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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작고 적지만 위대한 (마 13: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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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발달하면서 기계들이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전자부품들이 발전한 것을 보면 경이롭습니다. 손톱만한 반도체 속에 엄청난 정보를 담을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이용희 교수팀이 테라급 반도체 소재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1 테라는 1 조 비트에 해당합니다. 기가급의 천배에 달하는 용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테라급 반도체는 꿈의 반도체라고 불리웁니다. 0.1 미리의 정육면체 소자에 지구상에 있는 모든 책의 정보를 다 담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반도체 기술은 지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반도체는 앞으로도 빠르고 작아지는 경쟁을 할 것입니다. 첨단기술을 담은 반도체는 금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습니다.

이제는 작은 것을 누구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작은 것에 대한 가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천국에 대한 비유 두 가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겨자씨와 누룩 비유입니다.

먼저 천국은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했습니다. 겨자씨는 씨앗 중에서 아주 작은 씨를 상징합니다.

겨자씨는 좁쌀보다 더 작습니다. 겨자 열매는 가루로 내어 음식에 매운 맛을 내는 향신제로 쓰입니다. 실제 겨자는 나무가 아니고 일년생 채소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분명히 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겨자는 잘 자라면 어른 키보다 넘게 자랍니다. 나무처럼 잘 크기 때문에 겨자를 비유로 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성지순례를 하면서 이 겨자나무를 보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겨자나무는 어떤 나무일까요? 성지의 가이더는 히브리 말로 타바크라는 나무를 보여줍니다. 이 나무는 씨앗이 라면 스프처럼 가늘고 곱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씨앗이 자라 나무로 무성하게 큽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에 어울리는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주 작은 씨앗이지만 속에는 커다란 나무가 되는 유전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작다고 얕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작다는 표현을 할 때 겨자씨를 자주 쓰셨습니다.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저리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 라고 하셨습니다. <마 17:20>

예수님은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는 사람을 칭찬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10 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또 달란트 비유에서도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신다고 했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21>

예수님은 과부가 헌금한 엽전 두 푼을 칭찬하셨습니다. 주님은 돈의 크기보다 생활비 전부를 드린 거룩한 헌신을 확인하셨던 것입니다. 동전 두 푼의 액면가는 작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받으실 때는 어떤 헌금보다 크게 받으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이름 모를 소자에게 건네 준 냉수 한 잔의 친절을 칭찬하셨습니다. 심판대 앞에서 이 작은 선행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가까이 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이켜 이런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또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도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 장에는 하나님이 작은 자를 들어 쓰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8-29>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 눕혔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은 키가 2.9 미터나 되는 거인이었습니다. 골리앗은 힘만 믿고 양치기 소년 다윗을 얕잡아 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골리앗을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처단한다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물맷돌 한 방을 골리앗의 이마에 명중시켰습니다. 골리앗은 이 한 방에 나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임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작은 자를 들어 가장 크고 위대한 자로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겨자씨 비유는 현재는 작지만 미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겨자씨는 천국 백성이 품을 비전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현재는 작고 어리더라고 장차 크고 위대한 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부터 일을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작은 것을 크게 만드는 기쁨을 누리시는 분입니다.


두 번째 누룩비유입니다. 가루를 반죽한 후 누룩을 넣어 익히면 빵이 되면서 부풀어 오릅니다. 누룩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빵이 발효가 되면서 점점 커집니다.

본문을 보면 요리를 하는 여자는 누룩을 가루 서 말 속에 넣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가루 서 말이면 약 40 리터의 양입니다. 이정도면 약 100 명이 먹을 분량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넣는 누룩은 아주 적은 양입니다. 보잘 것 없이 적은 양이었지만 가루 전체를 부풀게 합니다.

누룩비유 역시 적은 것이 크게 작용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향력에 대한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 백 명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한 명이 천 명을 먹여 살립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한 명이 지구 전체를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12 명의 제자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개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9-20>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

‘모든 족속으로,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이런 단어들을 주목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고작 12 명을 모아놓고 온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갈릴리 지역의 촌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은 무식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전직 어부이거나 냉대를 받던 세리 같은 직업을 가졌던 이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하를 정복하라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 당시 전 세계는 엄청나게 넓은 개념이었습니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 나라 밖의 사정은 어두웠습니다. 땅 끝에 뭐가 있는지도 모를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갈릴리 촌사람들에게 엄청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것은 한 번 생각해보라는 권유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내린 지상 명령이었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로마의 점령 세력 아래에 지배를 받고 있을 때입니다. 모진 핍박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잡히면 죽는 살벌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리란 12 명의 청년들의 비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었지만 그들은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복음이 거저 전해졌습니까? 사도행전을 읽어 보십시오. 온갖 고난과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 복음을 전한 사도들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읽을 때 그 당시 사도들의 심장의 고동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12 제자들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사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했습니다. 제자의 수가 날마다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2 명이 70 명이 되었습니다. 120 명이 모여 기도하면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500 여 형제로 늘어났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3,000 명이 모여 들었습니다. 곧 5,000 명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어느새 그리스도인이란 칭호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각처에서 또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은 로마 정부의 악랄한 핍박을 받으면서도 복음 전파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거대한 로마 제국이 복음 앞에서 무릎을 꿇고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이 복음의 사명은 이제 우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천하에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누구도 복음을 전하지 않고 예수를 믿을 특권은 없습니다. 복음을 전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복음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입니다.

