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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천국에서 큰 자 (마 1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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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를 통한 우리 주님의 귀한 교훈을 통해서 우리의 삶과 신앙을 함깨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5.31 선거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저마다 후보들은 자신이 적격한 후보라고 홍보전을 펼치느라 야단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높아지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뇌물을 주기도 하고 상대방을 깍아내리기도 합니다.심지어는 상대방의 없는 흠잡기를 만들어 음해하는 소문을 내기도 합니다. 얼마전에 식당에 갔는데 명함을 돌리면서 90도로 정중하게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람들은 자리 권세에 대한 욕심이 대단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자리 권세에 대한 그릇된 욕심의 모습들이 종종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들어와서 세상처럼 안타까운 모습을 나타내곤 합니다. 이것은 소위 교회의 지도자들의 모임인 노회나 총회와 같은 모임을 가보아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또 교회 속에서 평신도들의 모습속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오늘 본문에 제자들도 그렇습니다. 
하루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아와서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서 자기들의 인간적인 야망을 드러내었습니다. 어쩌면 모든 인간의 희망은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는 이유도 크게 성공하는 사람, 출세하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저마다 인간에게는 크게 되고자 하는 야망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교육과 훈련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크게 되고자 하는 야망은 좀처럼 꺽여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오직 그들의 욕심만을 추구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높아지고 크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한 아이를 불러서 제자들에게 보여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우리가 어린이들을 통하여 배워야 할 교훈이 무엇입니까?

1.어린 아이같이 겸손한 사람이 천국에서 큰 사람입니다.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예수님은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자기 못하리라 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린아이”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어린아이들과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시고  만약에 어린아이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어린아이들에 대한 강조 해석을 이렇게 하십니다.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여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자기를 낮추는 자의 결과 그 사람이 천국에 큰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서로 높아지고자 했습니다.
아마 제자들은 스스로 보기에 잘난점을 앞세워서 자신들이 천국에서 제일 큰 자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도 자기는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베드로는 수제자였기 때문에 당연히 천국에서 제일 큰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가롯유다는 회계를 맡았으므로 장차 천국에서 재무장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시몬과 유다는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에 혈육의 정을 앞세워서 천국에서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제자로서 천국에서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안드레는 제일 먼저 부름을 받은 제자로서 그도 역시 천국에서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우리들의 가난한 마음은 점점 위축되든 것을 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이 자기의 부족을 알고 분수를 알아서 제위치에 있을때 있으면 정말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정말 보아 줄 수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자칭 자기가 자기를 높이는 사람입니다. 자기 스스로 마땅히 어떤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선언하고 자기를 과대평가하면서 권리를 주장하면 자신도 힘들도 주변의 힘들도 힘이 들게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높이는 자들에게 어린아이를 본받을 것을 말씀합니다.
여기 ‘어린아이’는 아직 어머니의 품과 젖을 필요로 하는 아이를 말을 합니다. 이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모든 것을 엄마에게 의지하고 맡겨야 하는 연약한 상태입니다. 이 아이에게 엄마가 전부요 엄마가 소망이요 엄마가 만족인 것입니다.
이 어린아이들은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 탐욕을 구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사람을 외모에 따라서 차별하면서 자기를 높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는 세상에서 출세하여 남을 다스리려고 하는 야망을 갖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을 잘 하시는 분들을 보면 어린아이같은 분들입니다.
기도생활을 잘 하시는 분들을 보면 어린아이 같은 분들입니다. 제자훈련을 해보면 제일 효과가 좋은 분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분들입니다.  자기의 부족을 알고 겸손하게 배우려고 하는 분들은 효과가 좋습니다. 제일 은혜를 많이 받는 분들도 그렇습니다. “내가 부족하다”“내가 믿음이 적다”는 것을 알고 사모하고 구하는 어린아이 같은 자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자기를 내려놓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사실 복잡한 것이 없습니다. 마음이 어린아이같은 사람들은 자기 머리를 별로 굴리지 않습니다. 교활함이 없고 간사함이 없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여러분 믿음 좋은 분들 보십시오. 단순하십니다. 앞 뒤 가리고 재고 머리 굴리지 않고 말씀대로 믿고 따르는 단순함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심령이 어린이와 같이 가난해서 그런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어린아이같은 빈 마음 가난한 마음으로 겸손의 영성을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먼저 어른들인 우리들이 겸손해야만 자라나는 우리 자녀들도 겸손하도록 우리가 지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어린아이같은 아름다운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한소자라도 실족시키지 않는 덕있는 삶을 살 때 큰 사람입니다.

6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중 하나를 실족케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합니다.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하는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개 남을 실족시키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기준에서 남을 배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배려하지 못한 말을 합니다. 남을 배려하지 못한 행동을 합니다. 그 말과 그 행동으로 인해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좀더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행동하고 말을 합니다.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마디로 자기가 중심인 교만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교만해서 남을 실족시킵니다. 교만한 말,교만한 행동으로 남을 무시할 때 문제가 일어납니다. 내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면 소자같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도 엽신여기지 못하고 깔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소자는 어린이 오늘 말씀중에 어린아이라는 말과 소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말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어린아이는 네피오스 천진난만하다는 뜻으로  쓰여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아이의 성품을 보여준데 쓰여진것 입니다.소자는 미크로스인데 보잘것 없는 것을 말할때 쓰여진 말로서  가치적인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어린이를 볼때 우리는 보잘것없는 소자취급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모든 면에서 덜 발달되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어린아이들에게 이런 발달적인 면에서 미성숙한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는 교육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명심할 것은 아무리 미성숙한 어린이라도 성경은 어린이를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고 합니다. 시편127:3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우리 부모들은 하나님이 주신 아이들을 잘 양육할 관리자입니다.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아이를 맡기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잘 양육시킬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 아이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아이를 욕하고 저주하거나 무시하면 주인이신 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린 소자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이 세상의 가치로 보기에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 앞에는 동등한 사람이요 소중한 한 영혼입니다.

