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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돌문을 굴려라! (막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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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심을 기억하는 부활주일입니다.  먼저 2006년 부활주일을 맞은 우리 언양 영신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의 삶을 위대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때가 종종 다가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이 때를 잘 포착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위대하게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런 절호의 결정적인 시기가 다가왔을 때에 이를 붙잡지 못하고 지나간 후에야 어떤 사람들은 탄식을 하고 후회를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늦은 때입니다.

저는 오늘 이 부활주일의 아침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와 같은 기적의 때를 주시기를 원하고 계시는 줄을 믿습니다.  오늘 뜻 깊은 시간에 부활하신 주님이 성령님으로 찾아오셔서 우리 모든 인생들에게 다시 올 수 없는 축복의 때를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때를 붙잡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탄이 인간에게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먼저 분열을 일으킵니다.  유혹을 합니다.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기도를 막습니다.  찬양하는 입을 막아 버립니다.  성경도 보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곤경과 절망감, 낙심, 포기하고 싶은 유혹 등 절망적이고 어두운 경험으로부터 구출되는 길이 있다면 마땅히 그 길을 찾아야 합니다.

아십니까?  낙심은 생명의 소망을 빼앗아갑니다.  낙심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맙니다.  낙심은 분별력마저 빼앗아갑니다.  그러나 이 낙심은 실패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탁월한 성공을 거둔 사람 속에도 낙심은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성경은 모세가, 아브라함이, 엘리야가, 엘리사가 낙심한 모습을 얼마든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는 완전한 실패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삶의 환경에서 오거나, 자녀에게서 오거나, 형제 사이에서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탄이 사용하는 제일 무서운 마지막 무기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너무 낙심하면 마지막 삶의 에너지도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는 무기력을 벗어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기력을 정복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삶의 모든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나시기를 축복합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십시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나를 낙심하게 하는 모든 어둠의 영들은 떠나갈지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모든 낙심과 절망의 인생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무서워하며,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이 시간 부활의 주님께서 생명의 말씀으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는 인생들아!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  우리는 때때로 깊은 실망감을 갖습니다.  또 사실 어떤 때는 낙심하고 낙담합니다.  특별히 죄 없고 의로운 자가 맥없이 실패하고 무너질 때에 우리는 깊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애매한 고통을 당할 때에 낙망하고 맙니다.

죄도 없으신 주님께서 아무 힘도 없으신 그분이 맥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에 초대 교회 성도들은 실망에 빠졌습니다.  비애와 허탈감에 젖었습니다.  사명을 포기하는 현상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절망한 저들이 그 절망과 좌절을 딛고 다시 살아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처절한 실망이 희망으로, 비애가 기쁨으로, 공포와 두려움이 평안으로, 회의가 확신으로, 포기가 자기 순교로 삶의 생기와 활기 넘치는 새날로 바뀌어지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생명의 날, 믿음의 승리의 날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처절한 실망과 때로는 현실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감을 마음에 안고 있다면 이 시간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풀 한 포기도 나지 않을 것 같은 메마른 사막에 한 줄기의 비가 내리면 어느 듯 사막에는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납니다.  죽었던 메마른 사막에 싱싱한 생명이 움트기 시작합니다.  떠나갔던 짐승들이 찾아와서 풀을 뜯어먹기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의 심령에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시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게 되면 마지막 삶의 에너지를 잃어버린 사람도 새로운 에너지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절망과 비통에 젖어있던 사람이 성령이 임하시면 비전을 향하여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에게서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의 주님을 만나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그래서 이 후의 여러분의 삶이 주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인생 최고의 날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간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하십시오.
"예수 안에 있는 나는 이제 이후로 내 인생 최고의 멋지고 행복한 날들을 만들어갈 것이다!"

이것은 바로 거짓에 대한 진리의 승리입니다.  불의와 죄에 대한 의의 승리입니다.  불신에 대한 사랑의 승리입니다.  흑암에 대한 빛의 승리입니다.  불신자에 대한 믿는 자의 승리입니다.  절망에 대한 소망의 승리입니다.  불신의 세상에 대한 하늘의 승리입니다.

