 떨다가도 조금만 지나면 어느새 사그라져 버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큰둥해 지는 것이기에 이번에도 또 그런 냄비근성이 발동한 것 아닌가 하는 걱정입니다. 이런 정책이 좀 오래 가야 할 텐데 말입니다.

냄비신앙이 되지 않도록

신앙생활도 이렇게 냄비근성으로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된 분인데 어디 가서 은혜 받았다, 성령 받았다며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얼마나 뜨거운지 모릅니다. “목사님, 제가 할 일 좀 없습니까? 어디 봉사할 일 없습니까?” 하며 야단입니다. 물론 이런 분들 중에 정말 뜨거운 은혜를 받아서 그 은혜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뚝배기 같은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 볼 때 상당수는 조금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식어버리기에 사실 이런 분들을 보면 마음 한구석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신앙은 굵고 짧게가 아니라 평생 롱런해야 하니까요.

우리 새신자 중에도 정말 은혜 받아서 마음이 뜨겁고 예수 잘 믿어야지 마음먹은 분들이 계시지요.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은 꼭 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어떤 시련이나 어려움도 이겨내고 꾸준히 예수 믿게 해주시고,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앙, 오래오래 지속되는 신앙 되게 해주십시오.” 왜냐? 여러 번 말씀 드렸지만 이런 경우 제일 당황스러워하는 존재가 바로 마귀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안 믿던 사람이 갑자기 예수 믿게 되고, 한술 더 떠서 열심이 생겨서 뜨겁게 신앙생활 하면 마귀 사탄은 깜짝 놀라 비상이 걸립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새신자를 시험에 들어 넘어뜨리고 믿음을 잃게 하려고 애 쓰게 됩니다. 그래서 새신자가 예수 잘 믿어보려고 하면 근심이나 우환이 생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을 잘 지키고 뜨거운 마음을 유지하면 정말 정금처럼 아름다운 신앙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지요.

나귀와 나뭇가지

이제 오늘 본문에 나온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혹시 눈치가 빠른 분들은 이미 느끼셨겠습니다만 오늘까지 꼬박 3주간 설교본문이 마태복음인 것을 여러분도 아셨는지요? 그런데 마태복음은 마태복음이로되 지금 거꾸로 살펴보는 중입니다. 2주 전에는 Via Dolorosa, 십자가의 길에 대해 말씀을 살펴보았고, 지난주에는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사형판결을 받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그보다 더 앞으로 가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날 나귀를 탄 주님과 그를 환영하며 ‘호산나’를 외친 무리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는 무리들이 흔든 나뭇가지가 어떤 나뭇가지인지 안 나왔지만 같은 내용을 다룬 요한복음 12:13에는 종려나무라고 나와 있어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날을 종려주일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오늘이 바로 이 종려주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첫째, 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말을 타거나 걷지 않고 나귀를 타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먼저 역사적인 사건 하나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지역이 시리아의 셀류크스 왕조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안티오쿠스 4세라는 왕이 등장해 헬라 문화를 전파하고 유대교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펴게 됩니다. 이에 대항해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이 바로 마카비 가문이기에 이 혁명을 ‘마카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드디어 주전 165년 경 오랜 전쟁이 끝나고 시몬 마카비의 영도 아래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성전을 정화하게 됩니다. 바로 시몬 마카비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예루살렘 거민들이 길에 나와 나뭇가지를 길에 펴고 환영을 했다고 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시몬 마카비가 유대인들을 압제에서 구한 구세주요 메시야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무리들이 나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혹은 손에 들고 환영한 것은 그들의 생각에 예수님도 메시야이며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야라고 생각하고 기대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기대가 그들이 외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말 속에 들어 있습니다.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의 히브리어 ‘호시아 나’를 음역한 것이고 ‘다윗의 자손’이란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 중에 나오기 때문에 부른 이름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메시야요 구세주이십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기대한 메시야는 정치적인 메시야, 즉 시몬 마카비가 시리아의 압제를 쳐부수고 예루살렘을 해방시킨 것처럼 로마의 압제를 쳐부수고 자신들을 해방해 줄 메시야였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유대인들의 기대와 현실이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이 기대한 정치적 메시야, 강력한 메시야 상과는 정 반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였던 것입니다. 가장 약한 모습으로, 가장 천한 모습으로, 가장 낮아지고 섬기는 모습으로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 상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이나 병거를 타고 당당하고 화려하게 개선행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천한 나귀를 타고 초라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은 바로 자신이 그런 메시야임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인 것입니다. 물론 본문 5절에 나온 대로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것은 스가랴 9:9에 나온 메시야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메시야이며 왕이신 분이 나귀새끼를 탄다는 예언입니다. 이 예언에서도 핵심은 그 왕이 그 메시야가 겸손해서 비천한 나귀를 탄다는 내용이므로 예수님은 오늘 자신도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함으로 철저하게 겸손한 왕, 섬기는 왕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실도 모르고 무리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다며 그토록 열렬히 환영한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의 기대와 예수님이 생각하신 것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기대와 진실

