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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번의 선택 그리고 결과 (눅 14: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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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누가복음 14: 16-24
제목: 한번의 선택 그리고 그 결과(눅14:16-24)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고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요즘 시중에 나오는 책중에 가장 잘 팔리는 책이 말콤 글래드웰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블링크”라고 하는 책입니다.  블링크라고 말은 2-3초안에 우리 머릿속에서 판단되는 생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척보면 아는겁니다.  어떤 사람을 볼때 그 사람이 앞으로 될 사람인지 아니면 망할사람인지 그냥 척보면 아는겁니다.  그리고 지금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그냥 척보면 아는겁니다.  이게 2-3초안에 결정된다는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2-3초안에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다 알아버리는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  이것이 가능할까?  그런데 여러분 이게 충분히 가능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나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행동이라는게 그냥 하는게 아닙니다.  그동안 어떤일을 해왔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성격이 어떤지 다 얼굴에 씌여있고 행동하나에 다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만 보면 금방 어떤 사람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게 되는것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게 아니잖아요.  나무테가 그 나무가 살아온 날들의 기록이듯이 우리의 얼굴모양이나 행동하나에도 내가 살아온 삶의 여정들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얼굴이 중요한겁니다.
  링컨 대통령이 이런말을 했습니다.  “사람나이 40이면 자기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요즘은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좀 오래걸린다고 합니다.  하도 많이 고쳐가지고 이 사람이 이 사람인지 저 사람이 저 사람인지 잘 구분이 안되는거에요...  어떤 사람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억울한거에요. 이제 좀 살만하니까 죽게 된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앞에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너무하십니다.  제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아시잖아요?  조금만 더 살게 해주세요.”  눈물 콧물 흘리며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네 생명을 20년 더 연장시켜 주겠다”.  이 사람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래서 할렐루야를 외치며 남은 인생을 한번 멋지게 살아볼려고 통장에서 있는돈을 다 빼서 일단 영화배우 장동건처럼 성형수술을 했습니다.  수술도 아주 잘됐어요.  너무나 기쁜나머지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병원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사람에게 차가 돌진해 오더니만 그만 이 사람을 덮치고 말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즉사한겁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앞에 섰어요.  그리고는 하나님앞에 막 따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이럴수가 있습니까?  분명히 저 20년동안 더 살게 해주신다고 했잖아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십니까?  “넌줄 몰랐다”.
  오늘의 나는 그냥 만들어진게 아닙니다.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과정과정이 모여져서 바로 오늘의 내가 된것입니다.  그런데요 이런 삶의 경험들이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드러나는것입니다. 
어떤 교회 집사님이 계셨는데 이분이 부동산투기를 했습니다.  어느 주일날 여전도회 헌신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회장인지라 찬양을 인도하고 기도를 해야 하는데 워낙 바쁘게 살다보니까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자 찬양하고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부르실 찬양은 411동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바둑을 그렇게 좋아하셨더랍니다.  워낙 좋아하다보니까 예배드리기 전날에도 교회 장로님이랑 밤새워 바둑을 뒀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노인들이 많이 온거에요.  흰머리는 흰돌,,검은머리는 검은돌...자꾸 바둑판이 생각나서 너무 힘든거에요.  어쨌든 말씀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 마지막 축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하나님의 축복이 있을지어다...아다리...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말로, 행동으로, 무의식적인 제스쳐로 나타나는거에요.  그래서 이것을 제대로 볼수만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냥 척보면 알 수 있는겁니다.
저도 목회를 해보니까 이게 조금씩 되더라구요.  그 사람이 어떤지 다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한두가지 하는것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파악이 됩니다.  우리나라에 옛말에도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하잖아요. 옛말 틀린거 하나도 없습니다. 
