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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의 초대 (눅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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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고난주간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으로써 자신이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야요, 평화의 왕임을 선언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깨끗케 하십니다. 그리고 많은 교훈의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목요일 밤에 로마 병정들에게 체포되셔서 재판을 받으시고 금요일에 골고다 언덕위에 세워진 십자가에서 생명을 잃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주일,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 고난주간을 맞이할 때 마다 늘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죽으셔야만했을까? 예수님이 왜 그런 무지한 고난을 겪으셔야만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입니다.

  두 번째로, “왜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까?”라는 질문 앞에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고난 받으셔야 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보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붉은 피를 흘리셔야만 우리 죄가 씻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왜 예수님이 이런 고난을 당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인생의 목적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하셨고, 우리들을 향한 아름다운 계획을 세워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함으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인간에겐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목적도 이룰 수 없는 타락한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 분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형상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깨달아지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니,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선한 목적을 위하여 지음 받은 존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인간의 선한 목적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깨어진 형상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종려주일에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면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40일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이 질문을 여러분에게 자주 드렸습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할까?” 오늘 옆에 계신 분들께 한번 더 물어봅시다. “당신은 왜 이 세상에 존재하십니까?” 이 질문 앞에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동북아대학 심리학과 과장을 지낸 쇼 모어 헤드 박사라는 분이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과학자들, 심리학자들, 석학들, 작가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무려 250명에게 편지를 보내서 “당신은 우리 인생의 목적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게 물은 질문에 회신한 것을 모아서 책으로 엮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별게 없습니다. 그들도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는 사람은 그가 진정 인생에 눈뜰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여기저기 이런 저런 이유로 자살자들이 많이 늘어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결코 오늘 날의 일만은 아닙니다.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은 살 의미조차 상실해 버리는 것입니다. 살아야 할 용기와 의미를 잃어버릴 때 우린 쉽게 죽음의 길을 선택하기 쉽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쾌락에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놀고 먹고 즐기는데 인생의 목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쾌락은 인간에게 결코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생의 목적이 지식을 쌓는 데에 있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많은 지식은 오히려 번뇌를 더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많은 지식이 오히려 염려와 근심을 더 가져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생의 목적을 소유에 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많이 가지면 행복할 것이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소유는 불안을 더할 뿐 결코 행복은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많은 부와 명예, 소유를 가졌던 인물을 꼽으라면 솔로몬을 꼽을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참으로 부유한 왕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명령에 따라서 새성전을 건축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봉헌하는데 그 봉헌식에 사용된 음식만 해도 어마어마함을 알 수 있습니다. 손님 접대용으로 잡은 소가 2만 2천 마리, 양이 12만 마리, 요즘 돈으로 소한마리를 5백만원, 양 한 마리를 20만원으로 계산해 보았더니 고기값만 340억이 들었다고 합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많은 재물과 부를 움켜쥐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말년에 그가 어떤 고백을 했는지 아십니까? 전도서 1장에 보니,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했습니다. 내가 해 아래서 행한 모든 일을 본 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 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바람을 잡을 수 있습니까? 못 잡습니다. 그 모든 일들은 바람을 잡는 것 같은 헛된 일이고 낭비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헛된 삶이요,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분이 직장을 그만두고 이리저리 쉬고 계시면서 그저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떤 친구가 와서, “여보게 자네 요즘 뭐하고 지내나?” 그랬더니, “나 동경대학원에 다니고 있지.”하고 했습니다. 의아해서 되물었더니, 동네경로대학에 나간다는 얘기였습니다. 뭔가 할 일 없이 노는 사람을 요즘 우리가 백수라고 부릅니다. 이 말에 하나를 더 붙여서 화백이라 부른답니다. 이것은 ‘화려한 백수’라는 뜻입니다. 백수의 종류도 다양한데, 이 말이 또 발전해서 ‘장노’라고 부른답니다. 얼핏 들으면 ‘아니 그 사람 교회도 안 나가는데 어찌 장로가 되었어?’하겠지만, 그것 말고 장기간 노는 사람을 장노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목사도 있답니다. 그것은 ‘목적 없이 사는 사람’을 줄여서 부르는 말입니다. 장기간 노는 사람보다, 백수보다 더 비참한 삶이 있다면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목적을 발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목적없는 삶은 가장 불행한 삶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헝가리에 있는 나치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곳은 오물을 처리하는 공장이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유태인 포로들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연합군이 와서 그 공장을 폭격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허물어 졌습니다. 파편조각만 나뒹굴고 쓰레기만 남았습니다. 여기에 수용되었던 유태인들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나치 군인이 오더니 명령을 합니다. 쓰레기와 파편조각을 “저 쪽으로 옮겨 놓으라.”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을 해 옮겨 놓았습니다. 그 다음날은 다시 “저 쪽으로 옮겨 놓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렇게 이리 옮겼다, 저리 옯겼다, 즉 아무런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오늘 내가 살아야 할 만한 인생의 목적이 없는 무의미한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몇 일 후부터 사람들의 정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살아갈 의욕을 상실합니다.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한 일하는 목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벽돌을 들어 나치 군인에게 던지다가 총에 맞아 죽기도 합니다. 일부러 나치 군인에게 달려들어서 죽어가는 이들이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자살을 택한 것입니다. 이렇게 무의미한 일의 반복 속에 사느니 차라리 죽는 길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목적 없는 삶의 비참함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창조하실 때 우리에게 거룩한 목적을 두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에베소 1장 4절에 보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기록합니다.
