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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께어 있어 기도하라!!! (막 14: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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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유명한 기도가 많이 있다.
바울사도의 기도
야베스의 기도 - 집집마다 액자로 걸려있다. 그 외에도 아브라함/ 모세/ 히스기야의 기도등
어느 기도든지 다 은혜가 되어서 액자로 걸어놓고 싶고 기도문을 인쇄해서 책상머리에 붙여 놓고 싶다.

그러나 이런 위대한 기도와 함께 기억해야 할 기도 --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시고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12명의 제자 중에 수제자에 해당되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기위에 겟세마네 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겟세마네는 예루살렘동쪽 1.2km위치한 조그만 동산이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밀려오는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려 올라가심
그런데  기도하려 가시면서 홀로 가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 중 세 사람을 데리고 올라갑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올라갑니다.
그러면서 세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십니다. “내가 너무 힘들다. 너희들도 여기 깨어서 기도하라.” 그리고 약간 떨어진 곳/ 약 30m정도 떨어진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니깐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이 보일 정도이고 /  기도 중에 부르짖는 소리와 한숨과 고통을 다 들을 수 있는 위치.
그런데 기도를 하시다 와서 보니 제자들이 다 자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깨우셔서 “깨어라, 깨어라, 정말 나와 함께 잠시도 깨어서 기도할 수 없더냐. 잠깐만이라도 나와 함께 깨어서 기도할 수 없더냐.” 말씀하시며,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씀을 던지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깨어 기도하라.”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의 이 충고도 무시하고 잠으로 그 시간을 다 채워버렸습니다.
여러분 그 이후에 전개되는 사건의 결과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던 예수님은 십자가에 순종하여 승리하였고
잠을 잤던 세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가장 무기력하고 나약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어린 계집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하신 예수님 말씀을 듣지 않은 제자들은 닥쳐온 십자가의 어려움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훗날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너 왜 신앙생활을 그렇게 했니? 왜 그렇게 살았니?”라고 주님이 물으신다면 “주님, 저! 그때 가난했잖아요.” “저는 어려웠잖아요.” “저는 연약했잖아요”  여러 변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변명을 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기도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 가난했던 것 이해한다. 연약했던 것 이해한다.
바빳던 것 이해한다 그러나 깨어 기도한 적이 있느냐라고 물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말씀하겠습니까?

그래서 마지막 날 이런 변명과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기위하여
예수님은 여러분의 손을 붙잡고 여러분을 데려가는 곳이 있을 겁니다. 바로 겟세마네 기도의 동산입니다. 제자들을 데리고 기도의 동산에 데리고 가셧던 것처럼 여러분을 데리고 가셔서 동일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을까?
나도 예수님의 손에 붙잡혀서 겟세마네 동산에 함께 올라가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첫째는 기도를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이 많이 있는데 기도에 관한 가르침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치실 때 가르치는 것 뿐 만 아니라 직접 기도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말로만 기도하라고 강조한 것이 아니라 직접 기도하는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기도하셨습니다.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기도 하셨습니다.
12 제자들을 선택할 때도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하루의 삶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도 어김없이 다음 날이면 이른 새벽에 일어나 기도함으로써 하늘에서 오늘 능력을 공급받았고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두고 5000명을 먹여야 하는 절대한계상황 속에서 주님은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
귀신 들린 자녀를 데려와 고쳐달라고 부르짖을 때 기도 외에는 이런 능력 나타남이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일의 중압감이 밀려올 때도, 자신의 앞길이 막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도,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 중 가장 어려웠던 십자가를 앞둔 순간에도 변함없이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 기도의 자리로 가셨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자는 모습을 보시고 깨우시며 기도하라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의 기도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싶은 의도가 있었습니다.
주님이 떠나기 전, 죽기 전에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이 바로 기도였습니다.
절망 가운데 한숨쉬고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싶엇습니다.