미국 택사스주 그랜드 프레이어리에 살고 있는 찰스 하비라고 하는 신앙인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매우 조급하게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인터뷰를 하러 가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약 10분 정도 늦을 것만 같은거에요.  그래서 조급한 마음에 운전을 하고 가는데 도중에 한 중년 부인이 자동차의 타이어가 터져서 차를 길가에 대어 놓고 도와 줄 사람을 기다리고 서 있는겁니다.  바쁜데 그냥갈까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인데 그냥 가는데 양심상 도저히 용납이 안됐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차를 그 뒤에 세우고 터진 타이어를 갈아 끼워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시간이 좀 걸려서 결국은 취업 인터뷰 시간에 늦고 말았습니다.  “이젠 다 끝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그 회사에 가서 서류를 받아 그것을 다 기록한다음에 인사과장 사무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비는 인사과장과의 면전에서 즉시 좋은 자리에 채용이 되었습니다.  왜 그런줄 아세요?  그 인사과장이 누구였냐면 바로 자동차의 타이어가 터져서 길가에 서 있었던 그 중년부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바쁜 상황에서도 남을 배려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믿고 일을 시킬만한 사람일거러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누군가 자신있게 보여줄 그 하나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달려 돌아가실 때 그 옆에 두명의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중의 한명이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러면 나좀 살려줘라...자기도 구원못하는 주제에 다른 사람을 어떻게 구원해!!! 그런데 다른 강도는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는 우리 죄 때문에 심판받는데 당연하지만 이 분은 죄가 없으신분이시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갈 때 나좀 기억해 주십시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오늘 낙원에서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강도질하다가 잡혀서 그 댓가로 사형을 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뭐하나 잘한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잘한게 있었어요. 그게 뭡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한겁니다.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오늘 당장 죽는다면 여러분들은 천국에 들어갈 자신이 있습니까?  있다면 왜죠? 예수님을 믿으니까! 다른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것이지 내가 헌금을 많이 했으니까..내가 전도를 많이 했으니까!! 내가 교회를 오래 다녔으니까!!! 내가 뭘해서가 아니라 그저 믿기 때문에 가는겁니다.  믿음하나로 구원받는겁니다.  그러면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은 왜 구원받지 못합니까? 믿지 않으니까!! 다른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데,,,예수님께서 구원자이신데 그것을 믿지 않으니까 그 불신앙 하나 때문에 지옥가는겁니다.  여러분! 하나가 중요한겁니다.  그리고 또한 한번이 중요한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독자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때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번의 순종으로 복의 근원이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그물을 깁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를 불렀습니다.  “너희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들을 사람낚는 어부로 만들것이다.” 이 말에 베드로와 안드레는 배와 그물을 내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이 한번의 순종으로 베드로와 안드레는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고 초대교회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엘리사 당시 아람군대에 나아만이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군대장관이었는데 나병환자였습니다.  밖에 나오지도 못하고 그저 죽을날만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붙잡혀온 계집종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에 있던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엘리사가 게하시를 통해 말합니다.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어라”.  한 나라의 군대장관인데 엘리사도 아니고 그 종이 나와서 그것도 자기나라의 큰 강이 아닌 시궁창 같은 요단강에서 가서 몸을 씻으라는겁니다.  속에서 뭔가 확 끓어오르는것이 있었지만 참고 시키는대로 순종을 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곱 번 몸을 씻었을때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고침받았습니다.  한번의 순종으로 나병에서 고침받은겁니다.  예수님께 병고침을 받고 문제 해결을 받은 사람들을 보세요.  이런저런 사정들이 다 있지만 결국은 한번이에요.  제대로된 한번의 순종이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한번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버림받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으로 점령할 때 아이성을 공격했는데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했습니다.  패배할 수 없는 전쟁인데 진거에요.  그래서 왜 그런가 알아보니까 아간이라고 하는 한 사람의 죄악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잘했어요.  40년간 광야생활도 잘 버텼구요.  여리고성을 함락시킬때도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런데 한번 실수로 인해 아간은 물론 그 가족까지 전부 몰살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왕을 보세요.  하나님께 선택받아서 기름부음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서 승리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지 말아야 할것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제사장만이 해야 하는데 사무엘이 안온다고 내가 해도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자기가 대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한번의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받고 결국 전쟁에서 패해서 비참하게 자살하는 것으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한번 잘하는거요? 그게 쉬운거 같죠?  그게 쉬운게 아닙니다.  잔잔한 호수에 바위를 던져봐요? 어떻게 됩니까?  풍덩하는순간부터 파장이 호수 전체에 퍼져나가기 시작합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 이렇게 잔잔한 호수에 파도가 생기듯 하나님의 마음에 강한 충격을 준적이 있습니까?
