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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혹 당하지 맙시다 (요일 2: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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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를 하면서 가만히 보면
교인들 가운데 한 사람씩 한 사람씩 교회를 빠져나갑니다.
물론 믿음이 없어 교회를 떠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단 또는 불건한 신비주의자들의 미혹을 받아 교회를 떠나는 것을 볼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권해도 말을 듣지 아니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을 독선적 분파주의라고 말하는데
자기들이 제일 잘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저들의 삶이 말라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때에는 사탄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
여러 가지로 성도들을 미혹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하여 요한은 24절에서
[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 고 합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처음부터 들은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 그것은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곧 그리스도요 이 복음의 시작도 그리스도에게서 나왔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기 위하여
복음 안에 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 18절에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라고 하는데
이 마지막 때는 언제를 말합니까?
1. 마지막 때는 언제이며 마지막 때의 징조가 무엇입니까?(1절)
우리가 성경 전체의 흐름으로 볼 때
마지막 때란 그 시기를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하나는 시대적 구분에서 보는 시기입니다.
성경에서는 주님의 초림시부터 재림 때까지의 역사적 기간을 마지막 때,      곧 말세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 이후 신약시대를 마지막 때라 합니다.다른 하나는 주님의 재림의 시기에서 바라보는 때입니다.
주의 재림이 매우 가까운 시대를 종말의 때라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시대의 성도들이
모두 주님 재림의 소망 가운데 살아갈 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시대적으로 신약 시대를 말할 때에는
말세 또는 마지막 때란 말로 표현하고 있으며
징조적으로 주의 재림의 시기를 나타낼 때에는 종말이란 말로 표현하며
이 날을 인자의 날, 환난의 날, 주의 날, 롯의 때, 노아의 때 등으로 부릅니다.
마지막 때 나타나는 징조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마24:4-5절에 <2>
[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
적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18절에
[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함을 너희가 들은 것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
여기에 적그리스도란 - Anti kristos -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자들을 말함.
지금도 안티 기독교 사이트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안티 크리스토스 가운데는 두 가지 안티세력이 있습니다.
하나는 무신론적 안티 세력 - 아예 기독교 자체를 말살하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교회 안에 안티세력 - 복음을 변질시켜놓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둘 다 바로 사탄의 세력인 것입니다.

그럼 요한이 말하는 적그리스도는 어떤 자들입니까?

2.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하는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19절,22-23절)
사도 요한이 적그리스도를 언급하는 것은
당시 그리스도에 대해 잘못된 교리를 전파하던 영지주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간에 예수님의 제자 가룟유다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예수를 배반하여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몰았던 악역을 맡은 회생양이다 라고 하는 ‘유다복음서’가 최근 공개되고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다는
영화 ‘다빈치 코드’가 드디어 개봉되어,
기독교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으려고 합니다.
그럼 과연 유다는 정말 예수 십자가의 구원의 도우미로 나선 것일까요?
그리고 <댄 부라운>의 다빈치 코드라는 책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과연 ‘다빈치 코드’의 내용처럼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을까요?

이 분야에서 올해 82세의 세계적 석학으로 장로회신학대 초청으로
최근 방한한 <제임스 로빈슨> 미국 클레어몬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가 ‘다빈치 코드’와 ‘유다복음서’에 대한 궁금한 점들을 풀어줬습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로빈슨 교수는
“스위스 매세나 재단과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지가 부활절을 앞두고 ‘유다복음서’를 터뜨린 것은 흥행의 결정판이었다.”고 비판했습니다.
부활절 직전 발표돼 세계적으로 이목을 끈 ‘유다복음서’와
소설 ‘다빈치 코드’의 근거가 된 ‘빌립복음서’와 ‘마리아복음서’ 등은
1945년 이집트 나일강 유역에서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에 포함돼 있습니다.
이 나그함마디 문서는 180년경 고대 그리스어로 기록됐다가 <3>
3∼4세기에 고대 이집트어인 콥트어로 번역됐습니다.
콥트어 전문가로 발견 당시부터 나그함마디 문서를 연구해온 로빈슨 교수는 “이들 문서는 대부분 인간의 육체를 부정하고 영혼을 중시하는
영지주의 입장에서 기록돼 나중에 이단으로 몰리면서
문서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발견돼 고대유물상들 사이에 거래돼왔다”고 밝혔습니다.

‘다빈치 코드’에는 논란의 여지가 많이 있지만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느냐 하는 부분입니다.
<댄 브라운>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오른쪽에 있는 제자를 여성으로 보고 이를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합니다. 기독교가 예수의 결혼을 숨기기 위해 여성을 철저히 배제해왔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빈치가 그렇게 그렸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다빈치 코드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인물은 다름 아닌 사도 요한이라는 게 로빈슨 교수의 설명입니다. 요한은 12명의 제자 중 가장 나이 어린 소년으로
예수의 사랑을 특별히 많이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댄 브라운의 주장처럼 이 인물이 막달라 마리아였다면
다빈치는 예수가 가장 아끼고 사랑한 제자 요한을
이 그림에서 제외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합니다.

