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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승리의 십자가 (골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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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믿음의 근거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님을 보고 있다면 승리의 십자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백성이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3년간 따라다녔던 제자들이 배신을 했습니다. 군인들에게 잔인하게 살해 당했습니다. 발가벗겨졌습니다. 사지가 매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승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보면 패배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패배로 인정하고 삶을 접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사건을 승리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을 이야기 하면서 이김, 승리, 넉넉히 이기느니라는 표현들을 쓰고 있습니다. 성경은 왜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승리, 정복을 이야기 하고 있을까요? 디모데후서 1장10절에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려줍니다. 엘리사 선지자도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셨고,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를 살리셨고, 베드로가 나비다를 살려주었으며 바울도 죽은자를 살리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을 체험자의 숫자는 너무나 변변치 못한 숫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죽음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믿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저는 많은 임종을 지켜보았습니다. 임종을 앞두고 당황한 가족들의 연락을 받고 지켜본 임종이 많이있었습니다. 병원에서, 가정에서, 양로 병원에서 많은 임종을 지켜보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와 그렇지 아니한 자의 임종이 너무나 다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안믿는 자의 임종을 볼 때 너무나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안믿는 자의 임종은 어차피 가야할 길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숨을 한번이라도 더 쉬기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반대로 믿는 자들은 임종을 기대와 기쁨으로 맞이 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여러분! 죽음 앞에 겁내는 자를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단 한가지 주 예수 앞에 아뢰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죽음을 이기신 십자가의 열매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에서 해방되셨음을 아시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와 함께 장사한 바되고 또 죽은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로새서2장12절)을 보면 십자가를 이야기 하시며,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 9장28절)
여러분! 십자가는 죄에 대한 승리입니다.

인간이 죄와 함께 태어나 죄와 함께 살며, 씨름하다가 죄와 함께 죽는 것이 죄인의 운명이며 죄인이 가야할 길입니다. 죄의 해결이 없이는 진정한 안식과 평강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죠? 저희가 죄와 씨름하는 것을 보면 죄가 얼마나 지독하고 끈질긴지 알 수 없습니다. 죄의 본성이 우리를 잡고 피곤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모습 중에 중독의 모습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죄의 끈질김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로마서 7장21절) 내가 선을 행하기를 원하지만 몸은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가 그 죄를 씻어주었습니다. 십자가 안에서 해결이 된 것입니다. 죄의 찌꺼기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보이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정사와 권세를 들어내는 것은 공중에 권세잡은 악한 마귀요 사탄입니다. 이런 사탄을 들어내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고 합니다. 악한 영들로 세상의 어지러움과 분쟁과 싸움과 다툼과 시기와 미움과 질투가 사탄들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윤리를 혼탁하게 하고 가정을 파괴합니다.

오늘 본문을 공동번역에서 찾아보면 '십자가로 정사와 권세의 세력들을 사로잡아 그 무장을 해제 시키고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고 개선의 행진을 하였습니다.' 라고 좀더 실감나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십자가가 사탄의 세력을 온 세상 앞에서 구경거리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사탄을 이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사탄을 온땅에 멸망시킨 하나님의 대 역사이십니다.

요한복음16장33절에서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이 제자들에게 평안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며,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많은 성도들의 삶을 보니 세상과 맞춰가며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중독의 문제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한 것을 인정하고 내가 그것을 믿지만 그 승리가 나의 삶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공로가 부족해서 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승리가 어찌 나의 승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에 대해 말씀을 하실때 마다 늘 ‘내 삶의 종착역은 십자가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나를 따라올 수 있다고 하십니다. '너희 삶의 종착역도 십자가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승리가 나의 삶이 되기위해서는 매일 나를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 지를 스스로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내 자신을 돌아보며 죄를 생각할 때 탐심, 욕심 외에도 교만이 나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을을 알 수 있습니다. 교만의 본질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것이며 불순종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뜻,  심정이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판단은 교만의 결과입니다. 내가 나의 하나님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교만이 나의 판단을 잘못된 길로 몰아갑니다. 내가 나의 주인일 때 나는 교만하지 않다고 하지만 나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하나님되었던 부분을 내려 놓는 것이 거대한 십자가의 승리가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에게서 바른 분별력을 빼앗아 갔습니다. 내가 확실한 판단을 내릴지라도 판단 자체가 죄로 오염된 가운데 내려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생각만이 나를 사로잡도록 나를 내려 놓는 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교만과 오염된 분별력이 만날때 위험한 자기 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절대 자신만이 확실해서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게 됩니다. 너무나 무서운 일입니다. 이것이 죄의 찌꺼기들이 나를 몰아가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임을 알때 가슴이 아파옵니다. 이러한 연약함을 내려놓아야합니다.

자기부인만으로는 온전한 십자가의 열매를 맺기 어렵습니다. 자기부인 이후에 자기긍정으로 자신을 볼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 긍정으로 나아갈 때 십자가의 기쁨이 활짝 열리게 됩니다. 자기 긍정의 시작은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가 지나갈 때 순결한 어린양의 모습으로 바뀌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합니다. 나는 변한게 없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 내가 바뀔 것을 바라볼때 십자가의 놀라운 승리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앞에 어떤 형통의 길이 열려있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십자가 아래서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 부인과 자기 긍정이야 말로 십자가 아래 사는 삶의 두 기둥입니다. 무엇이 십자가 아래 사는 것입니까? 나의 죄성, 나의 그릇된 부분을 부인하며 동시에 주님의 시각으로 내 자신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시나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주님이 오늘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길 원하신다는 것을 아시나요? 주님이 나의 필요를 채우실 때 영혼의 필요뿐만이 아니라 나의 삶의 필요도 채우신다는 것을 아시나요? 내가 미처 모르던 것까지도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이 복주시기로 작성하신 분들이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잘 될수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의 승리가 여러분의 축복이 되시길 바랍니다. (김기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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