내 헌신이..내 섬김이..내 순종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만 하면 역사가 일어나는겁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께서 자비와 은혜와 사랑의 손길을 내 미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내가 뿌리치게 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하게 되는것입니다.
정말 중요할 때, 정말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려고 할때 그때 잘해야 하는것입니다.  기회가 많이 있는게 아닙니다.  어쩌면 내 인생가운데 기회라고 하는것이 이번 한번 뿐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나에게 주어진 내 인생가운데 마지막 주어진 기회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겠습니까? 잡아야죠!!!!  그러면 기회가 왔는데도 눈앞에서 그것을 놓친다면 그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그런 사람이 바로 빌어먹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빌붙어 살아갈 인생입니다.  이건 저주받은 인생입니다.  여러분들은 절대로 이런 삶을 살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드립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했다고 했습니다.  16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4: 8절에 보면 결혼식이야기가 나오는것을 보면 아마도 결혼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간에 큰 잔치를 벌여놓고 사람들이 와서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저는 1998년 9월 12일에 서울신대 채플에서 결혼식을 했습니다.  5월즘에 결혼날짜를 잡았는데 날이 잡히니까 시간이 정말 빨리가더라구요. 그때까지는 결혼이라는게 그냥 하는건줄 알았는데 왜이리 준비해야 할것이 많은지...살집도 구해야죠,,,결혼식 할장소...결혼 음식,,신혼여행 장소...그리고 청첩장을 만들어서 결혼식에 올 사람들에게 일일이 보내고...정말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를정도로 휙휙 지났습니다.  드디어 결혼식날이 되고 긴장한 가운데 결혼식이 진행됐는데 처음에는 정신이 없어서 누가 오고 안왔는지 눈이 안보였는데 잠시 지나니까 이게 보이는거에요...어 누가 안왔네...어 누가 왔네...순간 와야되는데 안온 사람들 생각이 나기 시작하는데 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때가 토요일 오후였는데 일부러 많은 사람들이 오라고 오후 2시에 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학부에 다닐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식당 집사님들을 다 알았어요. 그래서 그분들이 정말 최선을 다해서 음식을 준비했더랬습니다.  그저 와서 맛있게 먹어주고 “축하한다”는 그 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거였습니다.  그런데 안온거에요.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그때 안온 친구들 지금도 안만납니다.  물론 다들 바빴겠죠?  그러나 세상에 안바쁜 사람이 어딨어요?  그래도 친군데..그동안 알고 지낸게 몇 년인데...더 기분나쁜건 난 잔치에 가서 부조도 하고 축하도 해줬는데 오지도 않고 부조도 안할 땝니다.  자기는 받을거 다 받고 줄땐 그게 아까워서 못주겠다는거에요..이게 놀부심보입니다.  이게 사해바다입니다.  들어오기는 계속 들어오는데 나가는게 없어요... 계속 들어오면 더 풍성해질거 같죠?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내 보낼땐 내보내야지 더 풍성해지는거지 계속 받기만 하면 나중에는 반드시 탈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보세요.  어떤 사람이 잔치를 벌였는데 아는 사람들에게 가서 잔치에 와달라고 먼저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다들 “그러마”했던 사람들입니다.  17절 보세요.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하매”라고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잔치를 할려면 그냥 합니까? 아닙니다.  대충 몇 명이나 올것인가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음식을 준비합니다.  만약 100명이 분명히 온다고 약속을 해서 100인분을 준비했는데 90명밖에 안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10명분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버려야 합니다.  뷔페를 하면 100명 예약하면 10명이 오든 90명이 오든 100명분을 내야됩니다.  그래서 잔치를 할땐 그냥 하는게 아니라 온다고 분명히 약속한 사람들을 파악해서 거기에 맞게 준비하는것입니다.  그런데 온다고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됐습니까? 18-20절에 보니까 다들 약속을 어겼습니다.  한 사람은 나는 밭을 샀으니까 밭이 어떤가 보러가야 한다고 못오겠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소 다섯 마리를 샀기 때문에 소들이 어떤지 시험하러 가봐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못간다고 했습니다.  사실 다 중요한일들입니다.  밭을 샀으니 가봐야죠, 소가 어떤지 확인해봐야죠. 장가를 갔으니 신혼여행을 가는거 당연한겁니다.  그러나 꼭 그 잔칫날 그 일을 해야 하는지? 또 그것이 그동안 쌓았던 모든 관계를 깨뜨릴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하는것입니다.  오늘 못하면 내일하면 안되는겁니까? 이건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6:25-3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일 때문에 목숨걸지 말아라. 먹고 사는것은 다 내가 책임진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살아라. 그러면 나머지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것이다.”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라는 책에는 바다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는 노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바다에서 많은 날들을 기다리다가 천신만고 끝에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그 물고기를 배에 매달고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건져보니 오직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습니다. 상어떼들이 습격하여 물고기를 다 뜯어먹어 버렸던 것입니다. 노인은 심한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혹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정말 바빠요...그런데 뭣 때문에 그렇게 바쁘십니까?  먹고 사는것 때문인가요?  나중에 노년에 좀더 평안하고 안락하게 살기 위해서입니까? 
