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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요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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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결혼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고 기쁨을 상실하는 위기에 처했을 때, 오히려 그 위기를 기적으로 바꾸어 축제의 기쁨을 경험한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기적은 갈릴리 가나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예수님 지상생애의 첫 번째 기적으로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동일하게 기다리고 있는 기적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는 기쁨대신 온갖 유형의 슬픔과 절망으로 기쁨을 잃어버린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들에게 언약된 가장 큰 선물이 기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은 잔치 집과 같은 분위기여야 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초상집을 더 닮은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마당의 슬픔을 축제의 기쁨으로 바꾸는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1.예수님을 초청해야 합니다.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사흘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성경학자들 가운데는 이 초청을 요21:2절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이미 예수님의 제자가 된 가나사람 나다나엘이 자기 동네 잔치에 선생님이신 예수님과 동료 제자들을 초청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이 혼인집이 아마도 까까운 친척지간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2절에서 밝히는 대로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다나엘이 초청했건, 마리아에 의해 초청되었던 간에 저는 그날 대부분의 갈릴리 가나 사람들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요한복음 1장에 의하면 세례요한의 증거에 의해 요단강 일대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이 작은 마을은 오늘날 유명한 마을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혼인 잔치는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기적을 베푼 잔치로서 중요한 잔치가 되었고,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은 중요한 사건의 증인들이 되었으며, 지금도 성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아주 작은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여행 스케줄에서 이 가나마을을 빼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 이렇게 예수님을 초청하는 잔치마다 중요한 잔치가 되고, 예수님을 초청하는 가정마다 중요한 가정이 되며, 예수님을 초청하는 개인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12절에서 사도 요한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디에서 무엇을 하시든 예수를 초청하십시오.
그리고 만일 그 자리에 예수님을 초청하는 것이 당신에게 부담이 되거든 당신도 가지 마십시오.
그러나 힘들어도 당신이 안갈 수 없는 자리, 그리고 예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리라면 당신의 주님이신 예수님에게 함께 가달라고 요청하십시오.
예수님은 거기에 기꺼이 당신과 동행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한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당신을 사랑하는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자리로 당신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2.예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어느 잔치에도, 어느 가정에도, 어느 공동체에도 문제는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든지 그 문제를 피해 살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직장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던 한 청년이 유명한 “적극적 사고방식”의 저자인 놀만 빈센트 필 박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상담을 마치면서 “선생님, 저에게 제가 지금까지 겪어온 그런 문제가 없는 직장을 하나 소개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놀만 빈센트 박사는 그에게 “당장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하더니 그에게 “내 차를 타라”고 하더랍니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나가 그의 사무실에서 몇 블럭 떨어진 공동묘지로 데리고 가더니 “형제여, 저 곳이야 말로 문제가 하나도 없는 직장이지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피해 인생을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직면할 때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마리아는 잔치집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예수님이 그런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주님이심을 알았고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절을 보면 마리아는 먼저 예수께 “포도주가 없다”고 잔치집의 문제를 아뢰었고, 하인들에게는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도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마리아는 로마 카톨릭의 주장처럼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기도의 훌륭한 모범을 보이신 분이십니다.

이런 마리아의 요청에 대해 예수님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4절을 보면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 “여자여”라는 말 때문에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주경학자 윌리암 바클레이는 여기서 사용된 “여자”(gunai)라는 말은 본래 로마의 황제 어거스투스가 에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만났을 때, 사용한 최상의 존칭이었다고 하면서 영어로는 “Lady” 우리나라 말로는 “숙녀”라고 번역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마리아는 “내 때가 이르지 못하였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요청이 받아들여질 것을 믿고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런 마리아의 믿음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포도주가 떨어지셨습니까?
유대인들의 속담에 “포도주가 없으면 기쁨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에게 포도주는 인생의 기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유대인들에게 이 기쁨이 없어지는 고난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험은 우리 모두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하고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15: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기적의 시작인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으시고 기도함으로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여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예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7-8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그렇습니다.
본문이 소개하는 기적의 결정적인 열쇠는 순종이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포도주이지 물이 아니라고 얼마든지 항의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 예수님이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을 때 도 마찬가지로 그들은 얼마든지 “당신이 우리를 망신시킬 작정이냐?”고 항의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했습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그렇습니다.
순종했던 그들은 기적의 비밀을 이해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적은 믿음의 기적이었고, 순종의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때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일을 요구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합리적으로 이성의 틀 안에서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적은 체험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합리적인 이성을 존중해야 하지만, 이성에만 묶이는 사람이 아닌 믿음의 사람이 되시고, 순종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적을 경험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 순종이 가져온 기적은 무엇이었습니까?
돌 항아리 여섯에 넘쳐나는 풍성한 포도주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양만 풍성함이 아니라, 질적으로 비할 데 없는 좋은 맛을 지닌 양질의 포도주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가까스로 우리의 필요만 채우시는 분이 아니라, 이런 풍성한 풍요와 축제의 기쁨으로 이 땅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우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적은 단순한 표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는 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이 표적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결정적으로 그가  어떤 분이신가를 믿게 하는 전기가 되었습니다.

11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여러분, 예수님이 처음 제자들을 위해 이런 기적을 행하셨다면, 오늘의 제자된 우리들을 위해서도 예수님은 동일한 기적을 행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무명의 신랑 신부를 위해 이런 기적을 행하셨다면, 나 같은 무명의 사업과 가정, 그리고 나의 인생을 위해서도 동일한 기적을 행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분을 초청하시고, 그분에게 이제 기도하시고, 순종을 결단해 보십시오.
기적의 축제가 시작될 것이고, 당신의 인생은 행복과 기쁨으로 사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주님은 2,000년전 이 기쁨을 빼앗긴 인생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시사 친히 우리의 슬픔의 원인인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주가 되셔서 이 기쁨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돌려주고 싶어하시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그러므로 만일 이 예수님의 초청을 우리가 수락하고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다면 이제 곧 당신에게도 여기 잔치집과 같은 행복과 기쁨이 시작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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