우리는 이 승리의 기쁜 소식을 세상 만방에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통하여, 우리들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소식이 이 땅에 퍼져나가야 합니다.  이 땅에 강한 영적 진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사막보다 더 메말라진 저들의 심령에 성령의 단비가 내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통하여 다시금 살아나는 새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땅에는 불의와 부정과 불신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낙심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일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날 부활하신 주님의 메시지를 붙들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하늘의 승리를 외치며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때문에 모든 절망과 좌절과 낙심으로부터 박차고 다시 일어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절망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십자가 아래에 다 묻어버리고 부활의 소망으로 다시 일어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늘이 땅을 정복하듯이, 거룩함이 이 땅의 더러움을 정복하듯이, 성령의 능력으로 박차고 일어나는 생명마다 결정적인 하나님의 때가 오늘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 선포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약속하신 축복의 때가 있음을 믿음으로 붙들고 일어나십시오.
"하나님이여, 나에게도 복에 복을 주시옵소서.  삶의 지경을 넓혀 주시옵소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복들을 나에게도, 내 자녀들에게도 주시옵소서.  만군의 여호와여, 나에게, 우리들에게 환경의 복을 주시옵소서.  심령의 복을 주시옵소서."

부활의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장엄한 안식일은 끝났습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 날이 되었습니다.  이 짧은 시간 속에서 거대한 변화와 엄청난 사건을 암시해 주는 무시무시한 조짐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군인들과 대제사장들의 무리들은 가능한 한 예수의 부활을 막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하늘의 역사를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의 권세도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새 생명의 첫 날, 새로운 희망과 열망의 시작은 이미 일어났습니다.  최초의 거룩한 날 아침, 해 돋을 때에 무덤에 온 처음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와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몸에 바르기 위해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언제 향품을 사다가 준비해 놓았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금요일 해지는 시간부터 시작하여 토요일 해지기까지의 시간입니다.  안식일에는 아무 것도 살 수 없고 일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후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운명하신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오후 3시에 돌아가셨으므로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향품을 구입한 시간은 금요일 해질 때까지의 매우 짧은 시간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마자 곧바로 예수님의 몸에 바르기 위해 서둘러 향품을 사러 다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는 이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노라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정비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만큼 믿음이 좋은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 여인들은 매우 이른 아침 새벽 거리를 가르며 큰 걱정 속에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예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걱정이 태산같았습니다.  무덤 입구에는 무덤을 막아놓은 아주 큰 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한 가지 사실은 부활의 은혜는 무덤의 돌을 굴리는데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안식 후 첫날 주님의 무덤에 온 여인들이 외치는 고백이 무엇입니까?
"과연,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의 돌을 굴려주리요?"

무덤 문을 막았던 돌은 여인들로서는 움직일 수 없는 너무나 엄청난 돌이었습니다.  더구나 로마 군인들이 이 무덤 문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이 돌문을 굴려 줄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여기에서 무덤의 돌은 철학자 사르트르에 의하면 '벽'이라고 했습니다.  문학자 카뮈에 의하면 '부조리'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하이데거는 '절망'이라고 했고,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돌은 절망의 돌입니다.  제자들의 소망도, 기대도, 꿈도, 믿음도 다 죽게 만들었던 절망의 돌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허탈감에 빠진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 돌은 믿음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실망감과 허탈감의 돌입니다.

그런데 4절에 보니까 이 돌이 심히 컸다고 했습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사람들마다 끌어안고 있었던 이 절망의 돌을 누가 굴려 줄 것인가?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무덤의 돌이 굴려져야 찬란한 부활의 영광을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내 마음을 감싸고 있는 단단한 벽이 굴려져야 찬란한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절망의 돌이 굴려져야 부활의 소망을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이 돌이 내 마음을 가로막고 있는 한 우리는 결코 부활의 영광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 돌을 굴려 줄 것인가?"  이천년 전 나약한 이 여인들이 물었던 이 질문은 이후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이 어려운 환경에 부딪힐 때마다 던지는 인생의 물음이었습니다.