오직 기도만이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능력이요 통로였기 때문에 기도를 가르쳐 주고자 제자들의 손을 잡고 겟세마네 올랐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한 평생을 몇 마디로 요약한다면 무엇으로 기록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는 성경의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한평생을 요약하는 영광스러운 훈장하나는 그는 일평생 기도의 사람이었다..
우리가 예배때 마다 빠지지 않고 외우는 주기도문의 탄생유래는 어디입니까?
한평생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서.  예수님의 기도는 능력이 있고 응답이 있고
저 바리새인들의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주문기도와는 다른  뭔가 살아있는 기도요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는 기도인 것을 알고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런 요청을 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주여 우리도 당신과 같은 그런 기도를 하기를 원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이 세상에서 가장 압축적이 가장 심오한 주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이런 요청을 제자들이 한 것을 볼 때 예수님이 얼마나 기도하는 삶을 사셨고 기도에 도전을 주는  삶을 사셨습니다.

성도여러분!!
기도는 우리 운명을 바꿉니다. 우리 환경도 바꿉니다. 심지어 기도는 나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능력입니다.. 기도 속에 하나님 임재를 체험합니다. 능력의 주님과 교제하는 중요한 방법 이기도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모든 문제를 기도로 풀어나가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문제를 해결합니까. 힘 있는 사람은 힘으로,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권세 있는 사람은 권세로 풉니다. 당회를 해보면 재미있습니다. 어떤 안건이 나왔을 때 교수님은 “연구합시다!” 하시고, 사업하는 분들은 “융통성 있게 합시다!” 그럽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틀로 문제를 보고 해결하려 합니다.
예수님이 붙잡힐 때 베드로는 칼을 휘둘러 아무 힘없는 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떨어뜨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실존을 지적하시면서 “베드로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지금 겟세마네에서 힘과 지혜로 무력으로 해결할려고 하지 않고 기도로 이 십자가의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가장 완벽한 인생을 살았던 주님이, 가장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남겼던 주님이, 그 주님이 살아가신 삶의 방법은 기도였다면 우리도 주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배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힘으로 나가기 전에 기도하는 자리로 나오tu야합니다. 분개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는 자리로 나오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이 기도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여러분 이 세상살이가 자신있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살이가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어려운 문제 앞에 주저앉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존심 상할 일도 많습니다. 한계상황이 벌어질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여러분의 손을 붙들고 겟세마네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주님이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서 주님처럼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주님께서 제자들을 겟세마네로 데려가신 이유는 영적으로 승리하는 길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영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덧입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두려웠고 무서웠습니다. 부담스럽고 또한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하나님 이 잔을 내게 지나가게 해 주십시요. 피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끊임없이 자기 육체의 소리와 환경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십자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5장 11~12절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 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되어 있습니다.
기도할 때 이와같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보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보입니다.
내가 이 십자가에 달려야 많은 생명이 살아나고 구원 얻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기도가 달라집니다. ‘하나님, 이 일을 감당할 능력을 주십시오. 감당할 능력을 주십시오. 십자가가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이라면 이 일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저를 승리하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 우리 삶에서 육이 이길 수도, 영이 이길 수도 있습니다.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흰 개와 검은 개가 있습니다. 이들이 싸운다면 어떤 개가 이길까요? 정답은 ‘그 동안 잘 먹인 개가 이긴다’ 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내 영과 육체의 소욕을 듣는 내 판단이 대결할 때 어느 것이 이길까요? 마찬가지로 평소에 많이 먹인 것이 승리합니다.
과연 나는 내 영을 위해 얼마나 시간이 투자하고 있습니까?
육체가 여러분 속에 날마다 승리하고 있습니까? 육체가 우리 속에 날마다 승리하면 결과는 파멸과 사망입니다. 육체의 판단이 내 속에서 승리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이 보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생기고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덧입혀 지는 것입니다.