여기서 바로 두 번째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아니, 오늘 이렇게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한 무리들이 나중에 예수님이 붙잡혔을 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그 유대인들이라는 말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유대인들이 그 유대인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오늘 이렇게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왕이라고 환영한 그 무리들이 갑자기 돌변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그 대답이 바로 조금 전 설명 드린 ‘기대와 진실’의 차이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로 기대하고 그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단번에 로마를 쳐부수고 해방해 줄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예수님은 그런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한다는 소리가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러 왔다’고 하질 않나, 게다가 ‘내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줄 것이다’(마 20:28)는 말까지 하니 도무지 자신들이 기대한 메시야와는 맞지 않은 것이지요. 그러니 그 열렬한 환영이 한 순간에 싸늘한 냉소로 변하고 그 배신감에 치를 떨며 엉터리 메시야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뜨거워지는 것도 금방이요 싸늘하게 식는 것도 순식간인 것을 보면 아마 유대인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냄비근성이 있었나 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신앙을 돌아봅시다. 여러분은 도대체 교회 다니면서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또 예수 믿으면서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해보면 많은 분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구원 받으려고 믿지요.” “천국 가려고요.” 또 어떤 분들은 좀 더 솔직하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수 믿어 복 받으려고요.” 물론 이 대답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당연히 구원 받고 천국에 가게 됩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번 더 물어볼 것은 그 복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복은 돈 잘 버는 것, 출세하는 것,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자녀들 잘 되는 것 등등입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가 기대하는 복과 예수님이 생각하는 복이 다르면 어떻게 하지요? 나아가 우리가 예수 믿는 이유와 성경이 말씀하는 우리가 믿어야 할 이유가 다르면 어떻게 하지요? 물론 다르지 않아야 합니다. 또 다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이유도 철저하게 나 중심적입니다. 기독교도 내가 고른 종교고, 이 교회도 수많은 교회 중에 내가 고른 교회고, 그러니 내가 잘 되어야 하고, 내 기대대로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 뜻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언제든지 다른 교회 갈 수도 있고 심지어 더 내 뜻에 잘 맞는 다른 종교로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간혹 교회 다니다가 절이나 성당이나 다른 종교로 가는 분들을 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쪽이 나한테 맞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군대 있을 때 “이번 주에 교회에서 초코파이 두 개 준단다” 하면 교회에 가고, “절에서는 요구르트도 하나 준단다” 하면 절에 가는 병사들을 보았습니다. 간부 중에는 지휘관이 예수 믿으면 교회 가고, 부처 믿으면 절에 가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쵸코파이 때문에 움직이는 병사들은 한편으로 이해가 가지만 오늘날 교회에서 내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신앙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모두가 신앙의 질적인 차이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뜻에 따라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뜻에 따라 복을 받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일이 가능합니다. 내 주장을 왜 안 받아주느냐며, 또 나의 이익이나 체면이 달렸다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신앙, 내 기대와 너무 다르다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 같은 냄비근성, 이 모든 것이 다 십자가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느냐보다 하나님이 내게 어떤 기대를 가지고 계시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교회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까 바라기보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이유가 내가 인정받고, 내가 박수 받고, 내가 열렬한 환영을 받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초라한 나귀 등에 올라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때 그 마음속에는 자신을 열렬히 환영하는 인파가 보인 것이 아니라 장차 내가 져야 할 십자가만 생각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속에는 언제나 나 자신이 아닌 십자가만 들어있어야 합니다. 종려주일의 핵심은 무리들이 열광하며 흔든 종려나무가지가 아닌 초라한 나귀이며 또한 비참한 십자가입니다.
(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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