인생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 쩔쩔매고 있을 때에 우리는 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 무거운 짐의 돌문을 누가 굴려 줄 것인가?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럽고 상처가 나서 아무도 나를 어루만져 주지 못할 때에 상처난 가슴을 부둥켜안고 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누가 이 상처의 돌문을 굴려 줄 것인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막다른 인생의 골목에 서 있을 때에 우리는 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누가 절망으로 덮여 있는 이 무덤의 문을 굴려 줄 것인가?  죽음 앞에 섰을 때에 사랑하는 남편도 아내도 사랑하는 자식도 이 사망의 무거운 짐을 벗겨 줄 수 없을 때에 우리는 묻습니다.
"과연 누가 나를 위하여 이 사망의 돌문을 굴려 줄 것인가?"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 여정에서 인간의 생명을 죽음으로 삼켜버린 허무와 절망에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이 돌을 굴려 줄까요?  이 질문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통쾌한 대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허무만을 탄식해 왔습니다.  그렇게 발달한 지식도 과학도 이 돌문을 굴려 줄 수는 없었습니다.  이 땅의 어떤 권세도 부귀영화도 내가 걸머지고 있는 인생의 돌문을 굴려 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이 거대한 죽음의 돌문을 누가 옮길 수 있습니까?  내 인생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이 무거운 짐을 누가 굴려주겠습니까?

보십시오.  주님의 몸이 장사되고 누워 계신 무덤에는 엄청나게 큰 돌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그렇게 열광하면서 따랐던 군중들도 떠나갔습니다.  주님으로부터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던 베드로와 야고보 마저도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과 사랑으로 마지막 헌신이라도 베풀어야 되겠다고 나선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이 무덤 가에 다다랐을 때에 이미 돌은 굴려져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어떤 근심을 안고 여기 주님의 전에 나오셨습니까?  여러분이 굴릴 수 없어서 쩔쩔매고 있는 그 돌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안고 있는 인생의 무거운 짐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오늘 주님이 부활하신 부활절 아침,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위대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눈을 들어본즉 무덤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돌문은 벌써 굴려져 있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의 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이미 굴러갔습니다.  과거 여러분이 어떤 죄를 지었든지 예수 안에 돌아오기만 하면 이미 굴러갔습니다.  현재 여러분이 해결할 수 없어서 쩔쩔매고 있는 죄악의 짐, 아니 미래에 지을 모든 죄악의 짐까지 이미 다 굴러갔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권세도 여러분을 정죄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마귀의 세력도 여러분을 정죄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다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아십니까?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이겼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자유하십시오.  성령의 은혜로 복음의 능력을 맛보고 누리십시오.  결코 죽음 앞에 서서 쩔쩔매지 마십시오.  이 죽음의 문제를 우리 주님께서 다 해결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를 이미 깨뜨리셨습니다.  지옥의 권세를 이미 멸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모든 짐이 해결되어졌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의 소망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십시오.

보십시오.  이미 돌문은 열려져 있었습니다.  돌은 이미 굴려져 갔습니다.  죽음의 돌이 벌써 굴려졌습니다.  절망의 돌은 이미 벌써 굴려졌습니다.  죄 짐의 돌은 이미 벌써 굴려졌습니다.  우리의 모든 한숨과 근심과 염려와 걱정의 돌들이 다 굴려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삶에서 한숨과 염려와 걱정과 근심과 슬픔을 거두십시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찡그려졌던 내 심령을 환하게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땅을 보던 눈을 열어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를 억누르고 있던 모든 어둠의 돌문은 부활의 주님께서 이미 다 굴려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만이 복음의 능력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만이 성령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누리십시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하시려고 이미 돌문을 굴려놓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때로는 환경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남들이 당하는 모든 질병과 고통을 함께 겪을 수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세상 사람하고 다른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똑같은 환경, 똑같은 문제에 갇혀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분명히 우리는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보십시오.  똑같은 태양이 뜨지만 그 태양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자세가 다릅니다.  똑같은 공기를 마시지만 우리는 성령을 호흡하면서 살아가는 하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돌문에 갇혀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돌문을 굴리면서 노래하는 사람들입니다.