41절 말씀을 보면 조금 전에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던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씀합니다. 이제 됐다고, 그만 돌아가자고. 이젠 더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십니다. 고뇌하시던 주님이 하늘의 음성을 듣고 난 후에는 하나님 뜻에 순종하기를 원하여 이제는 이미 십자가에서 승리를 확신하고 당당하게 내려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도가 주는 능력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고
그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덧입혀 주는 것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기도했습니다. --  기도중에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임을 알았고 기도중에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덧입혀 졌습니다.
이 능력과 담력을 공급받은  예수님의 첫마디가 무엇? 이제 됐다고, 그만 돌아가자고. 이젠 더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십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의 뜻을 알았죠/ 감당할 능력을 공급받았죠/ 최종승리까지 보았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고 뜻을 감당할 능력을 주고
최종승리에 대한 확신까지 심어줍니다.


현대선교의 문을 연 윌리엄 캐리는 세계가 선교에 대해 아직 눈 뜨지 않았을 때, 인도 선교사로 자원해서 갑니다. 42년 동안 활동하면서 수많은 고초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죽음의 유혹도 받았습니다. 부인은 거의 정신병자가 될 정도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재정난에 허덕이면서 곧 주저앉을 것 같은 일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 사람과 함께 숙원사업이던 인도 45개 방언으로 말씀을 번역해 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잠자던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 가슴을 선교사역의 불로 뜨겁게 한 사람입니다. 사역을 마무리할 즈음에 한 사람이 찾아가 “당신은 지치고 힘든 고난 가운데에서도 어떻게 이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저는요, 하나님 뜻 그 이하도 이상도 없었습니다. 나는 내 삶 속에서 하나님 뜻만 바라보았습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나를 이곳에 보낸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도록 내 육체와 환경이 주는 소리와 싸워 이기고 하나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 뜻만 바라보았습니다.” 순간마다 육체가 주는 소리를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한 윌리엄 캐리,
그는 고난이 많은 인생이였지만 마침내 하나님 무대에 아름다운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살다 보면 고통이 찾아오지만 대부분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통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고통을 주신 하나님 뜻을 안다면 훨씬 더 이기기 쉬울 것입니다.
그럴때 예수님처럼 기도하십시요// 고난 앞에 육체의 소리를 듣고 절망하지 말고 나를 살리신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럴때 하나님은 뜻을 알려 주실 것이고 그 뜻을 감담 할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윌리엄 캐리의 전기를 쓴 작가는 어떻게 윌리엄 캐리가 열정을 가지고 이 사역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를 조사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윌리엄 캐리에겐 몸 약한 누나가 있었습니다. 누나는 인도를 떠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윌리엄, 나는 네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구나. 나는 병상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몸이라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밖에 없구나.” 전기작가는 윌리엄 캐리의 위대한 사역 배후에 있는 ‘기도밖에 할 수 없는 한 여인,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여인, 기도 외에는 자기존재를 발견할 수 없는 여인’에게로 초점을 맞췄습니다. 누나의 기도 속에 윌리엄 캐리가 사역을 이루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음을 전기작가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윌리엄 캐리의 누나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 앞에서 자기가 왜 나약한 모습으로 일평생 누워 지내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향한 뜻이 분명히 있습니다. 힘들지만 고난속에 육체의 소리가 들려올 때 예수님처럼 겟세마네기도를 드리십시요
그리할 때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실 것이고 그 뜻을 감당할 능력에 덧입혀 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제자들을 겟세마네로 데려가신 이유는 기도할 때가 따로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아무 때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도 때가 있습니다. 봉사도 봉사해야 할 때가 있든지 기도도 기도해야 할 때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시키시는데 두 번이나 깨워도 계속 잡니다. 41절 말씀을 보면 제자들에게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됐다. 이젠 됐다. 이젠 기도할 필요도 없다. 기도할 이유도 없고  기도할 시간도 없고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 자 이제는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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