복음은 받았으면 다시 전해야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가슴으로 받아 불이 붙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은 자들은 뜨거운 가슴으로 다시 누군가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와 감격이 없다면 내 복음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받은 복음을 진단해 보십시오. 여전히 이 가슴에 구원에 대한 감격과 은혜가 있습니까?

요즘 중국 시장에 짝퉁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 중국의 짝퉁 때문에 큰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신제품이 나오기 무섭게 모델을 본 뜬 가짜가 등장합니다. 얼마나 정교하게 흉내를 냈는지 전문가도 진품을 구별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고 합니다.

복음에도 짝퉁이 있습니까? 똑같은 복음을 받았는데 누군 감격이 있고, 누군 무덤덤합니까? 왜 구원에 대한 감사가 없습니까? 세상에는 끝이 있습니다. 인생에도 마지막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인생의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짧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죽음 이후에 영원한 삶을 보장받아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 외에 영생을 말하는 곳이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막연히 죽으면 어떻게 되겠지 하고 긴장을 풀어버리렵니까? 죽으면 자동적으로 환생해서 다시 태어납니까? 그런 것을 믿으면서 죽을 준비 다 해놓았습니까? 환생이 없고 지옥이 있다면 어쩔 것입니까? 가슴을 치고 후회해도 거꾸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가슴에 복음의 씨가 뿌려져야 합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심어져야 합니다. 일단 복음이 씨가 아무리 작을지라도 가슴에 심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작은 씨는 무성한 나무로 자라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죽음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의 선물입니다. 은혜로 주시는 영생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천국 백성이 됩니다. 믿으십시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분입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사람이나 다른 방법으로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예수님만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성을 아람 군대가 포위했습니다. 아람 군대는 성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자를 차단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는 점점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먹을 것들이 금값으로 거래되었습니다. 결국 아들을 잡아먹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성 안에 있던 나병환자 4 명도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아람 진영으로 갔습니다. 해질 무렵이었습니다. 항복하려는데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보니 아람 병사들은 짐을 놔둔데 혼비백산 도망을 친 뒤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귀에 엄청난 군대의 소리를 들리게 한 것입니다. 나병환자들은 지천에 널린 음식들을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금은보화를 챙겼습니다. 의복을 챙겼습니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성 안 백성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아침까지 기다리는 것은 천벌을 받을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성으로 달려가 이 구원이 기쁜 소식을 외쳤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가 겪은 구원의 감격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무 놀라운 구원의 선물을 받았는데, 이 소식을 아직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전해야 하지 않습니까?

복음은 이렇게 전 세계에 2000 년 동안 증거 되어 왔습니다. 여러분! 이 복음을 전하십시다. 가만히 앉아 있지만 말고, 일어나 나가 전하십시다. 전하지 않는데 교회가 부흥합니까? 내가 전도하지 않는데 남이 대신 전도해 줍니까? 전도는 내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 몇 명을 전도했냐고 물으십니다. 이 준엄한 질문은 결코 생략되지 않습니다. 얼렁뚱땅 천국문에 들어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이 물음이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은 전도의 종들입니다.

겨자씨 비유는 겉으로 보이는 외형적인 성장에 초점이 있습니다. 누룩 비유는 내면적인 성숙함에 초점이 있습니다. 겨자는 크기로 작습니다. 누룩은 양으로 적습니다. 작고 적지만 결국 위대한 결과로 나타납니다.

교회는 외형으로나 내면으로나 다 자라야 합니다. 교회는 양적으로 믿는 자가 늘어나야만 합니다. 또한 성도들이 내적으로 신앙이 성숙해야 합니다.

여러분! 양적으로 성장하는 책임은 먼저 믿은 자들에게 있습니다. 내면적인 성장을 위해서 성경을 배워야합니다. 교회만 오래 다닌다고 믿음이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공부 기회가 있을 때 미뤄두지 마십시오. 사모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교리와 도리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지금 멋진학당이 개강되어 있습니다. 예배 마치고 점심 후 둥지 모임을 하고나서 집으로 가지 마시고, 멋진학당에서 좀 더 배우고 가십시오. 주일은 성전에서 종일토록 지내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겨자나무가 성장하면 어떻게 됩니까? 본문을 보니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든다고 했습니다. 새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무성한 나뭇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그늘에 모여와 쉼을 얻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성공한 인생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새들이 모여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평화로움을···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인생의 쉼을 제공하는 복된 인생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황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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