목회를 하면서 장례를 많이 치러봤는데 아직까지 제 뇌리속에 남아 있는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날인데 교회 집사님이 넋이 나간채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목사님 갔어요..우리 큰 아들이 갔어요”..그래요 서울에 내려갔나보죠?  “그게 아니고요,,갔어요..”순간 아차싶더라구요...그래서 집사님댁에 뛰어 갔는데 거기에 이미 죽어서 몸이 굳어진 상태로 누워있더라구요...그런데 옆을 보니까 술병이 방안 가득 쌌여있었습니다.  나중에 장례식을 치르다가 알게된건데...이분이 대학도 나오고 서울의 큰 회사에서 회사 중역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정말 열심히 살았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요 너무 열심히 회사일만 한 나머지 가족들에겐 너무 소홀히 했습니다.  결국 IMF때에 명예퇴직을 당했는데 그땐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늦은때였습니다.  아내에게 이혼당한거에요.  그래서 있는재산 위자료와 양육비로 다 내주고 자신은 고향에 돌아와서 노모에게 얹혀살았던겁니다.  그렇게 바쁘게 살았는데 그 마지막이 허름한 초가집에서 한숨만 쉬다가 술로 인해 장파열로 비참하게 인생을 마친겁니다.  여러분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쁩니까?  일주일에 한시간 내 삶을 인도하시고 나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시간도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독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 까지 했는데 일주일에 한두시간 하나님께 드릴 시간이 없습니까?
여러분! 한번이 중요한겁니다.  한번 순종으로 복의 사람이 되고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한번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되고, 그리고 한번의 거절으로 잔치의 손님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잔치는 커녕 그동안 유지해왔던 좋은관계도 깨어져 버릴 수도 있는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여러분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혹시 내가 그 사람이 아닌가??  요한계시록 3:20절에 보니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받을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가 복받고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자리에 축복의 자리에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우리의 마음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리 두드리셔도 내가 열지 않으면 하나님은 내 안에 들어오실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속의 문은 문고리가 밖에 있는것이 아니라 안에 있기때문입니다.  결국 부르심에 응답하느냐 마느냐는 하나님께 있는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있는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회가 많은게 아닙니다.  우리가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 지금 이렇게 바쁘게 산다고 하지만 오늘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겠어요....통계청 자료를 보니까 2004년도 한해 사망한 사람이 24만 5771명이라고 합니다.  하루평균 672명이 죽는거에요.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할 일 중에서 가장 급하고 중요한일이 뭐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그 날이 나의 인생 최고의 날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것입니다. 
청함받았던 사람들, 그리고 분명 그 청함에 응하겠다고 약속한 사람들..그러나 세상일 때문에 먹고 사는일 때문에 약속을 파기한 사람들, 결국 이 사람들은 기쁨의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기회를 놓쳐버리는 버림받는 인생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중요한게 무엇입니까?  내가 지금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것들이 정말로 중요할까요?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인도자이신 하나님을 배우고 그 하나님을 만나는일보다 과연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갈멜산 정상에서 엘리야가 오늘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한번의 선택이 내 인생 전체..아니 나의 영원의 삶까지 좌우 할 수 있다는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탁월한 선택....후회없는 선택을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동해한사랑교회 유재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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