공포와 불안은 믿음의 결핍으로부터 나옵니다.  결국 우리가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내 안에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닫혀진 돌문을 염려하면서 왔지만 그 돌문은 이미 열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열려진 돌문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짧은 구절 속에 '놀랐다'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두려워서 놀라는 그들을 향해 천사가 말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사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은 후 삼일만에 부활하실 것이라고 몇 번이나 거듭해서 말씀하셨던가요?  주님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무덤의 봉인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그 시간을 학수고대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그들에게 공포와 불안과 좌절과 절망감만이 밀려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입술로만 믿는다고 고백할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내 심령에 구주로 믿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와서 앉아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공허할 것입니다.  사소한 환경 앞에서 쉽게 무너지고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불안과 좌절과 절망감이 여러분의 마음에 시시때때로 밀려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제발 종교꾼이 되지 말고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하늘의 영적 권세자가 되십시오.  그래서 예수 믿는 참된 기쁨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미천한 여인들은 우리 주님의 무덤을 최초로 방문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초로 부활의 소식을 전할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이제 여인들은 곧장 나와서 달렸습니다.  두려움과 기쁨으로 감정은 온통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살아나신 것입니다.  오싹한 전율을 느끼며 천사가 시킨 대로 성읍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가는 도중에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사랑하는 주님의 자비로운 모습을 뵙게 되었습니다.  충만한 위엄과 하늘의 사랑이 가득한 바로 그 얼굴, 주님의 깊고 거룩하고 축복된 뜻으로 가득찬 그 음성이 들립니다.  "그래 평안하뇨?  기뻐하라"

이 여인들은 가장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평안하뇨? 기뻐하라"  부활의 첫 메시지는 여전히 사랑의 메시지요 평화의 메시지입니다.  이 시간 삶의 평화, 삶의 기쁨도 오직 한 곳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철철 흘러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지금 우리는 암울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죄악이 난무하고 어둠의 힘이 판을 칩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근심이 태산과 같은 시대입니다.  온 세상의 신경조직이 마비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극치의 표현인 부활의 산 소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어려움과 어떤 두려움과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큰 돌문처럼 앞에선 문제들이 인생에 있다고 할지라도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두려워 말라!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은 신앙의 핵심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모든 복음의 클라이막스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믿는 자는 능히 인간의 모든 돌문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능히 모든 인간의 경계선을 넘어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믿는 것이 부활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결국은 빛이 이긴다는 사실입니다.  진리가 승리합니다.  하늘의 영적 권세가 어둠의 세력을 물리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시잠깐 흑암의 권세가 이기는 것 같으나 갈릴리의 암흑의 어부들,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 사자의 밥으로 끌려가면서도 담대하게 만들었던 하나님의 능력이 오늘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다면 우리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암흑과 같은 절망 속에서 처했을지라도 기쁨으로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영국 덜햄 지방의 석탄광이 무너지면서 164명의 광부들 모두 산채로 생매장되는 불행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나중에 시체를 발굴하면서 글이 쓰여있는 판자도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그 판자에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같이 하십니다.
우리는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주여! 축복하소서.
우리는 대단히 유쾌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모든 사람은 영원한 영광을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화요일 오후 2시"

지하에 매몰된 광부들은 자신들이 곧 산소가 부족하여 죽는다는 사실에 직면했을 때 모두 모여 죽음을 준비하며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이들은 부활과 영생을 믿고 기쁨으로 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방해합니다.  하나님께로 향한 내 믿음을 분열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돌문을 성령의 능력으로 깨뜨리십시오.  그리고 마음이 문을 활짝 여십시오.  여러분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순간 부활의 주님은 여러분의 중심에 들어와 주십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여는 순간 하늘의 기적은 일어납니다.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따지지 말고 그냥 마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순종하면 축복이 있습니다.  순종하면 기적은 일어날 것입니다.  순종할 때 성령은 역사하십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나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하십시오.

믿음의 사람은 영적 침체가 오지 않도록 끝없이 자신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자신을 성령의 물줄기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강력한 영적인 돌풍에다 집어넣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휴가도 없고, 은퇴도 없습니다.

신앙이란 믿음 위에 믿음을 더하는 것이요,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는 것이요, 우리의 삶에 영적 침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결같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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