또 빌립 복음서에는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사랑의 입맞춤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에로틱한 성애의 표현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친밀한 인사였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도 스승을 체포하라는 신호로
예수에게 입맞춤을 하지 않았습니까.

아울러 유다복음서는 고대유물판매상인 <프리다 차코스>가
30만 달러를 주고 이집트 유물상으로부터 빼낸 뒤
예일대에 몇 배 비싼 가격에 팔려고 했지만
예일대는 밀수한 것임을 알고 구입하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 뒤 차코스는 이 문서를 스위스 바젤에 있는 매세나 재단에 의뢰해 밀수품 거래의 법률적 문제를 해결한 뒤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 협회에 200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이 협회는 투자 금액을 회수하기 위해
이 문서의 영어 번역본 등 책 2권을 출판하고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통해 흥미를 유발하는 TV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또 내셔널지오그래픽 5월호 잡지에도 이를 실어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로빈슨 교수는 <4>
유다복음서와 빌립 복음서 등이 포함된 나그함마디 문서를 연구해보면 나그함마디 문서는 영지주의 입장 때문에
정통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 초기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로빈슨 교수는
“‘다빈치 코드’ 등이 주장하는 반(反) 기독교적 내용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2000년 교회의 역사 속에서 되풀이 돼온 것으로
기독교인들은 느긋하게 대해야 한다” 고 했습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말하는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유다복음이니 빌립복음을 남겨논 초대교회 영지주의 이단들입니다.

그러나 항간에는 그래도 무슨 근거가 있으니
유다가 희생양이고,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고
없는 말을 지어 낼 수 있느냐? 합니다만
우리나라에만 해도 보세요.
이번에 캐나다 여행하면서 서점에서 베스트 셀러 5위에 올라있는
<개벽>이라는 책 - 실제상황이라는 부제가 달려 그 책을 싸서
비행기 안에서 다 읽었는데 - 알고 보니 증산교에 관한 책입니다.
증산교 3대 종정 안경전이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그기에 보면 증산교 교주 강증산이 하나님이고
석가 공자 예수는 그가 보낸 선지자들인데 다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도 천지개벽할 날이 오는데 - 즉 성경이 말하는 말세심판이지요.
천지개벽 징조로 병겁 즉 천연두가 창궐할건데
그때는 훔치기 주문을 많이 외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성부 성자 성령 - 3위 일체를 인정하고 있어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그 하나님을 옥황상제라고 합니다.
우리가 들어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는데도
증산교가 전국 곳곳에 일어나고 있어요.

이런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19절에 [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
즉 교회에 속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1) 그러니 다른 복음을 가지고 있는 교인들은
우선은 교회에 머물고 있지만 꼭 교회를 떠나갑니다.
떠나가는 이유는 교회가 부패했다, 여기 와야만 구원받을 수 있고, 잘 믿을 수 있다.
<어거스틴>이 그럽니다.
완전한 교회를 찾는 그 자체가 죄다.
교회가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품과 같다고 합니다.
거짓된 믿음을 가진 이들은 <5>
진실한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과 오래 함께 있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아닌 척해도 나중에는 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기도가 다르고, 성경을 보는 눈이 다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하면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이 거짓의 영을 드러나게 합니다. 그러니 이단세력들은 도망가게 되어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영성이 확실하고 신앙이 순수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러운 것이 드러날 줄 믿습니다.

2)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22절 [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저가 적그리스도니 ]
적그리스도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부인합니다.
즉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거짓말입니다.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낸 하나님 아버지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정체입니다.
여호와 증인, 안식교, 몰몬교 등- 예수님의 그리스도 됨을 부인합니다.
통일교 문선명, JMS 정명석, 그 외 이단들을 가만히 보면
직접 자기가 하나님이라 하지 아니해도 은근히 구원자임을 내세웁니다.