  창세전에 하나님은 목적을 두고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서 봉사하고 충성하도록 우리의 길을 예비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너무나 소중한 사람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보니, “내가 너를 창조하였고 내가 너를 조성하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노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옆의 분들에게 정중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저와 당신은 너무나 소중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40일 캠페인 동안 우리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할 것입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다섯 가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매주 한 가지씩 다음주간에는 예배주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우리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습니다. 다음 주간, 곧 예배주간이 부활주일입니다. 그 때 우리는 잘못된 예배와 올바른 예배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주간에는 교제 주간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왜 태어났는가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도록 하시려고 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적 가족입니다.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도록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13장 4절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의 목적입니다.

  우린 셋째 주간에 훈련 주간을 보낼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된 존재들입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생입니다. 이 땅에 우리가 태어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고, 삶을 담고, 예수님의 생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훈련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는 부단한 성장을 위해서 훈련받는 것입니다. 이 40일 캠페인도 어쩌면 영적 훈련입니다. 육체의 훈련도 되고, 영적 훈련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훈련을 통해서 인격이 성장하고 믿음이 성장하고 신앙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주간은 사역주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지음받았다는 것입니다. 사역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다릅니다. 각자 은사가 다르고 재능이 다르고 성격, 성품이 다르고 얼굴 모습이 다릅니다. 그 다른 다양한 재능과 은사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이 땅에 보냄 받은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전도주간입니다. 우리는 사명을 위해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역이라는 것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명이라는 것은 세상을 향해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전도자의 삶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누가복음 19장 19절에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도 이 땅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안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의 삶이요, 사명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6주간에 걸쳐서 균형 잡힌 삶에 대해 한 가지, 한 가지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 주제를 가지고 주일마다 모일 것입니다.
  다음 주간은 예배 주간입니다. 한 주간동안 새벽집회에 나오시면 그 예배에 대해서만 묵상을 하게 됩니다. 이번 주는 개회 예배인 동시에 목적 주간입니다. 그러니 이번 주 새벽집회 주제가 목적입니다. 1과부터 7과까지 읽을 때 마다 우린 목적에 대해서 매일 읽고 연구하게 됩니다. 또 여러분이 소그룹에 나오시면 또 목적이란 주제를 가지고 교제하면서 토의하게 될 것입니다. 매주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깊이 묵상하고 말씀을 듣고 토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 인생의 목적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40일 캠페인에 열심을 다해 동참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 주님의 초청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자, 누가복음 14장 16절, 17절 말씀을 읽어보십시다.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아멘. 