먼저 우리가 적용하기를 원하는 것은 덕있는 부모로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먼저 어린아이 하나라도 실족시키지 않는 부모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자라나는 자녀들을 가장 마음의 상처를 주는 가정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먼저 어린이들은 사랑과 보호와 양육을 필요로 합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요 아빠입니다. 그러나 많은 가정의 아빠 엄마가 일에 쫓기고 맞벌이하면서 돈 버는데말 집중하면서 아이에게 사랑의 관심을 가져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랑의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돈으로 선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또 아이에게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놀라고 합니다. 장남감을 사주고 놀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부모없이 장난감만 갖고 놀고 비디오만 보면 어린아이 마음에는 상처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어린이들에게는 엄마가 필요하고 아빠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장남감주고 혼자 놀라고 하고 그냥 어린이집으로 학원으로 돌렸을 경우에 아이들은 왜곡된 아이로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성인아이’라고 하는 말을쓰는데 나이는 성인이 되었어도 어린아이처럼 미숙한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일때 필요한 것을 제대로 충족받지 못하고 나이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이는 들었지만 그 마음에 필요로 한 사랑과 보호와 인정이 충족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는 어린아이같습니다. 만약에 사랑이 부족한 어린시절을 보낸 경우에는 나이는 어른인데 사랑을 찾아 헤매는 어린아이같은 감정과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되면 원만한 가정 생활 대인관계를 맺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나이는 어른이어서 나누고 주고 베풀어야 하는데데 감정적으로 미숙하여 항상 ‘나’를 중심으로 하여 ‘다오 다오’ 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의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사랑하고 보호하는 덕있는 부모로서 살아가는 자가 천국에서 큰 사람이요 큰 부모인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옛날에 교육이 진짜교육이었고 옛날 부모들이 진짜 교육가였습니다.
그당시에는 부모들이 모든 것을 다 직접 챙겨 먹이고 입히고 생활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대부분 많은 교육들이 이루어졋습니다. 그러니까 범죄도 줄고 오히려 사상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먼저 우리 가정이 우리 삶에서 한 사람을 세우는 바른 교육의 장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에 섬김의 부모 섬김의 어른이 있어야 합니다. 섬김의 부모 섬김의 어른이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교회에서 큰 신앙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작은 한 사람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배려하고 높이는 덕있는 사람이 큰 신앙 큰 사람입니다.
이렇게 섬기고 덕이 있어서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진정한 주님의 사람일수록 예수님을 바로 믿고 성숙된 사람일수록 소자 하나라도 어린아이 하나라도 주님처럼 영접할 줄 아는 분입니다. 소자 하나라도 어린아이라도 한 영혼이라도 겸손하게 섬길 수 있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은 어린아이라도 업신여기지 않고 존귀하게 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10절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소자 중에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업신여기다는 것은 깔보는 것입니다. 여기“소자”는 지극히 작은 어린 아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불완전하고 아무 것도 가진 없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도 업신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사실 세상에서는 어린아이들을 무시하고 깔봅니다.왜냐하면 아무런 힘을 가지고 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소자 어린아이를 무시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3가지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이유는 10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합니다.어린이들에게는 하늘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돕는 천사들이 어린이들을 시중들면서 돕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도 어린이들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모든 구원받은 자들을 섬기라고 보낸 하나님의 영입니다.
히브리서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라고 합니다. 비록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천사들이 우리를 돕습니다. 어린아이들도 돕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 한 영혼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둘째 주님께서는 한 영혼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어린아이도 포함됩니다. 어른 숫자만 귀한 것이 아니고 어린이도 귀한 것입니다.
만일 목자가 100마리의 양이 있는데 1마리가 길을 잃어버렸을 경우에 99마리를 두고 1마리를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사실 길을 잃은 양은 어린양입니다. 보잘것없을 것같지만 목자는 1마리의 길잃은 양을 찾아가십니다. 사실 교회에서는 헌금많이 하는 어른이 더 귀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어른 한명이나 어린이 한명이나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겸손한 어린이 한 영혼이 더 귀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린한영혼이라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 청년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차세대를 위해서 먼저 투자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면에서 우리 교회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다음 주에는 저희 교회에 청년부 담당 전도사님을 새롭게 모시려고 합니다. 우리 정도의 크기의 교회의 어려움은 유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부 담당 교역자를 모시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막대한 재정적인 투자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적으로는 리모델링하느라고 얼마간의 빚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른 것보다도 차세대를 위해서 먼저 사람을 투자하는 것은 이것이 소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린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어린이도 어른과 같은 한 영혼이요 오히려 더 귀중한 존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셋째 한영혼이라고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4절 “이 소자중에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합니다.
만일 소자 하나를 업신여기거나 실족시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속에서 주일학생들을 대할 때 정말 우리가 조심할 것이 무엇입니까?
아이들이라고 업신여겨서는 안됩니다. 우리 청소년들을 대할 때 정말 조심할 것은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어린이 날을 맞이하여서 어린이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귀한 교훈이 무엇입니까? 늘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항상 소자 하나라도 실족시키지 않는 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소자라도 무시하지 않는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우리 모두가 겸손과 덕과 섬김으로 천국에서 우리 주님께 크게 인정받는 큰 성도 큰 믿음의 승리자자들이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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