그럼 우리가 사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3. 우리가 사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비결이 무엇입니까?(24-25절)

24절 [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게 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
이게 무슨 말씀인가 하면
미국 재무국 위폐 감식반 직원들은 위조지폐를 보기만해도 안다고 합니다.
이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재무국에 들어오자마자
진짜 지폐를 가지고 5년 정도 놀게 한다고 합니다.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베고 자기도 하고, 물을 들여 보기도 하면서
진짜 지폐를 피부로 느끼게 한답니다.
그렇게 5~6년을 하고 나면 어떤 가짜도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진짜를 너무 잘 알기에 가짜는 본능적으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귀신론, 이단론보다 성경 말씀을 &nbsp;먼저 공부하십시오.
복음을 제대로 알면 이단을 이길 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단에 유혹받지 아니하려면 <6>
그러니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고 합니다.
처음부터 들은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복음입니다.
우리와 같은 사도신경 고백을 하는 교회는 이단이라 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듣고 또 듣고 그렇게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누가 일어나 나를 따르라 해도 따라가지 않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렇잖아요. 이단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거부감이 일어나잖아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는 말은
말씀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아라. 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퇴색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묵상하고 음미하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주 안에 거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4. 우리가 주 안에 거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무엇입니까?(26-27절)

26절을 보면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대해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집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과 베드로같이 실제로 예수님을 보았던 시대에도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판을 쳤다면 오늘날과 같은 때에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최고의 걸작 미술품들이 모조품이 많듯이
기독교가 참 진리이기에 이단도 많습니다.
이단은 집요하고 교활하고 강력합니다.
특히 그들은 영적으로 어린 사람들을 집중 공격합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18절에서 ‘아이들아’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영적으로 믿음이 어린 아이들에게 정신을 차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안에 거하는 확실한 증거가 무엇이겠습니까?
27절 보세요. [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우리로 하여금 주 안에 거하게 합니까?
바로 성령님인 것입니다.
27절을 다시 보십시오. 가르치신 그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요14:16절을 보면 성령을 ‘보혜사’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보혜사란 옆에 붙어서 도와주는 코치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대신 믿음의 삶을 살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7>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도록 옆에서 격려해 주시고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코치는 항상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어떤 스타라도 그 사람 뒤에는 코치의 피와 땀이 녹아있습니다.
우리가 이만큼 하나님의 삶을 사는 것은
성령님의 피와 땀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헌금하고 나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나서 자화자찬하지 마십시오. 그토록 자존심세고 잘난 체하고 뺀질뺀질한 나를 그분이 붙잡아주셔서
기다려주시고 용서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사람을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성도라면
어느 때든지, 무슨 일이든지 성령 터치가 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안에 거하는 삶을 살려고 하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20절 말씀에 보면
적그리스도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지키는 힘이 성령의 능력에 있습니다.
[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
여기에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이단들도 기름부음을 받는 예식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 기름을 부었느냐’ 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시고 성령을 우리 마음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성령터치입니다.
성령님이 터치하면 눈이 뜨여집니다.여기에 [ 우리가 모든 것을 안다 ] 는 것은 분별할 수 있다는 말인데
세상적인 방식으로 만물박사가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적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영분별 하는 능력,
어떤 사건에 대해서 영적인 해석이 가능한 능력,
성경말씀을 볼 때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영적인 능력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내 속에 성령님이 내가 주 안에 있다는 것을 증거함을 믿으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의 경주의 푯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앞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사는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5. 주의 재림 때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28-29절)

28절에 [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
바로 그 안에 거하는 삶인 것입니다. 주 안에 거하는 삶인 것입니다.
&nbsp;
‘주 안에 거하라’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8>
1)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라. 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언어와 행동이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을 순간순간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 일은 주님께 물어보지만
반도체의 일은 내가 전문가인데 하나님께 물어봐야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민감한 결정뿐만 아니라
범사에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말씀을 적용하십시오. 말씀이 지배하게 하십시오.

2) 주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친해지는 것입니다.
무엇이 성도를 성도답게 합니까?
하나님과 얼마나 신선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성도의 힘을 대변합니다. 하나님과 친한 사람은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은 건물도, 조직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끔 교인들의 간증 중에
[ 예배당에 들어오면서부터 말할 수 없는 감동과 눈물이 흐르는 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 고 했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한 성도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이런 압도적인 영적인 분위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얼마나 친합니까? 친할수록 자주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친했던 친구도 안 만나면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한 사람들은
주일에 뿐만이 아니라 수요일도 만나고, 금요일도 만나고, 새벽에도 만나고
심지어 목요일도 만나고 자주 만나시기 바랍니다.
왜 새벽기도와 큐티를 매일할까요? 하루만 지나도 딴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해 질 수 있습니다. 자꾸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시하라는 사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말씀으로, 성령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비틀거리지 않는 알 수 없는 담대함이 있습니다.

<결론>

요1서3:7절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미혹이란 ‘마음이 흐려져서 무엇에 홀리는 것’을 뜻하는데,
미혹의 영은 세상의 영으로서 믿음에서 떠나도록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지금도 사탄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믿는 자를 유혹합니다.
미혹당하지 맙시다. 그러기 위해서 주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과 친해지는 삶 되시기 바랍니다.
(김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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