  어떤 번역에 보니 주인을 임금이라고도 했습니다. 어떤 주인이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초대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예약을 해서 잔치 사실을 알렸고 때가 임박해서 종들을 보내서 그들을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결같이 거절하며 사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밭을 샀으매 가 보아야겠습니다. 나는 소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봐야겠습니다. 나는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잔치에 갈 수 없습니다. 라고 한결같이 다 거절합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오늘 우리를 초청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40일 캠페인이란 천국잔치를 배설하시고 우리들을 초청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혹시,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아니 어떤 핑계를 가지고 계십니까? 어떤 분은 나는 밭을 사러 가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 말은 세상의 어떤 재물 때문에 주님의 초청에 응할 수 없다고, 판교에 아파트를 넣었는데 청약된 것 보러가야 한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소를 시험하러 간다는 사람은 좋은 자가용을 샀는데 이것을 타고 경부 고속도로를 달려보아야겠다는 사람이며, 장가들었다는 이는 가정에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나는 이 캠페인에 참여할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여러분, 오늘 실망한 주인은 어떻게 합니까? 종들을 보내서 다시 말합니다. 오늘 말씀 21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아멘. 집주인이 진노해서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여기에 번역이 좋지 않습니다. 개역 개정판은 이렇게 표현하지 않습니다. 병신이란 말 대신에 장애인이라든가 지체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장애인을 위해서,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가난한 자는 부유한 자에 비해서 겸손합니다. 몸이 좀 흠이 있는 부분은 아주 건강하고 당당한 사람에 비해서 마음이 열려있고 겸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주인은 겸손한 자들을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마음이 열린 자들을 오늘 잔치에 초대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여러분들이 마음을 열고 낮추어서 초대받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만한 자들은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는 오늘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이 캠페인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이 우리 영신교회에 주신 놀라운 축복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개인 개인에게도 놀라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목적 없이 80년의 생애를 사는 것보다, 단 5년을 살아도 인생의 목적을 깨닫고 바로 산다면 그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존귀한 삶이 되겠습니까? 더구나 이 삶은 이 땅의 삶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내세와 현실의 삶이 마치 서울서 부산가는 거리라고 칩시다. 500Km라고 한다면 이 땅에서의 70, 80년의 생애는 마치 500키로 가운데 1센티도 안됩니다. 너무나 짧은 생애입니다. 우린 이 땅에서만 삶을 위해서 이 목적을 깨닫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의 바른 삶은 영원한 천국의 삶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바른 목적을 가지고 살 때 우리 삶은 영원과 연결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교회적으로도 우리는 이 캠페인을 통해서 놀라운 축복과 은혜와 부흥을 경험할 것입니다. 미국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가 처음에 이 캠페인을 시작할 때 세계적으로 1500교회에서 50만 명이 동시에 시작했습니다. 그 교회들이 이 40일 캠페인을 통해서 한결같이 놀라운 축복들을 경험했습니다. 교인들의 삶이 변화되고, 인생의 목적이 달라지고, 예배 참석의 자세가 달라지고, 모이는 숫자가 늘어나고, 기도가 뜨거워지고, 응답의 역사가 일어나고, 치유가 되는 등 놀라운 변화가 일었습니다. 저는 우리 영신교회에 40일 캠페인을 통해서 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삶이 꼭 변화되리라 믿습니다. 40일은 변화의 시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동안 변화되었습니다. 니느웨 백성은 40일 동안 회개하면서 변화되었습니다. 40일은 변화의 시간입니다. 여러분, 이 40일을 투자할 수 없겠습니까? 아니 주님을 위해서 이 40일을 바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바빠도 다른 일을 정리하시고 여기에 집중하고, 포커스를 맞추어 보십시오.

  이런 계산을 해보았습니다. 보통 80년을 산다고 했을 때, 80×365를 하니 2만 9천 2백일이 나옵니다. 우리가 일생을 사는 날이 그만큼입니다. 그 중에 40일 좀 빼면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40일 뺍시다. 그리고 주님께 드립시다.
  이 2만 9천 2백일을 시간으로 계산하면 70만 8백 시간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한 시간 한 시간 사는 게 그만큼입니다. 그 시간 다 끝나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몇 시간 빼면 안되겠습니까? 새벽마다 한 시간 계산하면 40시간, 주일이 여섯 번이니 6시간, 소그룹 6번이니 6시간, 즉 52시간입니다. 70만 8백 시간 중 52시간 좀 빼면 안되겠습니까? 그 시간은 주님을 위해서 드리십시다. 주님이 초청하시는데 응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사도행전 13장을 보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따라 살다가 편안히 잠들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 사도행전 13장 36절이 오늘 우리의 비문이 되면 좋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비문 앞에 이런 글귀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일평생 하나님의 목적을 찾아 섬겼던 성도 이영무가 하나님 품에 잠들었노라”라고 쓰이게 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아가던 인생이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다면 그 종말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된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난 가족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명을 위해서 지음 받은 존재들입니다. 오늘 이 시간, 피곤하고 낙심된 마음으로 이 장소에 나온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아니, 인생의 힘든 시련과 역경 속에서 그만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부둥켜 안고 이 곳에 나오신 분들도 혹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이 캠페인을 통해서 인생의 목적을 깨달을 때 인생의 목적과 환희와 감격이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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